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2:35 (금)
한명희 작사 장일남 작곡 <비목>
상태바
한명희 작사 장일남 작곡 <비목>
  • 소비라이프뉴스
  • 승인 2008.10.0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월은 현충일(6월 6일)과 6·25한국전쟁기념일(6월 25일)이 들어있는 보훈의 달이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6·25전쟁과 관련된 슬픈 사연들, 나라를 위해 목숨 받친 역전의 용사들의 전장 터 얘기, 남북이산가족들의 한 많은 사연 등이 소개돼 가슴을 아리게 한다.

방송에선 6·25전쟁에 얽힌 내용들을 소개하면서 ‘초연히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로 나가는 가곡 ‘비목(碑木)’이 단골 배경음악으로 곁들여진다.

가사와 멜로디가 보훈의 달 분위기와 맞고 노래 흐름도 쉬워 국민애창가곡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노랫말에 담긴 내용은 50여 년 전 치열했던 전쟁의 상흔을 그대로 말해주는 것 같아 다른 가곡과 다른 맛을 준다. 그래서 이 노래를 듣노라면 왠지 가슴이 뭉클해지고 숙연해진다. ‘전선야곡’ ‘가거라 삼팔선’ ‘굳세어라 금순아’ 등 한국전쟁과 관련된 대중가요들과 뉘앙스가 달라 6·25관련 대표가곡으로 손색이 없다.

한명희 작사, 장일남 작곡의 이 노래는 4분의 4박자로 다소 느린 템포로 이어진다. ‘가고파’ ‘그리운 금강산’과 함께 3대 애창가곡으로 불릴 만큼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비목’은 노래제목에서부터 슬픈 사연의 내음이 풍긴다.

이 가곡의 탄생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4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3년 어느 날, 6·25전쟁 때 치열했던 전장 터 강원도 화천군 백암산 기슭에서 비롯된다. 백암산 기슭엔 소위 계급장을 단 육군 장교 한 명이 부하들과 순찰을 돌고 있었다. 전방 소대장직을 맡고 있었던 이 장교는 산을 오르내리면서 우연히 이끼 낀 돌무덤을 발견했다. 시선을 따라 무덤 쪽으로 발길을 옮긴 소대장은 깜짝 놀라 멈칫했다.

일반 무덤처럼 생긴 그 곳엔 6·25전쟁의 가슴 아픈 흔적들이 오롯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묘비처럼 꽂혀 있던 썩은 나무 등걸, 녹슨 철모, 카빈소총 한 자루, 그리고 고즈넉이 피어있는 산 목련….

적과 총을 겨누며 싸우다 숨진 한 군인의 초라한 무덤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백암산 순찰 돌던 소대장이 작시

전사한 용사가 누구인지, 또 그를 누가 묻어 주었는지는 모르지만 1953년 7월 27일(판문점에서 있었던 휴전협정일) 6·25전쟁이 끝나고 10년 남짓 세월이 흐른 그 때서야 장교의 눈에 띤 것이다. 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이끼 되어 맺히고 지나는 이들이 던진 돌이 더미 되어 쌓여있었다.

젊은 소대장은 즉석에서 시 한편을 지어 바치며 땅속에 누워있는 묘 주인의 넋을 달랬다. 꽃다운 나이에 나라를 위해 산화한 호국영령의 숭고한 넋을 위로하며 헌시를 지은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시는 훗날 음악인 장일남 씨에 의해 작곡된 ‘비목’의 노랫말이 돼 훌륭한 가곡으로 국민들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묘비처럼 꽂혀있던 썩은 나무 등걸은 노랫말에서 ‘이름 없는 비목’으로 표현됐다. 나무로 세워진 묘비란 뜻이다.

백암산에서 순찰을 돌다 시를 지은 그 소대장은 국립국악원장을 지낸 음악평론가 한명희 씨(69·전 서울시립대 음악과 교수)로 밝혀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39년 3월 1일 충북 충주에서 태어난 한 씨는 1958년 충주고, 서울대 음대를 거쳐 1968년 동 대학원과 1988년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를 졸업했다. 철학박사(1994년 성균관대)로 서울시립대 음악과 교수를 정년퇴직해 경기도 남양주시에 살고 있다.

또 작곡가 장 씨(전 한양대 음대 명예교수)는 2006년 9월 24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4세. 황해도 해주 태생인 고인은 평양음악대를 졸업한 뒤 창덕여고, 숙명여고 음악교사를 거쳐 한양대 작곡과 교수로 30여 년 몸담았다.

또 라디오, TV에서 클래식음악 프로그램 진행을 맡는 등 40년 넘게 가곡과 고전음악보급에 앞장서왔다. ‘기다리는 마음’ ‘석류’ 등 많은 가곡들을 남겼고 오페라작곡가로도 유명했다. ‘원효대사’ ‘춘향전’ ‘불타는 탑’ 등은 해외에서도 여러 번 공연됐다.


비목문화제 다양한 행사 열려 ‘인파’

‘비목’은 1970년대 TV연속극의 배경음악으로 쓰인 뒤 국민들의 귀에 더욱 익숙해져 애창가곡으로 확실하게 뿌리내렸다. 특히 안방에까지 파고든 ‘비목’이 단순히 노래의 틀에서만 머물지 않고 축제로 승화되는 계기를 만들어 눈길을 끈다.

1996년 6월 6일 현충일 때부터 시작된 비목문화제가 그것이다. 올해로 13회 째를 맞은 향토축제다. 강원도 화천군 ‘평화의 댐’ 부근에 만들어진 비목의 계곡엔 해마다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서울에서 150여㎞ 떨어진 비목의 계곡은 평소엔 인적이 뜸하지만 축제기간을 전후해선 꽤 시끌벅적해진다.

현충일 하루 전날부터 사흘 간 열리는 이 축제는 주먹밥 먹기·돌탑 쌓기·비목 깎기 경연대회,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병영체험행사(1박 2일) 등이 열린다.

또 이 기간 중엔 1960년대 파월장병훈련소(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오음리)를 거쳐 간 장병 등을 위한 ‘옛 전우 만남의 장’도 펼쳐져 인기다. 이들은 격전지를 돌고 출신부대도 방문, 우의를 다져오고 있다.

가곡 ‘비목’을 좋아하는 1백여 명의 문화동호인(비목마을 사람들) 주최로 첫 테이프를 끊은 축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이름 없는 비목들의 넋을 달리며 전쟁의 상흔을 어루만져주고 있다.

한 시대의 정서를 공유한 6·25세대의 한판 굿이라고나 할까. 이제 6·25전쟁은 이토록 슬픈 시와 노래로 승화되어 우리 곁을 맴돌고 있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