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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질풍노도] 빚지는 가계, 돈 넘치는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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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질풍노도] 빚지는 가계, 돈 넘치는 기업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6.03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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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이래로 기업들의 잉여금은 매년 줄지 않고 계속 증가
가계가 짊어지고 있는 대출금액도 단 한 차례도 줄지 않고 계속 증가

[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558조 원. 2021년 한 해 동안 대한민국에서 사용하기로 한 예산의 규모다. 작년보다 9% 증가한 금액이다. 1,000조 원. 우리나라 가계가 짊어지고 있는 대출의 규모다. 이는 은행권을 대상으로 한 가계대출이기 때문에 제2금융권까지 합산할 경우 훨씬 더 많은 금액일 가능성이 높다. 700~900조 원. 우리나라 기업들의 ‘사내유보금’이라고 불리는 ‘이익잉여금’의 규모다. 환율에 따라 규모가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지만 1년 국가예산보다 많은 금액이다.  
 
경제의 주체인 가계와 기업, 정부 중에서 가장 부자는 기업인 셈이다. 정부는 비영리인 만큼 세입세출이 거의 비슷해야 하기 때문에 부자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은 굳이 수입과 지출을 맞출 필요가 없으니 이익을 많이 쌓아두어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2008년 이래로 기업들의 잉여금은 매년 줄지 않고 계속 증가하고 있다. 동시에 가계가 짊어지고 있는 대출금액도 단 한 차례도 줄지 않고 계속 증가만 하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은 법인이다. 법인을 만드는 이유는 표면상으로 많은 이유가 있지만 결국 세금이다.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서다. 개인사업자로 사업을 영위했을 때 내는 세금과 법인사업자로 기업을 유지했을 때 내는 세금의 차이가 두 배 정도 된다. 개인사업자의 세금이 많은 이유는 사업을 통해 개인이 얻는 이윤이 많은 만큼 정부로부터 얻는 혜택이 많기 때문에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 설계된 누진세가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에서 법인에 주는 혜택을 받기 위해 규모가 큰 개인사업자는 법인으로 전환해서 세금을 줄이려고 한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더 많은 조세수입을 포기하면서까지 법인에 대해 세율을 낮춰주는 혜택을 주는 것일까? 바로 일자리다. 규모가 큰 사업체로 확장하면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고 그만큼 고용되는 국민의 수가 늘어 가계의 수입이 증대되고 이로 인한 가계의 소비와 저축으로 국가의 경제가 건실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60~80년대 기준에서 가능했던 이야기다. 기업은 더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 생각이 없다. IMF라는 환란을 겪으면서 가계와 주고받는 거래관계가 아니라 이익에 대해 독점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호봉제는 연봉제로 바뀌었다. 노동유연성이라는 허울 아래 정규직의 채용을 줄이고 비정규직과 인턴을 늘렸다. 사실상 기업의 위험성을 줄이고 이익률을 높였다. 반대로 가계의 위험은 증가했고 이익이 줄었다. 

이렇게 2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모두가 말한다. 국가의 경제가 발전하고 성장률은 증가했지만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았다고 말이다. 경제주체가 골고루 나눠 가져야 할 경제적 이익이 기업에로만 쏠리면서 가계는 빚을 져야만했다. 가계가 빚을 망설이자 신용카드라는 시스템을 만들어 빚지는 게 아니라 미리 사용할 뿐이라며 경계심을 줄이려고 했다. 여기에 정부까지 나서서 연말정산에 혜택을 부여하며 빚을 지는 게 가계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인식하게 만들었다. 
 
일하는 것만으로는 먹고살기가 힘들어지다 보니 투자를 빙자한 투기를 일삼게 만들었다. 가계는 빚을 지며 부동산투기를 시작했고 선봉에 선 사람들이 돈을 벌자 너도나도 투기에 나서면서 부동산투기가 바람에 들불 번지듯 대한민국을 휘저었다. 이는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주어 ‘떴다방’ 같은 비정상적인 거래행태까지 만들어냈다. 

지금의 대한민국 가계경제는 비정상이다. 국가가 힘들고 기업이 힘들 때 지금도 회자되는 ‘금모으기운동’으로 가계는 정성을 다해 고통을 분담했다. 어려움에 처한 기업이 국민기업이라는 감성터치를 할 때 가계는 제품을 구입하며 화답했다. 위기를 딛고 성장한 기업은 글로벌 경쟁에서도 뒤지지 않는 체력을 만들었다. 경제 불균형을 줄이기 위해 기업이 예전보다 덜한 위험을 감수한다면 우리나라 경제에 신바람이 불 것이다. 

이강희 칼럼니스트
이강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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