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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이 사건’ 만취상태면 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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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이 사건’ 만취상태면 감형?
  • 소비라이프뉴스
  • 승인 2009.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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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이틀 앞두고 MBC로부터 인터뷰요청이 들어왔다. 작가로부터 사건내용을 듣고 인터넷을 검색했는데 마우스를 집어던질 뻔 했다. 너무 참혹했다. 짐승이 사람에게 위해를 가해도 이보다 더 심하진 못할 것 같았다. 
8세의 소녀가 학교로 가던 중 57세의 파렴치한에게 납치된 뒤 성폭행을 당해 항문과 생식기 80%가 영구히 소실된 끔찍한 사건이다. 이른바 ‘나영이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나영이  사건’  무기징역감

범인은 수사과정과 공판과정에서 자신의 범행을 부인했다고 한다. 증거가 있음에도 범행을 부인하면 중형이 선고되는 게 형사재판의 실무다.
따라서 범죄수법이 잔혹하다는 점, 피해가 심하다는 점, 뉘우침이 전혀 없다는 점, 재범이란 점 등을 고려한다면 죄질이 매우 안 좋은 사건이므로 범인을 강간상해죄에 규정된 무기징역에 처할 수도 있다.
그런데 법원은 범인이 술에 잔뜩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으므로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점을 이유로 12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범인은 이에 불복해 항소·상고했지만 모두 기각당해 최근 12년의 징역형이 확정됐다.
형법 제10조 제②항은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미약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서 범행한 사람에겐 형을 줄여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만취상태란 것도 심신미약에 해당된다. 재판부는 이 규정을 적용해 범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지 않았다.
형사법정을 보면 폭력이 뒤따른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들은 만취상태였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법의 선처를 호소한다. 하지만 판사들의 반응은 100% 냉담하다. 만취상태였다는 증거가 없고 술에 잔뜩 취한 상태에서 저질렀다고 보기엔 범행수법과 결과가 계획적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형법조문을 더 보면 형법 제10조 제③항은 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일으킨 사람의 행위엔 형을 줄여주지 못하게 돼있다. 실무에선 이를 ‘원인에 있어 자유로운 행위’(원자행)라고 부른다.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서 또는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는 점을 예견하면서도 스스로 만취했다면 심신미약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규정이다.

‘원자행’ 규정에도 적용돼

범인은 범행 뒤 이틀이 지나서 붙잡혔다. 물론 음주운전사범이 아니므로 당연히 음주측정을 했을 리 없다. 그렇다면 만취상태였다는 점은 범인의 독백에 머문다.
아침에 학교로 가던 피해자를 기다렸고 대화까지 했다는 점, 화장실로 피해자를 납치해 성폭행을 가했다는 점, 증거를 없애기 위해 가혹한 상해를 가했다는 점, 범행 뒤 자신의 가족과 대화를 나눴다는 점을 보면 변명에 그친다는 것을 넉넉히 알 수 있다.
백번 양보해서 범인이 실제로 술에 잔뜩 취했다고 해도 위 ‘원자행’규정(형법 제10조 제③항)이 적용되므로 형을 줄여줄 이유가 없다.
우리나라 법원은 만취상태를 이유로 범인의 책임능력을 완전부정한 판결을 선고한 적이 거의 없다. 더군다나 최근 판례는 명정범죄자에 대해 별다른 제한 없이 일반적으로 위 ‘원자행’ 규정을 적용, 완전책임의 범죄성립을 인정하는 추세다(범행 때 음주로 상당히 취한 상태에 있었고, 어느 정도의 정신박약상태가 보태어져 있다해도 바로 피고인이 범행 때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변별 및 의사결정능력이 없거나 미약해진 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 없으므로 범행이 충동적이라 해도 행위동기, 분명한 사리인식, 상황판단, 범행 은폐기도, 알리바이 조작기도 등을 볼 때 심신미약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 없다 : 대법원 1986년 7월 8일 선고 86도765).
범인이 초범이고 만취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으며 수사과정과 공판과정에서 자신의 범행을 모두 인정하면서 피해자와 가족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피해회복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 했다면 12년의 징역형이 타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재범이며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술을 마셨고 자신의 죄를 전혀 뉘우치지 않으면서 피해회복을 위한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면 법정최고형이 선고됐어야 마땅하다. 그게 국민이 법원에 바라는 마음과 의지이며 법원의 존재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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