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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들의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번지고 있다. 일본이 또 한번 ‘망언’을 했기 때문이다. 독도를 자기나라 땅이라고 우긴다. 우리가 강하게 대응하면 쑥 들어갔다가 심심하면 한 번씩 생떼를 쓰는 모습이 웃긴다. 특히 일본 후쿠다야스오 총리가 중등교과서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을 명기하기로 한 것에 대해 ‘당연한 주장’이라고 말한 7월 <독도는 우리 땅>이란 노래가 다시한번 마음을 적신다.   그런 분위기여서 그런지 8월이면 <독도는 우리 땅> 노래가 자주 방송전파를 탄다. 4대 국경일인 광복절(8월 15일)엔 단골노래로 불린다. 이 곡은 일본의 억지주장이 불거지면서 인기곡으로 떠오른 대표적인 대중가요다.   방송PD출신인 박문영 작곡·작사, 개그맨 출신 정광태 노래인 <독도는 우리 땅>이 대중들에게 알려진 건 1983년 초. 전두환 대통령시절로 5공 중반기에 탄생한 셈이다.  노래는 아주 우습게 만들어졌다. 사랑, 이별 등 통속적 소재로 만들어진 일반 대중가요와 달리 노랫말부터가 재미있다. 우리나라 역사와 지리 상식들이 노래 중간 중간에 나오고 4분의 4박자의 빠른 템포에다 멜로디까지 경쾌해 다함께 부르면 더욱 흥겹다.KBS 코미디프로그램서 탄생  <독도는 우리 땅>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기까진 세 번에 걸쳐 사라질 뻔했던 우여곡절이 있었다. 노래는 방송 개그프로그램에서 비롯됐다. 작사가 손을 거친 노랫말에 곡을 붙여 가수에게 취입토록 하는 보통의 가요와 달리 노래태생부터가 이색적이다.  1982년 말 어느 날 KBS-TV 방송프로그램 ‘유머 1번지’ 개그작가였던 박문영 씨가 서울 여의도동 방송사사무실에서 열심히 원고를 쓰고 있었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했던 ‘유머 1번지’ 프로그램담당 김웅래 PD가 박 씨에게 “유익하면서도 재미있는 노래가 없느냐?”고 물었다.   박 씨는 그 순간 머리에 번쩍 떠오르는 게 있었다. “<독도는 우리 땅>이란 노래가 어떻겠느냐?”고 답했다. 김PD는 즉석에서 ‘좋다’고 했다. 담당PD의 OK사인을 받은 박 씨는 곧바로 방송사 도서실로 달려가 독도와 관련된 책과 자료들을 뒤졌다. 수집내용들을 바탕으로 그 자리에서 가사를 만들고 멜로디를 붙였다.  그 다음 주 TV방송 녹화장. 포졸 옷을 입은 임하룡, 정광태 등 4명의 개그맨들이 커다란 종이에 써 준 가사를 보며 노래를 불러 무사히 방송을 내보냈다. 방송작가(박 씨)가 코미디담당PD 요청으로 개그용의 재미난 노래를 즉흥으로 만들어 시청자들을 웃게 만든 것이다.  박 씨는 방송프로그램의 코너를 마친 안도감에 가사를 적은 종이를 구겨 사무실 쓰레기통에 버렸다. 얼마 뒤 4명의 개그맨 중 뭔가 느낌을 가진 정광태 씨가 쓰레기통을 뒤져서 수첩에 가사를 적어 호주머니에 넣고 나갔다.   개그용 노랫말로 쓰레기통에…정 씨는 이튿날부터 레코드회사를 찾아다니며 노래취입을 부탁했다. 정 씨는 “음반의 맨 끝 곡에라도 좋으니 음반으로 내어달라”며 레코드사 사람들에게 매달렸다. 그러나 반응은 싸늘했다. 개그맨이 노래를 부르겠다는 것도 그렇지만 가사가 장난스럽게 받아들여져 ‘안 된다’는 시각이었다. 정 씨 얘기를 들은 레코드사 직원들은 한결같이 “그게 노래냐!”며 손사래를 쳤다.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정 씨의 끈질긴 집념이 갸륵해(?) ‘대성음반’이란 조그만 레코드사에서 맨 끝 곡으로 <독도는 우리 땅>을 실어 두 달 뒤 음반을 냈다. 대성음반은 노래의 상품성보다 열심히 뛰어다니며 음반수록을 부탁한 젊은 개그맨을 차마 뿌리치지 못해 끼어 넣어준 것이다. 히트가 예감되는 곡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기가수가 부른 노래도 아닌 까닭이다.  음반 끄트머리에 끼어 든 <독도는 우리 땅>은 음반이 나오자 장난기 있는 일부 라디오PD들이 이 노래를 심심풀이로 방송에 띄웠다. 하지만 반응은 거의 없었다. 영향력 있는 공중파 TV방송사의 가요PD들에겐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며칠 후 어느 날 이었다. KBS의 한 간부가 우연히 그 노래를 듣고 “어떤 PD가 그런 괴상한 노래를 트느냐”며 불호령을 내렸다. PD가 불려가 꾸중을 들은 뒤 사무실엔 “<독도는 우리 땅>노래를 방송에 일절 내보내지 말라!”는 경고문이 나붙었다.  그렇게 해서 <독도는 우리 땅>노래는 더 이상 전파를 타지 못하게 됐을 무렵 때마침 “일본국회가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우긴다”는 보도가 터져 나왔다. 독도문제가 매스컴의 초점을 받자 대통령 주재 청와대회의에 거론되기까지 했다. 그 때 전두환 대통령은 그 노래를 들었는지 별 문제가 아니라는 듯 “우리는 <독도는 우리 땅>이란 노래가 있잖아!” 하며 일본 쪽 주장을 일축했다.  대통령 말에 놀란 당시 허문도 문화공보부 차관은 급히 가수(정광태)와 작곡가(박문영)를 불러 차를 대접하며 <독도는 우리 땅>을 만들어 취입한 것을 칭찬했다. 허 차관은 두 사람에게 “애로가 없느냐?”고 묻자 정 씨가 “KBS에서 노래를 방송금지곡으로 묶어놓고 있어 억울하다”며 사정을 자초지종 얘기했다. 허 차관은 그 자리에서 KBS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방송금지 시키지 말라” 당부했다. 그 무렵엔 말이 당부이지 거의 지시나 마찬가지로 말발이 먹혔다.  두 사람은 문공부를 나와 택시를 타고 여의도로 가던 중 차안에서 <독도는 우리 땅>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을 듣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 뒤 이 노래는 각 방송 가요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했고 광복절을 전후해선 인기곡으로 가요차트에 오르곤 했다. 1983년 개그맨 정광태 씨 취입정 씨는 졸지에 유명연예인이 됐다. 노래가 본격 선보인 1983년 KBS가요대상에서 신인가수상까지 받았다. 1990년대 들어 몇 차례 일본이 독도문제로 시비를 걸어왔을 때도 방송무대에서 노래를 불렀을 만큼 개그맨보다 인기가수로 더 유명세를 탔다.   정 씨는 2000년 여름 ‘윤독도’라는 별명의 한나라당 윤한도 전 의원(경남 함안·의령)을 중심으로 한 여야 국회의원들과 독도를 찾았다. 2002년엔 뗏목탐사, 2004년엔 울릉도 도동항~독도 수영종단으로 또 한 번 화제를 모았다.  코미디용 방송프로그램녹화 후 쓰레기통에 들어갔던 악보를 개그맨이 음반으로 되살렸지만 방송사가 틀어주지 않아 사라질 뻔했던 <독도는 우리 땅>은 흔히들 방송금지곡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아니다.   정광태 씨는 2005년 3월 28일 밤 한때 자신이 일했던 KBS-1TV의 심야 보도프로그램 ‘뉴스라인’에 출연, 노래와 독도지키기 내용들을 들려줬다.                                  <'독도' 명칭은 전라도 남해안 발음 '독섬'서 유래>독도는 신라 지증왕때 우산도(于山島)라 불리기 시작해 조선시대에는 삼봉도(三峰島), 가지도(可支島), 석도(石島)라고 불렸다. 1900년 고종황제의 칙령 41조에 의해 독도를 울릉군의 한 부속 섬으로서 공식적으로 강원도에 들어갔다.행정지명으로서 ‘독도’란 이름은 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에 의해 처음 사용됐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경상북도에 편입됐다. 현재 ‘獨島’로 표기되는 독도는 ‘외로운 섬’,’홀로섬’이 아니다. ‘돌섬’이 초기 이주민인 전라도 남해안 출신 사람들에 의해 ‘독섬’으로 발음되면서 ‘獨島’로 표기 됐다. 석도를 훈독 하면 ‘독섬’ 또는 ‘돌섬’이 된다. 지금도 울릉도 주민들은 독도를 ‘독섬’ 혹은 ‘돌섬’으로 부르고 있다. 한편 일본에서는 명치시대 전에는 독도를 마쓰시마(松島)라 부르다가 1905년 영토편입 뒤 부터 다케시마(竹島)라 부르고 있다. 서양에서는 이섬을 발견한 선박의 명칭을 따라 이름을 붙였다. 1849년 프랑스의 포경선 리앙꾸르호가 독도를 발견, ‘리앙꾸르 암(Liancourt Rock)’ 으로 명명했다. 1885년 영국함선 호네트호 또한 ‘호네트 암(Hornet Rock)’으로 이름을 지어 자기들 해도에 등록했다. 하지만 이는 섬을 바위로 표시한 것으로 우리가 바로 잡아야 할 사항이다.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8-10-08 00:00

여름철에 자주 애창되는 불후의 대중가요 <해변으로 가요>는 언제 들어도 시원하다. 파도가 가까이서 밀려오고 달콤한 사랑을 나누는 해변의 연인들 속삭임이 들리는 듯 하다. 노랫말에서처럼 백사장에 사랑의 발자국을 남기며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걷는 모습도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4분의 4박자, 고고풍의 이 노래는 남성그룹 키보이스가 불러 크게 히트했다. 대중가요악보집엔 김희갑 작사·작곡으로 돼있지만 내막을 알고 보면 사실이 아니다. 키보이스, 번역 곡 취입해 대히트이 노래는 원래 일본 곡이었다. 나중에 우리말 가사로 번역된 것이다. 노래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불리게 된 사연은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8년 서울시민회관(현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아시아 그룹사운드페스티벌에서였다. 우리나라 키보이스와 미국, 일본,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온 그룹사운드팀들이 닷새 동안 공연을 펼쳤다. 이들 가운데는 재일교포 이철(李徹·일본명=아베 데스)씨를 포함한 8명의 일본그룹사운드 ‘더 아스트로 제트’가 있었다. 그러나 그 무렵 한국에선 일본노래를 부를 수 없게 돼있었다. ‘더 아스트로 제트’의 리더 이 씨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작사·작곡한 ‘하마베에이꼬’(浜邊へ 行こう)를 국제관계평론가인 형(이건)에게 한국말로 가사번역을 맡겼다. 이건 씨는 이를 다시 친분 있는 소설가 이호철 씨에게 가사번역을 부탁, 시민회관에서 공연할 수 있었다. 그런 과정들을 거쳐 불린 노래가 바로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로 나가는 <해변으로 가요>다.  인기절정의 남성보컬그룹 ‘키보이스’가 <해변으로 가요>를 부른 건 그 이듬해인 1969년부터였다. 시민회관공연이 끝난 뒤 키보이스가 이철 씨에게 ‘그 노래를 부르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이 씨가 일본으로 돌아가서 <해변으로 가요>를 불러도 좋다고 허락했다. 이 씨는 ‘주간조선’과의 서면인터뷰를 통해 “그것은 어디까지나 같은 음악가로서 호의에 의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철의 ‘하마베에이꼬’가 원곡한국음악저작권협회 등록 전에 이 노래의 작사ㆍ작곡자와 관련된 기록을 보면 여러 사람들 이름이 나온다. 1970년 유니버설레코드사가 제작한 앨범 ‘보칼 NO.1 키보이스 특선 2집’엔 작사ㆍ작곡자 표시 없이 ‘키보이스 가요그룹’의 노래라고만 표기돼 있다. 이어 1976년 유니버샬레코드사에서 제작된 ‘키보이스 골드’란 레코드판엔 키보이스 작사ㆍ작곡으로 표기돼 있다. 그러던 게 1983년 4월 서울음반에서 만든 ‘키보이스 골드’ 레코드판엔 김희갑 작사ㆍ작곡으로 나와 있다. 1998년 1월엔 장용 씨가 별세함에 따라 그의 딸인 장실비아 씨가 그 명의를 이어 받았다. 하지만 이 노래 원작자 이 씨가 소송을 통해 저작권을 되찾으면서 일본노래란 사실이 밝혀졌다. <해변으로 가요> 작사ㆍ작곡자가 김희갑 씨도, 키보이스 멤버인 장용 씨도 아닌 재일교포 이철 씨란 사실이 드러난 것. 이 씨가 <해변으로 가요>가 다른 사람 이름으로 돼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건 1980년대였다. 그는 “당시는 한일 음악교류가 거의 없는데다 저작권협정마저 없어 방치해둘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주간조선’(2002년 8월1일자)은 일본 곡 <해변으로 가요>가 우리말로 번역, 시민회관에서 소개됐고 키보이스가 이철 씨 허락을 받아 노래를 취입했다는 내용도 보도했다. 이 씨는 주간조선 보도가 나간 뒤 2003년 저작권 확인소송을 냈다. 39년 만에 저작권 찾아 ‘화제’이씨는 “서울시민회관에서 일본팀 ‘더 아스트 제트’로 공연했을 때 ‘히비토타쓰노 하마베’(해변의 연인)를 불렀으며, 그때 참가한 키보이스에게 우리 노래를 부르도록 빌려줬다”고 주장했다. 이후 ‘해변으로 가요’가 히트했지만 키보이스는 작사·작곡가를 명시하지 않았다. 또 1976년부터 작품자가 키보이스로, 1993년부터는 김희갑으로, 또 1996년엔 장 모 씨 이름으로 둔갑했다고 주장했다.이에 따라 부산지방법원 민사7부(재판장 윤근수 판사)는 2005년 7월 13일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원고(이철)가 피고(장실비아)를 상대로 낸 저작권확인소송에서 사단법인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해변으로 가요>가 원고의 저작물임과 그 저작권이 원고에게 있음을 확인한다고 판결을 내린 것이다. 윤근수 재판장은 판결이유에서 “당시 이호철이 한국말로 번역한 ‘하마베에이꼬’가사와 이 사건의 노래가사가 같고, 페스티벌공연 때 연주하거나 또는 페스티벌공연을 위해 연습한 ‘하마베에이꼬’ 악보와 이 사건의 노래악보가 대부분 일치하는 사실, 키보이스가 위 페스티벌에 참여한 1968년 전에 이 노래를 공연하거나 키보이스 가요앨범에 수록된 흔적이 없는 점 등을 들어 <해변으로 가요>저작권은 원고에게 있다”고 밝혔다.피고인 장 씨는 이에 불복, 상급법원까지 올라갔으나 결국 졌다. 대법원 1부(주심 고현철 대법관)는 부산고법 판결에 대한 장 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키보이스 멤버였던 장용 씨의 유족인 피고 장 모 씨는 1998년 6월부터 저작권료로 받은 8천여만 원을 원고 이 씨에게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노래가 국제적으로 화제를 모으면서 곡목과 같은 드라마도 나와 눈길을 끌었다. 2005년 7월 30일~9월 11일 SBS-TV가 ‘해변으로 가요’란 드라마를 방영, 인기를 모았다. 이청아, 이완, 전진, 강정화 등이 출연한 청춘멜로물로 젊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8-10-02 00:00

매주 금요일 밤 10시 TV앞에 앉은 소비자들은 행복하다. KBS 1TV ‘이영돈PD의 소비자 고발’이 소비자들의 불만을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건 갖고 ‘장난’치는 생산자들에겐 여간 불편한 방송이 아니다. 현장취재와 각종 실험을 통해 진짜와 가짜를 철저하게 가려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기업을 견제하고 소비자 보호장치가 미약한 국내 현실을 감안할 때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의 상생을 꾀해 볼 수 있는 반가운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이 프로그램의 기획·총괄을 맡고 있는 이영돈 PD를 만나봤다. Q. 소비자 고발 아이템은 어떻게 수집하는가?A. 고발 아이템 가운데 3분의 1은 제보를 통해 얻어진다. 인터넷·우편물 등을 통해 보내오는 것이다. 그리고 3분의 1은 가공이다. 직접제보를 통해 얻어진 아이디어를 새롭게 접근하거나 소재 자체를(유관분야까지) 넓혀보는 방식이다. 나머지 3분의 1은 PD와 작가의 기획이다. PD와 작가가 순수하게 아이템을 생각해내는 것이다. Q. PD와 작가의 개인적인 소비체험도 영향을 미칠 것 같다. A. 그렇다. (우리도) PD와 작가 이전에 소비자다. 불편을 느끼는데서 소비자고발 정신이 나온다.  Q. 소비자는 조직화함으로써 대항할 수 있는데 반해 생산자는 여러모로 열악한 구조에 놓여 있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A. 소비자가 조직화하는 게 쉽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 다만 중소기업을 취재하는 경우 소비자 보다 생산자가 상대적으로 약자입자에 놓여 있다는 소리를 들을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중소기업이나 생산자를 죽이려고 하는 게 아니다. 기업이 망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제품이 나오지 않는데…. 우리는 다만 소비문화 철학을 매도하면서 기업이윤을 추구하는 생산자를 고발하는 것이다. 소비자가 생산자의 잘못을 지적하면 열악한 중소기업의 경우 당장엔 힘들지만 먼 안목으로 보면 더 좋은 물건을 만드는 계기가 되어 소비자가 더 좋은 제품을 사게 되고 중소기업도 더 크게 성장하게 된다고 본다. Q. 10명의 생산자 중에 9명의 생산자는 부정을 저지르고 있는데 반해 1명의 생산자만이 깨끗하게 영업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처럼 부정한 업계의 선량한 생산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A. ‘어느 한 생산자를 보도하다 보면 업계 전체가 다 그런것처럼 비쳐 (도매금으로) 선량한 생산자도 피해를 보지 않는냐’는 질문인 것으로 안다. 이럴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반대로 10명의 생산자 중에 9곳이 선량하고 1곳만이 부정을 한다고 해도 언론엔 환경감시 기능이 있어 잘못된 행위를 지적 안 할 수 없다. 자본주의 체제아래서 기업은 돈을 버는 게 목적이다. 하지만 사회에 대한 기본적 윤리는 지켜야 하지 않는가. 우리가 잘못된 방법으로 돈을 버는 생산자를 고발하지 않으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다만 90%의 선량한 생산자가 피해 보지 않도록 ‘언어’에서 보완하려 노력한다. Q. 예전에 ‘착한 소비’를 크게 다룬 것으로 알고 있다. ‘착한 소비란’ 소비자가 생산자를 생각하는 소비라고 해도 되는가?A.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두 잘 사는 건전한 소비문화가 우리가 지향하는 것이다. 좋은 물건을 최고로 싸게 사는 게 좋은 소비인 것은 아니다. 이보다는 합리적 소비가 더 좋은 소비다. 제품이 만들어지기까지 들어간 원가 및 노동력, R&D 비용(연구개발) 등을 고려해 합리적인 값을 주는 게 좋은 소비다. 우리는 물건보다 물건을 만든 배경을 묻는다. 파키스탄 어린이들은 1달러를 받고 축구공 2개를 만든다. 사람들은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축구경기를 보며 광분한다. 여기서 사용되는 축구공이 다름아닌 이들 나라의  어린이들의 고된 노동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소비자가 물건을 싸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것 못지 않게 적절한 값을 냄으로써 생산자가 더 좋은 터전을 갖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이것이 ‘착한 소비’다.Q. 기업들은 유통비용이나 홍보비용 등을 빼다보면 이윤이 크지 않다고 말한다. 또 남는게 많다고 해도 브랜드가치에서 얻어진 대가라고 주장한다. 이럴 때 ‘착한 소비’와는 어느 수준에서 접점을 이룬다고 보는가?A. 아직 갈 길이 멀다. 유통의 복잡한 것도 한 이유다. 브랜드관리와 가치를 극대화한 게 이른바 ‘명품’이다. 이들의 얘기는 맞을 수 있다. 그러나 합리성이 있어야 한다. (착한 소비가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이상적인 사회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거기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원산지의 제품구입 값을 2~3%만 올려줘도 동티모르, 아프리카, 이디오피아 등지의 생산자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최근들어 극소수이지만 페어 트레이드(공정무역)가 기업들간에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이 마저도 기업홍보용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Q. 다른 방송의 소비자고발프로그램과 차별을 두는 점이 있다면?A. 소비자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다른 방송은 연예인이 출연하고 가볍게 터치하는 방식이지만 (우리 프로그램은) PD가 나오고 진중하게 소비자문제를 풀어가는 게 다르다. Q. 프로그램 한 꼭지 만드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가? A. 한 명의 PD가 3주동안 취재한다.           KBS ‘이영돈PD의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은?지난해 5월 4일 ‘성형부작용’을 첫 방송으로 시작한 이래 60회를 앞두고 있다. 10명의 전문PD들이 먹을거리·의료·자동차·교통·유통·금융·보험, 유통·교육·문화·생활·주거·환경, 여성·육아·살림, 공무·법률·소비자제도 등을 다루고 있다. 최근에는 ‘업소마다 맥주맛이 다르다’ ‘고급 지자체 관용차’ ‘한의원 집단 감염’ ‘묶음판매’ ‘혼유사고’ 등을 다뤄 높은 시청률을 올렸다. 특히 촛불시위가 열리는 가운데 방송된 ‘세계적 광우병 전문가들에게 듣는다 - 미국산 쇠고기의 진실’ (이후락 PD)등이 대표적 사례다. 설문조사와 인터뷰 방식으로 제작된 이 방송은 광우병 파동에 대한 여론을 더욱 뜨겁게 달구는데 ‘한 몫’했다.특히 지난해 10월 5일 방송된 ‘황토팩 중금속 검출’ 보도는 소비자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전통방식의 건강제품이라는 이미지로 ‘황토’를 철썩같이 믿었던 소비자들은 방송을 보고 대거 환불을 요구해 홈쇼핑 회사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 바람에 ‘막대한 영업피해를 입었다’는 황토팩업체 참토원의 부회장인 탤런트 김영애씨와  20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걸려 있다. 한편 얼마전까지 방송된 내용은 살을 더 보태 ‘소비자 고발 그리고 불편한 진실’ (위즈덤하우스)이란 제목으로 출간돼 소비자 생활가이드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8-10-02 00:00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 조치에 대해 장장 40일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는 국민적 저항은 이 땅의 사회과학도들을 크게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이 사건에 대해서는 웹2.0의 놀라운 영향력, 전자적 직접민주주의의 등장, 생활정치의 출현 등 긍정적 해석에서부터 반미좌파에 의해 장악된 TV의 역정보, 인터넷을 장악한 좌파들의 음모와 선동 등과 같은 부정적 해석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필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에 대한 사회적 저항이 우리 사회가 정보시대로 진입하면서 탄생한 ‘도덕경제’의 모습을 우리 모두에게, 나아가 전 세계에 극적인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해석을 추가하고자 한다.비시장적 가치와 동기도 중시원래 도덕경제란 근대자본주의 등장과정에서 시장의 위협에 직면한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농민들이 보여준 저항 혹은 도덕적 분노를 가리키기 위해 고안된 학술용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도덕경제라고 불러야만 적절할 사회현상들을 우리는 21세기 정보사회에서 보고 있다. 도덕경제의 성격을 지닌 사회는 크게 보아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적지 않은 경제 영역에서 사람들이 비시장적(nonmarket) 가치와 동기를 중시한다는 점이다. 쇠고기협상에서 보듯이 이명박 정부는 경제적 성장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만 있다면 민족적으로 다소 굴욕을 느끼게 되는 일도, 주권을 다소 양보하는 일도, 국민의 건강이 다소 위협 받게 되는 것도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국민들도 기꺼이 같은 입장일 거라고 확신했던 것 같다. 그런데 국민들은 그런 성과(?)에 박수를 치기는커녕 소리 높여 비판하고 집요하게 저항했다. 국민들은 공동체, 공평(公平), 삶의 질(이 세 가지는 도덕 경제에서 추구되는 핵심가치다)이라는 지향을 심각하게 흔들어 놓는 일차원적 ‘실용주의’ 혹은 ‘성과주의’를 거부했다. 국민들의 눈에는 소위 ‘강부자’ ‘고소영’ 인선이 공동체의 지도층 인사로서는 부적절한 과거를 지닌 자들의 중용, 사회적 공평성을 무시한 편협한 인사로 비쳤으며,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은 민족공동체의 자존 그리고 건강이라는 삶의 가치에 중대한 상처를 입힌 것으로 보였다. 경쟁 확대·복지비용 축소 ‘염려’또 다수의 국민들은 대운하정책이 환경을 돌이킬 수 없게 훼손하고 강경한 대북정책은 한반도 평화의 기반을 흔들어 결국 삶의 질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경제를 살리기 위해’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시장적 경쟁을 확대하려는 노력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국민들이 염려하고 있다.공기업 민영화와 기업활동 규제완화는 대기업과 외국자본에게 특혜를 주게 되고, 학교운영에 있어 학교의 자율권 강화는 청소년들에게 지나친 경쟁을 불러 그들의 건강을 해치게 될 것이다. 복지비용 축소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동체의 의무를 소홀히 한 것일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한 갈등을 심화시키리라 우려하는 것이다.‘이명박 정부’의 지나친 성과주의와 시장주의가 국민들의 도덕경제적 지향과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다. 앞으로 도덕경제가 정부에 대한 요구에만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부당이익추구, 부정부패 등과 같이 반공동체적 행동을 취하는 기업에 대한 비판과 저항에도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래에서 보듯이 국민과 소비자 손에 그것을 행할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가 쥐어져있다.대안적 채널 통해 정보수집도덕경제적 사회의 두 번째 특징은 자율적인 집단행동이다. 전자본주의 사회의 농민들은 시장의 위협에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조직하고 항거했다. 우리 시민들은 농기구와 횃불 대신 휴대폰, 디지털 카메라, 노트북, 촛불을 들고 ‘시장주의’에 저항하고 나섰다. 정부, 정당, 기업은 물론 심지어 시민·사회단체도 그들을 조종하거나 통제하지 못했다. 인터넷과 휴대폰으로 무장한 대중은 ‘아고라’와 커뮤니티에 접속해 정보를 수집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행동을 결정한다. 풍부한 대안적 채널을 지닌 그들은 매체나 선전조직에 의한 대중조작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자신이 수집한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더구나 정보기술 덕분에 실시간 연결되는 그들은 느슨한 조직만으로도 수십만 명이 조화롭게 움직일 수 있다. 촛불행진은 그것이 이론적 가능성을 넘어 현실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수십 만명 자율적 집단행동그렇다고 도덕경제가 저항적이고 소극적 모습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저자로 참여할 수 있는 세계 최대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수많은 전문가들이 만들어가는 리눅스, 태안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자원봉사 등은 도덕경제의 생산적이고 적극적 모습을 잘 보여준다. 우리 앞에 나타난 도덕경제 주목해야미국 경제학자 John Powelson이 2000년에 발간한 저서에서 50년쯤 뒤에나 등장하게 되리라 예상한 도덕경제가 지금 우리 앞에 홀연히 나타났다. 이 사건이 일시적 현상으로 끝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시대의 서막이 될 것인지는 쉽게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고도로 발전된 정보기술 덕분에 인간이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심리적인 만족과 희열, 사회적 유대를 위해서도 행동한다는 단순한 진리가 실현될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정치인·행정가·기업인·학자·전문가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정보사회에서 엄청난 힘을 갖게 되는 도덕경제에 주목해야할 것이다. 그것은 서울 도심을 밝힌 수십 만 개의 촛불이 가져다 준 값진 교훈 중 하나다.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8-10-02 00:00

6월은 현충일(6월 6일)과 6·25한국전쟁기념일(6월 25일)이 들어있는 보훈의 달이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6·25전쟁과 관련된 슬픈 사연들, 나라를 위해 목숨 받친 역전의 용사들의 전장 터 얘기, 남북이산가족들의 한 많은 사연 등이 소개돼 가슴을 아리게 한다. 방송에선 6·25전쟁에 얽힌 내용들을 소개하면서 ‘초연히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로 나가는 가곡 ‘비목(碑木)’이 단골 배경음악으로 곁들여진다. 가사와 멜로디가 보훈의 달 분위기와 맞고 노래 흐름도 쉬워 국민애창가곡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노랫말에 담긴 내용은 50여 년 전 치열했던 전쟁의 상흔을 그대로 말해주는 것 같아 다른 가곡과 다른 맛을 준다. 그래서 이 노래를 듣노라면 왠지 가슴이 뭉클해지고 숙연해진다. ‘전선야곡’ ‘가거라 삼팔선’ ‘굳세어라 금순아’ 등 한국전쟁과 관련된 대중가요들과 뉘앙스가 달라 6·25관련 대표가곡으로 손색이 없다. 한명희 작사, 장일남 작곡의 이 노래는 4분의 4박자로 다소 느린 템포로 이어진다. ‘가고파’ ‘그리운 금강산’과 함께 3대 애창가곡으로 불릴 만큼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비목’은 노래제목에서부터 슬픈 사연의 내음이 풍긴다. 이 가곡의 탄생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4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1963년 어느 날, 6·25전쟁 때 치열했던 전장 터 강원도 화천군 백암산 기슭에서 비롯된다. 백암산 기슭엔 소위 계급장을 단 육군 장교 한 명이 부하들과 순찰을 돌고 있었다. 전방 소대장직을 맡고 있었던 이 장교는 산을 오르내리면서 우연히 이끼 낀 돌무덤을 발견했다. 시선을 따라 무덤 쪽으로 발길을 옮긴 소대장은 깜짝 놀라 멈칫했다. 일반 무덤처럼 생긴 그 곳엔 6·25전쟁의 가슴 아픈 흔적들이 오롯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묘비처럼 꽂혀 있던 썩은 나무 등걸, 녹슨 철모, 카빈소총 한 자루, 그리고 고즈넉이 피어있는 산 목련…. 적과 총을 겨누며 싸우다 숨진 한 군인의 초라한 무덤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백암산 순찰 돌던 소대장이 작시전사한 용사가 누구인지, 또 그를 누가 묻어 주었는지는 모르지만 1953년 7월 27일(판문점에서 있었던 휴전협정일) 6·25전쟁이 끝나고 10년 남짓 세월이 흐른 그 때서야 장교의 눈에 띤 것이다. 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이끼 되어 맺히고 지나는 이들이 던진 돌이 더미 되어 쌓여있었다. 젊은 소대장은 즉석에서 시 한편을 지어 바치며 땅속에 누워있는 묘 주인의 넋을 달랬다. 꽃다운 나이에 나라를 위해 산화한 호국영령의 숭고한 넋을 위로하며 헌시를 지은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시는 훗날 음악인 장일남 씨에 의해 작곡된 ‘비목’의 노랫말이 돼 훌륭한 가곡으로 국민들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묘비처럼 꽂혀있던 썩은 나무 등걸은 노랫말에서 ‘이름 없는 비목’으로 표현됐다. 나무로 세워진 묘비란 뜻이다. 백암산에서 순찰을 돌다 시를 지은 그 소대장은 국립국악원장을 지낸 음악평론가 한명희 씨(69·전 서울시립대 음악과 교수)로 밝혀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39년 3월 1일 충북 충주에서 태어난 한 씨는 1958년 충주고, 서울대 음대를 거쳐 1968년 동 대학원과 1988년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를 졸업했다. 철학박사(1994년 성균관대)로 서울시립대 음악과 교수를 정년퇴직해 경기도 남양주시에 살고 있다. 또 작곡가 장 씨(전 한양대 음대 명예교수)는 2006년 9월 24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4세. 황해도 해주 태생인 고인은 평양음악대를 졸업한 뒤 창덕여고, 숙명여고 음악교사를 거쳐 한양대 작곡과 교수로 30여 년 몸담았다. 또 라디오, TV에서 클래식음악 프로그램 진행을 맡는 등 40년 넘게 가곡과 고전음악보급에 앞장서왔다. ‘기다리는 마음’ ‘석류’ 등 많은 가곡들을 남겼고 오페라작곡가로도 유명했다. ‘원효대사’ ‘춘향전’ ‘불타는 탑’ 등은 해외에서도 여러 번 공연됐다.비목문화제 다양한 행사 열려 ‘인파’‘비목’은 1970년대 TV연속극의 배경음악으로 쓰인 뒤 국민들의 귀에 더욱 익숙해져 애창가곡으로 확실하게 뿌리내렸다. 특히 안방에까지 파고든 ‘비목’이 단순히 노래의 틀에서만 머물지 않고 축제로 승화되는 계기를 만들어 눈길을 끈다. 1996년 6월 6일 현충일 때부터 시작된 비목문화제가 그것이다. 올해로 13회 째를 맞은 향토축제다. 강원도 화천군 ‘평화의 댐’ 부근에 만들어진 비목의 계곡엔 해마다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서울에서 150여㎞ 떨어진 비목의 계곡은 평소엔 인적이 뜸하지만 축제기간을 전후해선 꽤 시끌벅적해진다. 현충일 하루 전날부터 사흘 간 열리는 이 축제는 주먹밥 먹기·돌탑 쌓기·비목 깎기 경연대회,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병영체험행사(1박 2일) 등이 열린다. 또 이 기간 중엔 1960년대 파월장병훈련소(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오음리)를 거쳐 간 장병 등을 위한 ‘옛 전우 만남의 장’도 펼쳐져 인기다. 이들은 격전지를 돌고 출신부대도 방문, 우의를 다져오고 있다. 가곡 ‘비목’을 좋아하는 1백여 명의 문화동호인(비목마을 사람들) 주최로 첫 테이프를 끊은 축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이름 없는 비목들의 넋을 달리며 전쟁의 상흔을 어루만져주고 있다. 한 시대의 정서를 공유한 6·25세대의 한판 굿이라고나 할까. 이제 6·25전쟁은 이토록 슬픈 시와 노래로 승화되어 우리 곁을 맴돌고 있는 것이다.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8-10-02 00:00

요즘엔 TV를 안보면 세상돌아가는 이야기에 깜깜해진다. TV가 ‘바보상자’에서 ‘정보창고’로 변한지 꽤 오래다. 이제 TV가 또 한번 변신을 한다. 거실에서 그저 바라보기만 했던 TV가 이것저것 이용할 것들이 많은 ‘똑똑한 TV’가 된 것이다. 집안TV로 인터넷에 접속, 물건을 사거나 금융거래를 할 수 있다. 심지어 신문을 받아보는 TV신문까지 얼굴을 내민다. 인터넷에서 가능한 모든 것들이 TV를 통해 이뤄져 창출될 시장규모는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어마어마하다.통신업체들이 주문형 비디오(VOD)서비스 중심의 프리(Pre)-IPTV를 통해 하반기 정면승부에 앞선 선점경쟁을 펼치고 있어 IPTV시장 싸움은 벌써부터 뜨겁다. 프리-IPTV경쟁에 불을 지른 건 유선통신 2위 회사인 하나로텔레콤. 국내 최대 통신업체 KT가 기술·사업적 준비를 마치고도 법·제도 미비로 주저하는 사이 하나로텔레콤은 2006년 7월부터 과감히 ‘하나TV’로 IPTV시장에 뛰어들었다. 도전자인 KT 역시 올해 매출목표(12조원) 돌파를 위해 IPTV에 집중투자하며 추격에 나서고 있다. 하나로텔레콤의 ‘하나TV’와 KT의 ‘메가TV’. IPTV 가입자 유치경쟁은 통신업계 양 강의 자존심싸움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하나로텔레콤은 2006년 7월 주문형 비디오(VOD) 중심의 프리-IPTV인 ‘하나TV’를 선보이며 국내 IPTV시장을 개척한 주인공. 하나TV는 서비스 시작 뒤 가입자 수가 예상을 웃돌면서 셋톱박스 물량부족으로 가입신청을 해도 개통하지 못할 정도로 바람몰이에 성공했다. 내 맘대로 바로 즐기는 하나TV하나TV는 이를 바탕으로 서비스시작 1년 만에 가입자 수가 50만 명을 넘어섰다. 하나TV 가입자 수는 지난 1월 말 기준으로 약85만 명. 하나TV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만큼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하나로텔레콤은 올해 하나TV 가입자목표 130만 명 달성, IPTV시장 1위 업체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다질 계획이다. 지상파방송의 실시간전송과 SK텔레콤과의 시너지를 반영하면 연말 가입자 수는 목표를 웃돌 것이란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하나TV가입자의 60%는 100메가급 초고속인터넷서비스를 이용한다. 실시간방송서비스가 도입돼도 안정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춘 셈이다. 또 실시간방송에 대비, 35개 채널을 시범적으로 갖춰 시험 중이다. IPTV법 시행령이 만들어지면 곧바로 IPTV상용화에 나설 예정이다. 하나로텔레콤은 최근 이용자 인터페이스(UI) 등 하나TV기능을 크게 개선한 ‘하나TV 시즌2’를 선보이는 등 시장변화를 앞서 이끌고 있다. 초고속인터넷망과 각 가정에 설치된 셋톱박스를 통해 TV로 VOD, 네트워크게임, 노래방 등 다양한 멀티미디어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다. 방송편성표에 따라 시청해야하는 기존 TV와 달리 시청자 스스로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원하는 시간에 골라 볼 수 있다. 또 HD급에 가까운 고화질 디지털영상과 5.1채널의 실감나는 사운드도 느낄 수 있다.하나로텔레콤은 콘텐츠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세계적 미디어그룹인 월트디즈니텔레비전을 비롯해 CJ엔터테인먼트, MBC, KBS, SBS, BBC월드와이드, EBS, 다음, 내셔널지오그래픽 등 국내·외 50여 콘텐츠회사와 계약을 맺었다. 지금까지 4만5000여 편의 콘텐츠를 확보했다.하나로텔레콤은 교육콘텐츠 확보를 위해 학원관계사인 종로학평과도 콘텐츠계약을 맺었다. 이밖에 국내 유명학원 강사 180여 명의 인터넷동영상 강의콘텐츠 1만여 편을 서비스하고 있다. 또 올해 안에 IPTV 상용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IPTV가 상용화 되면 초고속인터넷망과 셋톱박스를 이용해 TV로 VOD, 생활정보, 게임, 거래형서비스 등 각종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하나로텔레콤은 완결형 IPTV, 즉 다채널방송과 TV포털 서비스를 지원할 계획이다. 하나로텔레콤에 프리-IPTV 선두자리를 내준 KT도 IPTV법 제정에 따라 올해 초부터 메가TV 가입자 수를 본격 늘리며 추격의 고삐를 죄고 있다. KT는 막강한 영업력과 자금력, 마케팅 능력을 바탕으로 3월 2일 기준으로 메가TV 가입자 수 50만 명을 달성했다. 2월초 40만 명을 넘어선 지 불과 한 달 만에 10만 명의 가입자를 늘려 KT의 힘을 실감할 수 있게 해준다. KT는 가입자 증가세가 이어지면 메가TV 가입자 수가 연말목표치 150만 명을 무난히 넘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KT는 특히 하반기 지상파방송 실시간 전송이 이뤄질 경우 메가TV 가입자 수 증가세에 더욱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고 있다.나를 즐겁게 하는 메가TVIPTV시장에서 KT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100메가급 가정 내 광가입자망(FTTH). KT는 올해만도 차세대인프라 구축에 9600억 원을 쏟아부어 FTTH보급률을 전체망의 67%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FTTH는 실시간방송서비스가 이뤄지더라도 안정적으로 IPTV를 제공할 수 있는 차세대네트워크로 진가를 발휘할 것으로 KT측은 기대하고 있다. KT는 또 싸이더스FNH 등 콘텐츠 자회사를 거느린 데다 올해 콘텐츠분야에 1300억 원을 투입하는 등 콘텐츠경쟁력 강화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메가TV는 드라마, 영화, 지상파방송 다시 보기, 교육 등 19개 분야 채널에 7만8000여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KT는 올해 IPTV시장 선두에 올라선 데 이어 장기적으로 2010년까지 IPTV가입자 수를 300만 명까지 늘릴 방침이다. 메가TV를 통해 유료방송시장에서 확실한 영역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IPTV를 통해 소비자들은 고화질의 콘텐츠를 원하는 시간에 이용할 수 있다. VOD서비스의 경우 이미 확보한 컨소시엄 참여 통신사업자의 콘텐츠와 지상파방송사업자를 통해 콘텐츠를 가졌다.KT는 SK텔레콤이 장악한 이동전화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집전화+초고속인터넷(메가패스)+이동전화(쇼)’를 묶어 3개 서비스 모두 기본료 10%를 깎아주는 상품을 내놨다. 또 ‘집전화+메가패스+IPTV(메가TV)’ 등 결합상품만 15종을 선보였다. 하지만 할인율은 모두 기본료의 10%에 머물러 아직 시장을 흔들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KT는 SK텔레콤에 맞서 결합상품에 정액제를 도입하는 방안과 하나의 단말기로 △2G(2세대 이통) △3G(3세대 이통) △와이브로를 모두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KT는 앞으로 메가TV를 방송 시청을 하면서 프로그램 추가정보 확인, 프로그램 내 특정 상품을 골라 살 수 있는 채널연동형 데이터방송서비스로 발전시킨다는 전략이다.  VOD시청 중 검색기능을 활용해 네티즌 의견, 블로거, 동영상이미지 등을 검색할 수 있는 검색연동서비스도 제공할 계획이다.이와 함께 TV시청 중 화면에서 직접 투표를 하고, 곧바로 결과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티 풀(T-Poll)’ 서비스, 사용자제작콘텐츠(UCC)를 제작·편집해 메가TV를 통해 가입자간 공유가 가능한 ‘UCC서비스’도 선보일 계획이다.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8-10-01 00:00

몇 달 전 경사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가해자는 사고를 내놓고도 모른 척 도망가려 했다. 그래서 쫓아가 사고 발생을 알렸다. 가해자는 사과는커녕 어디 다친데 없나 확인하지도 않은 채 연락처만 내밀었다. 나는 가해자가 사고를 인정한 것으로 생각해 연락처만 받고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그 뒤 목과 어깨에 통증이 심해져 2주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았다. 보험사로부터 파손된 차는 가해자가 직접 보험에 접수해 수리를 진행하겠다는 연락을 았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보험사에서 가해자가 소송을 걸었다며 연락을 해왔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가해자의 신분이 형사라는 사실이었다. 가해자는 사고로 인정해 보험에 사고를 접수하고 차 수리를 진행해 놓고도 치료가 길어지자 말을 바꿔 도리어 소송을 건 것이었다. 차의 파손은 이번 사고로 생긴 것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가해자는 수사때마다 말을 바꿔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몰아갔다. 사고나자마자 내렸다고 주장하더니 아파트 CCTV에 내리지 않은 것이 찍혀있는 것을 확인하곤 주차브레이크가 약해 차가 뒤로 밀리까봐서 내리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사고현장을 그림으로 그려보라며 죄인 추궁하듯 다그치기도 했다.심지어 보험금을 타먹으려는 몹쓸 사람으로 몰아붙이는가 하면 모욕을 주기까지 했다. 만약 아파트 CCTV 화면에 가해자를 뒤따르던 내 차를 친 장면이 찍히지 않았다면 억울해서 살 수 없었을 것 같다. 이 일이 있은 뒤 가해자 소속 경찰서 서장에게 글을 남겼으나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김미란·청주시 흥덕구) ※이 기사는 보험소비자연맹 게시판에 실린 내용입니다.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8-10-01 00:00

 경기도 분당에 사는 가정주부 정미희(42)씨는 새해 들어 모든 금융거래를 인터넷뱅킹으로 하고 있다. 평상시 쓰는 약간의 용돈을 은행 현금인출기에서 찾는 것을 제외하고는 계좌이체에서부터 예금·적금가입은 물론 각종 공과금도 인터넷으로 낸다. 정씨가 이처럼 인터넷뱅킹을 생활화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수수료가 적게 들고 거래가 편하며 금리도 우대를 받기 때문이다. 인터넷뱅킹은 생활재테크 0순위로 1석 3조의 이익을 얻는다. 인터넷뱅킹의 이 같은 이점으로 가입자들이 갈수록 느는 추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현재 전국적으로 인터넷뱅킹에 가입한 사람(중복가입 포함)은 약 4244만5000명. 1년 6개월 전보다 1000만 명쯤 는 것이다. 자연히 은행을 찾는 사람들의 비율이 낮아지고 있다. 고객이 은행창구 직원을 만나 금융거래를 하는 횟수가 적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인터넷을 이용한 비대면(非對面) 거래비율이 높은 셈이다. 입·출금의 경우 79.4%, 계좌조회를 비롯한 조회서비스는 81.5%에 이르렀다. 인터넷 대출신청은 하루 평균 약 2100건, 금액으론 193억원대에 이른다. 인터넷 전용 금융상품도 크게 늘었다. 은행 입장에선 인건비 등을 줄일 수 있다. 상대적으로 손님 입장에선 은행 영업점을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 금리우대 같은 각종 금융혜택까지 있어 인터넷 뱅킹이 날로 인기다. 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들이 지난해 말 현재 판매한 인터넷상품 수는 736개. 2006년 말(432개)보다 70%이상 늘었다. 우리은행의 경우 인터넷상품 잔액이 한 해 동안 1조원 이상 불어났다. 인터넷금융은 잘만 이용하면 돈을 아끼고 수익을 더 높일 수 있게 해준다. 펀드가입 땐 수수료 1%P 깎아줘인터넷 뱅킹을 하면 이용자에게 당장 어떤 이점이 돌아갈까. 은행은 인터넷뱅킹을 이용하는 고객에게 각종 수수료를 면제해주거나 깎아준다. 또 펀드가입 땐 수수료를 1%포인트 할인해준다. 예금 땐 우대금리 혜택도 주어진다. 하나은행은 ‘e-플러스 공동구매’ 정기예금을 인터넷으로 팔고 있다. 이 상품의 금리는 연 6.7%. 하나은행에서 파는 정기예금 중 최고 금리다. 신한은행은 ‘탑스 외화적립예금’을 인터넷에서 현금으로 적립하면 환전수수료를 30% 깎아준다. 우리은행은 인터넷으로만 파는 ‘우리로모아정기예금’에 가입하는 사람에게 우대금리 0.2%포인트를 더 얹어주고 있다. 외환은행은 장기주택마련저축을 인터넷으로 가입하면 0.1%포인트 우대금리를 제공한다.금리우대 못잖게 다양한 금융서비스도 눈길을 끈다. 신한은행은 경찰청과 함께 지난 7일부터 교통과태료를 인터넷뱅킹과 폰뱅킹으로 낼 수 있게 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24시간 납부할 수 있어 시간에 쫓기는 직장인이나 사업자들에게 인기다. 이 시스템은 운전자가 무인단속카메라에 찍혀 과속 또는 신호위반으로 단속됐을 때 가상의 은행계좌번호를 운전자에 알려줘 인터넷뱅킹이나 폰뱅킹으로 계좌 이체할 수 있게 돼있다.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은 행정자치부와 ‘e하나로 민원서비스’협약을 맺었다. 따라서 은행은 손님 동의 아래 주민등록 등·초본 등 12종류의 행정자료를 온라인으로 열람·확인할 수 있다. 고객은 대출받을 때 주민등록 등·초본 등을 발급받아 가져갈 필요가 없다. 은행에서 행자부로부터 바로 발급받아 확인할 수 있어 거래고객이 굳이 서류를 떼지 않아도 된다. 서류발급에 따른 시간을 아낄 수 있고 수수료도 내지 않아도 돼 고객들이 크게 환영하고 있다. TV뱅킹 본격화…교통과태료도 ‘폰뱅킹’집에서 TV를 보면서 계좌조회나 자금이체를 할 수 있는 TV뱅킹서비스도 확대되고 있다. 우리·신한은행에 이어 기업은행도 TV뱅킹을 가동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KT와 손잡고 ‘메가TV’를 통해 계좌조회, 자금이체, 신용카드, 대출, 외환거래 등 다양한 은행업무를 TV화면에서 이용할 수 있다. TV뱅킹은 인터넷뱅킹에 가입, 인증서를 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쉽고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인터넷서비스업체에서 제공하는 셋톱박스에 공인인증서가 저장돼있는 USB를 꼽는다. 그런 다음 리모컨을 이용, ‘금융’폴더를 택한 뒤 원하는 은행이나 증권사 코너로 들어가면 된다. 은행의 현금입출금기를 이용할 때 화면에 자신이 원하는 거래표시를 고르는 것처럼 리모컨으로 폴더를 누르면 된다. 인터넷뱅킹은 편하고 돈을 벌게 해주는 이점이 많지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낭패를 보게 된다. 그렇잖으면 거래자 신상정보나 금융거래내용이 드러날 수 있다. 따라서 비밀번호와 공인인증서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인터넷뱅킹을 하면 개인신용정보가 인터넷과 연결된 컴퓨터에 저장된다. 인터넷사이트가 해킹당하거나 공인인증서와 비밀번호 등을 잃어버리면 피해를 볼 수 있다. 모바일뱅킹도 마찬가지다. 모바일뱅킹에 로그인할 때 쓰이는 핀(PIN)번호와 계좌비밀번호를 다른 사람에게 노출해선 안 된다. 특히 보안카드관리에 신경 써야한다. 이와 함께 휴대전화를 잃어버렸을 땐 반드시 해당 이동통신사에 신고해 다른 사람의 부정사용에 대비해야 한다.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8-09-01 00:00

2008년이 시작됐다. 한해가 열리는 이맘때면 대중가요 <아침이슬>을 흥얼거리게 된다. 김민기(57) 작사·작곡, 양희은이 부른 <아침이슬>은 언제, 어디서 들어도 새로운 분위기가 든다. 노래제목처럼 이른 아침 영롱하게 맺힌 이슬의 느낌부터가 새롭다. 38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들어도 전혀 묵은 노래 같지 않다. 한 때 각 학교 교가보다 더 잘 알려져 7080세대들에겐 더욱 친숙한 국민가요다.노래가 탄생한 건 1970년. 사회적·정치적 사실과 아무 상관없이 만들어진 순수 서정적 곡으로 태어났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노랫말이 다분히 시적이다. 잔잔하게 깔리는 반주에 양희은의 낭랑한 목소리가 버무려져 듣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지금으로부터 38년 전 청년음악가 김민기와 풋내기 여가수 양희은을 졸지에 스타로 떠오르게 한 이 곡은 숱한 얘기를 낳은 노래로도 유명하다. 운동권가요의 대표 격으로 방송금지가 되면서 더욱 주가를 올린 점이 특이하다. 피 끓는 젊은 대학생들이 독재정권과 맞서며 청춘을 불태웠던 저항의 노래 상징으로도 꼽힌다. <아침이슬>이 특히 1970~1980년대 의식 있는 젊은 세대들로부터 사랑받은 건 노래가 좋았던 점도 있지만 박정희 대통령 시절 독재의 암울한 시대상황의 영향도 컸다. 버려진 악보로 연습해 취입그래서 재미난 에피소드들이 많다. 양희은이 불러 히트하기 전까지만 해도 김민기는 이 노래를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는 언론매체와의 인터뷰 때 여러 번 <아침이슬>에 애정이 없는 듯한 말을 자주 한 게 이를 뒷받침해준다.그러나 가수 양희은의 생각은 달랐다. 김민기가 노래를 만들었다며 불러주는 순간 ‘아주 좋은 곡’이라며 맘이 끌렸다. 작사 · 작곡가와 가수의 시각이 서로 달랐다는 것이다. 김민기가 연습하면서 악보를 획~ 버리자 양희은은 이를 주워 자신의 노래로 소화시켜나갔다.‘꼭 녹음 해야겠다’고 작심한 양희은은 원작자(김민기)보다 먼저 <아침이슬>취입에 성공했다. 음반제작은 방송사PD들이 뜻을 모아 당시 킹레코드사 박성배 사장에게 소개하면서 이뤄졌다. 빅 히트송 <아침이슬>이 있기까지엔 가시밭길을 걸어온 김민기의 지난날 삶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김민기는 1951년 3월 31일 전북 이리(현재 익산시)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의사였던 부친이 6·25전쟁 때 북으로 후퇴하던 인민군에 의해 피살되는 바람에 유복자가 됐다. 경기중·고를 거쳐 1969년 서울대학교 미술대 회화과에 입학한 김민기는 대학 3학년 때인 1970년 <아침이슬>을 발표, 새내기 대중음악 작곡가로 명함을 내밀었다. 이듬해엔 독집음반을 내면서 가수로도 데뷔했다. 3선 개헌과 대통령선거 열풍이 전국을 휩쓸고 있던 무렵이다.노래 못잖게 1971년 가을 그에겐 의미 있는 한 만남이 있었다. 저항시인 김지하와 자리를 함께 한 것이다. 김 시인과의 만남을 통해 문화적 체험을 한 그는 가톨릭문화운동, 국악대중화, 마당극운동 등을 펼치며 제도권으로부터 요주의인물로 취급받았다. 1971년 서울 신정동에서 야학을 시작했고, 인천도시산업선교회에서도 뛰었다. 금관의 예수(1973년), 소리굿 아구(1974년) 공연의 중심에도 그가 있었다.금지곡서 국민가요 ‘햇빛’이런 일련의 활동들이 김민기 노래를 순수대중음악에서 현실비판적 의식가요로 재해석케 하는 빌미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독집음반을 내고 가수로 데뷔한 그는 1972년 봄 서울대 문리대 신입생환영회에 초대돼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로 레코드를 모두 압수당하는 수난을 겪었다. 방송금지에다 연행→조사→석방이 거듭되면서 ‘찍힌 인물’로 말과 행동이 자유롭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택한 게 군 입대. 1974년 10월 카투사로 들어가 처음 배치 받은 곳은 주한미군방송인 AFKN방송국. 사병근무지론 비교적 편안한 데였으나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아침이슬> 노래 때문이었다.이듬해 전국이 유신헌법 찬반투표 거부운동으로 들끓었다. 대학가에 데모가 끊이지 않았고 정치권 공방도 치열했다. 재야인사와 대학생들은 투표 당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종일 투표참가를 거부하는 집회와 공연을 계획하고 있었다. 행사 때 주요 음악레퍼토리는 김민기 의 노래. 그러나 이 사실이 당국에 들켜버렸다.그 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은 바로 김민기였다. 내복도 입지 않은 채 보름간 감방생활을 한 뒤 최전방으로 쫓겨났다. 이어 그해 6월 문공부가 발표한 ‘공연활동의 정화대책’에 따라 <아침이슬>이 금지곡으로 묶였다. ‘노래가 시의에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김민기 노래가 운동권가요로 자주 불리면서 탄압은 더욱 거셌다. 그럴수록 운동권에선 더 불렀다. 탄압강도가 더해질수록 서정적 노래로 태어난 <아침이슬>이 의식 있는 가요로 의미를 갖춰갔다. 운동권학생들은 험난한 미래에 대한 고뇌의 결단을 할 때 <아침이슬>을 불렀다. 데모대 힘은 바로 <아침이슬>의 우렁찬 울림에서 솟아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어느덧 김민기는 의식 있는 음악인으로 운동권투사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이에 반해 김민기는 정작 자신이 ‘투사’로 불리는 것을 꺼린다. 어느 날 TV회견 때 “아무 의도 없이 만든 노래가 운동권에서 자주 불린다고 해서 기관으로 끌려가 얻어맞기도 했지만 살아오면서 남들과 크게 싸워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노래를 부른 양희은은 가수입문 때 만난 김민기를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래서 1997년 김민기 헌정음반으로 <1997 아침이슬>을 내놨다.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김민기를 위한 것이었다. 김민기가 대중의 뇌에 울림을 만들어냈다면 대중의 가슴을 어루만진 사람은 바로 양희은이었다.음악인 김민기는 이제 한국적 뮤지컬창시자이자 연극·연출가, 기획자로 변신해있다. 해금 4년 만인 1991년 서울 대학로 뒤편에 극장(학전)을 만들어 지금껏 대표로 활동 중이다. 그가 무대에 올린 뮤지컬작품은 독일 원작의 ‘지하철 1호선’. 연출, 편곡, 작사는 물론 배우도 직접 뽑고 모진 합숙훈련도 했다.  원작자 루트비히는 “원작보다 낫다”고 했고, 중국 대표작가 위화(餘華)는 “한류의 정수”라고까지 치켜세웠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 아침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 한 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마산고·중앙대 신문방송학과·신문방송대학원을 나와 1979년부터 한국경제신문·일요신문, 뉴시스, 시사저널, 일요서울(편집국장) 등에서 언론계 생활을 하는 ‘기자가수’다. 남인수가요제에서 우수상을 받아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에 등록(865호)했다.취입곡으로 <이별 없는 마산항> <마산포 순정> 등이 있다.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8-08-22 00:00

 주머니 속 작은 PC ‘핸드폰’  지난해 7월 S 전자는 미국에서 새 휴대폰을 출시하면서 ‘이것이야말로 진짜 PC 이다’라는 광고를 실었다. 이 휴대폰에는 1GB(Giga Byte) 플래시 메모리가 들어 있어 메시지나 통화기록 외에 음악이나 그림을 저장할 수 있다. 곧 이어 9월 S 전자는 “16GB 저장 용량을 갖는 플래시 메모리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16GB 낸드 플래시 메모리를 이용해 32GB 메모리 카드를 제작했을 경우 DVD(Digital Video Disk) 급 영화 20 편 이상의 동영상, MP3 음악 파일 기준으로 8000곡, 일간지 200년치 분량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이처럼 대용량의 저장장치가 휴대폰에 장착되면 휴대폰은 진정한 PC로서 손색없게 되는 것이다.휴대폰이야? 컴퓨터야? 지난해 말 제주도에서 열린 ‘iMOBICON’ 모임에서 발표된 S 전자의 기술 로드맵은 휴대폰 메모리를 16GB 로 가정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16GB를 가진 데스크톱 컴퓨터 , 노트북 컴퓨터가 상당한 고가(高價)의 장비에 속했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휴대폰은 전화기의 용도를 넘어서는 컴퓨터로 진화되어 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제 휴대폰은 오락기구·비즈니스용 컴퓨터 등으로 진화하고 있다. 휴대폰을 비즈니스용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문서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화면과 키보드가 필요하다. 현재 ‘플렉시블 (구부리는) LCD’와 접을 수 있는 키보드가 출시되고 있다. PDA(휴대용 정보 단말기) 에 연결해 사용하는 ‘3 단 접기형 키보드’는 컴퓨터 기술 마니아들 사이에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들고 다니면서 필요할 때마다 펴서 사용할 수 있는 ‘두루마리 LCD’까지 보편화될 날이 멀지 않았다. 삼성이 지난해 11 월 말에 발표한 컬러 플렉시블 LCD 는 7 인치 크기로 아날로그 TV 방송과 비슷한 VGA(Video Graphic Adapter)급 수준이다. 무거운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다니면서 인터넷에 접속하는 일이 곧 사라질 전망이다. 주머니 속에 들어가는 휴대폰을 본체로 사용하고 , 플렉시블 LCD 와 접을 수 있는 휴대용 키보드를 연결하면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해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8-07-31 00:00

 ‘소리 없는 살인자’ 청소년 우울증 사소한 일 짜증낼 땐 의심해봐야 … 주위 관심·대화가 ‘명약’ 우울증 환자가 크게 늘고 있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우울증지수가 평균 46.2로 우울증 경계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증은 40~50대 갱년기 여성들에서 주로 생기지만 갈수록 나이대가 낮아지고 있다. 입시경쟁이 치열해지는 요즘 청소년들도 예외가 아니다. 매년 청소년의 2~3%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통계가 이를 잘 뒷받침해준다. 올해 대학 수학능력시험이 끝나고 이제 성적 발표만 남겨두고 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벗어났다는 안도의 한숨보단 내 자녀의 정신건강에 더욱 힘써야 할 때다. 수년간의 노력이 결과로 나타나므로 기대 이상의 성적이 나오지 않았을 땐 지나친 스트레스가 우울증을 불러 올 수 있다. 비단 수능을 마친 고교 3학년생뿐만 아니라 입시경쟁에 시달리는 청소년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도 불릴 만큼 흔한 질병이다. 신경전달물질이 완전한 기능을 못하는 상황이 되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생긴다. 우울증은 심리 사회학적(애착관계, 정신분석학적), 생물학적 원인(신경내분비, 신경전달물질, 유전적소인)등 많은 원인에 따라 복합적으로 생겨나는 병이다. 정신과 전문의는 이들 원인 중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을 중요 포인트로 꼽고 있다. 부모, 형제 중 우울증이 있을 경우 아이가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그렇잖을 때보다 세 배나 높다. 그리고 가까운 사람의 사망, 부모 이혼 등 환경적 요인에 따라 생기기도 한다. 집중력 떨어지고 게임에 쉽게 빠져 청소년 우울증은 학업, 가족, 친구관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어린 시절 부모의 죽음이나 이혼 또는 부모에게 폭행을 당했거나 하는 환경적 스트레스에 따라 병이 생긴다. 특히 지나친 학습 요구가 있을 경우 그에 따른 스트레스가 우울증으로 발병되기도 한다. 최근엔 학업은 물론 인터넷, TV, 휴대폰 등의 영향으로 생긴 수면부족이 우울증원인이 되기도 한다. 미래에 대한 부정적이고 절망적 태도와 같은 심리적 좌절감도 주요 원인이다. 청소년 우울증은 집중력을 떨어뜨려 학업을 게을리 하게 만든다. 짜증을 자주 내며, 공격성 게임 중독에 빠지기도 한다. 우울증이 심하면 자해나 자살시도로 이어질 수 있다. ‘자살 생각에 영향을 주는 심리·사회적 요인 연구’에선 절망, 스트레스, 가정환경 등과 함께 우울한 감정이 자살에 미치는 주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따라서 △지나치게 기분이 나쁘거나 안 좋은 경우 △특별히 기분 나쁠 일이 없는데도 계속 기분이 우울하거나 좋은 일이 있어도 별로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 경우 △학업성적이 떨어지거나 학교에 가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 △사소한 일에도 기분이 많이 상하거나 짜증을 내면 일단 우울증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우울증은 성격이나 의지가 약해 생긴 병이 아니다. 의학적 질병으로 치료될 수 있는 것이다. 정신과전문의는 우울증 치료엔 뭣보다도 ‘대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관심을 나타내고 도움주려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청소년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청소년이 하는 말을 주의 깊게 들어주고 청소년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게 좋다. 증상이 오래 지속돼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거나 자해·자살 충동이 있는 경우 전문가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우울증치료 방법은 다양하다. 개인정신치료, 놀이치료, 인지행동치료, 가족치료 등이 그것이다. 심할 땐 약물치료를 받아야 하며 80~90%가 치료될 수 있다.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8-07-31 00:00

 인터뷰  오동진 동부생명 FP 고객과 신뢰 쌓은 덕에 지난해 150여 건 계약   인생의 행복한 동반자를 자청하는 동부 생명 오동진 FP. 그는 고객의 인생을 책임지는 행복설계사이다. 이제 FP(Financial Planner) 3년차인 그는 자신의 일을 “고객의 돈을 평생 관리하며 같이 살아가는 동반자”와 같다고 말한다. “저는 제 일이 단순히 보험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고객과 평생을 같이 하면서 재무를 설계해주는 동반자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고객을 만날 때 상품하나를 팔아야할 대상이 아니라 고객의 재무를 책임져 주어야 하는 평생 동반자라는 생각을 갖습니다.”그는 재무 설계를 할 때 각각의 고객에 맞게 맞춤 설계를 한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른 것처럼 고객마다 맞는 보험 상품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고객을 만나면 고객에게 맞는 보험을 찾기 위해 수십 번을 고민한다. 그렇게 찾은 상품을 고객에게 권하면 대부분 만족 해 한다. 이것이 그가 재무 설계사로 살아가는 비결인 것이다. 고객 만나러 가기전 옷매무새 다듬어오동진 FP는 고객을 만나러 가기 전 항상 거울 앞에 선다. 옷매무새를 가지런히 하려는 이유도 있지만,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거울 앞에 서면 자기 자신이 들여다보여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고객 앞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저에게 있어 영업은 거울입니다. 거울 앞에 서면 거짓말을 할 수가 없어요. 고객들을 만날 때 거울 앞에 선다는 기분으로 만납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죠. 내 실적보다 중요한 것이 고객과 신뢰를 먼저 쌓는 것입니다.”과거 많은 설계사들은 보험 상품 팔기에만 열중했다. 그렇게 해도 어느 정도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변했다. 신뢰가 쌓여지지 않으면 고객으로부터 외면 받을 수밖에 없다. 지난 한해 오 FP는 150여건의 계약을 맺었다. 고객과 신뢰를 먼저 쌓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그는 처음 FP를 시작할 때 선입견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일을 하면서 어느 누구보다 행복하다. 남들보다 많은 연봉을 받아서가 아니라 고객들의 행복을 지켜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저는 이일을 하면서 어린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비전이 생겼습니다. TV에 나오는 불치병에 걸린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 아이들과 같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재단을 세우고 싶습니다.”TV를 보다 불치병에 걸린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는 그는 20년 후엔 어린이를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한다. 불치병에 걸려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그 아이 부모가 한 달 만원정도 하는 보험만 들었어도 저렇게 힘들어 하지 않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한 달에 만원짜리 보험조차 들기 어려운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업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그는 이일을 시작한 첫해 일 년에 양복을 벗은 날이 3일정도 밖에 안 될 정도로 열심히 뛰어다녔다. 지금도 그는 고객들의 행복한 동반자가 되기 위해 뛰고 있다.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8-07-31 00:00

현대사회에서는 보이지 않는 신분 차이가 있다. 바로 신용등급. ‘최우수 고객’ ‘우수고객’ ‘일반고객’등이 바로 그것이다. 신용등급은 개인이 금융거래를 할 때 마치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대체로 1~10등급(1천점 만점)으로 분류된다. 신용등급은 각종 금융 혜택과 대출 금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신용등급이 높을수록 유리한 자리에서 금융거래를 할 수 있다. 반대의 경우 대출을 받을 때 걸림돌이 된다. 나의 신용등급을 올리는 노하우를 살펴보자.1. 주거래 은행을 정하라은행거래를 한 곳으로 모은다. 다시말해 주거래은행을 정하는 것이다. 급여수령, 인터넷 뱅킹, 공과금 자동이체, 카드결제 등 은행에서 가능한 모든 거래를 한 곳에서만 한다.분산 투자하는 재테크와는 달리 신용등급은 한 은행을 집중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주거래은행을 이용하면 대출 때 우대금리, 수수료 면제 등의 혜택도 주어진다. 다만 마이너스 대출통장은 최대한 빨리 없애도록 하라.2. 신용카드는 한 장만 사용하라카드가 많다고 신용등급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으면 감점요인이 된다.실제로 신용카드 4장 이상 갖고 있으면 점수를 깎는 신용정보회사도 있다. 여러 장이 있어도 장기간 연체 없이 사용하면 오히려 신용점수에 플러스가 된다.카드를 이용할 때는 할부가 아닌 일시불로 처리하는 게 좋다. 물론 할인점이나 소매점 같은 엥겔계수와 관련성이 큰 곳에서 꾸준한 신용카드 사용은 신용점수에 도움된다.또 카드 현금서비스를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야 말로 신용등급을 떨어뜨리는 지름길이다. 3. 장기적금·은행권보험에 가입하라당연히 사람들은 이자를 많이 주는 적금에 들기를 고집한다. 하지만 이자가 덜 붙는 적금, 불입기간이 긴 것일수록 거래 실적점수를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 게다가 이자가 덜 붙는 적금의 경우 이것을 담보로 대출을 해도 대출금리가 낮아 유리하다. 요즘은 은행권에서도 보험이나 펀드 가입이 가능한데 이런 것들도 잘 이용하면 신용등급도 높이고 목돈도 마련할 수 있어 일석이조이다. 4. 연체와는 관계 끊어라가능하면 신용카드나 핸드폰 요금 등은 연체하지 말아야 한다. 별 생각 없이 하루 이틀 넘기다 보면 연체기록이 남아 신용도에 치명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출금 역시 미리 체크해 원금이나 이자의 상환일을 절대 넘기지 말아야 한다. 자주 신경쓰기 어렵다면 자동이체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세금 체납도 신용등급에 영향을 준다. 국세·지방세·관세를 5백만원 이상 내지 않을 경우 은행연합회에 자동 등록돼 신용등급에 영향을 미친다. 5. 신용조회는 절대 피하라얼마전 TV에 ‘무이자~, 무이자~’라는 대부업체 광고가 등장해 화제가 되곤 했다. 하지만 여기엔 함정이 숨어있다. 사실 무이자나 낮은 이자로 쉽게 돈을 빌려준다고 하지만 대부업체에서 개인신용 조회를 했다면 그 사람은 정작 1·2금융권에서는 대출 받기 힘들어진다. 신용조회는 한번 할 때마다 신용점수를 깎아먹는데 대부업체의 신용조회는 신용점수 차감 폭이 훨씬 크다. 그래서 대부업체에서 선뜻 1개월 무이자로 대출을 해주는 것. 이는 급해서 무이자로 돈을 썼더라도 그 이후 금융권에서 대출이 힘들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대부업체로 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노린 것이다.만약 사채를 이용할 경우 본인의 신용 정보에 사채이용 기록이 남기 때문에 장래에 제1금융권으로부터의 대출이 거의 불가능해 질 수도 있다.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8-07-29 00:00

 세계 2백여개 국 여행가  노소남씨(60). 여느 주부처럼 1남2녀의 자녀를 둔 어머니다. 다른 게 있다면 외국이 안방이라는 것. 지금까지 캠코더 하나 둘러메고 다닌 나라가 2백여개 국에 이른다. 지구를 한바퀴 돈  베테랑 ‘주부 여행가’였다. 그녀도 처음에는 우리처럼 동남아부터 해외여행을 시작했다. 홍콩 마카오 싱가폴 말레이시아 태국, 그리고 이듬해 호주 뉴질랜드 피지로 떠났다. 그러나 썩 만족하지는 못했다. 풍경만 보고 사람은 보지 못했기 때문. 다른 나라 사람들은 뭘 먹고 뭘 입고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궁금했다. 1991년 드디어 세번째 여행을 떠났다. 인도·네팔. 그녀는 드디어 이곳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이때부터 인도에 푹 빠졌다.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나라로 인도(印度)를 꼽는 것은 바로 그 나라에 인도(人道)가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 하나. 우리나라에서 ‘철학’깨나 한다는 사람이 인도를 방문해 여관에 투숙했다. 도마뱀이 지나가고 벌레가 슬금슬금 침대를 지나가는 것을 보다 못한 그가 여관 주인을 불러놓고 크게 호통을 쳤다. 손님 대접을 이따위로 하면 어떻게 하냐고. 그런데 도리어 여관주인은 ‘별 이상한 사람 다 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툭하니 한마디 내뱉었다. “얘들도 우리와 함께 사는 것이예요. 혼자만 살겠다고 하면 얘들은 어떻게 해요?” 여행은 ‘자신을 알아가는’ 여정  그녀는 이제 해외여행이 새롭지 않다. 외국이나 한국이나 사는 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게 베테랑 해외여행가인 그녀의 최종 결론. 해외에도 거지가 있고, 도둑이 있고, 부자가 있고, 성인이 있다. 다만 해외여행의 보람은 자신을 되돌아보는 ‘손거울’ 하나 얻는 것이란다. 그리고 상대방의 문화를 존중해 주는 것이란다. “이슬람 국가를 여행 다니는 우리나라 젊은 여성들을 보면 참 기가 차요. 그네 나라 여성들은 까만 천으로 눈 코 입만 빼고 다 가리고 있는데 외지인인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슴이 크게 파인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것이예요. 우리나라 남자들도 뭐라 하는데 그 나라 남자들은 또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여행의 관심분야도 자연에서 풍물, 풍물에서 문화, 문화에서 종교로 옮겨갔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행을 다니다 배가 고프면 아무데나 끼어든다. 엄지손가락을 추켜 올리면 먹을거리를 더 준다. 그녀의 노하우이다. 여자의 몸으로 오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두렵지 않느냐고 묻자 “워낙 누더기 차림으로 다니기 때문에 아직까지 별다른 문제는 없다”며 웃는다. ‘책 벌레’로 해외여행체험서 준비중  ‘DVJ(디지털 비디오 저널리스트)’로도 유명한 그녀는 KBS ‘세계는 넓다’와 케이블TV 등에 출연해 오고 있다. 얼마 전에는 개인일로 뉴욕에 다녀왔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몇 일 밖에 나갔다오면 책 한 권 쑥 내더라구요.” 책벌레인 그녀는 인스턴트와 같은 책은 싫어한다. 하여 그 역시 집필이 늦다. 그렇지만 이제는 ‘책 좀 쓰라’는 성화에 이길 수 없나 보다. 조용히 해외여행 추억을 떠올리며 집필할 공간을 찾고 있는 중이다.  Q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8-07-29 00:00

노사연 <만남>“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만추이다. 가을걷이와 겨울을 준비하는 농부의 손길이 바쁘다. 결실을 계절을 맞아 갖가지 만남들도 잦다. 야유회, 등산대회, 체육대회 등에서 삶의 풍요로움과 즐거움이 어우러진다. 그런 모임에선 “우리 만남은 우연히 아니야~”로 나가는 노사연의 <만남>노래가 곧잘 불린다. 부르기 쉬고 노랫말 뜻이 깊어 여러 모임에서 자주 애창되는 대중가요다. 1948년 우리나라 정부수립 후 대중음악 50년 사 베스트 50곡 중 40위에 오른 작품이기도 하다. <만남>이 만들어진 건 1986년. 21년 전이다. 그러나 대중에게 발표된 건 그로부터 3년 뒤인 1989년. 이 노래와 함께 모임 때 자주 불리는 해바라기의 <사랑으로>와 비슷한 시기에 나온 것이다.작곡가는 ‘노래 문외한’ 막내 이모부 <만남> 작곡가는 최대석 씨. 노래를 부른 노사연의 막내 이모부다. 미국서 사업을 하는 최 씨는 노래엔 문외한으로 알려져 흥미롭다. 4분의 4박자, 슬로우 록의 이 노래 작사가는 박신. 노래는 노사연이 많은 사람들과의 적극적 만남을 통해 가수가 됐다는 것을 잘 아는 작사가·작곡가의 합작으로 태어났다. 마치 <만남> 가사처럼 말이다.1978년 단국대 성악과 2학년생 신분으로 MBC주최 제2회 대학가요제에 출전, <돌고 돌아가는 길>(김욱 작사·작곡 / 4분의 3박자, 왈츠 곡)로 금상을 받아 가수가 된 노사연은 <만남>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무명에 가까웠다. 공부와 노래를 겸해야하는 학생가수신분인데다 이렇다 할 곡마저 내놓지 못해서였다. 특히 대학 신입생 시절 첫 미팅 때 자신의 뚱뚱한 몸매를 본 남학생들이 던진 모멸감의 말로 충격 받아 결행한 무리한 살빼기에서의 후유증도 한 요인이었다. (노사연은 태어났을 때 4.8kg로 우량아였다.)그런 가운데 노사연이 가요제 입상 뒤 얼마 지나지 않았을 어느 날 담당교수가 그를 불렀다. “성악을 하든지, 가요를 하던지 택하라!”는 경고를 내린 것이다. 1977년 1월 경희대 성악과를 지망했지만 떨어져 2차인 단국대 성악과에 2등으로 합격, 학교를 다녔지만 클래식보다 가요 쪽을 택해 가수 길을 걷고 있었던 터라 그는 전과를 결심했다. 어릴 때 이모인 대중가수 현미를 동경, “노래를 해볼까”하고 대학가요제를 지원해 입상한 그로선 중대한 선택이었다. 국문학과로 옮긴 노사연은 1983년 발표한 <님 그림자>(김욱 작사, 작곡 / 4분의 4박자, 트로트곡)를 부르며 가수활동을 계속했다. 하지만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가창력은 어느 정도 인정받았으나 인기인 대열에 끼지 못한 것이다. 초대받은 행사장에서 다른 여자가수들에게 출연순서를 빼앗기는 등 자존심 상하는 일도 많았다. 개그맨 저리가라 할 만큼 웃겨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노래하면서 장기인 재치·개그·유머로 부족함을 메워갔다. 10년의 무명시절을 보내던 그에게 드디어 기회가 왔다. <만남> 취입과 방송출연이 그것이다. 노래를 부르며 활동하던 어느 날 MBC-TV “일요일 일요일 밤에”프로그램에 나가게 됐다. 음반이 나온 지 한참 뒤의 일로 거기서 첫사랑인 여고 체육선생님과의 만남 얘기, “노사연! 너를 쭉 지켜봤는데… (아! 두근두근, 쿵쿵) 너 혹시…. 투포환 안 해볼래?”로 뒤집어지는 인기를 끌었다. ‘개그맨, 코미디언은 저리 가라’고 할 정도로 관중들을 웃겼다. 그를 처음 보거나 잘 몰랐던 사람은 가수보다 개그맨으로 여기기까지 했다. 그 이후 사람들이 자신을 점점 어려워하며 자꾸 존댓말을 쓰더니 급기야는 상석으로 앉히더라고 했다. 노사연의 꾸밈 없는 모습에 <만남> 노래의 인기가 치솟은 것이다. 1992년 <만남>으로 가수왕에까지 올랐다. 노랫말 구절처럼 “우연”이 아니라 그것은 가수데뷔 10년만의 “바람”이었다.그는 1957년 3월 3일 경남 마산시 오동동에서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 노양환 씨(1987년 작고), 어머니 김화선 씨(평양출신으로 북한 원로무용가 최승희 제자) 사이의 2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6살 때 부친 근무지 이동에 따라 강원도 화천으로 이사 가 그곳에서 자랐다. 화천초등·중학교를 거쳐 화천실업고 1학년을 다니다 춘천여고에 재입학했을 정도로 공부를 잘 했다. 그는 요즘 남편(가수 이무송)과 가끔 무대에 선다. KBS-1TV 주말 밤 음악 프로그램인 ‘콘서트 7080’에 부부가 나와 열창하기도 했다. 이들 부부는 기독교 신자로 어린 아들과 함께 교회에 다닌다. 그 곳에서 가족 합창으로 노래를 부르며 신앙 간증을 하기도 해 눈길을 끈다. 인기 연예인 가족에다 구김살 없는 노사연의 구수한 입담까지 곁들여져 신자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 올 한해도 결혼, 미팅, 입학, 입사 등 만남의 의례들이 줄을 이었다. 우리들 삶은 어떻게 보면 노사연의 노래 <만남>처럼 만남의 연속이 아닐까? 마산고·중앙대 신문방송학과·신문방송대학원을 나와 1979년부터 한국경제신문·일요신문, 경남도민일보, 뉴시스, 시사저널 등에서 언론계 생활을 하는 ‘기자가수’다. 남인수가요제에서 우수상을 받아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에 등록(865호)했다. 취입곡으로 <이별 없는 마산항> <마산포 순정> 등이 있다.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8-07-29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