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3 15:17 (화)
[지구를 떠도는 부(富)] 메디치-금융 가문의 통치
상태바
[지구를 떠도는 부(富)] 메디치-금융 가문의 통치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3.22 15: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세유럽, 바티칸을 넘어 유럽마저 부로 지배한 메디치 가문
예술을 사랑하고 문화를 지키며 르네상스 부흥기 성립

[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쑹홍빙이 쓴 ‘화폐전쟁’에서 언급되면서 기존보다 더 유명세를 탄 로스차일드 가문은 전 세계의 금융계를 주무르는 세력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돈이 많아 모든 것을 홀로 좌우한다기보다 그 정도의 힘을 보유한 여러 새력 중 하나임은 분명했다. 그들의 영향력은 오랜 시간 세계금융시장을 지배하면서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과 연관되며 여러 모습으로 투영됐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도이치에서 시작했다면 그보다 먼저 이탈리아에서 시작해 유럽 금융계의 큰손으로 성장한 가문이 있다. 종교 권력이 정치 권력을 능가하던 중세유럽에서 모든 나라와 귀족 가문은 교황청의 수장인 교황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그런에 이 가문은 교황청의 금고지기를 맡아 자신들이 구축한 금융 권력을 이용해 3명이나 되는 교황(레오10세, 클레멘스 7세, 레오 11세)을 배출하면서 온 유럽에 자신들의 영향력 과시와 이름을 알리며 성장했다.

자신들이 쌓아 올린 부(富)를 이용해 피렌체를 통치하고 르네상스(Renaissance)라는 거대한 문화부흥기를 이끈 피렌체(Firence)의 메디치(Medici)가(家). 그들은 금융을 통해 한 시대를 주름잡았을 뿐만 아니라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나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등 예술가들의 안정된 생활을 지원했다. 교육을 위해 인쇄기를 구하고 동방지역 책을 비롯해 많은 서적을 들여 라우렌치아나 도서관(Biblioteca Medicea Laurenziana)을 설립, 인문학적 주춧돌을 놓아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는 데 기여했다.

메디치 가문은 은행을 시작으로 금융계에 발을 디뎠고 이후 피사를 비롯한 항구가 당시 피렌체공화국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면서 지중해 무역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메디치가의 은행에서 교황청의 모든 자금이 관리되고 있었던 터라 교황청의 후광까지 업은 메디치가 은행의은 신뢰성을 쌓아갔다. 메디치가의 영향력은 유럽 곳곳에 미쳤고 그로 인한 신망은 커져 피렌체를 통치하기에 이른다. 이는 은행업을 하는 일반적인 가문이 아니라 귀족 사회로 편입된 것을 의미한다.

교황청이 맡긴 엄청난 자금과 그로 인한 신용을 바탕으로 메디치가의 은행은 지중해 무역의 중심을 넘어 유럽 주요왕가의 자금을 관리하기에 이른다. 그 현상은 프랑스에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집안 사람을 프랑스의 왕비로 두 명이나 배출하면서 그 영향력이 세상에 알려졌다.

1600년, 카트린 드 메디시스(Catherine de Médicis)에 이어 또 다른 메디치가 출신의 프랑스 왕비가 탄생한다. 마리 드 메디시스(Marie de Médicis)는 프랑스의 앙리 4세와의 나이 차이 22년을 극복하고 결혼하는데 메디치가에 대한 프랑스 왕가의 채무가 그 요인으로 보인다. 메디치가는 이 결혼을 위해 프라스로 지참금을 보내고 채무탕감을 해주는 등 재정적인 도움을 줬다. 마리 드 메디시스가 결혼하면서 이탈리아에서 데려간 요리사들은 자신의 음식문화를 귀족사회에 퍼트렸다. 이는 프랑스 요리를 유명하게 만든 요소 중 하나이기도 하다.

메디치 가문은 돈을 모아 부(富)를 이루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 사례 중 하나다. 왕과 귀족이 터부한 돈을 관리하며 루이 11세와 귀족에에 존경을 받은 인품은 메디치 가문이 귀족으로 편입되는 게 당연시될 정도의 분위기를 조성했다. 시대의 변화로 인해 상공업이 쇠퇴하며 피렌체의 재정도 어려워졌지만 예술에 대한 사랑은 지속됐다.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인 안나 마리아 루이사는 죽기 직전 가문이 소유한 예술품을 피렌체 밖으로 반출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걸고 피렌체에 기증했다. 자신들이 쌓은 부로 이룩한 문화적 자산과 역량을 남김으로써 피렌체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 이 예술품들은 우피치 미술관에 전시되며 메디치가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강희 칼럼니스트
이강희 칼럼니스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