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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부(富)] 봉건제도에서 시작된 중세의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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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부(富)] 봉건제도에서 시작된 중세의 부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2.0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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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과 경제적 이익을 교환하는 계약인 봉건제도
필요에 따라 한 명의 기사나 귀족이 여러 귀족이나 왕을 섬기기도...

[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중세의 시작은 일반적으로 로마가 멸망한 시점부터라고 말하지만, 로마의 쇠퇴기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겉으로만 유지되었을 뿐 이미 로마인의 안전은 로마가 해결할 수 없었다. 로마가 성장하고 번성하던 시절 많은 로마인은 로마를 위해 자원해서 군에 들어가 싸웠다. 그만큼 로마는 젊고 건강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시작된 인구의 감소는 로마의 광활한 영역을 지키기 위해 싸울 수 있는 사람도 감소했음을 의미했다. 

이때 대체재가 게르만족이다. 게르만족은 정착할 땅이 필요했고 로마라는 안전지대에 사는 조건으로 로마를 대신해서 싸웠다. 로마는 변경에 거주하는 게르만족에게 그곳의 수비를 맡기는 조건으로 토지를 제공했는데 이를 은대지(Benefice, Beneficium)라고 한다. 
 
게르만의 지배계급과 전사들은 안전과 경제적 이익을 교환하는 계약인 봉건제도라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낸다. 지배층(왕과 귀족)에 충성을 맹세한 기사는 봉토를 부여받고 경제적 안정을 찾았다.
 
프랑크 왕국의 영향력이 서유럽 일대로 확대되자 봉건제도 확대되었다. 이후 프랑크 왕국이 분열하면서 안전과 이익을 제공하고 충성과 봉사를 제공하는 봉건제도가 소규모 단위로 더욱 강화된다. 
 
봉건제도의 재미있는 부분은 간혹 필요에 따라 한 명의 기사나 귀족이 여러 귀족이나 왕을 섬기기도 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섬기는 왕들이나 귀족끼리 전쟁을 하게 되면 기간을 나눠 양쪽 진영 모두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경제 부분은 여러 왕이나 귀족에게 충성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경제적 충성으로 형성된 재원을 기반으로 초기에는 용병을 고용했다. 이후 지배층의 경제적 기반이 강화되면서 상비군으로 발전하자 기사의 중요성은 낮아져 그들의 지위가 약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런 과정에서 지배층에 의해 봉건제의 필요성이 사라지고 왕권이 강화되면서 유럽은 절대왕정과 상비군, 중상정책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강희 칼럼니스트
이강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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