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떠도는 부(富)] 로마의 ‘살라리아 길(Via Sala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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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부(富)] 로마의 ‘살라리아 길(Via Salaria)’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1.1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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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소금을 교역하기 위해 만든 로마의 소금길
젖줄과도 같은 길이면서 로마가 더욱 강한 국가로 발돋움하는 데 기여

[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로물루스부터 시작되는 로마의 왕정은 7명의 왕이 등장한다. 이 중에서 네 번째 왕인 ‘안쿠스 마르키우스(Ancus Marcius)’는 BC 640년경 로마의 서쪽 30여km 거리에 자리한 ‘오스티아 안티카(Ostia Antica)’를 점령하고 영토를 넓힌다. 바닷가인 이곳을 점령한 이유는 로마의 교역을 위한 항구를 확보하는 것도 있었지만 소금을 생산하는 시설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오스티아 안티카는 소금과 관련해 역사적으로 언급된 곳이다. 인근의 ‘피우미치노(Fiumicino)’에 새로운 항구가 생기기 전까지 로마에서 생산된 소금을 수출하고 지중해 일대에서 수입되는 곡물을 교역하는 역할을 담당하던 항구였다. 로마의 젖줄인 테베레강을 중심으로 위아래에 자리한 두 도시는 당시 국제도시 로마로 가기 위한 관문이었다.

오스티아 안티카의 염전에서 생산된 소금은 황금 못지않은 귀한 대접을 받으며 테베레강을 타고 상류로 이동했다. 로마의 상인들은 소금을 싣고 강 유역의 촌락과 도시에 들려 흥정을 하며 교역을 했다. 추가적인 교역을 위해 더 많은 소금을 확보해야 했던 로마는 강가의 도시 외에 다양한 지역과 교역을 하기 위해 이동이 원활한 교통로를 확보해야 했다. ‘티레니아해(Tyrrhenian Sea)’와 닿아있던 이탈리아반도 서부의 로마는 더 많은 소금을 교역하기 위해 동부 끝에 있는‘아드리아해(Adriatic Sea)’와 닿아 있는 염전의 소금까지 확보하기 위해 길을 만들었다. 이 길을 만들기 위해 높은 곳은 바위와 흙을 깎았고 낮은 곳은 깎인 바위와 흙으로 메웠다. 이렇게 만들어진 길이 로마가 만든 최초의 광역권 길로 알려진 ‘살라리아 길(Via Salaria)’이다.

확보되는 소금의 양이 많아질수록 로마가 차지하는 부(富)도 증가했다. 로마의 지도부는 로마 주변에서 생산되는 소금 외에도 추가적인 확보를 위해 ‘소금길’로 이어지는 다른 도시나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또한, 소금을 멀리 가서 교역할수록 더 비싼 값을 받아 많은 이득을 챙길 수 있었다. 이는 원거리 교역을 위한 항해술의 발달과 항로개척이라는 효과를 불러왔다. 

로마에 소금길은 젖줄과도 같은 길이면서 로마가 더욱 강한 국가로 발돋움하는 데 기여했다.

이강희 칼럼니스트
이강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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