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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에 '서사' 부여하는 언론, 이젠 피해자에 집중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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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에 '서사' 부여하는 언론, 이젠 피해자에 집중할 때
  • 전유진 소비자기자
  • 승인 2020.04.17 12: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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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방' 운영했던 조주빈 신상 공개되자 득달같이 달려든 언론
피의자 범행 가리고 '평범한 인간' 부각하기 그만해야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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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라이프/전유진 소비자기자] 텔레그램 집단 성 착취 사건인 'N번방 사건'에 대한 전 국민의 분노가 여전한 가운데, 피의자의 신상정보를 보도하며 악랄한 범행 대신 평범한 인간임을 부각하는 언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발단은 지난 3월 16일 텔레그램 성 착취물 대화방 중 하나인 박사방의 운영자였던 조주빈(닉네임 '박사')의 검거에서 시작됐다. 검거 전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자신의 이름이 '김윤기'라는 거짓된 정보를 유서에 남기기도 했던 조주빈의 잔혹한 행각이 드러나자 전 국민은 공포에 휩싸였으며, 검거 일주일만인 23일 SBS는 단독 보도를 통해 미궁에 빠져있던 조주빈의 신상을 공개했다. 이번 사건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잔혹한 성범죄라는 것과 추가 피해를 막고 수사에 도움을 주려는 것을 고려했으며, 무엇보다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단호한 결정이었다.

공익을 위한 목적으로 공개된 '악랄한 성범죄자 박사'의 신상은 언론에 의해 '스물다섯 평범한 청년 조주빈'으로 돌아왔다. 조주빈이 졸업한 학교와 전공은 물론 학창 시절 높은 학점으로 여러 번 장학금을 탔으며, 학보사 편집국장으로 활동하던 시절 작성했던 칼럼까지 재조명된 것이다. 또한 2019년 11월 작성된 한 기사를 통해 조주빈이 보육원 봉사활동에 참여했다는 '훈훈한 미담'까지 더해지며 언론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선량했던' 청년이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협박·착취하는 '희대의 악마'가 되었다는 서사를 부여했다.

조주빈이 N번방 사건의 주요 피의자가 아닌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인간임을 강조하는 언론의 보도에 국민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보내고 있다. 언론이 앞장서서 피의자를 변호하는 우스꽝스러운 행태를 멈추고, 현재 진행형인 N번방 사건에 대한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 달라는 것이다. N번방 사건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는 A 씨(25·여)는 "인터넷을 통해 조주빈의 신상정보가 담긴 기사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를 언론이 나서서 보호해 주는 것 같았다"며 "국민들이 알고 싶은 것은 조주빈의 뛰어난 학창 시절도, 봉사활동 경력도 아니다"며 언론을 비판했다. 

하지만 비판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피의자 감싸기'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16일 박사방에서 조주빈과 함께 성 착취물 제작·유포한 공범 강훈(닉네임 '부따')의 신상이 공개되자 언론이 주목한 것은 끔찍한 범행이 아닌 18세라는 어린 나이였다. '평범한 이웃집 소년'이었던 그가 '한순간의 실수'로 성범죄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며 안타까움을 표하는 언론 역시 적지 않았다.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협박해 얻은 성 착취물을 텔레그램 대화방을 통해 공유·판매하여 이득을 챙긴 텔레그램 집단 성 착취 사건은 현재 진행 중이다.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는 그저 피의자이며, 잔혹한 범죄로부터 살아남은 피해자에 대한 관심이 더욱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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