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8 11:51 (목)
[지구를 떠도는 부(富)] 부는 절대왕정을 택했다
상태바
[지구를 떠도는 부(富)] 부는 절대왕정을 택했다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5.10 11: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절대왕정들은 상비군을 두어 언제든지 외부의 적과 싸울 수 있는 태세 구축
견제받지 않는 강력한 권력이 불러온 끔찍한 결과

[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암흑기로 묘사되는 중세. 십자군과 흑사병의 유행은 인구감소와 영주들의 몰락을 가져왔다. 헌금으로 지탱하는 교회는 돈이 부족해 성직을 매관매직했으며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교황이 나서서 면죄부를 남발했다. 교회의 세속적인 모습에 환멸을 느낀 마르틴 루터는 1517년 ‘95개조 반박문’으로 로마교회에 대항하기 시작했고, 고대 로마 시대 이후 천 년 이상 유럽을 지배했던 기독교는 갈등을 겪게 된다. 

유럽 전역에서 시작된 구교와 신교 간의 갈등은 백 년간의 전쟁으로 이어져 많은 사람이 죽고 토지는 황폐해지게 된다. 오랜 갈등과 불안함 속에서 사람들은 안정을 추구하게 되고, 혼란을 정리할 절대 권력을 받아들이며 나라별로 ‘자뻑’ 왕들이 등장한다.
 
16세기 르네상스는 자본의 축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연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인간에 대해 이해하려는 시도가 증가했다. 인간의 이성에 대해 탐구하려는 시도는 철학적인 발전으로 이어졌다.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보티첼리와 같은 거장들이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경제적인 뒷받침을 해준 덕분에 우리는 오늘날 위대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문화적인 역량이 쌓인 유럽에서는 자뻑 왕과 귀족, 관료를 위한 새로운 문화적 색채가 부각되는데, 이게 바로크다. 르네상스가 인간을 위한 시대였다면 바로크는 사치를 위한 시대였다고 볼 수 있다. 바로크의 웅장함은 왕들의 권력을 과시하고 위엄을 세우기에 알맞은 아이템이었다.

유럽의 왕들은 절대 권력을 과시하고 싶어 너나없이 호화로운 궁전을 짓기 시작했다. 돈이 생기면 사치를 일삼았고, 사치의 일환으로 예술을 추구하면서 수많은 예술품도 쏟아졌다.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궁전 안에는 바로크 양식으로 그려진 그림이 복도와 방을 채웠고 바로크 양식의 음악이 왕과 귀족을 위해 연주되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절대왕정의 권력을 잘 누린 나라 중 하나가 바로 프랑스다. ‘짐이 곧 국가’였던 ‘루이14세’가 그 절정이었다. 그를 잘 보여주는 프랑스의 또 다른 상징 하나는 바로 ‘베르사유궁전’이다.

절대왕정들은 상비군을 두어 언제든지 외부의 적과 싸울 수 있는 태세를 구축했다. 그 덕분에 왕은 자신을 무시하거나 국가를 모독하면 누가 강한지를 증명하기 위한 전쟁을 벌였다.
 
나사 빠진 왕들의 싸움터가 되어버린 유럽에서 이들을 잠재울 권력은 없었다. 교황의 권위는 이미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였고 종교가 가졌던 권력도 예전만 못했다. 르네상스의 수많은 사상가는 강한 권력을 가진 왕이 나타나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역설했지만, 막상 이러한 상황이 되자 새로운 대안을 찾으려고 했다. 견제받지 않는 강력한 권력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검증을 너무 혹독하게 치렀다. 세상의 외면을 받기 시작한 절대 권력에게 절대적인 후원을 했던 부(富)도 새로운 동반자를 찾아 나서게 된다. 

이강희 칼럼니스트
이강희 칼럼니스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