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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이틀 앞두고 MBC로부터 인터뷰요청이 들어왔다. 작가로부터 사건내용을 듣고 인터넷을 검색했는데 마우스를 집어던질 뻔 했다. 너무 참혹했다. 짐승이 사람에게 위해를 가해도 이보다 더 심하진 못할 것 같았다.  8세의 소녀가 학교로 가던 중 57세의 파렴치한에게 납치된 뒤 성폭행을 당해 항문과 생식기 80%가 영구히 소실된 끔찍한 사건이다. 이른바 ‘나영이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나영이  사건’  무기징역감범인은 수사과정과 공판과정에서 자신의 범행을 부인했다고 한다. 증거가 있음에도 범행을 부인하면 중형이 선고되는 게 형사재판의 실무다. 따라서 범죄수법이 잔혹하다는 점, 피해가 심하다는 점, 뉘우침이 전혀 없다는 점, 재범이란 점 등을 고려한다면 죄질이 매우 안 좋은 사건이므로 범인을 강간상해죄에 규정된 무기징역에 처할 수도 있다. 그런데 법원은 범인이 술에 잔뜩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으므로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점을 이유로 12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범인은 이에 불복해 항소·상고했지만 모두 기각당해 최근 12년의 징역형이 확정됐다.형법 제10조 제②항은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미약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서 범행한 사람에겐 형을 줄여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만취상태란 것도 심신미약에 해당된다. 재판부는 이 규정을 적용해 범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지 않았다.형사법정을 보면 폭력이 뒤따른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들은 만취상태였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법의 선처를 호소한다. 하지만 판사들의 반응은 100% 냉담하다. 만취상태였다는 증거가 없고 술에 잔뜩 취한 상태에서 저질렀다고 보기엔 범행수법과 결과가 계획적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형법조문을 더 보면 형법 제10조 제③항은 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일으킨 사람의 행위엔 형을 줄여주지 못하게 돼있다. 실무에선 이를 ‘원인에 있어 자유로운 행위’(원자행)라고 부른다.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서 또는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는 점을 예견하면서도 스스로 만취했다면 심신미약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규정이다.‘원자행’ 규정에도 적용돼범인은 범행 뒤 이틀이 지나서 붙잡혔다. 물론 음주운전사범이 아니므로 당연히 음주측정을 했을 리 없다. 그렇다면 만취상태였다는 점은 범인의 독백에 머문다. 아침에 학교로 가던 피해자를 기다렸고 대화까지 했다는 점, 화장실로 피해자를 납치해 성폭행을 가했다는 점, 증거를 없애기 위해 가혹한 상해를 가했다는 점, 범행 뒤 자신의 가족과 대화를 나눴다는 점을 보면 변명에 그친다는 것을 넉넉히 알 수 있다.백번 양보해서 범인이 실제로 술에 잔뜩 취했다고 해도 위 ‘원자행’규정(형법 제10조 제③항)이 적용되므로 형을 줄여줄 이유가 없다. 우리나라 법원은 만취상태를 이유로 범인의 책임능력을 완전부정한 판결을 선고한 적이 거의 없다. 더군다나 최근 판례는 명정범죄자에 대해 별다른 제한 없이 일반적으로 위 ‘원자행’ 규정을 적용, 완전책임의 범죄성립을 인정하는 추세다(범행 때 음주로 상당히 취한 상태에 있었고, 어느 정도의 정신박약상태가 보태어져 있다해도 바로 피고인이 범행 때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변별 및 의사결정능력이 없거나 미약해진 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 없으므로 범행이 충동적이라 해도 행위동기, 분명한 사리인식, 상황판단, 범행 은폐기도, 알리바이 조작기도 등을 볼 때 심신미약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 없다 : 대법원 1986년 7월 8일 선고 86도765).범인이 초범이고 만취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으며 수사과정과 공판과정에서 자신의 범행을 모두 인정하면서 피해자와 가족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피해회복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 했다면 12년의 징역형이 타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재범이며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술을 마셨고 자신의 죄를 전혀 뉘우치지 않으면서 피해회복을 위한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면 법정최고형이 선고됐어야 마땅하다. 그게 국민이 법원에 바라는 마음과 의지이며 법원의 존재이유다.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9-10-27 00:00

글_김계환(종합법률사무소 서로 변호사)그림_ 이영욱 변호사현행법상 음주운전은 형사처벌대상이다. 3회 이상이면 구속까지 된다. 교통사고로까지 이어졌을 땐 민사상으로도 큰 불이익을 당한다. 특히 최근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가법’)에 위험운전치사상죄를 신설, 만취운전자가 교통사고를 낸 경우 가중처벌까지 받는 실정이다.술 안마시고 처벌 받는 사례도실제 술을 마시고 운전한 경우라면 그런 불이익과 처벌이 덜 억울할 것이다. 그러나 음주운전사건 변론을 하다보면 억울하게 음주운전혐의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더러 만나게 된다. 아예 술을 마시지 않았거나 음주량이 극히 적은데도 혈중알코올농도가 규정치 이상으로 나와 음주운전혐의를 받게 됐다는 것이다. 필자도 그런 사건의 변론을 맡고 있다. 피고인은 친구들과 삼겹살을 먹으면서 소주 1~2잔을 마신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 때 피고인과 같이 저녁을 먹은 친구들 역시 피고인 주장이 사실임을 확인해줬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에서 혈중알코올농도를 감정한 결과는 채혈 때를 기준으로 혈중알코올농도가 0.142%, 위드마크공식을 적용해 사고 때의 혈중알코올농도를 재면 0.157%가 나왔다. 검사는 그런 감정결과를 바탕으로 피고인에게 ‘특가법’상 위험운전치사상죄로 기소한 사건이다.흔히 호흡측정기로 잰 것보다 더 정확하다고 하는 혈액검사결과이고, 그것도 공신력 있는 ‘국과수’의 혈중알코올농도 감정결과까지 있어 무죄를 다투는 경우 자백하고 선처를 구할 때보다 형량이 높아질 위험부담이 있어 변론의 어려움이 따른다. 특히 ‘국과수’ 감정결과를 다투는 사건에 있어 그렇다. 어려운 문제는 법원이 ‘국과수’의 혈중알코올농도 감정의뢰 회보는 별도의 신빙성 있는 반대 자료가 없는 한 배척하고 그 내용과 어긋나는 사실인정을 하기 어렵다(대법원 95다21440 판결 등)는 태도를 보여 그 증거가치를 매우 높게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설프게 적당히 ‘국과수’ 감정결과의 신빙성을 다투는 게 자칫 무모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더 큰 문제는 법원이 한 발 더 나아가 혈중알코올농도 측정을 위해 피의자동의를 받거나 영장을 받아 채혈한 뒤 국과수에 감정의뢰 했을 때는 물론 피고인이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피고인이나 그 가족들 동의를 받지 않은 채 진료목적으로 간호사가 뽑아놓은 피를 경찰관이 임의로 받아 국과수에 감정의뢰 했을 때도 절차상 적법하고 이에 따른 국과수 감정 회보도 증거로 쓸 수 있다(98도968 판결)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일선경찰은 이에 기초해 피의자가 의식이 없는 경우 간호사가 채혈해놓은 피를 받아 국과수로 보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이런 절차에 따른 혈중알코올농도 감정결과는 자칫 억울한 음주운전혐의자를 만들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국과수의 혈중알코올농도 감정 땐 혈액형 등 피의자 혈액임을 담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검사도 없이 오로지 혈중알코올농도 감정만 하므로 의도적으로나 실수로 혈액이 뒤바뀌더라도 확인할 길이 없다는 점이다. 채혈 땐 비알코올성 소독약 써야그리고 더 큰 문제는 간호사가 혈액검사를 위해 채혈할 땐 십중팔구 70%정도의 고농도알코올로 채혈부위를 소독한 뒤 피를 뽑는다. 채혈과정에서 소독용 알코올이 혈액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경찰지침에도 혈중알코올농도 측정을 위해 채혈할 땐 비알코올성 소독약으로 하도록 돼있다. 특히 사고 뒤 의식을 잃은 응급환자와 같은 경우 알코올이 휘발되길 기다려 채혈하는 경우가 찾아보기 힘들어 그 위험성은 더 크다. 술을 마시지 않았음에도 알코올로 소독한 뒤 채혈했을 때 혈중알코올농도가 거의 만취상태인 0.12%가 나왔다는 사례가 있다. 지금까지 수사와 재판실무에선 경찰이 응급실 간호사가 진료목적(혈액검사)으로 뽑은 혈액을 받아 국과수에 감정 의뢰한 사안에 대해선 거의 문제 삼지 않았으니 억울한 음주운전혐의를 받아 불이익을 당한 사람이 없었다고 단정하기 힘들다.형사재판에서 유죄로 인정하기 위한 심증형성의 정도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여야 한다(2008도2621 판결). 그렇다면 법원이 국과수의 혈중알코올농도 감정결과에 따라 음주운전혐의를 인정하기 위해선 적어도 ▲감정대상이 된 혈액이 피의자 혈액임을 담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혈액형검사 등)가 있었는지 ▲비알코올성 소독약을 사용, 채취한 혈액을 감정한 것임이 확인되는지 ▲경찰이 국과수에 감정 의뢰한 혈액 양도 감정결과의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을 정도의 최소량(필자가 변론하는 사건에선 국과수 사실조회결과 3g정도라고 나왔음) 이상이었는지를 먼저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다행히 최근 하급심 판결례 중엔 알코올로 소독한 뒤 뽑은 혈액을 감정한 경우 문제점을 감안, 국과수 감정결과를 배척하고 음주운전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예(광주지법 2007.3.22. 선고 2006노1642 판결)가 있다. 위 사건은 검사의 상고로 대법원에 계류 중이어서 결과가 주목된다. 법원이 혈액채취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제대로 알고 억울한 음주운전혐의자가 나오지 않게 합리적 판결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의 ☎(02)3476-3000,  www.seolaw.net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9-04-13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