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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부(富)] 중상주의가 준 부를 낭비한 절대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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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부(富)] 중상주의가 준 부를 낭비한 절대왕정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5.17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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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 분쟁에 개입해 패배 후 막대한 비용만 부담
불필요한 낭비와 전쟁을 통한 지출이 심해지면서 시작된 민심의 이반

[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권력과 부를 소수만이 누린다면 그 소수는 겸손과 멀어져 교만을 가까이하게 되고 결국 타락과 실패로 이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짐이 곧 국가다(L'Etat, c'est moi, 레따 쎄 무아).’라는 말을 했다고 알려진 ‘루이 14세’는 프랑스 절대왕정의 정점에 있는 인물이다. 그는 다섯 살도 안 된 어린 나이에 즉위하고 23세의 나이에 국사를 직접 돌보게 되면서 여러 차례의 반란과 자신을 무시하는 왕족과 귀족을 경험했다. 그는 자신이 무시당했던 것은 왕권이 약해서라는 생각으로 왕족과 귀족의 정치참여를 제한하고 장 바티스트 콜베르(1619~1683)와 같은 인재를 영입해서 나라의 요직에 앉혔다. 

콜베르는 재무장관으로서 프랑스의 농업 위주 경제체제를 개혁해 무역을 중심으로 하는 중상주의 정책을 실행하면서 프랑스의 국부가 증대되는데 많은 이바지를 했다. 이 과정에서 자본을 가진 부르주아층이 급성장해 새로운 상류층을 형성한다.
 
부르주아(Bourgeois)는 성안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중세 성의 외벽과 내벽 사이에 지역을 부르그(Burg)라고 불렀는데 상공인들이 주로 이 지역에서 거주하면서 이들을 부르는 칭호로 굳어졌다. 그들이 프랑스가 추진한 중상주의 정책의 수혜로 돈을 많이 벌면서 오늘날에는 부유한 자본가나 부유한 계급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어버려 마르크스 ‘자본론’에 나오기도 한다. 
 
콜베르는 재무장관이었지만 프랑스의 국정 전반을 쥐락펴락했다. 이는 루이 14세의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는데 무역과 상공업은 물론이고 농업, 식민지와 해군 증강사업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콜베르는 프랑스의 재정을 튼튼하게 하려면 금과 은을 다른 나라보다 많이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수출은 많이 하되 수입은 줄이는 정책을 진행했다. 그리고 프랑스 상선의 수를 늘려 다른 나라와의 교역에 프랑스 상선을 주로 사용하도록 했다. 상선의 안전이 부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었기 때문에 해군력을 증강하기 위해 나무를 심어 숲을 가꾸었는데 이때 조성된 나무숲이 리무쟁(리무진) 지역의 오크 숲이다. 

프랑스는 다른 나라로 수출하면서 얻는 수익이 한계에 다다르자 해외의 식민지를 개척해 수출량을 증대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와 같은 재정적인 기반을 통해 루이 14세는 역대 프랑스 왕들이 누려보지 못한 절대 왕권을 세울 수 있었다. 

기고만장과 자신만만으로 표현되는 루이 14세는 재정적인 여유와 막강한 군사력을 갖게 되자 다른 나라 분쟁에 개입해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행보에 뒤따르는 여러 번의 패배에 막대한 비용만 부담하게 된다. 
 
프랑스의 재정은 부족해져 갔다. 자본에 여유가 있던 사람들은 국왕의 요구로 돈을 빌려주었고 왕은 이를 통해 재정을 끌고 나갔다. 이후 프랑스 정부는 빌린 돈의 규모가 커지자 고리대를 한다거나 부정부패와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돈을 빌려준 이들을 구속하여 유죄를 판결하고 사형까지 집행했다. 
 
이러한 행위들은 후대 왕들에게까지 이어져 프랑스 왕실에 대한 신용도 하락으로 이어졌다.  부를 쥐었지만 제대로 된 사용법을 몰랐던 프랑스 왕실은 베르사유궁전과 같은 불필요한 낭비와 전쟁을 통한 지출이 심해지면서 시작된 민심의 이반을 알지 못했다. 자만에 빠진 왕실은 결국 혁명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무릎을 꿇고 부르봉 왕가의 종말을 맞는다. 

이강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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