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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부(富)] 물고기가 세상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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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부(富)] 물고기가 세상을 바꾸다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6.1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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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의 사용이 많지 않았던 시절 사용되던 Stock fish(돈 물고기)
네덜란드는 어업을 시작으로 조선업과 무역업의 중심으로 성장

[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물건을 거래하면서 화폐를 주고받는 것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일반화된 모습이다. 화폐의 사용이 많지 않았던 시절에는 유럽에서 ‘돈고기’를 사용했다. 돼지(돈, 豚)고기가 아니다. ‘Stock fish(돈 물고기)’라고 불리던 물고기다. 
 
유럽에서는 일정한 크기의 대구와 청어를 동일한 모양으로 말려 이를 생활에 필요한 여러 물건으로 교환하는데 사용했다. 깊숙한 발트해를 떠나 네덜란드의 코앞 북해로 몰려든 청어가 처음부터 돈이 된 것은 아니었다. 맛은 좋았지만 빨리 상해 보관이 어렵다 보니 바다에 오래 머무르며 청어를 잡는 것은 어려웠다. 

1358년 평범한 어민이었던 빌렘 벤켈소어(Willem Beukelszoon)가 사용한 작은 칼을 사용하면서 청어잡이가 활기를 띠게 된다. 생선의 머리 부분을 떼어내고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 그 안을 소금으로 채워 보관하면서 오랫동안 청어를 잡을 수 있었다.
 
네덜란드에 청어는 먹거리 이상이었다. 당시 에스파냐에서 추방당해 네덜란드에 정착했던 유대인들이 비싼 암염(巖鹽)을 대신해 바닷소금을 수입하면서 절임청어의 가격경쟁력은 올라갔다. 덕분에 네덜란드의 상선은 먼 곳까지 보급 없이 항해할 수 있어 비용이 줄었고 운송횟수도 증가해 여러모로 경제적이었다.

말림과 절임으로 보관기간이 늘어나면서 청어가 전 유럽으로 팔려나갔다. 기독교가 장악하고 있던 유럽에서 1년에 1/3이 넘는 140여 일의 금식 기간에도 생선은 허용된 먹거리였다. 생선 중 보관이 용이했던 청어를 구하려는 상인들은 네덜란드로 몰려들었고 그들이 쓸어간 청어의 빈자리는 다른 재화와 돈으로 채워졌다.
 
1669년 자료에 따르면 어부를 포함해 어선 제작, 보관 통 제작, 어망 제작, 생선 가공 같은 관련업에 종사한 사람이 당시 네덜란드 인구의 1/5인 45만여 명에 이르렀다.
 
어업 발전은 어선 수 증가로 이어졌다. 1560년경 1천여 척에 달하던 어선 수는 1620년경 2천여 척에 이른다. 당연히 조선업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바다는 통행세를 내야 했는데 그 기준이 갑판 넓이였다. 네덜란드가 만든 상선은 아랫부분의 화물칸을 불룩하게 만들고 갑판을 좁게 해 화물량은 늘리면서 통행세는 절감할 수 있었다. 무게중심이 낮아 풍랑에도 잘 견디고 제작 비용도 잉글랜드의 60% 수준이었다. 조작도 쉬워 승선 인원을 1/3로 줄일 수 있어 상선 운영 비용을 줄이는데 효과적이었다. 
 
네덜란드는 어업을 시작으로 조선업과 무역업의 중심으로 성장하면서 각지의 돈이 몰려 ‘혼란의 환호’를 질렀다. 거래되는 화폐를 통일시키기 위해 암스테르담 은행이 설립됐다. 네덜란드는 무역을 위해 ‘주식회사’라는 새로운 개념도 만들었다. 동인도회사를 시작으로 주식회사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주식을 거래하려는 사람들이 증가했고 이들을 위해 증권거래소가 만들어진다. 물고기 하나로 시작된 ‘나비효과’치고 파급력은 크다. 네덜란드의 돈고기 청어는 금융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 

이강희 칼럼니스트
이강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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