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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부(富)] 해적질과 식민지 건설로 성장한 대영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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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부(富)] 해적질과 식민지 건설로 성장한 대영제국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4.26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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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레해전은 부(富)와 경제사에 있어 거대한 흐름이 변화한 전투
이후 영국은 식민지를 확장하며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으로 성장

[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아메리카의 식민지를 경영하며 무역을 통해 이익을 독점하던 스페인은 강력한 해군력을 유지하며 대서양과 지중해에서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해전에 들어간 비용과 식민지였던 네덜란드가 일으킨 독립전쟁을 진압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까지 겹쳐 경제적으로는 파산상태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스페인 무역선을 약탈하던 해적이 골칫거리였는데 그 뒤에는 잉글랜드 왕실이 있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프랜시스 드레이크(Francis Drake)다. 해적질로 엘리자베스 1세에게 작위와 훈장을 받은 인물로 여왕은 그에게 합법적으로 외국 배에 한해 해적질을 할 수 있는 사략을 허락한다. 사략은 당시 유럽 국가에서 흔하게 발급하던 공식적인 해상약탈면허다. 

신대륙과의 무역으로 가장 활발한 해상활동을 하던 스페인의 무역선은 여러 나라의 표적이 되었는데 특히 잉글랜드의 사략질로 큰 피해를 보게 되었다. 영국 왕실은 사략으로 얻은 이익을 재정난을 메우는 데 활용했다. 오히려 암묵적으로 장려하며 일종의 산업처럼 육성해 많은 사략선장이 왕실로부터 작위를 받을 정도였다.
 
자국 상선의 피해가 계속되자 스페인은 영국에게 몇 차례 문제해결을 요구하고 경고했다. 하지만 의례적인 답변만 돌아왔을 뿐 적극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도발이 심해졌다. 더 이상의 기대를 버리고 직접 해결하기로 마음먹은 스페인은 영국을 공격하기 위해 전함과 상선을 끌어모은다. 
 
사략선과 연합전력을 구축한 영국은 스페인 해군에게 승리한다. 1588년 8월 8일 도버해협에서 있었던 잉글랜드와 스페인의 명운이 갈린 이 해전을 서양사에서는 칼레해전(Naval Battle of Calais, Batalla de Calais)이라고 부른다. 칼레해전은 단순한 두 나라의 전쟁을 넘어 부(富)와 경제사에 있어 거대한 흐름이 변화한 전투다. 영국은 스페인 함대를 무적함대라고 칭하며 스페인을 이긴 영국이 더 강하다는 것을 부각하며 조롱했다. 
 
영국의 버릇을 고쳐주려던 스페인은 막강한 전투력을 자랑했던 전함과 대규모의 선단을 잃으며 쇠락하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계속된 영국 원정에서 패배하고 후유증으로 재정난에 시달리지만, 식민지에서 들어오는 풍부한 물자와 부(富)로 인해 버틸 수 있었다. 
 
자신감을 얻은 영국은 이후 해상교역에 집중하게 되면서 해군을 육성했다. 그리고 마침내 1600년 말 아시아지역 무역에 독점권을 부여한 동인도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동인도회사는 인도를 차지하고 아시아로 가는 길목이었던 아프리카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등 왕성한 해상활동을 펼쳤다. 

박해를 피해 청교도들이 북아메리카로 이주하자 영국은 이들을 중심으로 아메리카에 식민지를 개척했다. 식민지에서 생산된 재화는 저렴하게 사들이고 영국의 생산품을 비싸게 팔아 많은 차익을 남기며 영국은 부강해졌다. 이후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이라는 이름을 얻으며 전 세계 바다를 누볐고 유럽을 넘어 한동안 세계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이강희 칼럼니스트
이강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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