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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질풍노도] 금융실명제도를 뛰어넘는 지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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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질풍노도] 금융실명제도를 뛰어넘는 지략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2.31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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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이름으로만 금융거래를 하는 법적 토대 마련
문제는 특정계층은 차명계좌를 계속 사용한다는 점

[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코로나19사태’는 전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에도 여러 분야에 대한 이슈를 거의 잡아먹듯 묻히게 만들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우리나라에서는 ‘라임사태’같은 굵직한 일이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국민의 관심을 받았다. 그 외에 주가조작과 금융증명서류위조 같은 사건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1960년대에는 저축이 나라가 살길이라고 강조했다. 저축을 장려하려는 목적으로 저축한 돈의 비밀보장을 위해 거래자가 가명이나 차명으로 금융거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무기명으로 금융 거래를 해도 허용되었다. 지금은 금융거래를 실명으로 한다는 것이 당연하게 인식되지만 30여년전만해도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 1982년에 대통령측근들이 관련된 ‘장영자 사건’을 비롯해 여러 금융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서라도 금융실명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대두되었다. 국민들의 여론이 들끓자 같은 해 7월 3일 ‘금융실명제도’를 실시한다고 발표를 했다. 이와 관련해 제정된 ‘금융실명제에 관한 법률’에는 과세방법과 자금출처에 대한 조사와 같은 내용도 없었지만 의무화되지 않았기에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1988년에도 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지만 정치적인 문제와 반대세력의 저항에 부딪혀 유야무야되었다.

1993년 2월 25일 민선 2기 행정부로 선출된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다. 대통령의 권한이 가장 세다는 임기 초기에 ‘하나회’와 같은 고질적인 병폐들을 비롯해 개혁적인 과제들을 하나씩 추진해가던 중 같은 해 6월부터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경제기획원은 금융거래를 실명으로 하는 방안을 추진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8월 12일 20여년 만에 대통령의 긴급명령으로 발표된 긴급재정경제명령 제16호가 오후 8시부터 발동되며 ‘금융실명제 및 비밀보장을 위한 법률’이 실시됐다. 국회에서도 8월 18일 재무위원회에서 긴급명령을 만장일치로 가결시켰고 다음날 19일에 본회의에서 ‘긴급재정경제명령안’을 통과시켜 대통령의 요청을 승인했다. 이로써 대한민국의 일반적인 국민이라면 자신의 이름으로만 금융거래를 하는 법적 토대가 마련됐다. 

금융실명제가 저녁에 발표된 것은 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지만 13일 금요일부터
주가가 가장 먼저 영향을 받았다. 은행업무도 13일 오후 2시부터 가능했다. 이후에 사금융 시장이 위축되면서 급전이 필요했던 일부기업들은 하나둘 부도가 났다. 이로 인해 기업의 생산성이 감소했다. 금융권에 있던 돈은 실물에 투자되면서 부동산가격이 상승했다. 부자들의 뭉칫돈도 해외로 빠져나갔다. 이러한 혼란이 지나고 자산에 꼬리표가 달리면서 지하경제의 규모는 더 이상 성장하지 못했다. 계좌에서 돈을 인출할 때에는 실명을 확인해야만 했다. 인출금액도 3천만 원 이상일 때는 국세청에 통보를 해야 했고 필요에 따라서는 자금 출처에 대한 추적을 통해 부정한 돈이 흘러 다니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다. 나중에 조세관련 부분이 추가되어 ‘금융소득종합과세’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특정계층은 차명계좌를 계속 사용해 제도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는 거다. 정치권과 경제계인사들에게 금융실명제법 도입은 다른 나라 얘기였다. 2007년에 있었던 삼성의 비자금에 대한 조준웅 특검이 부실수사 논란이 있었음에도 1197개의 차명계좌를 발견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실명제가 실시된 지 14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삼성뿐이었을까?
 
다양한 형태로 돈 있는 사람들이 금융실명제도를 넘어 사기에 가까운 금융거래를 하고 있음을 우리는 현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이 진정으로 법이 있어도 없는 것처럼 살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야말로 득도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삶을 유지하는데 돈이 필요하다보니 법위에 사람이 있지 않도록 금융 분야가 투명해져야만 세상이 그나마 살만해질 거 같다.

이강희 칼럼니스트
이강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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