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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어, 합성어로 점철된 예능 자막... 제재의 바람 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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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어, 합성어로 점철된 예능 자막... 제재의 바람 일어
  • 이현정 소비자기자
  • 승인 2021.03.22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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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지널', 'GA-5', '닉값' 등의 자막
한글 파괴와 세대 간 괴리감 낳아

[소비라이프/이현정 소비자기자]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막은 재미를 더하는 역할을 한다. 자막에 각종 신조어나 합성어, 외국어 혼용 표현을 사용해 시청자와의 공감을 형성하는 게 어느덧 트렌드가 됐다. 그러나 과도한 사용으로 한글 파괴나 세대 간의 괴리감 등의 부작용을 낳으면서, 예능계에 제재의 바람이 불고 있다.

출처: pixabay
출처: pixabay

‘가리지널’(가짜), ‘Aㅏ’(아), ‘노우 The 뼈’(아니, 뼈), ‘아이 크은랩벋아돈노더ㄹㄹㄹ랩’(랩을 할 줄 아나, 그 랩은 몰라), ‘GA-5’(가오), ‘닉값’(이름값), ‘sh읏 알아’(시옷 알아). 모두 최근 방송 자막에서 쓰인 말들이다. 추가적인 해석 없이 자막으로만 뜻을 알아차리긴 어려운 단어들이다.

이렇게 많은 방송 자막이 신조어와 합성어로 점철되자, 지난해 11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는 방송사 7곳의 6개 예능 프로그램에 행정지도 ‘권고’를 의결했다. KBS ‘옥탑방의 문제아들’, MBC ‘놀면 뭐하니’, SBS ‘박장데소’, 채널A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 시즌 2’, JTBC ‘장르만 코미디’, tvN XtvN ‘놀라운 토요일 도레미 마켓’이 방송심의 규정 ‘방송언어’ 조항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한글 파괴가 범람하는 방송 자막에 대한 제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5년 말 방심위는 과도한 신조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행정지도 결정을 내렸다. 또 2016년 MBC ‘주간 아이돌’에도 같은 이유로 법정 제재 결정을 내렸다. 2018년엔 tvN ‘SNL코리아’의 시즌 9에서 사용한 ‘급식체’를 ‘저속한 언어 사용’으로 판단해 행정지도 처분을 내렸다. 2019년에도 방송심의소위원회를 열어, 행정지도 ‘권고’를 내렸다. ‘띵곡’, ‘커엽’, ‘뙇’, ‘짜롼당’ 등의 표현을 사용한 SBS ‘런닝맨’, JTBC ‘아는 형님’ 등이 대상이 됐다.

방송심의소위원회는 “방송에서 오직 흥미만을 목적으로 어문 규범에 어긋나는 의도적인 표기 오류 표현 등을 남용해, 방송의 품위와 한글의 올바른 사용을 저해했다”며 “방송이 국민의 언어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해 유행하는 언어 흐름을 뒤쫓기보다는 올바른 방송언어 사용을 통해 시청자와 소통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칼을 빼든 방심위의 조치에 누리꾼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 커뮤니티에선 “시청자로서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다행이다”, “특히 예능은 연령층이 다양한데, 자막 때문에 세대 차이를 느낀 적이 많았다”, “재미를 위해 억지로 한글을 파괴하는 방송 자막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등의 반응이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피디들은 과도한 검열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 방송의 발전을 뒤처지게 한다는 것이다. 한 예능 피디는 “방송사가 뉴미디어와 경쟁하는 입장에서 시청자 이목을 잡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피디 연합회는 “예능 프로그램은 교양 프로그램과 달리 훨씬 세심하고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며 “신조어를 사용한 새 표현 방식으로 시청자의 감성이 더 풍부해질 수 있다. 이런 표현이 오랜 기간 공감을 얻는다면 새로운 표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전했다.

방송법 제6조 8항에서는 ‘방송은 표준말의 보급에 이바지해야 하며 언어 순화에 힘써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명확한 지침이 없다. 결국 방송을 제작하는 피디 측에서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자막을 제작할 수밖에 없다. 방심위 역시 다소 모호한 기준으로 방송을 심의하게 된다. 방심위와 방송 피디 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표현을 어디까지 포용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이에 전문가는 적절한 타협점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김경희 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는 “예능의 재미를 위해 신조어 등을 써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한글을 파괴하지 않고도 전달할 수 있는 말을 일부러 변형해 합성어를 만드는 것은 제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방송은 대중성이라는 특성을 지니기 때문에, 누구나 시청한다. 예능 프로그램의 특성에 따라 타겟층은 다르지만, 누구든 그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러나 최근의 예능 프로그램은 신조어나 합성어로 점철된 자막을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한글 파괴는 물론 세대 간극을 넓히는 데 방송 자막이 한몫하고 있다. 이쯤에서 자막의 본질을 다시금 돌이켜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방송 자막은 본래 방송의 내용을 시청자에게 명확히 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일 뿐이다. 자막으로 다른 예능 프로그램과 차별성을 주기보단, 프로그램의 내용 면에서 독자성을 개발하는 방송 제작사의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시청자의 비판적 태도도 중요하다. 예능 자막을 단순히 수용하는 태도보다, 냉철하게 관찰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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