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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질풍노도] 전세는 법령 때문에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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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질풍노도] 전세는 법령 때문에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9.10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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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전세제도는 ‘갭 투자’로 부동산 가격을 부추기는 지렛대 역할
저금리가 유지되는 한 전세제도는 저무는 태양

[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국회에서 ‘주택임대차법’에 대한 공방을 주고받던 여야의원 중에 유튜브를 통해 이제는 널리 알려진 한 의원의 연설이 주목받았다. 총선 역대 최악의 패배로 주눅 들어있던 제1야당은 이날 연설로 자신들의 사기가 살아있음을 보여줬다고 으쓱댔다. 그러나 연설의 내용을 자세히 보면 ‘진실을 모르는 대중을 호도한다는 것이 바로 저런 것이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실이라는 것은 자신을 임차인이라고 소개했지만, 성북구에 집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다. 자가 소유자지만 자신의 지역구 출마를 위해 서초구로 이사해 전세로 사는 것은 사실이니까. 자신이 국회에서 활동하는 동안 여당에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세종시에 집까지 정리할 정도로 주변정리도 확실하다. 국회가 최소한 다주택자 한 명을 줄이며 21대 국회의 제 역할은 한 것 같다. 그분은 학자다. 학자답게 연설하는 동안 전세의 역사와 사회적 기여를 잘 배합해서 설명했다. 여당이 ‘배짱과 오만’으로 역사적인 과오를 저지르고 있다고 날을 세웠고 전세를 없애는 ‘주택임대차법’에 대한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대중을 호도했을까? 그 연설내용을 잘들여다보자.
 
전세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다. 전세제도 기원은 1876년 유입되기 시작하는 일본인을 위한 주거와 한성으로 유입되는 인구의 주거를 위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연설의 내용대로 전세가 70년대 중반 이후 무주택 서민들을 위해 집값보다 적은 금액으로 임차로 거주하고 목돈을 만들어 내 집을 마련하는데 기여한 것은 맞다. 시대가 변하고 정부의 정책도 발전하면서 금융상품의 발달과 부동산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실시하는 각종 금융정책 덕분에 전세가 담당했던 사금융의 역할은 점점 축소되고 있다. 예전만큼의 수요를 감당할 인구가 없다. 또, 주택부족이 조금씩 해소되면서 전세에 주거할 사람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도 한 요인이다. 
 
2020년이다. 30년 전인 1990년과 지금은 다르다. 30년 전 수치를 가져다 인용을 하려면 당시 주택보급률과 전세비율, 주택가격대비 전세값을 언급하고 지금과 비교해 정보의 형평을 맞춰야 한다. 학자라면 기본이다. 전세가 오른 것만을 언급한 건 학자로서의 치명적인 오류다. 
 
전세값은 무조건 산정되는 것이 아니다. 집값의 50~80%다. 기준은 집값이다.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전세값도 오르지 않는다. 자신은 부인하지만, 박근혜 정부 경제수장이던 최경환 부총리는 분명 정부를 믿고 대출로 집을 구입하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미분양으로 허덕이던 집값이 다시 올랐고 정적이던 전세가격도 마찬가지다. 당시 집값이 오르지 않았다면 전세값도 지금처럼 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연설한 분이 2015년부터 2년간 국민경제자문회의에 있던 것을 약력으로만 쓸 게 아니었다면 대통령에게 부동산에 대한 자문을 제대로 했어야 했다. 
 
전세제도는 임차인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다. 임대인을 위한 제도이기도 하다. 연설내용에 있듯이 경제성장기에 임대인의 이자와 목돈활용을 위해 유지되던 제도다. 은행에 가지 않아도 전세 임차인을 받으면 무이자로 사용하는 목돈이 생겼기 때문에 임대인도 선호했다. 금리의 하락은 전세를 유지할 필요성을 낮추었다. 집주인은 전세가 아니어도 금리가 낮아 대출을 받을 때 이자에 대한 부담이 적다. 전세보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월세로 놓으면 이득이다. 전세제도가 사라지는 데에는 저금리가 일등공신이다. 연설자가 언급한 대로 전세제도는 경제성장기 고금리의 유물이다. 지금의 전세제도는 ‘갭 투자’로 부동산 가격을 부추기는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다. 학자였다면 보다 근본적인 저금리에 대한 대안을 요구하고 비판을 했어야 한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겠지만 제1야당의 의원으로, 재정 복지의 전문가로 알려진 자신의 입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비난했을 거라고 본다. 법 때문에 사라질 전세제도가 아니다. 시장이 필요하다면 어떻게든 유지되겠지만 저금리가 유지되는 한 전세제도는 저무는 태양이다. 

이강희 칼럼니스트
이강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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