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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 의혹으로 물든 LH 사태의 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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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 의혹으로 물든 LH 사태의 여파
  • 이은비 소비자기자
  • 승인 2021.03.15 1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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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쪼개고, 묘목 심어…각종 수단 동원해 보상금 올리기
고위 공직자까지 번진 투기 의혹, 시민들의 분노
출처 : LH 한국토지주택공사
출처 : LH 한국토지주택공사

[소비라이프/이은비 소비자기자] 지난 2일, ‘광명시흥’ 지역이 3기 신도시로 지정되기 전에 LH 직원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투기 목적으로 땅을 매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국토교통부와 LH 직원에 대한 전수조사를 착수했다.

조사 결과 일부 LH 직원들은 투기를 위해 ‘꾼’만 안다는 각종 수법을 동원했다. 토지수용 시 면적이 1,000㎡를 넘기면 인근 지역의 땅을 보상으로 받을 수 있다. 이들은 이러한 보상 제도를 노렸다. 수도권 LH 직원 4명을 포함한 7명이 지분을 나눠 5,025㎡의 농지를 구매하고, 사들인 땅을 1,000㎡가 넘는 네 개의 필지로 쪼갰다. 그러고는 구매한 농지에 수천 그루의 묘목을 심었다. 희귀 수목이면서 비교적 빠르게 자라는 용버들이다. 나무가 높게, 많이 자란 땅일수록 더 높은 보상금이 책정된다는 점을 이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투기가 의심되는 지역 중 맹지를 구입한 경우가 많았다. 맹지는 도로와 맞닿아 있는 부분이 없어 입지가 나쁜 토지를 말한다. 다른 토지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지만, 이용 가치가 낮아 거의 거래되지 않는다. 맹지를 거래했다는 것은 개발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일부 LH 직원들은 농지 취득을 위해 가짜 영농 계획서도 제출했다. 농사 경력을 7년으로 기재하고, 주 재배 예정 작목에는 벼를 적었지만 실제로는 묘목을 심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LH 일부 직원을 규탄하고, 제대로 된 처벌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LH 본부 앞에서는 ‘성역 없는 전면 수사’를 촉구하는 시위가 이어졌고, LH가 주도한 3기 신도시 지정을 철회해달라는 청원 글의 참여자는 8만 명을 넘어섰다.

투기 사태는 정치권으로도 번졌다. 고위 공직자의 투기 의심 정황이 잇달아 나오며 국회의원에 대한 전수조사를 논의했다. 재보궐 선거를 앞둔 여야는 수사 주도권을 잡기 위해 신경전을 벌였다. 특검 도입을 주장하는 더불어민주당과 검찰 수사를 우선하는 국민의힘의 주장이 엇갈린다.

한편, 인터넷상으로 LH 직원으로 추정되는 인물들의 발언이 논란을 일으켰다. 직장 인증을 거쳐야 글을 남길 수 있는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어차피 한두 달만 지나면 사람들 기억에서 잊힌다”라며 투기는 “우리 회사만의 혜택이자 복지”,”니들도 이직하든가”라는 내용의 글이 게시됐고, LH 본부 앞의 시위대를 보며 “28층이라 하나도 안 들린다”라며 조롱하는 카카오톡 채팅 내용이 유포돼 시민들의 공분을 샀다.

논란이 거세지자 정부는 정부 합동조사단을 출범해 국토부와 LH 임직원 등 1만 4천여 명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실시했고, 지난 11일 발표한 1차 합동 조사 결과 기존 민변과 참여연대에서 의혹을 제기한 13건을 포함해 총 20명의 투기 의심자를 밝혀냈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LH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난 12일 사의를 표명했다. 변창흠 장관은 2019년 4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LH 사장으로 재직한 바 있다. 투기 의심자로 확인된 20명 중 11명은 변 장관이 재직 중이던 시기에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이 발생하게 된 데에는 LH의 부실한 내부감사 제도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0년 전에 이미 감사원에서 LH의 자체 감사가 부실하다는 지적을 한 바 있지만, 그 후로도 나아진 것은 없었다. 총직원 수는 10년 전보다 50% 증가했지만, 2010년 징계자 수가 37명인 것과 비교해 2016년 13명, 2017년 20명, 2019년 35명으로 인원 대비 적발 수는 줄었다.

치솟는 집값에 갈 곳 없는 시민들에게 무력감을 안겨준 투기 사태,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가려면 철저한 수사와 법 제정을 통해 투기 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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