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떠도는 부(富)] 로마의 손실을 줄여준 협력의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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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부(富)] 로마의 손실을 줄여준 협력의 부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1.0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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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니와 로마는 서로 이익만을 위한 투쟁보다 적절한 타협과 양보로 협력
연방 개념의 통합을 이룬 두 세력이 가졌던 부와 힘도 합쳐져 시너지 효과

[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이끌고 형제인 레무스(Lemus)와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로물루스(Romulus)는 레무스의 세력까지 규합해 테베레(Tevere)강 유역에 있던 팔라티노 언덕(Monte Palatino, Mons Palatinus)에 새로운 터전을 건설하며 성을 쌓았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 ‘로물루스의 땅’이라는 의미의 로마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로물루스는 통치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왕이 된 자신을 보좌해 줄 100여 명으로 구성된 원로원과 민회를 구성한 뒤에 고민에 빠졌다. 로마가 번성하기 위해서는 안전하게 지켜줄 군대와 일꾼이 되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서 로마는 도망자와 망명자들에게 피난처로 제공해서 정착하게 했다. 이런 정책으로 인해 로마는 ‘남초사회’로 변했고 불안한 사회 분위기로 로마의 남성들과 결혼하려는 여성이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으로 생각해 낸 것이 ‘사비니(Sabini) 족의 여인들’을 납치하려는 계획이었다. 
 
로물루스는 사비니 인들에게 농업의 신인 ‘콘수스(Consus) 축제’를 열 테니 참석해 달라고 초대했다. 로마의 남성들은 축제에 참석한 사비니 인들에게 술과 음식을 권하며 그들이 취하길 기다려 여인들을 납치했다. 로물루스는 사비니 여인을 정식으로 배우자로 삼겠다고 통보하고 스스로 사비니 여인과 결혼했다. 사비니 인들은 분했지만 당장은 방법이 없어 전쟁을 위한 힘을 길렀다. 
 
사비니는 몇 년 뒤에 자신들이 지키지 못했던 여인들을 되찾아오기 위해 로마를 침략했다. 세 차례의 전투는 치열했다. 마지막 전투에서 로마 남성들의 아내가 되어 아이를 낳고 살던 사비니 여인들은 전투를 벌이던 두 세력 사이에 끼어들어 가로막았다. 한쪽은 자신과 가정을 꾸리고 있는 배우자였고 다른 한쪽은 아비와 남자 형제들이었다. 어느 한 편을 들 수 없었던 여인들의 중재로 남성들의 전투는 극적인 화해를 맞게 된다. 

더 이상의 피를 흘리지 않게 하는 데 헤르실리아(Hersilia)의 역할이 컸다. 그녀는 사비니의 왕이었던 티투스 타티우스(Titus Tatius)의 딸이었고 로마의 왕인 로물루스의 아내였다. 여인들이 만든 두 세력의 화해는 새로운 협력을 만들어냈다. 로물루스와 타티우스는 공동 왕이 되어 로마를 함께 다스리게 된다. 
 
로마는 이때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든다. 사비니의 자유인에게도 로마의 시민권이 주어졌고 사비니 족 가문의 대표자도 원로원에서 활동할 수 있었다. 평화롭게 연방 개념의 통합을 이룬 두 세력이 가졌던 부와 힘도 합쳐져 시너지효과를 냈다. 두 세력이 뭉친 군대는 용맹함으로 주변의 세력들을 통합해나가며 세력을 확장했고 부를 성장시켰다. 이후에도 로마는 정복한 지역 토착 세력에게 강압적이지 않았다. 토착세력도 로마를 정복자보다는 동반자로 여겼으며 로마의 문화에 저항 없이 쉽게 동화되어 저항으로 인한 불필요한 힘의 손실을 줄였다. 
 
사비니와 로마는 서로 이익만을 위한 투쟁보다 적절한 타협과 양보로 맺어진 협력을 택했다. 이는 시간이 흘러 굳건한 가치로 자리 잡아 로마가 제국으로 성장하는 기반이 되었다. 신의가 사라져가는 우리 현실에서 협력이 가져다주는 시너지의 크기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장면이다.

이강희 칼럼니스트
이강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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