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라이프/이득영 소비자기자]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통조림햄인 스팸. 한국은 미국에 이어 스팸 판매량이 2위인 국가이다. 인구가 미국에 비해 16% 수준인 한국에서 미국 다음으로 판매량이 많은 것이다. 거기에다 평범한 소비재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점유율이 50%를 초과한다. 그만큼 한국인들의 스팸사랑은 지극하다. 이렇게 스팸이 국내에서 많은 인기를 끌고 있기에 식당에서 ‘스팸’이 들어가는 메뉴를 파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실제로 서울 중심지에서 배달앱에 ‘스팸’을 검색하면 최소 몇백 개의 메뉴가 나온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과연 ‘스팸’이 포함된 몇백 개의 메뉴에서 진짜 ’스팸’을 쓰는 메뉴는 얼마나 될까? 온라인 커뮤니티를 보면 소비자들이 ‘스팸’이 포함된 메뉴를 시켰는데, 알고 보니 '스팸'이 아니라 타 회사의 제품이었다는 글을 적지 않게 검색할 수 있다. '스팸'이 통조림햄의 대표격이라는 이유로 실제로는 다른 통조림 햄을 사용하면서 식당 메뉴에는 ‘스팸’이라고 명시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이는 법에 저촉되는 행위일 수 있다. ‘스팸’은 엄연히 '호멜 푸드즈 코오포레이숀'이 한국 특허청에 등록한 상표이므로 호멜사에게 한국내 상표 사용권을 받은 CJ제일제당의 ‘스팸’만이 ‘스팸’이라고 명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내에서 판매되는 ‘스팸’을 잘 살펴보면 명칭 옆에 R이라고 조그맣게 적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R은 ‘registered’, 즉 등록상표를 뜻한다.
반면 런천미트는 등록상표가 아닌 일반 명사이기 때문에 별다른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다. ‘런천미트’라는 용어는 ‘가볍게 먹는 햄’, ‘차가운 상태로도 먹을 수 있는 햄’ 등의 의미를 가진 것에 불과하기에 통조림햄을 뜻하는 일반명사로서 여러 식품회사에서 두루두루 쓰고 있다. '스팸'이 아닌 걸 '스팸'이라 할 수는 없지만 '스팸'을 런천미트라고 하는 것은 가능하다.
물론 상표권 그 자체만으로 타 업체의 통조림 햄을 쓰면서 ‘스팸’이라고 명시하면 안된다. 또한 ‘스팸’ 이름을 붙여 시중에 팔리는 여러 회사의 런천미트는 돼지고기 함유량에서 큰 차이가 난다. CJ제일제당의 ‘스팸’은 돼지고기 함유량이 92% 가량인 반면, 타 회사들의 런천미트는 일반적으로 돼지고기 함유량이 50% 이하이고 닭고기와 전분이 섞여 있다.
‘스팸’이 등록상표이고 돼지고기 함유량도 보통 타 제품에 비해 높다 보니 ‘스팸’의 판매회사인 CJ제일제당은 2021년부터 ‘스팸 인증제’를 도입하였다. ‘스팸 인증제’는 매장 앞에 “본 매장은 스팸을 사용합니다”라는 문구를 기재해 소비자가 실제 ‘스팸’ 사용 여부를 쉽게 알수 있게 한다. 하지만 이를 전 매장으로 확대시키기에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고 요즘은 배달을 통한 언택트 주문 또한 많아서 실효성이 크다고 보기는 힘들다.
다른 통조림 햄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특허청에 등록되어 있는 특정 상표를 명시하는 것은 엄연히 소비자에게 혼란을 야기시키는 기망 행위다. 소비자들은 사소한 것이라도 좌시하지 않아야 하며, 소비자에게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지 않는 기업의 식품 판매나 음식점의 식사 메뉴에는 지적과 시정을 요구해야 소비자의 권리를 주장할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