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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부(富)] 전염병이 불러온 낙수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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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부(富)] 전염병이 불러온 낙수효과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5.0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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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노동력의 부족으로 노동의 값어치인 임금이 상승하면서 봉건제가 몰락
노동은 자본을 쌓는 계기가 되었고 자본가라는 새로운 계층 탄생

[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쥐벼룩이 옮기던 페스트는 1차 유행이 있던 고대로마시대에도 많은 사상자를 낳았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2차 유행(1346년~1353년) 때이다. 이 시기에는 치료법이 없는 상태에서 인구증가와 도시화 영향으로 사망자가 속출했다. 기록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당시 유럽인구의 30~60%가 사망했다고 한다.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인구가 감소하다보니 예상치 못한 변화가 속출했다. 사람의 숫자가 중요했던 전투에서도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자 전쟁을 미루거나 종식시켰다. 유럽의 끝을 향해 달리던 몽골을 멈추게 했고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백년전쟁도 그러했다. 페스트로 정신없던 잉글랜드를 침공한 스코틀랜드도 전쟁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페스트로 인해 멈추어야만 했다. 
 
유럽의 크고 작은 분쟁이 멈추고 인구가 감소하자 문명 패러다임이 기존과 달라졌다. 심각한 노동력의 부족으로 노동의 값어치인 임금이 상승한 것이다. 사람들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던 도시로 움직였다. 영주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지배를 받던 농노들이 야반도주를 하는 것은 다반사였다. 

일할 사람이 부족해지면서 휴경지가 증가하기 시작했고 영주가 가지고 있던 재화가 감소하면서 영주의 지배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농사지을 사람이 부족해지자 남아있던 자영농과 농노들의 힘이 커졌다. 영주가 결정하던 지대는 점점 낮아졌고 오히려 협상을 하게 됐다. 

농사짓는 사람이 농사로 얻은 이익의 많은 부분을 가져가면서 자연스럽게 부(富)가 자영농과 농노에게 이전되기 시작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농노제 자체가 해체되면서 중세사회를 유지하는데 기여했던 봉건제가 몰락하는 계기가 된다.

노동은 자본을 쌓는 계기가 되었고 자본가라는 새로운 계층이 만들어졌다. 자본가들은 인간에 대한 가치가 존중되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문예운동을 후원하며 한 시대를 이끌어갔다. 

지배층은 노동에 대한 비싼 임금 때문에 자신에게 쌓여야 할 부(富)가 줄어든 것이라는 불만을 가졌다. 이에 새롭게 개척한 식민지에서 노예를 들여와 비싼 임금을 줄이기 시작한다. 인간의 욕심이 새로운 죄악을 잉태하는 순간이다.
 
유럽은 전염병이라는 커다란 시련을 겪지만 변화를 맞이했다. 노동의 값어치가 가장 순수하게 인정되고 존중받기 시작한 것이다. 갑과 을은 동등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슈퍼 을’이기도 했다. 부가 골고루 퍼져 빈부의 격차가 적었던 때다. 앞으로 이런 시대가 또올까 싶다.

이강희 칼럼니스트
이강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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