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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응의 LOVE LETTER] 자양동 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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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응의 LOVE LETTER] 자양동 송해
  • 김정응 『김정응 퍼스널 브랜딩 연구소』 대표/작가
  • 승인 2021.02.17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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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의 연세에도 건강하게 식당일을 하는 모습이 국민 MC 송해 선생님과 비슷해...
그분의 핵심 키워드는 '철들기'였는데 멋지게 표현하자면 ‘깨달음’을 얻는 것

[소비라이프] 저는 30년째 광진구 자양동에서 살고 있습니다. 강산이 세 번 변했으니 꽤 오랜 세월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만큼 동네 구석구석도 많이 변했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도 있는데 제가 자주 찾는 단골식당이 그중의 하나입니다.

그 식당을 단골로 정하게 된 이유에는 나름의 특별함이 있습니다. 물론 음식이나 분위기가 제 입맛이나 취향에 맞았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보다는 식당 부부 사장님의 개성이 더 큰 이유였습니다. 특히 남편 사장님, 즉 아저씨의 매력이 저의 발걸음을 자주 그 식당 앞에서 멈춰 서게 했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참새 방앗간이라고 한다지요. 

그 사장님은 구순의 연세에도 건강하게 식당일을 하는 모습이 국민 MC 송해 선생님과 비슷한 것 같아서 제가 '자양동 송해'라는 닉네임을 정해 주기도 했습니다. 저의 아버지와 연세가 비슷한 것도 사장님과의 특별한 인연에 대한 집착을 강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사장님은 혼밥과 혼술을 즐겨하는 저와 격의 없이 술잔도 주고받았고 제 고민도 잘 들어주었습니다. 

설 연휴를 맞아서 인사도 드릴 겸해서 오랜만에 식당을 찾았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특히 그랬지만 지방 출장 등 여러 바쁜 일이 있어서 식당을 찾은 지가 꽤 오래됐었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마음도 몹시 설렜습니다. 식당에 들어서면서 제일 먼저 아저씨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곧이어 들려온 아주머니의 말에 제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아저씨, 올 초에 하늘나라로 가셨어요.”

상실의 아픔이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소름 돋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불현듯이 지금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저희 아버지 얼굴도 떠오르는 등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뒤섞이면서 마음이 심란해졌습니다. 당신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식당 사장님의 기억 연결고리는 키워드였습니다. 그분의 핵심 키워드는 '철들기'였는데 멋지게 표현하자면 ‘깨달음’을 얻는 것이죠. 그러면서 평소 그 말을 거듭 강조하면서 저를 압박하곤 했습니다. 그런 것이 제 기억 속에 그 사장님을 인상 깊게 남아있게끔 하는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자네는 아직도 철이 안 들었어.”

정작 아저씨 본인은 철이 언제 어떻게 왔는지는 모른답니다. 하여간 어느 순간에 철이 들었다고 느꼈답니다. 그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인생이 180도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물론 남들의 평가도 달라졌고요. 돌아가시기 전까지의  그의 철이 든 모습은 이런 것으로 요약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 유머 감각
“나는 충주에서 뗏목을 타고 서울에 온 사람이야.”
그는 엄청난 구라(?)를 동반한 인생이야기 퍼 붇기를 즐겨했습니다. 이른바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 같은데 재미도 있고 듣고 나면 철학적 의미를 되새기게 되는 그런 힘이 있었습니다. 

둘. 일에 대한 집착
“나는 세계 최강의 고등어구이 전문가야.”
그는 영원한 일꾼임을 늘 자랑했습니다. 실제로 고등어 전문가라는 그의 주장은 객관적으로도 증명이 되었습니다. 많은 손님이 그 식당의 인기 메뉴로 고등어구이를 뽑았으니까요.

셋. 하루 목표 세우기
“하루에 담배 한 갑 피우는 게 목표야.”
그는 하루 세 갑의 줄담배를 피우는 헤비스모커(heavy smoker)였습니다. 그러면서 본인의 하루 목표는 담배 한 갑 피우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물론 목표가 있는 사람이 잘사는 삶인 것 같다는 주장을 그의 방식으로 강조한 것입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칠십이 되어서야 비로소 철이 들었노라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그의 대작 <부활>은 철듦의 결과 중 하나이고요. 아무튼 설 연휴 내내 지금 저의 '철듦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를 되돌아보게 되더군요. 깨달음이란 가장 늦게 찾아오는 친구라는 말도 있는데 새봄과 함께 그 친구가 제 곁으로 성큼 와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요?

김정응 『김정응 퍼스널 브랜딩 연구소』 대표/작가

저서 <당신은 특별합니다> <북두칠성 브랜딩> <편지, 쓰고 볼 일입니다> <이젠 휘둘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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