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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태의 <독도는 우리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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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태의 <독도는 우리 땅>
  • 소비라이프뉴스
  • 승인 2008.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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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들의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번지고 있다. 일본이 또 한번 ‘망언’을 했기 때문이다. 독도를 자기나라 땅이라고 우긴다. 우리가 강하게 대응하면 쑥 들어갔다가 심심하면 한 번씩 생떼를 쓰는 모습이 웃긴다. 특히 일본 후쿠다야스오 총리가 중등교과서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을 명기하기로 한 것에 대해 ‘당연한 주장’이라고 말한 7월 <독도는 우리 땅>이란 노래가 다시한번 마음을 적신다.  

그런 분위기여서 그런지 8월이면 <독도는 우리 땅> 노래가 자주 방송전파를 탄다. 4대 국경일인 광복절(8월 15일)엔 단골노래로 불린다.

이 곡은 일본의 억지주장이 불거지면서 인기곡으로 떠오른 대표적인 대중가요다.   방송PD출신인 박문영 작곡·작사, 개그맨 출신 정광태 노래인 <독도는 우리 땅>이 대중들에게 알려진 건 1983년 초. 전두환 대통령시절로 5공 중반기에 탄생한 셈이다. 

노래는 아주 우습게 만들어졌다. 사랑, 이별 등 통속적 소재로 만들어진 일반 대중가요와 달리 노랫말부터가 재미있다. 우리나라 역사와 지리 상식들이 노래 중간 중간에 나오고 4분의 4박자의 빠른 템포에다 멜로디까지 경쾌해 다함께 부르면 더욱 흥겹다.


KBS 코미디프로그램서 탄생 

<독도는 우리 땅>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기까진 세 번에 걸쳐 사라질 뻔했던 우여곡절이 있었다. 노래는 방송 개그프로그램에서 비롯됐다. 작사가 손을 거친 노랫말에 곡을 붙여 가수에게 취입토록 하는 보통의 가요와 달리 노래태생부터가 이색적이다.  1982년 말 어느 날 KBS-TV 방송프로그램 ‘유머 1번지’ 개그작가였던 박문영 씨가 서울 여의도동 방송사사무실에서 열심히 원고를 쓰고 있었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했던 ‘유머 1번지’ 프로그램담당 김웅래 PD가 박 씨에게 “유익하면서도 재미있는 노래가 없느냐?”고 물었다.  

박 씨는 그 순간 머리에 번쩍 떠오르는 게 있었다. “<독도는 우리 땅>이란 노래가 어떻겠느냐?”고 답했다. 김PD는 즉석에서 ‘좋다’고 했다. 담당PD의 OK사인을 받은 박 씨는 곧바로 방송사 도서실로 달려가 독도와 관련된 책과 자료들을 뒤졌다. 수집내용들을 바탕으로 그 자리에서 가사를 만들고 멜로디를 붙였다. 

그 다음 주 TV방송 녹화장. 포졸 옷을 입은 임하룡, 정광태 등 4명의 개그맨들이 커다란 종이에 써 준 가사를 보며 노래를 불러 무사히 방송을 내보냈다. 방송작가(박 씨)가 코미디담당PD 요청으로 개그용의 재미난 노래를 즉흥으로 만들어 시청자들을 웃게 만든 것이다. 

박 씨는 방송프로그램의 코너를 마친 안도감에 가사를 적은 종이를 구겨 사무실 쓰레기통에 버렸다. 얼마 뒤 4명의 개그맨 중 뭔가 느낌을 가진 정광태 씨가 쓰레기통을 뒤져서 수첩에 가사를 적어 호주머니에 넣고 나갔다.  


개그용 노랫말로 쓰레기통에…

정 씨는 이튿날부터 레코드회사를 찾아다니며 노래취입을 부탁했다. 정 씨는 “음반의 맨 끝 곡에라도 좋으니 음반으로 내어달라”며 레코드사 사람들에게 매달렸다. 그러나 반응은 싸늘했다. 개그맨이 노래를 부르겠다는 것도 그렇지만 가사가 장난스럽게 받아들여져 ‘안 된다’는 시각이었다. 정 씨 얘기를 들은 레코드사 직원들은 한결같이 “그게 노래냐!”며 손사래를 쳤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정 씨의 끈질긴 집념이 갸륵해(?) ‘대성음반’이란 조그만 레코드사에서 맨 끝 곡으로 <독도는 우리 땅>을 실어 두 달 뒤 음반을 냈다. 대성음반은 노래의 상품성보다 열심히 뛰어다니며 음반수록을 부탁한 젊은 개그맨을 차마 뿌리치지 못해 끼어 넣어준 것이다. 히트가 예감되는 곡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기가수가 부른 노래도 아닌 까닭이다. 

음반 끄트머리에 끼어 든 <독도는 우리 땅>은 음반이 나오자 장난기 있는 일부 라디오PD들이 이 노래를 심심풀이로 방송에 띄웠다.

하지만 반응은 거의 없었다. 영향력 있는 공중파 TV방송사의 가요PD들에겐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며칠 후 어느 날 이었다. KBS의 한 간부가 우연히 그 노래를 듣고 “어떤 PD가 그런 괴상한 노래를 트느냐”며 불호령을 내렸다. PD가 불려가 꾸중을 들은 뒤 사무실엔 “<독도는 우리 땅>노래를 방송에 일절 내보내지 말라!”는 경고문이 나붙었다. 

그렇게 해서 <독도는 우리 땅>노래는 더 이상 전파를 타지 못하게 됐을 무렵 때마침 “일본국회가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우긴다”는 보도가 터져 나왔다. 독도문제가 매스컴의 초점을 받자 대통령 주재 청와대회의에 거론되기까지 했다.

그 때 전두환 대통령은 그 노래를 들었는지 별 문제가 아니라는 듯 “우리는 <독도는 우리 땅>이란 노래가 있잖아!” 하며 일본 쪽 주장을 일축했다. 

대통령 말에 놀란 당시 허문도 문화공보부 차관은 급히 가수(정광태)와 작곡가(박문영)를 불러 차를 대접하며 <독도는 우리 땅>을 만들어 취입한 것을 칭찬했다. 허 차관은 두 사람에게 “애로가 없느냐?”고 묻자 정 씨가 “KBS에서 노래를 방송금지곡으로 묶어놓고 있어 억울하다”며 사정을 자초지종 얘기했다. 허 차관은 그 자리에서 KBS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방송금지 시키지 말라” 당부했다. 그 무렵엔 말이 당부이지 거의 지시나 마찬가지로 말발이 먹혔다. 

두 사람은 문공부를 나와 택시를 타고 여의도로 가던 중 차안에서 <독도는 우리 땅>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을 듣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 뒤 이 노래는 각 방송 가요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했고 광복절을 전후해선 인기곡으로 가요차트에 오르곤 했다.


1983년 개그맨 정광태 씨 취입

정 씨는 졸지에 유명연예인이 됐다. 노래가 본격 선보인 1983년 KBS가요대상에서 신인가수상까지 받았다. 1990년대 들어 몇 차례 일본이 독도문제로 시비를 걸어왔을 때도 방송무대에서 노래를 불렀을 만큼 개그맨보다 인기가수로 더 유명세를 탔다.  

정 씨는 2000년 여름 ‘윤독도’라는 별명의 한나라당 윤한도 전 의원(경남 함안·의령)을 중심으로 한 여야 국회의원들과 독도를 찾았다. 2002년엔 뗏목탐사, 2004년엔 울릉도 도동항~독도 수영종단으로 또 한 번 화제를 모았다. 

코미디용 방송프로그램녹화 후 쓰레기통에 들어갔던 악보를 개그맨이 음반으로 되살렸지만 방송사가 틀어주지 않아 사라질 뻔했던 <독도는 우리 땅>은 흔히들 방송금지곡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아니다.  

정광태 씨는 2005년 3월 28일 밤 한때 자신이 일했던 KBS-1TV의 심야 보도프로그램 ‘뉴스라인’에 출연, 노래와 독도지키기 내용들을 들려줬다.                                 


<'독도' 명칭은 전라도 남해안 발음 '독섬'서 유래>

독도는 신라 지증왕때 우산도(于山島)라 불리기 시작해 조선시대에는 삼봉도(三峰島), 가지도(可支島), 석도(石島)라고 불렸다.

1900년 고종황제의 칙령 41조에 의해 독도를 울릉군의 한 부속 섬으로서 공식적으로 강원도에 들어갔다.

행정지명으로서 ‘독도’란 이름은 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에 의해 처음 사용됐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경상북도에 편입됐다.

현재 ‘獨島’로 표기되는 독도는 ‘외로운 섬’,’홀로섬’이 아니다. ‘돌섬’이 초기 이주민인 전라도 남해안 출신 사람들에 의해 ‘독섬’으로 발음되면서 ‘獨島’로 표기 됐다. 석도를 훈독 하면 ‘독섬’ 또는 ‘돌섬’이 된다. 지금도 울릉도 주민들은 독도를 ‘독섬’ 혹은 ‘돌섬’으로 부르고 있다.

한편 일본에서는 명치시대 전에는 독도를 마쓰시마(松島)라 부르다가 1905년 영토편입 뒤 부터 다케시마(竹島)라 부르고 있다. 서양에서는 이섬을 발견한 선박의 명칭을 따라 이름을 붙였다. 1849년 프랑스의 포경선 리앙꾸르호가 독도를 발견, ‘리앙꾸르 암(Liancourt Rock)’ 으로 명명했다. 1885년 영국함선 호네트호 또한 ‘호네트 암(Hornet Rock)’으로 이름을 지어 자기들 해도에 등록했다.

하지만 이는 섬을 바위로 표시한 것으로 우리가 바로 잡아야 할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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