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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부(富)] 전지전능한 쇠붙이의 도시 세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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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부(富)] 전지전능한 쇠붙이의 도시 세비야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4.19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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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륙을 개척하면서 시작된 교역은 스페인에 많은 경제적 이익을 제공
번영의 흔적은 지금까지도 관광자원으로 활용

[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모든’ 아이디어는 쇠붙이에서 나온다(All' idea di quel metallo)

이 문장은 로시니가 작곡한 ‘세비야의 이발사’에 나오는 가사다. 쇠붙이는 돈을 나타내는데, 돈이 지혜, 생각, 아이디어 등을 이끌어 낼 정도로 강한 동기부여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극히 물질적인 이 표현은 당시 세비야라는 곳이 얼마나 물질만능주의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스페인 남쪽의 항구도시인 세비야는 새로운 항로개척을 통해 대항해시대의 수혜를 받은 도시다. 신대륙과 교역에 있어 모든 배는 세비야를 거치도록 법령을 만들었기 때문에 세비야는 독점적인 지위를 누렸다. 세비야에는 많은 물자가 흘러들어와 부(富)와 기회를 잡으려는 사람들은 모여들었고 이중에는 새로운 곳을 탐험하려는 호기심이 많은 이들도 있었다.

이 무렵 신대륙을 발견하겠다는 꿈을 가진 이가 있었다. 후원자를 찾아 유럽을 떠돌며 꿈을 이루려고 했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다. 그는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 1세와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2세 부부를 만나 후원을 약속 받는다.

콜럼버스가 1492년부터 1503년까지 10여 년간 신대륙을 개척하면서 시작된 교역은 스페인에 많은 경제적 이익을 제공했다. 스페인은 신대륙에서 아즈텍과 잉카를 무너뜨리고 확보한 노동력 덕분에 적은 비용으로 카리브 일대와 농산품과 금·은 등의 광물을 얻을 수 있었다. 감자와 옥수수 같은 신생 작물은 스페인의 먹거리를 해결해 경제를 넘어 유럽 대륙의 인구가 유지되는데 도움이 되었다. 세비야를 통해 들어오기 시작한 카카오와 설탕 역시 유럽 곳곳으로 수출되어 스페인의 재정을 견고히 하는데 이바지했다.
 
농산물의 거래로 벌어들인 자금과 금·은으로 확보한 재정은 해군력 확충으로 연결돼 스페인이 지중해 일대와 유럽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계기가 된다. 가톨릭 국가였던 스페인은 세비야의 국제성은 물론이고 세비야 성장과 발전을 보여주기 위해 새로운 상징을 만들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세비야 대성당이다. 
 
스페인은 자신들의 국력과 재정 능력을 온 유럽에 자랑하기 위해 당대 세계 최고의 성당을 지으려고 했다. 규모 역시 엄청나서 첫 삽을 뜬 지 100여 년이 지난 시점인 1506년에서야 완공된 성당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스페인과 세비야에 이런 부귀영화를 가져다준 콜럼버스이지만 정작 스페인에게는 버림받았다. 배신감을 느낀 콜럼버스는 죽어서도 스페인의 땅을 밟고 싶지 않아 히스파니올라섬에 묻어달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이후 그의 유해는 쿠바를 거쳐 세비야로 옮겨지는데 유언대로 스페인의 땅을 밟지 않게 하려는 후세사람들의 아이디어로 왕들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그의 유해가 들어있는 관을 어깨에 메도록 만들었다.
 
인재를 알아보는 눈썰미와 약속 하나로 시작된 부(富)는 스페인이 지금의 생명을 유지하는 기반이 되었다. 이때 만들어진 세비야가 누렸던 번영의 흔적은 지금도 관광자원으로 활용되며 스페인의 먹거리가 되고 있다. 

이강희 칼럼니스트
이강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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