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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 파란불, 너무 짧은 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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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 파란불, 너무 짧은 거 아닌가요?
  • 권하진 소비자기자
  • 승인 2021.03.04 1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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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에 어려움 없어도 촉박한 횡단보도 보행 신호
보행 신호 늘릴 수 있는 보호구역, 매우 적어
출처 : Pixabay
출처 : pixabay

[소비라이프/권하진 소비자기자] 짧은 횡단보도 보행 신호로 인해 노인, 장애인 등 교통약자가 마음을 졸이며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보호구역의 보행 신호 시간을 늘렸지만, 보호구역의 수가 적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를 제외한 횡단보도는 여전히 보행시간이 짧아 교통약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1월 노인 보행자와 사고가 날 뻔한 운전자 A 씨. 대각선(X자형) 횡단보도에서 보행 시간이 끝난 후에도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던 노인을 미처 보지 못하고 차를 출발한 것이다. 다행히 비켜 가며 사고를 면했지만 자칫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A 씨는 “노인분이 보행 시간이 아닐 때 횡단보도에 계셨지만, 사고가 나더라도 과연 노인분께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싶었다”며 “해당 대각선 횡단보도가 유독 보행 신호가 짧아 사람들이 파란불이 끝나갈 때 모두 뛰어다닌다”고 전했다.

A 씨가 제보한 횡단보도를 기자가 방문해 건너본 결과, 파란불이 약 28초지만 가장 긴 대각선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20대 여성 보통 걸음 기준 약 25초가 소요됐다. 파란불을 인지하고 교차로의 차가 모두 멈춘 것을 확인하기까지 약 3초, 횡단보도에 발을 딛고 건너편 인도까지 도착하는데 약 22초. 건너편 인도에 발을 딛고 뒤를 돌아보자 빨간불로 바뀌었고 미처 건너지 못한 사람들은 약 3초 후 인도에 발을 디뎠다. 해당 횡단보도는 보행에 어려움이 없는 사람의 기준으로 보행 신호가 딱 알맞거나 조금 촉박하므로 교통약자에게는 버거운 상황이었다.

지난 11월 개정된 경찰청 교통신호기 설치관리 매뉴얼에 의하면 어린이 보호구역, 노인·장애인 보호구역에서는 보행 신호 운영 시 0.7m/s의 보행속도를 적용한다. 이는 2019년 진행된 횡단보도 보행속도 기준 개선 연구 결과에 따라, 기존 교통약자의 0.8m/s 보행속도 기준보다 완화된 속도 기준을 적용한 것으로 보행 시간이 더 여유로워진다. 횡단보도 보행 신호 연장이 보행자 안전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 보행 신호를 연장하여 사고를 줄이는 효과를 본 적이 있다. 지난 2019년 경기남부경찰청은 보행이 느린 노인의 안전한 횡단 여건 마련을 위해 노인 보행자 사고 다발 지점에서 시범적으로 횡단 보행속도 기준을 1.0m/s에서 0.8m/s로 완화한 결과, 보행 신호 시간에 횡단을 완료하지 못하는 노인 보행자가 70.5% 감소했다. 해당 횡단보도 이용자를 대상으로 경기남부경찰청이 시행한 설문조사에서도 54.5%가 횡단보도 보행 신호 시간 연장이 안전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었다고 밝혔다.

교통약자를 위해 기준 보행속도 조정 등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실제 적용되는 어린이 보호구역, 노인·장애인 보호구역이 많지 않아 시민들은 체감하기가 어렵다.

2018년 말 기준 서울시의 노인 보호구역은 134개, 장애인 보호구역은 7개로 서울시 내 노인·장애인 시설 및 인구대비 현저히 부족한 숫자이다. 또 세종시의 경우 2019년 기준 노인 보호구역 5곳, 장애인 보호구역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강원도 속초시 노인 보호구역 2곳, 경기도 의정부시 노인 보호구역 5곳 등 전국적으로 보호구역이 적어 교통약자가 안전함을 느끼며 이동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특히 장애인 보호구역의 경우 현행법상 장애인이 빈번히 이동하는 길이라고 하여 보호구역으로 지정할 수 없어 노인 보호구역에 비해 그 수가 적거나 없다.

또한, 지난 2020년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보호구역임에도 불구하고 교통약자 기준으로 보행 신호 시간을 지키고 있지 않은 곳, 보호구역이나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지 않은 곳 등 매뉴얼이 지켜지지 않아 어린이·노인·장애인 등 교통약자가 횡단 시 시간이 부족하여 사고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1초에 70cm를 걷는 교통약자 보행속도 0.7 m/s 기준이 더 완화돼야 한다고 얘기한다. 사회복지학과에 재학 중인 대학생 B 씨는 “키가 165cm인 사람이 한 발을 내디뎠을 때의 보폭이 약 65cm로 1초에 보폭을 크게 한 번 혹은 짧게 두 번을 내디뎌야 70cm 이상을 걸을 수 있다”며 “교통약자의 경우 1초에 한 발을 내딛는 것이 힘든 분들이 많기에 완화된 0.7m/s 기준도 맞추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모두에게 안전한 횡단보도를 만들기 위해 보호구역 및 보행속도 등에 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장애인제도개선솔루션은 “17개 시·도 경찰청에 보호구역 내 보행 신호 시간을 준수하고 있지 않은 곳, 보호구역 외 지역임에도 보행 신호 시간을 늘려야 하는 곳에 대한 민원처리 현황 등을 요청하고, 지속해서 개선 요구 활동을 이어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시민들이 걷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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