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터카공제조합 "인과관계 없다" 보상 거부, 국토부는 6개월 끌다 "소송하라"
[소비라이프 / 김현식기자]
박람회에 전시하려고 차에 싣고 가던 볼파이톤 12마리가 교통사고 뒤 잇따라 죽었다. 사고는 가해 렌터카의 일방 과실로 났다. 그러나 가해 차량이 가입한 전국렌터카공제조합은 "뱀의 폐사가 사고 충격 때문인지 확인할 수 없다"며 뱀 값 보상을 거부했다.
피해자는 공제조합을 감독하는 국토교통부와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자배원)에 차례로 민원을 냈다. 국토부는 6개월 동안 20여 차례 처리기한을 늘렸다. 그 끝에 돌아온 답은 "민사 조정이나 소송으로 해결하라"였다.
금융소비자연맹(상임대표 조연행, 이하 금소연)은 10월 27일 보도자료(제927호)를 내고 "공제조합이 명확한 반증 근거도 없이 적재물 피해 보상을 거부했고, 감독기관은 대형 공제조합의 횡포를 사실상 묵인·방관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행사장 코앞에서 '쾅'…쇼케이스 열자 뱀들이 머리를 박고 있었다
사고는 2025년 7월 19일 오전 9시 2분께 경기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수원메쎄 인근에서 일어났다. 손해사정 회신에 따르면 2차로에서 유턴하던 렌터카가 1차로에서 정상적으로 좌회전하던 피해 차량의 우측을 들이받았다.
피해 차량에는 이날 수원메쎄에서 개막한 '코리아 인섹트 포럼 그리고 파충류' 박람회에 내놓을 희귀종 뱀인 볼파이톤(학명 Python regius)들이 전시 전용 케이스에 담겨 있었다. 차주 유모 씨는 서울에서 파충류 전문점을 운영하며 수원·부산·대구 박람회를 돌며 전시·분양을 해 온 전문업자다.
사고 처리를 마치고 서둘러 행사장에 들어가 쇼케이스를 열자 이상이 보였다. 뱀들이 똬리를 튼 채 머리를 바닥에 박고 있었다. 유씨는 오전 11시 25분께 사진을 찍고, 1분 뒤 공제조합 사고 담당자에게 전화해 상황을 알렸다. 사고 발생 2시간 24분 뒤였다. 통화 기록 요약에는 '차량 안에 동물이 있어 후속 조치를 문의했다'는 내용과 '사진·영상을 찍어 보내라'는 안내가 남아 있다.
피해 견적서에 따르면 사고 당일 8마리가 죽었고, 버티던 4마리도 이후 차례로 폐사했다. 모두 12마리, 판매가 기준 피해액은 497만 원이다. 유씨는 진정서에서 "후방 카메라에 비친 고정된 이동장이 사고 충격 당시 매우 크게 흔들리는 장면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볼파이톤은 국제적 멸종위기종 거래협약(CITES) 부속서 II에 오른 종이다. 국내법상 '국제적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돼 폐사 때 신고 의무가 있다. 유씨는 2025년 9월 한강유역환경청에 12마리 폐사를 신고했고, 폐사 사유는 '교통사고 충돌 충격'으로 적었다.
치료비·수리비는 주고 뱀은 "인과관계 없음"
금소연에 따르면 피해자는 대인 합의금 150여만 원(치료비 별도)과 차량 수리비 120만 원을 보상받았다. 사고 책임 자체에는 다툼이 없었다는 뜻이다. 문제는 차에 실린 '생물'이었다.
공제조합이 의뢰한 손해사정법인은 2025년 8월 회신에서 "사고 당시 영상, 피해물 손상 상태 등을 종합 검토한 결과 뱀 폐사가 사고 충격 때문인지 확인이 불가하다"고 밝혔다. 이어 "스트레스, 온도 변화 등 폐사에 이르는 다른 요인이 다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고 덧붙였다.
민법 제750조가 정한 불법행위 성립 요건 가운데 '가해행위와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빠져 법률상 배상책임이 없고, 따라서 공제 약관상 보상 책임도 없다는 논리다. 회신은 이의가 있으면 소송 등으로 확정하라고 안내했다.
피해자 "관리일지 보라"…13번 행사 중 폐사는 사고 난 한 번뿐
유씨는 '스트레스·온도 변화'라는 지적에 관리 기록으로 맞섰다. 2025년 1월부터 2026년 10월까지 13차례 박람회의 보관·운송 내역을 정리한 '전시·분양용 동물 보관 및 운송일지'다.
관리 기록일지에 따르면 동물은 행사 전날 오후 매장 보온시설에서 온도 24~26도, 습도 50~60%를 유지하며 포장·보관한다. 운송 중에는 계절과 관계없이 차량 내부를 25도로 맞춘다. 같은 방식으로 치른 13차례 행사 가운데 폐사가 난 것은 사고가 있었던 2025년 7월 한 번뿐이다. 나머지 행사의 건강 특이사항은 모두 '없음'으로 적혀 있다.
일지는 피해자 측이 작성한 기록이어서 그 자체로 객관적 증거가 되기는 어렵다. 다만 '평소와 다른 변수는 사고뿐'이라는 피해자 주장의 정황 자료로는 의미가 있다.
유씨는 파충류 전문업체 제이콥슨 권일주 대표의 의견서도 냈다. 의견서는 해외 문헌을 들어 "차량 충돌 시 내부에 있던 파충류도 충격을 받아 내부 장기 손상·쇼크로 단체 폐사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다만 작성자는 수의사가 아닌 업계 종사자이고, 폐사 개체를 직접 부검한 소견은 담기지 않았다.
6개월, 20여 차례 기한 연장 끝에 "조정이나 소송하라"
피해자는 2025년 9월 금소연에 진정을 냈다. 금소연은 같은 달 공제조합에 보상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고, 이후 자배원(2025년 12월, 2026년 1월)과 국토부(2026년 2월 10일,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이어갔다.
국민신문고 처리 기록을 보면 국토부(모빌리티자동차국 자동차운영보험과)는 2월 23일 처리기한을 한 차례 연장했다. 이후 2월 10일부터 6월 30일까지 24개 구간을 '처리기간 불산입' 기간으로 지정했다. 사유는 대부분 '실험·검사·감정, 전문적인 기술검토 등 특별한 추가절차'와 '공제조합 검사 기관인 자배원 답변 등 실시'였다. 금소연은 이를 "22회 지연 안내"로 집계했다.
눈에 띄는 대목도 있다. 4월 10~14일 구간의 불산입 사유는 '혁신방안 과제 추진일정 팀장님 수정(안) 송부'로 적혀 있다. 이 민원의 사실관계 검토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기록만으로는 알 수 없다.
처리예정일(7월 1일)을 한 달 넘긴 8월 10일 도착한 답변은 짧았다. 국토부는 "당사자 간 이견으로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최종적으로 민사적인 조정이나 법원의 소송 등을 통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며 자동차손해배상보장위원회 공제분쟁조정분과위원회를 안내했다. 자배원의 민원 처리에 대해서는 "부당하게 처리된 업무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6개월간 진행했다는 검토의 결과나 근거 자료는 첨부되지 않았다.
금소연 오중근 교통사고구호센터 본부장은 "6개월여 동안 조사를 하고도 아무런 근거 자료 없이 조정 신청만 권유하는 국토부의 태도는 대형 공제조합의 횡포를 묵인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쟁점은 '입증책임'…더 아쉬운 건 사고 당일의 '초동조사'
금소연은 자동차 사고에는 무과실책임주의가 적용되므로, 인과관계가 없다는 입증은 가해자 측이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법리 해석은 엇갈릴 수 있다.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제3조의 운행자책임은 가해자에게 증명 부담을 지우는 대표적 규정이지만, 사람이 죽거나 다친 인신손해에 적용된다. 같은 법 제4조는 재물손해를 포함해 그 밖의 경우에는 민법을 따르도록 하고 있다. 민법상 불법행위에서는 원칙적으로 피해를 주장하는 쪽이 인과관계를 증명해야 한다. 결국 이 사건도 조정이나 소송에서 '누가 어느 정도의 개연성을 보여줬느냐'가 승부처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더 아쉬운 것이 초동 대응이다. 뱀의 사인을 가장 확실히 밝힐 수 있었던 시점은 사체가 남아 있던 사고 당일이었다. 피해자는 사고 2시간여 만에 공제조합에 이상을 알렸다. 그러나 공제조합 측이 수의사 검안이나 부검, 현장 확인에 나섰다는 기록은 제출 자료 어디에도 없다. 3주 뒤 나온 손해사정 결론은 '확인 불가'였다.
금소연이 "부상당한 뱀이 어느 정도 다쳤는지, 왜 죽었는지 전문가 부검 등 신속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인과관계 규명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했다"고 비판하는 지점이다. 피해자 역시 당시 부검을 의뢰하지 못했고, 폐사 개체는 소각 처리돼 이제는 사후 감정도 어렵다. 양측 모두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채, 증명하지 못한 부담만 고스란히 피해자 몫이 됐다.
유씨는 진정서에 "공제조합 직원들도 이런 경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잘 몰라 현장 대응과 보상 처리 과정에서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고 적었다. 처리 매뉴얼의 부재를 짚은 대목이다.
반려 파충류는 늘어나는데…'살아 있는 적재물' 보상 기준은 공백
이번 사건은 한 업자의 불운으로만 보기 어렵다. 파충류 사육과 거래는 이미 하나의 시장이 됐다. 수원·부산·대구에서는 파충류 박람회가 연중 열리고, 이번 피해자 사업자도 2년 새 13차례 박람회에 생물을 싣고 다녔다.
정부도 제도 정비에 나섰다. 2025년 12월부터 수입·유통·사육이 가능한 야생동물을 정한 이른바 '백색목록' 제도가 시행됐다. 처음 마련된 목록 888종 가운데 파충류가 655종으로 가장 많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는 목록이 지나치게 넓게 작성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이런 생물이 사고를 당했을 때 손해를 어떻게 확인하고 산정할지에 대한 기준은 보이지 않는다. 생물 적재물은 겉으로 파손이 드러나지 않고, 충격 뒤 몇 시간에서 며칠에 걸쳐 폐사하는 경우가 많다. 깨진 화물을 사진으로 확인하는 기존 대물 보상 실무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구조다.
금소연 "재조사하라"… 렌터카공제조합 "정당한 배상하라"
금소연은 ▲국토부가 금융감독원의 보험사 보상 감독 체계를 참고해 공제조합의 보상 거부와 부실 조사를 재조사할 것 ▲렌터카공제조합이 전문가 의견서에 반하는 객관적·과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정당한 배상을 이행할 것 ▲피해 통보를 받고도 부검 등 조치를 하지 않은 채 인과관계 규명을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행태를 중단할 것 ▲감독기관이 '소송 유도형' 민원 회신을 멈출 것을 요구했다.
제도 개선 과제는 세 갈래로 정리된다.
- 공제조합·보험사: 생물 적재물 사고 접수 즉시 특수동물 진료가 가능한 수의사 검안·부검을 의뢰하는 초동조사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 증거가 사라지기 전에 사실을 확정하는 것이 분쟁을 줄이는 길이다.
- 국토부·자배원: 민원 회신에 검토 결과와 판단 근거를 첨부하도록 하고, 처리기간 불산입 사유를 민원 내용과 직접 관련된 절차로 한정해야 한다.
- 업계·박람회 주최 측: 운송 중 생물 사고에 대비한 적재물 보험 상품과 표준 운송 기록 양식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비슷한 사고를 당한 소비자라면 사고 직후 사진·영상을 남기고, 공제조합이나 보험사에 서면으로 통지한 뒤, 가능한 한 빨리 동물병원 검안·부검 소견을 받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공제조합과 분쟁이 생기면 자동차손해배상보장위원회 공제분쟁조정분과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할 수 있으며, 별도의 조정 수수료는 없다.
유씨는 진정서 말미에 "사실 있는 그대로 현장 증거자료를 제출했음에도 인과관계가 결여돼 보상이 안 된다는 주장은 매우 부적절하고 잘못된 처사"라고 사업자에게 정당하게 배상해 줄 것을 호소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