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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투자소라, 꽃, 나비 통한 내면풍경의 진술작은 필촉(stroke)으로 나누는 작업 눈길윤진섭·미술평론가, 호남대 교수소라, 꽃, 나비는 엄길자가 즐겨 다루는 소재다. 그 중에서도 특히 소라는 그녀가 오랜 기간 집중적으로 그려와 그녀의 그림과 관련해 이젠 거의 상징적 소재가 됐다. 왜 유독 소라일까. 유년시절 추억이 담긴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충남 서천이 고향인 엄길자는 어렸을 적 뛰어놀던 바닷가에 대한 추억이 늘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중에서도 소라는 신산을 겪은 유년기의 가족사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작고한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소라를 통해 투영된 게 아닌가 짐작해본다.작가의 뛰어난 질감 재현 소라를 소재로 한 엄길자의 그림들을 둘러보면서 몇몇 작품에 주목하게 됐다. <소라Ⅱ 삶-950814> (162x130cm, 캔버스에 유채, 1995)는 반 추상풍의 두꺼운 마티엘(물체 자체의 질감을 말하는 게 아니고 화면상 표현될 재료, 기법에 따라 생기는 화면 효과)이 두드러진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95년도에 소라를 소재로 그린 것이다. 소라의 일부만 확대해 그렸으므로 얼핏 보면 소라란 느낌이 잘 안 드는 그림이다. 그러나 전체적 색조나 형태는 소라의 질감과 모양을 잘 형상화하고 있어 회화에 대한 엄길자의 재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붓과 페인팅 나이프를 써서 소라 특유의 질감을 내고 거친 붓질과 줄줄 흘러내리는 물감의 드리핑기법이 이 그림의 두드러진 화풍이다. 그 다음에 눈길을 끄는 그림은 2001년도에 그린 일련의 소라 연작이다. <소라Ⅱ 삶-2001814>(101x74cm, 캔버스에 유채)는 9개의 작은 그림들이 모여 하나의 큰 그림을 이룬 것으로 소라의 다양한 모습을 그린 것이다. 옅은 회색조의 껍질과 선홍색의 내부, 서서히 꿈틀 대는듯한 소라의 붉은 속살이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작품이다. 이 작품 또한 이 시기에 그린 일련의 소라 연작과 함께 오랫동안 소라를 탐구해온 엄길자의 회화적 시각을 담고 있다. 이 일련의 소라 연작은 엄길자의 회화적 재능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활달한 붓질과 회색조와 선홍색조의 대비에 바탕을 둔 색 감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거침없이 휘두른 이 터치의 즉발성이 그 후의 그림들에서 왜 사라지게 됐는지 나는 그 이유를 잘 모른다. 다만 2003년 제5회 개인전에 꽃과 소라가 화면에 등장하고 있다. 이 두 소재를 갖고 화면을 이루게 되면서 모종의 변화가 있지 않았겠는가 짐작해본다.화려하게 등장한 꽃눈여겨볼 건 이 무렵에 찾아온 화풍의 변화다. 이 시기의 꽃 연작엔 ‘생명의 노래’란 부제가 붙어있어 꽃이 지닌 생명력을 과감한 꽃의 모양과 화려한 색채로 나타내려고 한 작가의 의도가 드러나 있다. 이와 관련, 참고해야할 건 꽃이 상징하는 여성성이 옅은 ‘에로틱’의 정서를 머금고 은유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건 캔버스 전면을 다 차지할 만큼 크게 커진 꽃잎 모양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여성기를 연상시키는 암술구조는 에로틱한 서정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 연작에서 소라는 부수적 위치로 머물고 있다. 이 또한 이 때 만들어진 작품들 특징을 이룬다. 2005년의 개인전 출품작들은 또 한 차례 화풍상의 변모를 겪은 모습을 보여준다. 이 시기에 이르면 엄길자는 화면을 작은 필촉(stroke)으로 나누는 작업에 빠져들게 된다. 즉 화면은 그 속에 담긴 대상이나 배경을 막론하고 작은 필촉으로 분할되는 가운데 다시 그 필촉들이 쌓여 전체를 구축하는 기법을 쓰는 것이다. 따라서 화면은 부드러운 톤의 색조로 이뤄진 꽃의 이미지로 화사한 느낌을 주면서 ‘에로틱’한 정서는 사라지게 된다. 소라는 이 연작에 이르면 전체화면에서 아주 작은 비중을 차지한다. 작가 시선은 온통 꽃에 머물고 있다. 이런 경향은 2007년까지 이어졌다. 이 무렵에 나타난 또 하나의 변화는 꽃이 그려진 배경을 사각형으로 나누고 있는 점이다. 이처럼 소라와 꽃이란 한정된 소재로 작업하면서 엄길자는 나름대로 변화를 꾀하고자 하는 자세를 지켜가고 있다.변화가 기대되는 엄길자엄길자는 근작들을 통해 다시 한 번 화풍상의 변화를 꾀해 눈길을 끈다. 먼저 눈에 띄는 특징은 물속에 잠긴 소라를 그린 것이다. 거기에 나비가 나온다. 꽃은 이번엔 등장하지 않는다. 엄길자의 이 분명한 소재주의적 시각은 집요할 정도로 대상에 빠져드는 자신의 성격을 잘 드러내주고 있거니와 화면에서 조형적 질서를 찾아내려고 한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나비는 꽃을 찾아다니는 게 통례다. 그런데 엄길자는 나비를 소라에 결부시켜 일종의 환치(데페이즈망)를 시도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엄길자 그림이 초현실주의적 화풍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아니다. 푸른색이나 에메랄드 혹은 약간 탁하게 보이는 갯벌의 물속에 잠긴 소라는 무리를 이뤄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물위에 드러난 소라들 주변에 나비들이 몰려와 날고 있는 장면을 포착한 것이다. 꽃 주변이라면 모르지만 바다 속에 잠긴 소라 주변에 나비가 날고 있는 이 장면은 비현실적이란 점에서 작가의 내면풍경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유년시절에 봤던 포구의 소라는 바닷가에 흩어져 사는 생물로서의 소라이기도하지만 낙지를 잡기 위한 미끼로서의 소라이기도 하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엄길자에게 있어 소라는 가족사와 관련해 남다른 추억이 깃든 소재다. 그런 연유로 그녀는 오랫동안 소라에 집착해 다양한 화면을 낳았다. 그것은 이제 다시 나비를 통해 또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다. 그녀의 작업에서 나비가 상징하는 건 과연 무엇일까. 나비는 흔히 ‘자유’나 비상(飛翔)을 상징하는 곤충이다. “나비처럼 훨훨 날아라”는 문장이 보여주는 것처럼 나비는 현실로부터의 이탈이나 도피를 암시한다. 그렇다고 할 때 소라가 다시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 근작에서 이 나비의 출현은 그녀 내면에 깃든 어떤 상념을 끌어내는 요인이다. 그것은 유년시절의 추억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고, 현재 자신의 삶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나르시스적 내면 풍경일 수도 있다.   지난 12월 열렸던 개인전엔 나비와 소라를 소재로 한 50여점의 작품들이 출품됐다. 100호 크기의 연작은 각기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상징한다. 겨울은 검정색, 봄은 노란색, 여름은 푸른색, 가을은 붉은색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 엄길자는 이 연작을 통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심상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건 당혹스러울 정도로 거칠고 대담한 표현술이다. 이 변화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화면엔 한 개의 소라와 대여섯 마리의 나비만 등장할 뿐 거친 터치와 조야한 색으로 채워진 캔버스는 황량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엄길자는 이 작품을 통해 이제 대상에 대한 세세한 묘사에서 떠나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 같다. 화사하고 예쁜 그림에 일종의 도전장을 던지는 것과 같은 이 작품들은 미의 정형화된 기준에 대해 모종의 질문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엄길자의 이 변신을 내심 흥미를 갖고 지켜보고 있다. 그녀가 이제까지 견지해온 그림의 내용이나 화풍을 염두에 둘 때, 큰 변화라 할 수 있는 이 연작을 통해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그 무엇이 다음 작품을 통해 더 숙성되길 기대하는 것이다. 그녀의 내면에 감춰진 회화적 재능이 활짝 만개하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Who is 작가?엄 길 자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10-12-29 00:00

여류서양화가 유숙자 초대전’이 지난 10월 19일~31일 일본 오사카 한국문화원에서 열린데 이어 11월 9일~21일 일본 동경에 있는 주일한국문화원에서도 열렸다.    유 작가는 자연 속에 칩거하며 흙, 모래 등 천연 토재를 재료로 민족고유의 소박한 색조와 차분한 형태 등의 표현기법에서 새로운 한국성 모럴을 느낄 수 있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모든 이들이 자유와 평화를 공유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어 현지 미술애호가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중앙대학교 예술대를 졸업한 그는 한국미술진흥회 이사, (사)한국미술협회 회원, 예우회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동경서 미술애호가로부터 관심유 작가는 만물창조의 시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창세의 원점에서 창조본질을 찾아 더듬어 나간다. 모든 물질 내지는 물체의 존재를 공간과 시간 속에서 포착하고 하모니를 향한 물질의 운동력에너지가 만들어내는 무수한 관(Relation)의 형태를 화폭에 담아내는 작업에 빠져들고 있다. 그녀의 작품들이 주는 일종의 해방감은 다양한 형태, 소박한 색조를 지닌 개체들 간의 연결성 내지는 개연성을 어떤 형식이나 경향을 배제하고 내적 사유의 공간성을 극대화할 수 있게 자유표현을 쓰기 때문인지 모른다. 터의 관점에서 땅과 물의 결합관계, 期(기)의 관점에서 去(거)와 來(래)의 결합관계를 파고들며 창조의 근원에 바싹 다거서고 있는 그녀의 작품들에서 和(화)를 향한 關(관)의 기가 뜨겁게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 뜨거운 열기로 탄생한 작품들 앞에서 우리는 겸허해지고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작가는 그녀의 작품을 위해 흙, 모래, 시멘트 같은 천연 토재를 많이 쓴다. 창조의 원천을 나타내는 작업에 이만한 소재가 지구상에 어디 있겠는가. 특히 땅과 물이 만나는 접점에서 채취하는 모래를 작품 속에 끌어넣는 건 창조적 세계를 창작적 화면에 입체화시킬 수 있는 뛰어난 선택이며 특별한 안목이다. 그녀는 기교를 부리거나 꾸미지 않는다. 천연 토재로 조형적 질감을 형성시키는 우직하고 과감한 나이프기법은 작품 하나하나에서 생동감, 곧 생기를 뿜어낸다. 그녀 작품에서 자주 보이는 스퀴즈로 밀고 나간 자국, 그것은 불현듯 빠져나간 어떤 생명체를 우리들에게 추상화시키면서 보는 이의 안타까운 가슴을 강하게 때린다. 캔버스에 생명체형상을 일체 명시하지 않고 어떤 움직임의 흔적만을 보여주는 해체적 수법은 보는 자들에게 상상의 날개를 펴게 한다. 정말 멋있다. 한없이 붓으로 지우고 덮었던 수많은 흔적은 감정이 있었던 자리이기도 하고 잊혀진 자리이기도 하지만 분명히 있었던 어떤 자국을 생생히 허전하게 남기고 있다. ‘작품’ 들어갈 땐 자연 속 칩거유 작가는 틈날 때, 기분 날 때, 조금씩 작품을 그려가는 그런 작가가 아니다. 작품에 들어갈 땐 집을 떠나 자연 속에 칩거하며 어렵사리 터져 나오는 소중한 영감을 붙들고 작품에 영성을 불어넣는다. 그녀의 독특한 창성은 이렇게 영성에 맞닿아 있어 그녀 작품은 우리를 자유롭게도 만들고, 평화롭게도 만들고, 엄숙하게도 만드는 내재적 힘을 안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유 작가는 이런 말을 했다. “나의 그림 그리는 작업은 평화를 갈망하는 궁극적 방법이다. 욕심을 빼낸 창조의 여백 속에 상상의 놀이터를 만들어 작품을 보는 모든 사람과 함께 자유롭고 평화롭게 뛰놀고 싶다.” 그녀의 작품세계 특징은 다른 추상화들과는 달리 그린 자와 보는 자의 해석이 분리되지 않고 함께 창조의 깊은 못에 맞닿는 같은 정신세계를 공유한다는 점이다. 과연 그림 하나가 어떻게 이처럼 미묘한 像(상)을 나타낼 수 있고, 어떻게 이처럼 깊은 想(상)을 허용할 수 있는 것일까. 추상화가 그런 것이라고는 하나 그녀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像과 想의 풍성함은 覺의 경지로까지 몰아가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그녀 작품 앞에서 숙연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연의 신비한 모든 생명체들에게 다양하게 주어진 관계가 화합으로 되살아나 자연과 인간의 삶이 화평하게 되길 바란다”는 작가의 말은 세계와 소통하고 싶어 하는 따뜻한 메시지다. 유 작가 작품을 보노라면 깊은 사색의 심연으로 빨려 들어가는 자신을 느낀다. 스스로를 자정케 하고 겸허하게 만들어 주는 신비한 기가 드러나는 것이다. 작가 역시 사색의 블랙홀의 깊은 못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을 창조해냈기 때문이 아닐까. “오호라! 면벽수도가 아니라 면화수도로다.” <Who is 작가?>유 숙 자* 개인전 18회* 단체전 한중일 대표작가 교류전 외 다수* 한국미술진흥회 이사* 한국미술협회 회원* 예우회 회원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9-11-27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