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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질풍노도] 재난지원금의 보편적 지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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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질풍노도] 재난지원금의 보편적 지급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9.03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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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환과이환불균(不患寡而患不均)’ 백성은 적은 것을 걱정하지 않고 균등하지 못한 것을 걱정한다
기준이 모호한 특정 대상에게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보다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해야

[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유교는 공자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성현들의 말을 전하는 유교 경전에는 공자와 제자들의 대화를 기록해 내려오고 있는 ‘논어’도 포함된다. 20여 편으로 구성된 논어에 16편 ‘계씨 편’이 있는데 당시의 계씨(계손)는 노나라에서 대부의 벼슬을 하면서 임금보다 권한이 더 막강한 실세였다. 그가 노(魯)나라 안에 작은 나라 ‘전유’를 정벌하려고 하자 계씨의 가신(家臣)으로 있던 염유(염구)와 계로(자로)가 스승인 공자의 의견을 구하려고 찾아와 나눈 대화를 적은 내용이 ‘계씨 편’이다. 제자를 꾸짖는 것처럼 보이지만 위정자에 대한 일침이다.  
 
여기에 공자가 제자들에게 ‘불환과이환불균(不患寡而患不均)’라고 말한 글귀가 있다. 이는 ‘백성이 적은 것을 걱정하지 않고 균등하지 못한 것을 걱정한다.’는 뜻으로 직역할 수 있다. 의역한다면 ‘(나라를 구성하는) 구성원의 수가 적은 것을 걱정하는 것보다는 구성원들이 불평등하다고 불만을 가지게 되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로 해석될 수 있다. 공자가 생각한 정치라는 것은 구성원에게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부족한 것은 참지만 균등하지 못한 것에는 불만을 갖기 시작한다. 차별을 받는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불만이 쌓이기 시작한다. 늘어놓는 불평이 누적되어 임계점을 넘게 되면 저항으로 표출될 수 있다. 의무를 다함에도 권리를 차별받게 되면 갈등 관계가 형성되고 누구나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를 관리하는 정부는 누구나 차별받지 않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정부는 비효율적이어야 한다. 과거의 정부 중에는 효율을 따지다가 지역 불균형을 만들었고 소득 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묵인했다. 그 결과 특정 지역이 과밀화되었고 특정 기업만이 성장세를 이어가는 기형을 만들어냈다. 뒤늦게나마 정부는 중소기업에 대한 세제지원과 금융지원을 하고 취약계층을 지원하고 있다.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서다. 
 
최근에 재난지원금을 두고 여야가 나뉘고 여당 내에서도 의견이 다르다. 선별적인 지원이 합리적으로 보이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불균형과 차별이 내재되어 있다. 자연이라는 존재가 모든 인간에게 공정한 시간이 부여했듯이 국가도 국민을 선별하지 말고 스스로가 알아서 선택할 수 있게 맡겨야 한다. 기회는 모두에게 주어져야 하고 기회를 활용할지의 여부는 선택한 자들의 몫으로 놔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기준이 모호한 특정 비율의 대상에게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보다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해서 불균형과 차별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없애고 줄여야 할 차별을 정부가 애써 만들 필요는 없다. 자본주의에서 모두가 부를 얻을 수 없다. 치킨게임의 룰에 있다 보니 역설적인 빈부의 격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위해 선별적인 복지정책을 수립해 놓았다. 지속적으로 추진할 정책도 아닌 일시적으로 지급할 재난지원금에 지나치게 많은 언쟁과 시간을 사용하고 있다. 몸소 국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려고 다투는 정치인의 노력은 가상하지만, 국민은 재미있어하지 않는다. 
 
1차 재난지원금의 사용이 지난 8월 31일로 끝났다. 정부는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세밀하게 분석할 것이다. 6월경에 잠시 나왔던 보도를 보면 지원금의 대상 가구 수의 99%가 재난지원금을 수령했다. ‘어디선가’, ‘무엇인가’에 돈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내수경제 부양효과를 봤고 OECD에서도 인정한 바 있다. 99%라는 숫자는 우리 국민이 차별과 불균형을 싫어한다는 것을 아주 정확히 표현해주고 있다. 정부가 어떻게 집행해야 할지도 알려주고 있다. 답은 나와 있는데 언제까지 소모적인 논쟁만 할 것인가? 시간은 지금도 흘러간다.

이강희 칼럼니스트
이강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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