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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부(富)] 이베리아의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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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부(富)] 이베리아의 부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4.12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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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국가의 지배를 오래도록 받았던 이베리아반도는 새로운 기술과 문화가 받아들이며 성장
이슬람교도가 아니더라도 행정과 경제 분야에 진출할 수 있어...

[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1차 포에니 전쟁에서 명장으로 떠오른 하밀카르 바르카(Hamilcar Barca)는 카르타고의 국력을 회복하기 위한 방법을 찾다가 광산이 많았던 이베리아로 건너온다. 해안가를 정복하여 근거지를 확보한 그는 원주민들을 포섭해 큰 저항 없이 내륙으로 진출해 광산을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교역을 위해 해안가에 세운 식민도시에 자신의 가문 이름인 바르카의 이름을 붙였는데 그곳이 오늘날 바르셀로나(Barcelona)로 알려진 도시다. 카탈루냐의 중심도시이자 스페인 제2의 도시이고 제일 큰 항구도시다.
 
이베리아에 확고한 세력을 구축한 바르카 가문이 새로운 포에니 전쟁을 일으키는 기반이 될 정도로 이베리아에는 물자가 풍부했다. 이후 카르타고가 포에니 전쟁에서 패하면서 히스파니아라는 속주에 속하게 된 이베리아반도는 이미 개발된 여러 해상 도시들의 활발한 교역과 새로운 거점도시들이 개발되면서 로마의 주요 지역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후 로마가 쇠퇴하면서 이베리아반도는 여러 이슬람왕조의 지배를 받게 되는데 이 시기동안 이베리아는 알 안달루스(Al- Andalus)라고 불리게 된다. 종교적인 지배로 인해 많은 부분에 제약이 있던 봉건적인 다른 유럽국가와는 달리, 통일된 이슬람국가의 지배를 오래도록 받았던 이베리아반도는 새로운 기술과 문화가 받아들이며 성장하게 된다. 

이슬람의 국제도시였던 바그다드나 다마스쿠스 못지않게 번성했던 중심도시 코르도바는 인구가 50만에 이를 정도로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이곳에는 유럽보다 앞서있던 그리스철학 연구를 위해 학자와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책을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 60여만 권이었다고 알려진 장서의 규모로 당시에 얼마나 많은 부(富)가 코르도바에 있었는지를 알려준다. 

이러한 번영은 이 지역을 통치하던 알라흐만 1세의 통치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유일신을 섬기던 이슬람 세력이었지만 정복 지역에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을 탄압하지 않았다. 비교하기보다 다름을 인정했다. 유대인을 비롯해 이슬람교도가 아니더라도 행정과 경제 분야에 진출할 수 있었다. 알라흐만 1세의 통치 철학은 관용과 화합, 공존을 뜻하는 '콘비벤시아(Convivencia)'라 불린다. 아메리카에 엄청난 식민지를 가질 수 있었던 저력의 바탕에 기독교보다 이슬람 철학이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이강희 칼럼니스트
이강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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