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3 15:17 (화)
[정책이슈] ‘금소법 한 달’ 여전한 소비자 불편
상태바
[정책이슈] ‘금소법 한 달’ 여전한 소비자 불편
  • 홍보현 기자
  • 승인 2021.06.04 11: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소법 시행에 따른 소비자보호 강화를 위한 일련의 변화가 단기적으로 보험사와 설계사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보험산업이 소비자 신뢰를 확보함으로써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소비라이프/홍보현 기자] 소비자보호를 위해 개정된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소비자 권익을 보장한다는 명분하에 오히려 비용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펀드 가입에 1시간?
40대 남성 A 씨는 은행에서 직원을 향해 큰소리를 쳤다. 펀드를 가입하는 과정에서 직원의 설명이 1시간 가까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A 씨는 상담 내내 “시간이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지만 직원은 “죄송하다. 법이 바뀌어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

지난 3월 25일 금융소비자보호법(이하 금소법) 시행 이후 펀드 가입 권유가 더 깐깐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혼란은 은행 일선 영업점에선 이어지고 있다.

금소법은 일부 금융상품에만 적용하던 ‘6대 판매규제’를 모든 금융상품에 적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6대 규제는 상품 판매 시 고려해야 하는 적합성·적정성의 원칙, 설명의무, 불공정 행위·부당권유·과장광고 금지 원칙을 말한다. 그러나 수백 쪽에 달하는 약관과 계약서, 상품 설명서를 일일이 고객에게 교부하고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입출금 통장 하나를 만드는 데 1시간 넘게 대기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금융회사의 책임도 커졌다. 금융회사는 금융상품을 팔 때 소비자의 재산 상황·거래 목적 등을 확인해 적합·적정한 상품을 권유하고 수익의 변동 가능성 등 중요사항을 설명해야 한다. 금소법을 위반한 금융사에는 관련 수입의 최대 50%까지 ‘징벌적 과징금’이 부과되며, 불완전판매가 아니라는 입증책임도 금융회사가 전담해야 한다.

펀드 판매사들은 금소법상 ‘적합성 원칙’에 따라 펀드 가입 전에는 금융소비자의 투자 성향을 분석한 뒤 위험성향보다 높은 위험도 상품을 권유해서는 안 된다. 또한 ‘설명의무’에 따라 투자 시 발생할 수 있는 위험, 금리 변동 여부, 상환 방법, 계약 해지 등과 같은 내용을 알기 쉽게 전달해야 한다.

이러한 규제 때문에 은행 영업점을 통한 펀드 가입이 기존에는 30분이면 가능했지만, 이제는 1시간이 넘게 걸린다.

금소법 시행으로 개인의 투자 성향에 맞지 않는 펀드는 권유조차 할 수 없는 데다 펀드 가입에 기존보다 두 배 많은 시간이 소요되다 보니 은행들은 펀드 판매에 신중한 모습이다.

내겐 너무 많은 보험 가입 서류
보험업계에 따르면 보험사들은 최근 금소법에 맞춰 청약서와 상품 설명서 등 필요한 서류를 새로 제작해 영업 현장에 배포했다. 그런데 주요 10개 생·손보사의 주력상품 청약 관련 서류가 무려 75장에 달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는 기존에 비해 20장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교보생명 변액보험이 73장으로 많았고, 그밖에 손보사 건강보험도 60장 정도 됐다. 동양생명 간편 심사보험이 가장 적었지만 42장으로, 대부분 청약 관련 서류가 금소법 시행 전보다 10~20장 많아졌다.

이는 적합성, 적정성 등 6대 판매원칙 의무화에 따른 고객과 설계사 간 향후 분쟁에 대비해 각종 동의서와 설명서 등 관련 서류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보장성보험과 변액보험 청약관련 서류가 부쩍 두꺼워졌다. 이들 상품의 경우 민원 다발과 고난도 투자상품 적용으로 고객동의서, 개인신용정보처리동의서, 비교안내계약서가 추가됐다.

감독당국은 이처럼 청약관련 서류가 늘어난 것에 대해 보험소비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선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보험소비자의 예측하지 못한 피해 구제와 보험상품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생명보험협회에서 보험사 사장단과 가진 간담회에서 “금소법 시행에 따른 소비자보호 강화를 위한 일련의 변화가 단기적으로 보험사와 설계사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보험산업이 소비자 신뢰를 확보함으로써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법명이 무색한 소비자보호 기능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선 막대한 비용이 투입된다. 내부통제 기준 마련을 위한 추가 비용, 서비스 기간 확대로 인한 인건비 증가, 향후 손해배상 등에 대비한 충당금 등 금융회사는 적지 않은 비용 증가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를 만회하기 위해 금융회사는 대출금리, 수수료 등 서비스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미국 등 소비자 보호가 강한 나라에서 은행의 비용이 상대적으로 높고 그 결과 대출금리, 수수료 등도 한국보다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일부 은행에선 우대금리 혜택을 축소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금융당국의 신용대출 억제 측면도 있지만 카드, 보험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장기간 이용하면서 누릴 수 있는 금융 혜택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사회적 금융 약자에 대한 기피 현상도 증가할 우려가 있다. 금융정책이 소비자 편익 확대 중심에서 소비자 피해 예방, 보호 중심으로 변경되면서 금융사는 상환 능력이 좋지 않거나 입증하기 어려운 차주를 꺼릴 수 있다.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선 위험을 감수할 만큼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 하는데 정부와 여당이 최대금리 인하를 추진하면서 적정한 대출금리를 산정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ELS 등 파생결합증권 시장도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주 고객인 60대 이상의 고연령 고객이 위험을 감내할 만한 고객이라고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전문투자자가 아니면 사실상 소비자들에게 고난도 금융상품을 판매하지 않고 있다.

키움증권 서영수 애널리스트는 “사회적 약자의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고 보호하기 위한 금융소비자보호법으로 금융 부문에서의 소비자 편익은 줄어들 것이며 나아가 그 비용을 금융서비스를 이용하는 다수가 부담할 수밖에 없다”며 “그런데도 금소법은 국민의 재산 축적에 기여하는 것보다 재산 보호에 이바지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