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시도 인정하지 않는 뱅크시 전시회?  ‘아트 오브 뱅크시’를 둘러싼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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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시도 인정하지 않는 뱅크시 전시회?  ‘아트 오브 뱅크시’를 둘러싼 논란
  • 홍한비 소비자기자
  • 승인 2021.09.07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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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150여점 중 120여점이 저화질 복제본
뱅크시가 직접 ‘가짜’라고 언급해 논쟁 확대
영국 레딩시에 있는 옛 레딩 교도소 담장 벽면에 뱅크시의 새 작품으로 추정되는 벽화./사진=연합뉴스
영국 레딩시에 있는 옛 레딩 교도소 담장 벽면에 뱅크시의 새 작품으로 추정되는 벽화./사진=연합뉴스

[소비라이프/홍한비 소비자기자] 지난 8월 20일 서울에서 개막한 대규모 전시 ‘Art of Banksy:Without Limits’(이하 아트 오브 뱅크시)의 인기가 뜨겁다. 관람료 2만원의 전시는 8월 25일 기준으로 사전 예약 인원만 3만명에 달했다.

요즘 이 전시가 뜨거운 이유는 또 있다. 전시를 둘러싸고 ‘짝퉁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아트 오브 뱅크시’는 한국에 개최되기 전 이미 국제적으로 ‘가짜 전시회’ 논란이 있었다.

주최사인 엘엠피이컴퍼니는 ‘아시아 최초’, ‘오리지널 포함 150여 점’을 내세워 전시를 홍보했지만 그 중 오리지널은 27점에 불과하다. 나머지 120여점은 저화질 복제본이다.

예매처인 인터파크 사이트 후기에는 ‘레플리카(제품을 모방한 것)라고 하기도 모자라다’, ‘픽셀 다 깨진 프린트를 보려고 간 게 아니다’ 등 부정적인 반응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는 “복제 작품도 얼마든 전시할 수 있다. 그러나 복제일 경우 그것이 복제임을 명시하는 것이 전시의 기본 중의 기본이고, 관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꼬집었다.

인터파크에 작성된 후기들. 특히 얼리버드 예매 당시 복제본에 대한 공지가 부족해 부정적인 평가가 많다. 사진=인터파크 티켓

뱅크시도 인정하지 않는 뱅크시 전시회?

무엇보다 이 전시가 뱅크시 허가 없이 열린 상업 전시라는 게 알려지면서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뱅크시는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 ‘최근 빈번하게 개최되는 뱅크시 전시회는 어느 것도 합의되지 않았다’며, ‘모든 전시는 FAKE(가짜)’라고 전했다. 이 말대로라면 국내에서 열린 ‘아트 오브 뱅크시’도 가짜다. 

또 뱅크시는 8월 16일 해당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워와 나눈 다이렉트 메시지를 공개했다. ‘허가 없이 열리는 전시회와 관련하여 뭐라도 해보라’는 팔로워의 말에 뱅크시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답했다. 

뱅크시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최근 개최된 모든 뱅크시 관련 전시는 가짜'라고 언급되어있다.
뱅크시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최근 개최된 모든 뱅크시 관련 전시는 가짜’라고 언급돼있다./사진=뱅크시 공식 홈페이지
뱅크시의 인스타그램에 공개된 팔로워와의 다이렉트 메시지. /사진=뱅크시 인스타그램
뱅크시의 인스타그램에 공개된 팔로워와의 다이렉트 메시지./사진=뱅크시 인스타그램

뱅크시와 관련된 가짜 전시가 유독 많은 이유는 얼굴 없는 예술가로 유명한 뱅크시의 익명성에 있다. 1990년대부터 그는 전쟁, 불평등, 물질만능주의 등 사회의 부조리를 풍자한 벽화를 그리며 이름을 알렸다. 경매에서 100~200억원 대에 작품이 거래될 정도로 세계적인 작가로 자리 잡았지만 여전히 뱅크시는 자신의 신원을 철저히 숨기고 있다.

익명으로 활동하는 뱅크시는 저작권 침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예술은 동시대의 메시지를 담아야 하고 공유돼야 한다는 그만의 신념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누구나 레플리카나 리프로덕션을 통해 상업적으로 이용해도 된다고 동의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 전시 기획자는 “뱅크시의 전시들은 작가가 법적 대응을 하지 않는 것을 악용했다”며 “작가가 생존한 상황에서 작가가 인정하지 않는 전시를 여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비공인 전시 밝혀 vs 상업 전시 개최 자체가 뱅크시 정신에 모순

논란거리로 떠오른 ‘아트 오브 뱅크시’와 관련해선 상반된 입장이 이어지고 있다. 주최 측을 비롯해 ‘아트 오브 뱅크시’가 전시가 합당하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사전에 이미 비공인 전시임을 밝혔음을 강조한다.

반면 미술계 내에서는 이런 전시를 개최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 미술계 인사는 “상업 예술을 거부하고 상호에 대한 존중을 주장했던 뱅크시 정신을 따른다고 해놓고, 뱅크시 허가 없이 성인 기준 입장비 2만원을 받는 상업적 전시를 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뱅크시는 상업 예술을 거부한다. 미술품 경매를 거부한 작품 ‘풍선과 소녀’가 대표적이다. 2018년 10월 소더비 경매에서 '풍선과 소녀'가 경합 끝에 104만 파운드(약 15억원)에 낙찰되는 순간 캔버스 뒤 설치된 파쇄기에 의해 작품이 잘게 잘렸다. 이튿날 뱅크시는 자신의 SNS에 "몇 년 전 나는 이 작품이 경매에 나갈 경우를 대비해서 은밀하게 파쇄기를 설치해두었다"고 밝혔다. /사진=뱅크시 인스타그램
뱅크시는 상업 예술을 거부한다. 미술품 경매를 거부한 작품 ‘풍선과 소녀’가 대표적이다. 2018년 10월 소더비 경매에서 ‘풍선과 소녀’가  104만 파운드(약 15억원)에 낙찰되는 순간 캔버스 뒤 설치된 파쇄기에 의해 작품이 잘게 잘렸다. 이튿날 뱅크시는 자신의 SNS에 ”몇 년 전 나는 이 작품이 경매에 나갈 경우를 대비해서 은밀하게 파쇄기를 설치해두었다”고 밝혔다. /사진=뱅크시 인스타그램

뱅크시 작품 활동 자체가 불법 vs 불법이라고 해서 저작권 없는 건 아냐

이번 논란에는 뱅크시의 이단아로서의 행보도 언급된다. 현대 미술계 이단아라고 불리는 뱅크시는 남의 건물 벽에 그림을 그리는 등 불법적인 방법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따라서 뱅크시의 작품 전시에 대해서 더 융통성 있는 도덕적 잣대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전시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은 뱅크시가 허용되지 않은 공간에서 작품을 제작해왔다고 해서, 그의 허락을 받지 않은 전시회가 합리화될 순 없다고 꼬집는다.

예술법 전문가인 캐슬린김 미국 변호사는 “불법적인 장소에다가 그린 작품이라고 해서 저작권이 없는 것은 아니다”며 저작권자의 의사에 반해 권리가 없는 사람이 기획한 리프로덕션 전시는 논란이 될 수 있음을 밝혔다.

한 미술 관계자는 뱅크시가 법적 대응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복제본을 허가없이 전시하는 게 정말 괜찮은 것인지 돌아봐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상식과 윤리 차원에서 뱅크시 그림으로 전혀 엉뚱한 사람들이 돈을 버는 봉이 김선달의 21세기 버전 아니냐는 지적을 했다. 

전시 허락받을 방법 사실상 없다 vs 출처나 에디션 정도는 밝혀야 

‘아트 오브 뱅크시’ 주최 측인 LMPE컴퍼니 박봉수 본부장은 “뱅크시를 대변하고 있는 페스트컨트롤도 일부 작품에 대해 진품 여부를 확인해주는 곳이지 전시를 인증해주는 기관이 아니다. 뱅크시가 익명으로 활동하고 있어 뱅크시에게 전시 허락을 얻을 길이 사실상 없다”며 “뱅크시가 세계 각지에 남긴 메시지를 한 곳에서 모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전시를 좋게 봐주셨으면 한다. 상업적 목적만 가진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해명했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주최 측 주장에 대해 “뱅크시가 아무리 익명으로 활동하지만 작품 중 원본은 거의 없고, 리프로덕션이면 작품마다 그 출처나 적어도 에디션 등을 세세하게 밝히는 것이 상식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오마주 전시는 빈번 vs 레플리카는 오마주 전시 아냐  

더불어 주최사는 원본의 수는 적지만 예술계에서 빈번한 ‘오마주 전시’라고 칭했는데, 한 전시 관계자는 작가이자 저작권자가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현재 진행 중인 모든 전시는 가짜라고 선언한 마당에 작가의 예술 철학이나 가치관에 반하는 전시가 어떻게 ‘오마주’가 될 수 있냐고 반박했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오마주란 작가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그 감독이나 작가가 만든 영화의 대사나 장면을 인용하는 것을 가리킨다”며 “레플리카로 채운 것은 오마주 전시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번 뱅크시 전시 관련 논란은 불법적 예술 활동에 대한 저작권, 뱅크시 특유의 저항 정신, 관람객의 권리, 상업 예술의 가치 등 다양한 쟁점으로 번지고 있다. 논란이 된 ‘아트 오브 뱅크시’에 대한 건전한 비판을 통해 현 상업 예술의 문제점, 나아가 앞으로 예술과 전시 사업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활발히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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