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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ESG 선언하는 기업들... ① 쿠팡이 쏘아 올린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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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ESG 선언하는 기업들... ① 쿠팡이 쏘아 올린 질문
  • 박지연 기자
  • 승인 2021.08.05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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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기업’이 살아남는다

지난 6월 17일. 경기도 이천 쿠팡 물류센터에서 큰불이 났다. 이 화재로 소방관 한 명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 다음날 쿠팡은 공식적인 사과를 내놨지만 여론의 반응은 싸늘했다. 창업자 김범석 의장이 화재 당일 국내 법인의장 및 등기이사 사임을 발표해 논란이 됐다. 쿠팡 측은 예정된 일정이었다고 항변했으나 소비자들은 설사 예정된 일이었다 하더라도 시기가 시기인 만큼 발표를 미뤘어야 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쿠팡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꼬집는 보도가 쏟아졌다. 지난해 쿠팡 물류 센터와 외주업체에서 사망한 노동자는 모두 9명. 덕평 물류센터 화재 역시 예견된 사고였다는 근무자들의 증언이 이어지면서 쿠팡을 향한 비판의 강도는 점차 거세졌다.  

화재 사건을 계기로 소비자들 사이에선 쿠팡 탈퇴 운동이 전개됐다. 기사 댓글에는 “로켓배송의 편리함을 포기하겠다”거나 “사람이 먼저다”, “불량기업들 이번 기회에 소비자의 강력한 매운맛을 봐야 합니다”라는 등 날선 말들이 쏟아졌다. 

판매자들 사이에서도 쿠팡은 갑질 기업으로 통했다. 쿠팡은 같은 상품을 1원이라도 싸게 파는 판매자를 ‘위너’로 선정해 독점적인 판매권한을 부여하고 다른 판매자의 상품은 노출되지 않게 하는 방식으로 가격경쟁을 유도했다. 

판매자에 대한 갑질, 열악한 근무 환경, 화재 사고 발생 후의 안일한 대응에 분노한 소비자들은 쿠팡탈퇴를 인증하는 사진을 찍어 SNS에 공유하는 방식으로 적극적인 불매 의사를 표시했다. 해시태그 ‘#쿠팡탈퇴’를 단 게시물이 급격히 확산하면서 해당 검색어가 실시간 국내 트렌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남양과 유니클로…그리고 쿠팡
더 강력해진 불매운동의 의미
 

소비자가 기업에 가진 불만을 불매로 대응하는 것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2013년 대리점주에게 물량을 밀어내 이른바 ‘갑질’ 기업으로 낙인찍힌 남양유업은 불매운동으로 시작된 소비자 저항이 결국 기업 매각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낳는 시발점이었다.   

남양유업의 영업이익 변화를 보여주는 그래프. 2016년 400억대였던 영업이익이 지난해 700억원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다.

매출의 변화가 남양의 흥망을 잘 보여준다. 지난 2016년 1조 2391억원이던 남양의 매출액은 지난해 9489억원으로 20% 이상 떨어졌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영업이익에서 드러났다. 2016년 418억원이던 영업이익은 2017년 50억원, 2018년 85억원, 2019년 4억원에 이어 지난해에는 –771억원을 기록했다. 400억원이 넘던 영업이익이 -700억원까지 떨어졌다. 지난 4월에는 자사의 발효유 ‘불가리스’가 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다는 내용을 홍보했다가 허위로 밝혀져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고발당하기도 했다.  

점차 매출을 회복 중인 유니클로도 불매운동으로 곤욕을 치른 대표적인 사례다.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시작한 일본산 불매운동의 여파로 2019년 190개에 달했던 유니클로 매장 수는 올 6월 말 138개로 줄었고 플래그십 매장인 명동점마저 문을 닫았다. 불매 운동 1년 만에 매출액은 1조 3781억원에서 6298억원으로 반 이상 줄었다. 과거 한시적이었던 불매 운동이 SNS 등을 통해 확산하면서 영향력은 커지고, 시기엔 제한이 없어졌으며, 언제든 재개될 수 있게 되면서 소비자들의 불매 운동은 점차 영향력을 확대해 가고 있다. 나아가 이런 영향력을 확인한 소비자들은 앞으로 더욱 활발히 불매운동을 전개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 한시적이었던 불매 운동이 SNS 등을 통해 확산하면서 영향력은 커지고

시기엔 제한이 없어졌으며, 언제든 재개될 수 있게 되면서

소비자들의 불매 운동은 점차 영향력을 확대해 가고 있다.

나아가 이런 영향력을 확인한 소비자들은

앞으로 더욱 활발히 불매운동을 전개할 가능성이 높다.

 

이익 대신 ‘가치’ 외치는 기업들
선택 아닌 ‘필수’ 전략된 ESG 

위 사례에서 보듯 소비자들은 더이상 기업의 잘못된 행태를 두고 보지 않는다. 요즘 소비자들 사이에서 중요하게 부각된 ‘가치소비’는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거나 만족도가 높은 제품은 과감히 소비하고, 가격, 만족도 등을 꼼꼼히 따져 합리적으로 소비하는 성향을 지칭하는 동시에 이른바 ‘착한소비’를 통해 선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소비자의 의지가 담겨 있는 말이기도 하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환경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고, 열악한 노동 환경 탓에 노동자의 죽음이 잇따르자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묻는 소비자들이 늘었다. 

최근 기업을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는 ESG 논의도 결코 이와 무관하지 않다. ESG란 E(Environment, 환경), S(Social, 사회공헌), G(Governance, 지배구조)의 약자로 환경보호, 사회공헌, 투명한 지배구조 및 윤리경영 등 기업의 비재무적 성과를 일컫는 말이다. 

기업들이 분야를 막론하고 너도나도 ESG 경영을 선언하고 나선 것은 ESG 평가가 투자의 중요한 잣대가 돼서다. 

기업들이 분야를 막론하고 너도나도 ESG 경영을 선언하고 나선 것은 ESG 평가가 투자의 중요한 잣대가 돼서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기후리스크를 고려하지 않는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 대표적이다. 한전은 해외에서 석탄 화력발전소를 건설 중인데 대형 투자사 블랙록이 사업을 지속하는 근거를 밝히라고 압박했고, 실제로 네덜란드 연기금이 한국전력 투자금 800억원을 회수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국민연금이 ESG 투자 규모를 현 6%에서 2022년까지 55%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는 2030년부터 모든 코스피 상장사에 ESG 정보를 공시하도록 했다. 대형 투자사들이 ESG를 중요한 평가항목으로 두고 투자 여부를 결정하려는 움직임이 일자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를 받기 위해서라도 ESG를 도입하지 않을 수 없다. 선택이 아닌 필수란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기업들의 대응도 발빠르다. KB금융지주는 1100억원 규모의 녹색 채권을 발행했고 신한금융그룹도 지난 4000억원 규모의 ESG 후순위 채권을 발행했다. DB, 한화 등 주요 손해보험사들은 석탄화력발전소 건설과 운영에 관련된 보험을 판매 중지했다. 유통가에서는 친환경을 내세우며 무라벨 생수를 선보이고, 주류업계에서는 녹색 페트병을 투명 용기로 교체하는 등 다방면에서 ‘착한기업’이 되려고 애쓰는 모양새다.  

ESG란 말이 다소 생소하긴 하지만 사실 그리 낯선 개념은 아니다. 기업이 지닌 사회적 책임에의 요구가 비단 오늘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ESG와 비슷한 개념인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공유가치창출(CSV, Created Social Value)이란 개념도 따지고 보면 ESG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기존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기업의 수익 활동과는 무관한 기부활동이나 자원봉사 같은 외부활동으로 여겨졌다면 이제는 노동, 인권, 환경 등의 이슈가 기업의 흥망과 직접적인 연관을 갖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익과 효용을 최고 가치로 내세우던 기업들이 리스크를 줄이고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도모하기 위한 생존 젼략으로 ESG를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ESG 선언하는 기업들... ②“당신 기업은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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