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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든 도덕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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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든 도덕경제
  • 소비라이프뉴스
  • 승인 2008.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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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 조치에 대해 장장 40일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는 국민적 저항은 이 땅의 사회과학도들을 크게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웹2.0의 놀라운 영향력, 전자적 직접민주주의의 등장, 생활정치의 출현 등 긍정적 해석에서부터 반미좌파에 의해 장악된 TV의 역정보, 인터넷을 장악한 좌파들의 음모와 선동 등과 같은 부정적 해석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필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에 대한 사회적 저항이 우리 사회가 정보시대로 진입하면서 탄생한 ‘도덕경제’의 모습을 우리 모두에게, 나아가 전 세계에 극적인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해석을 추가하고자 한다.


비시장적 가치와 동기도 중시

원래 도덕경제란 근대자본주의 등장과정에서 시장의 위협에 직면한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농민들이 보여준 저항 혹은 도덕적 분노를 가리키기 위해 고안된 학술용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도덕경제라고 불러야만 적절할 사회현상들을 우리는 21세기 정보사회에서 보고 있다.

도덕경제의 성격을 지닌 사회는 크게 보아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적지 않은 경제 영역에서 사람들이 비시장적(nonmarket) 가치와 동기를 중시한다는 점이다.

쇠고기협상에서 보듯이 이명박 정부는 경제적 성장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만 있다면 민족적으로 다소 굴욕을 느끼게 되는 일도, 주권을 다소 양보하는 일도, 국민의 건강이 다소 위협 받게 되는 것도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국민들도 기꺼이 같은 입장일 거라고 확신했던 것 같다.

그런데 국민들은 그런 성과(?)에 박수를 치기는커녕 소리 높여 비판하고 집요하게 저항했다. 국민들은 공동체, 공평(公平), 삶의 질(이 세 가지는 도덕 경제에서 추구되는 핵심가치다)이라는 지향을 심각하게 흔들어 놓는 일차원적 ‘실용주의’ 혹은 ‘성과주의’를 거부했다.

국민들의 눈에는 소위 ‘강부자’ ‘고소영’ 인선이 공동체의 지도층 인사로서는 부적절한 과거를 지닌 자들의 중용, 사회적 공평성을 무시한 편협한 인사로 비쳤으며,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은 민족공동체의 자존 그리고 건강이라는 삶의 가치에 중대한 상처를 입힌 것으로 보였다.


경쟁 확대·복지비용 축소 ‘염려’

또 다수의 국민들은 대운하정책이 환경을 돌이킬 수 없게 훼손하고 강경한 대북정책은 한반도 평화의 기반을 흔들어 결국 삶의 질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시장적 경쟁을 확대하려는 노력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국민들이 염려하고 있다.

공기업 민영화와 기업활동 규제완화는 대기업과 외국자본에게 특혜를 주게 되고, 학교운영에 있어 학교의 자율권 강화는 청소년들에게 지나친 경쟁을 불러 그들의 건강을 해치게 될 것이다.

복지비용 축소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동체의 의무를 소홀히 한 것일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한 갈등을 심화시키리라 우려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지나친 성과주의와 시장주의가 국민들의 도덕경제적 지향과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다. 앞으로 도덕경제가 정부에 대한 요구에만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부당이익추구, 부정부패 등과 같이 반공동체적 행동을 취하는 기업에 대한 비판과 저항에도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래에서 보듯이 국민과 소비자 손에 그것을 행할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가 쥐어져있다.


대안적 채널 통해 정보수집

도덕경제적 사회의 두 번째 특징은 자율적인 집단행동이다. 전자본주의 사회의 농민들은 시장의 위협에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조직하고 항거했다. 우리 시민들은 농기구와 횃불 대신 휴대폰, 디지털 카메라, 노트북, 촛불을 들고 ‘시장주의’에 저항하고 나섰다. 정부, 정당, 기업은 물론 심지어 시민·사회단체도 그들을 조종하거나 통제하지 못했다.

인터넷과 휴대폰으로 무장한 대중은 ‘아고라’와 커뮤니티에 접속해 정보를 수집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행동을 결정한다. 풍부한 대안적 채널을 지닌 그들은 매체나 선전조직에 의한 대중조작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자신이 수집한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더구나 정보기술 덕분에 실시간 연결되는 그들은 느슨한 조직만으로도 수십만 명이 조화롭게 움직일 수 있다. 촛불행진은 그것이 이론적 가능성을 넘어 현실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수십 만명 자율적 집단행동

그렇다고 도덕경제가 저항적이고 소극적 모습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저자로 참여할 수 있는 세계 최대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수많은 전문가들이 만들어가는 리눅스, 태안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자원봉사 등은 도덕경제의 생산적이고 적극적 모습을 잘 보여준다.


우리 앞에 나타난 도덕경제 주목해야

미국 경제학자 John Powelson이 2000년에 발간한 저서에서 50년쯤 뒤에나 등장하게 되리라 예상한 도덕경제가 지금 우리 앞에 홀연히 나타났다.

이 사건이 일시적 현상으로 끝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시대의 서막이 될 것인지는 쉽게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고도로 발전된 정보기술 덕분에 인간이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심리적인 만족과 희열, 사회적 유대를 위해서도 행동한다는 단순한 진리가 실현될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정치인·행정가·기업인·학자·전문가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정보사회에서 엄청난 힘을 갖게 되는 도덕경제에 주목해야할 것이다.

그것은 서울 도심을 밝힌 수십 만 개의 촛불이 가져다 준 값진 교훈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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