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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질풍노도] 우량 중소기업은 돈 구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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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질풍노도] 우량 중소기업은 돈 구하기 어렵다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6.21 1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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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상장했거나 상장도 하지 않은 벤처회사에 신용등급으로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을까?
리픽싱 제도 무조건 제한을 선택한 금융당국의 결정은 탁상공론의 참사

[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동인도회사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주식시장은 민간에 있는 잉여자금이 기업의 활동에 자양분이 되도록 하는데 기여해 왔다. 그런데 대한민국 주식시장에 모인 돈은 재벌그룹의 계열사에 과다하게 편중돼있다. 재벌은 FTA와 정부의 지원책으로 성장을 거듭했고 돈도 벌어 곳간에 넘쳐나는 돈이 1000조원에 이른다.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에 뛰어든 돈 주인들이 안전한 투자를 원하니 당연하다. 너나 할 것 없이 상대적 안정성이 높은 우량주 투자나 신용등급이 높은 회사에 돈을 투자한다. 

금융이라는 큰 틀 안에서 기업은 주식과 회사채로 돈을 조달한다. 누구나 아는 두산중공업의 회사채발행 신용등급은 BBB-다. 대한민국의 국적기 대한항공의 회사채발행 신용등급은 BBB+다. 대기업도 B로 시작하는 등급을 받아 채권을 발행하는데 갓 상장했거나 상장도 하지 않은 벤처회사에 신용등급으로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을까? 

그래서 도입된 것이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다. 채권의 이익뿐만 아니라 투자자가 원할 때는 주식의 역할까지 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채권이다. 전환사채를 매입한 투자자는 채권을 매입하면서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자격과 전환가격을 가진다. 

예를 들어 주식의 수가 10000주인 상장회사의 전환사채에 100만원을 투자한다고 가정하자. 전환가격이 1만원일 경우 투자자는 만기에 100만원과 이자를 받고 끝낼 수도 있지만, 나중에 100주의 주식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 나중에 상장된 주식의 가격이 1만원에서 하락해 한 달간 평균가격이 8천원이 되었다면 이때 내 전환가격 1만원을 8천원으로 재조정해주는 것을 ‘리픽싱’이라고 한다. 투자금 100만원에 대해 전환가격 1만원일 때 100주의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었는데 기준이 8천원으로 재조정되면서 125주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전환사채 만기에 주가가 9천원이 된다면 원래 전환가격대로면 주식으로 전환했을 때 주당 1천원의 손실을 볼 수 있어 주식전환 신청을 하지 않겠지만 리픽싱(Refixing)으로 전환가격이 8천원으로 변경된 상태에서는 오히려 주당 1천원이 이익을 볼 수 있어 만기직전에 주식으로 전환해 추가적인 주식을 더 받고 1주당 이익도 늘어 투자자는 이익을 늘릴 수 있다. 회사의 주식 수는 10125주로 증가해 기존주주의 지분율은 125주를 가지게 된 주주의 비율만큼 줄어들게 된다. 기존주주의 지분 손실은 있지만, 회사가 필요한 시점에 자금을 활용해 성장을 일궈낸다면 모두가 이익이다.
 
리픽싱은 자금을 융통하기 힘든 중소기업을 위해 유지되던 금융수단이다. 그런데 일부 회사와 금융회사가 악용했다는 이유로 제도 보완보다 무조건 제한을 선택한 금융당국의 결정은 관료의 ‘귀차니즘’이 야기한 탁상공론의 참사다. 금융당국은 ‘우량 기업은 리픽싱 제도의 변화와 상관없이 CB에 대한 투자를 모을 수 있을 거라는 착각’과 ‘리픽싱에 의한 전환가격 하락으로 발행 주식 수가 늘어나면 지분 희석이 발생하는 기존 투자자를 보호하겠다는 명분’, 이 두 가지로 일을 진행하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금융시장의 발전을 저해하면서 일반 국민의 금융이익 확대와 벤처기업의 성장을 가로막아 국가의 성장동력을 끊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강희 칼럼니스트
이강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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