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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가수생활 30년째를 맞은 심수봉(55). 그녀는 <그 때 그 사람>을 부른 가수로 유명하다. 정치적 격랑기에 꽃피운 트로트의 예술성이 아주 뛰어난 대중가수로 손꼽힌다. 그는 대중음악계에서 독보적 존재다. 트로트가수로는 드물게 수준 높은 자작곡으로 앨범을 채워왔다. 최근엔 월드음악장르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하늘이 내려준 비음(鼻音)’으로 불리는 독특하면서도 맛깔스러운 목소리로 <그때 그 사람> <사랑밖에 난 몰라> <비나리> <백만 송이 장미> 등 주옥같은 히트곡들을 내면서 30년간 대중정서를 사로잡아왔다.1955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1978년 명지대 경영학과 학생으로 ‘MBC 대학가요제’에 출전, <그 때 그 사람>을 불러 눈길을 모았다. 가요제에서 입상은 못했지만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젊은 여대생이 트로트를 부른 것도 그렇고 1979년 10월 26일 서울 궁정동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로 법정에까지 서 화제가 된 연예인이다. 여성으로서 동병상련 노래로 그려<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는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인 1984년에 발표된 노래다. 10·26사건 뒤 방송출연 금지조치가 내려진 심수봉은 그해 이 노래를 부르면서 연예활동을 다시 펼쳤다. 1978년에 데뷔해 이듬해 MBC 10대 가수상, KBS 신인가수상을 받은 그는 10·26사건 후 방송에 출연하지 못하다 5년 만에 해금이 풀린 것이다. 심수봉은 자신이 부른 대부분의 노래들이 실제 상황을 얘기하거나 있는 그대로의 삶을 소재로 삼는 가수로 알려져 있다. 상상으로 꾸며낸 언어나 일들을 노래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의 취입 곡 가사를 찬찬히 음미해보면 그 안에 담긴 생활모습이나 등장인물의 얼굴, 주변 분위기, 삶의 현장들이 손에 잡힐 듯 어렴풋하게 보인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도 마찬가지다. 4분의 4박자, 슬로우 풍의 이 노래의 탄생비화를 들여다보면 재미있다. 심수봉과 친한 부부가 있었다. 남편은 외항선을 타는 사람이다. 어느 날 이별의 허전함과 쓸쓸함이 부부얼굴에 가득했다. 남편이 배를 타고 떠나야 돼 어쩔 수 없이 한동안 이별을 맞게 된 것이다. 심수봉은 그 부부의 사연을 알고 인천 연안부두까지 배웅해주기로 하고 그들이 가는 길에 동행했다. 문제는 그 부부의 작별 뒤였다. 연안부두에서 헤어진 아내는 서울 신림동으로 돌아올 때까지 차안에서 마냥 울고 있었다. ‘애처롭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온 심수봉도 마음이 찡했다. 우는 모습이 너무도 절절하고 남편과 자식을 둔 같은 주부로서, 또 동년배의 여성으로서 동병상련의 입장이 된 것이다. 심수봉이 그 때의 느낌과 분위기를 메모해뒀다 훗날 악상으로 연결, 작사·작곡에 이어 노래까지 취입해 선보인 가요가 바로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이다. 물론 가사를 쓰는 과정에서 남자에 대한 좋잖은 감정이 일부 드러나긴 했다. 하지만 노래의 큰 흐름은 그 때 부부의 연안부두 이별을 남녀관계와 인생에 빗대 음악적으로 적절히 그려냈다. 노래 끄트머리에서 ‘남잔 다 그래’로 표현한 심수봉은 어릴 때 홀어머니 밑에서 컸다.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사랑도 받지 못했다. 심지어는 ‘과부의 딸’이란 놀림까지 받는 고통 속에서 자랐다. 그래서 그의 노래엔 자신을 보호해주는 큰 그늘로서의 남자, 아버지 같은 남자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이처럼 심수봉의 노래는 실제 상황을 담은 게 대부분이다. ‘노래를 들으면 심수봉 근황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하고 싶고 가슴에 쌓인 얘기를 소리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50대 중반의 심수봉은 고참가수인데도 젊은 가수들 못잖게 부지런히 뛰고 있다. 2004년 11월 1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가수생활 25주년 기념콘서트를 가졌다. 이에 앞서 10년 만에 재회한 딸과의 애틋한 모정을 노래한 10집 음반 <꽃>도 발표했다. 그는 올 3월 30일 서울 조선웨스턴호텔에서 ‘30주년 기념 콘서트-뷰티풀 데이 제작발표회’ 겸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힘들고 아팠던 것을 이겨내기 위해, 호흡하고 싶어 노래했다면 이젠 한 단계 더 비상하고 싶다”고 했다. 올해 기념공연무대를 넓혀 미국, 일본, 중국에서도 공연을 할 예정이란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박 대통령 시해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가수활동을 멈췄을 때부터 얘기를 풀어나갔다. “처음 10년은 가슴 울렁거리는 두려움을 떨쳐낼 수 없었던 때였어요. ‘왜 인생이 이렇게 될까’란 생각과 함께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계속 펼쳐졌습니다. 결혼생활도 비참한 가운데 첫 단추가 끼워졌죠. 어이가 없고 꿈을 빼앗긴 암울한 시절이었습니다.”다음 10년은 가정사로 힘들었다. 세상이 나를 배신해도 실망시키지 않을 한 남자를 향한 집요한 노력이 있었지만 이혼했다”고 털어놨다. 1985년부터 시작한 신앙생활이 크게 도움 됐다는 것. 이어진 10년에 대해선 “보람이 있었던 때였다”고 지난날을 떠올렸다. 30주년 기념음반 ‘뷰티풀 러브’ 내놔심수봉은 지난 4월 25일 부산KBS홀을 시작으로 청주, 대구, 마산, 울산을 거쳐 6월 17~1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등 올 12월까지 15개 도시에서 30회 공연할 예정이다. 그 사이 미국 샌디에이고(5월 30일), 시애틀(6월 6일) 공연일정도 잡혀있다. 공연테마는 무지개다. 4월말엔 히트곡, 신곡, 개사한 북한 가요, 이스라엘 노래를 담은 30주년 기념 음반 ‘뷰티풀 러브’를 내놨다. 심수봉은 “언젠가 통일이 될 날을 생각하며 북한노래를 넣었고 우리와 정서가 닮은 이스라엘곡도 담을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9-05-20 00:00

삼성생명 예영숙 팀장(대구 대륜지점·50)이 10년 연속 보험왕에 올라 화제를 낳고 있다. 예 팀장은 지난 4월 2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삼성생명 연도상 시상식’때 지난 한 해 실적 1위를 차지, 10년 연속‘그랜드 챔피언’자리에 올랐다.2000년에 첫 보험왕에 오른 뒤 지난해까지 10년 연속 1위를 차지, 보험업계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는 지난해 신계약 157건(월 13건), 수입보험료 170억 원의 실적을 올렸다. 이는 1년 365일 동안 매일 5000만원의 보험료가 입금된 셈이다.1993년부터 삼성생명FC(재무설계사)로 뛴 그가 지금까지 올린 실적은 엄청나다. 계약건수만 3149건(2008년 12월 현재)으로 1주일 평균 4건이다. 수입보험료는 전산화작업이 이뤄진 2003년 이후 지난해까지 1210억 원이다. 10년간 실적은 2000여억 원으로 추산된다. ‘걸어 다니는 금융기관’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고객끼리 네트워킹 형성되도록 도와한 때 시를 쓰며 글짓기교실을 운영하기도 했고 문학소녀였던 예 팀장은 10년 연속 정상에 오른 비결이 겸손하다. “자기 일을 사랑하는 열정과 끊임없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개개인에 맞는 제안서를 낸 결과”라며 “고객마다 다른 가치를 파악한 뒤 고객이 가장 만족할 수 있게 모든 부분에 최선을 다한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말했다.그는 우선 서울과 대구를 주 활동무대로 삼고 있지만 활동범위는 전국이다. 그는 고객을 만날 때마다 상황에 맞는 옷으로 바꿔 입는다. 이로 인해 그의 차엔 코디가 동승하거나 늘 2~3벌의 옷이 걸려 있다. 사무실도 연예인의 드레스 룸을 방불케 한다. 그는 VIP고객 200여명에 대해선 성향, 취미, 관심사 등을 매일 업데이트하며 특별관리하고 있다.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은 고객에겐 진학지도상담을 알선하고, 사업가에겐 폭넓은 사교의 자리를 만드는 등 고객들끼리의 네트워킹을 적극 주선한다. 이렇게 유지 되는 모임만도 20여 개다. 주위사람들은 이를‘예영숙 팀’이라 부르기도 한다. 실제 그는 비서 3명과 별도의 사무실에서‘예영숙 팀’을 비롯한 고객들에게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밖에 10여 사회단체에서 장학사업과 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정직과 성실한 자세가 영업 비결 10년 연속 보험왕을 차지한 그의 영업신조는 뭣일까. 그는 정직과 성실을 바탕으로 한 정도영업을 꼽는다.“컨설턴트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 성과를 만들기 위해선 정직하고 성실한 자세가 중요합니다. 고객의 믿음은 구축하기도 어렵지만 유지해가는 과정이 더 어렵거든요. 정도영업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합니다.”또 하나는‘변함없는 고객 섬김의 자세’란다. “흔히 한 번 고객은 영원한 고객이라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고객은 언제나 나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객들께 저와 만나는 시간만큼은 결코 헛되지 않게 사소한 것 하나라도 도움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이 때문인지 그의 고객은 5년이고 10년이고 변함이 없다. 한편 예 팀장은 보험과의 만남에서부터 정상에 이르기까지의 경험과 철학 등을 소개한‘고객은 언제나 나를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이다’는 저서도 오는 6월 펴낼 예정이다. <예영숙씨가 들려주는 영업노하우 10선>1. 전문가의 식견을 갖춰라금융전문가로서 식견이 고객을 대할 때 가장 기본이다. 보험은 물론 증권·투신, 세무·부동산·금융상품 등 재테크 전반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맞춤설계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2. 나의 아이덴티티를 고민하라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가져야 한다. 나의 경우에는 ‘튀지 않는 완벽주의자’ ‘편안한 분위기로 주변 사람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아이덴티티를 가지려 노력한다.3. 고객에 맞는 컨셉을 디자인하라선두에서 달리게 하는 원동력은 창조성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 자신만의 ‘컨셉’ 설정이 중요하다.4. 입소문 마케팅을 활용하라지식정보화시대를 맞이해도 여전히 지구상에서 가장 빠르고 강력한 미디어로 평가되고 있는 것은 바로 ‘입소문’이다.5. 정직하고 성실하라정직과 신뢰로 고객을 만나라. 고객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다. 6. 고객을 감동시켜라감동이 없으면 고객은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중장년층 고객은 자녀에 관한 이야기를 해줄때 가장 좋아한다.7. 만남을 소중히하라고객은 아무리 도움을 주어도 부족하게 느껴지는 가족 같은 존재이다. 나의 경우에도 아홉 번이나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게 해준 분은 바로 고객이다. 고객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보험영업인은 고객이 더 성공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야 한다.8. 가족을 소홀히 하지마라가장 큰 응원단은 바로 ‘가족’이다. FC일과 가정 두 가지 모두 중요하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9. 봉사하자소년소녀 가장 학자금 지원, 독거노인ㆍ장애인 후원 등을 통해 이웃을 돕는 일이 자신의 직업을 더 크게 만족케 해준다.10. 불가능에 도전하라삼성생명 내 3만여 명의 설계사가 불광불급(不狂不及), 즉 ‘미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는 각오로 전력투구한다. 불가능에 도전해 성공하면 그 효과가 더 커진다.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9-05-20 00:00

<영 화>과속스캔들 감독 : 강형철 / 출연 : 차태현, 박보영, 왕석현12세 관람가마약, 성형, 섹스스캔들보다 무서운 과속 스캔들! 스물두 살 딸, 여섯 살 손자, 잘 나가는 서른여섯 싱글라이프가 무너진다.한때 아이돌스타로 10대 소녀 팬들의 영원한 우상이었던 남현수는 지금은 서른 중반의 나이다. 그래도 아직까진 잘 나가는 연예인이자 청취율 1위의 인기 라디오DJ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애청자를 자처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오던 황.정.남이 느닷없이 찾아와 자신이 현수가 과속해서 낳은 딸이라며 바득바득 우겨대기 시작한다. 그것도 애까지 달고 나타나서 말이다. 정남은 집은 물론 현수의 관할인 방송국까지 어디든 물불 안 가리고 쫓아다닌다. 스토커 정남으로 완벽했던 인생에 태클 한방이 걸린 현수. 엎친 데 덮친 꼴로 그렇잖아도 머리가 복잡한 그에게 정남과 스캔들까지 휩싸이게 된다.달콤한 거짓말감독 : 정정화 / 출연 : 박진희, 조한선, 이기우 /12세 관람가술만 마시면 첫사랑 얘기로 주정을 부리는 전문방송작가 지호. 애국가보다 낮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방송국에서도 잘린 채 집에 돌아가던 중 차에 부딪치는 사고를 당한다. 사고를 낸 사람은 다름 아닌 10년 전 첫사랑 민우다. 일생일대 다시없을 기회를 놓칠 수 없는 지호는 기억을 잃은 ‘척’ 연기를 시작한다. 얼떨결에 그녀의 보호자가 된 민우는 그녀가 기억을 되찾을 때까지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한다.민우의 이상형이 현모양처란 것을 알게 된 지호는 요리 잘하는 척, 다소곳한 척, 여성스러운 척 등 온갖 ‘척’ 연기를 하며 민우 마음을 얻으려 한다. 그러나 순탄할 것 같던 그녀의 거짓말 생활에 들어온 위기가 찾아온다. 소꿉친구 동식이 우연히 지호를 보고 그녀의 기억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제멋대로 지호의 기억을 재구성하기 시작한다.   <연 극>돌아서서 떠나라연출 : 안경모, 극작 : 이만희출연 : 유오성, 진경, 송선미2009년 1월 배우 유오성, 진경 & 유오성, 송선미가 애틋한 연인이 된다. 오는 1월 9일부터 3월 8일까지 유오성과 진경, 송선미를 연극무대에서 만날 수 있다. 연극, 영화 어디서든 최고 연기를 보여주는 주는 배우 유오성. <친구>, <간첩 리철진>, <투명인간 최장수> 등 그가 우리에게 보여줬던 인물들이 모두 그의 가슴 속에 살아있다. 유오성은 연극 <돌아서서 떠나라>에선 솔직하고 따뜻한 ‘공상두’로 찡한 멜로주인공이 돼 무대에 선다. 드라마 <며느리 전성시대> <하얀 거탑>과 영화 <해변의 여인> <두사부 일체> 등에서 열연했던 송선미가 ‘채희주’로 첫 연극무대에 도전한다. 송선미는 이번 공연에서 ‘송선미도 아직 보지 못한 배우 송선미의 100%, 그 이상을 발견할 수 있는’ 무대를 보여주겠다는 열정으로 연극 <돌아서서 떠나라>를 준비하고 있다. 열정과 실력을 겸비한 이들의 가슴 저릿한 사랑이야기는 올 겨울 관객들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줄 것이다. <돌아서서 따나라>는 서울시 종로구 혜화동에 있는 원더스페이스 네모극장에서 공연된다.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9-02-12 00:00

우리의 대표적 명절은 단연 ‘설날’과 ‘추석’을 꼽을 수 있다.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이는 일가친척. 얼굴이 반갑고 그동안의 소식이 궁금하다. 정성스레 조상님께 제를 지내고 차린 음식을 나눠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데 뭔가 좀 심심하다. 명절은 온 가족들이 모이는 한국식 ‘파티’지만 요즘은 예전만큼 흥겹고 즐겁지가 않다. 도시에서 내려온 아들은 차 밀리기 전에 어서 떠나고 싶고, 시댁식구들이 불편한 며느리는 신랑 옆구리를 찌른다. 아이들은 모임이 빨리 끝나 친구들하고 게임하러 가고 싶어 한다. 예전에 명절은 그렇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도 잔뜩 먹을 수 있으니 명절은 그저 즐겁기만 하다. 팽이치기, 제기차기, 투호놀이, 자치기 등 할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했던 게 ‘윷놀이’다.온 가족이 모여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놀이법도 간단해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다. 10여 년 전만해도 가정에서 하는 게 보편적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TV에서나 연예인들의 명절날의 행사로 간간히 비춰질 뿐이다. 윷놀이는 그저 놀이에 머문 게 아니다. 윷을 던져 뭣이 나올까하는 긴장과 환희의 교차로 스트레스 해소와 더불어 웃고 즐기는 놀이적 성격은 물론 기능과 경쟁과 우연성의 경기적 성격은 사람들을 흥분하게 만든다. 또 정초의 신수나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주술적 성격도 있었다. 윷놀이 기원에 대해서 중국의 ‘격양’이나 ‘저포’와 비슷하고, 몽고의 ‘살한’이란 놀이와 비슷하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어느 것도 윷놀이 원형이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그러기에 아직은 윷이나 윷판 유래에 대해 명쾌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러나 처음엔 농사 풍흉을 점치기 위해 점을 치는 놀이로 시작됐다가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런 습속은 퇴색되고 마을사람들이 생활공동체 안에서 웃고 즐기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민간세시풍속으로 보편화된 것으로 보인다. 윷놀이는 한자어로 ‘척사(擲柶)’라고 한다. 농가에서 정초에 편을 갈라 한편은 산 동네(山農)가 되고 한편은 물 동네(水鄕)가 되어 윷을 던져 논다. 이때 ‘산농(山農)’이 이기느냐 ‘수향(水鄕)’이 이기느냐에 따라 그 해 농사가 높은데(高地)에서 잘 될지, 낮은데(低地)에서 잘 될지 판단하는 점법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를 봐도 윷은 농사의 풍흉을 예견하고자 하는 놀이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윷놀이 즐기기 요령>윷놀이를 하려면 3가지를 준비해야 한다. 윷, 윷판, 말이다. 윷은 크기가 같은 둥근 통나무 토막 둘을 반으로 쪼개 네 쪽으로 만들어 던져서 엎어지고 뒤집어지는 수를 헤아려 끝수를 매기면서 윷판 위에 말을 놓아 쓰며 달리게 하는 것이다.동물이름 따 도개걸윷모윷 네 가락을 모아 높다랗게 던지고 하나가 뒤집어지고 셋이 엎어지면 ‘도’라고 해 한 점을 쳐서 윷판 말이 한발 뛰어간다. 둘이 뒤집어지면 ‘개’라 해 두 점 건너간다. 셋이 뒤집어지면 ‘걸’이라 해 세 점을, 넷이면 ‘윷’이라 해 네 점 건너간다. 넷이 다 엎어지면 ‘모’라 해 다섯 점을 달려간다. 이때 ‘도·개·걸·윷·모’는 모두 짐승이름을 뜻한다. 순서대로(지역에 따라서 풀이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보통 ‘돼지, 개, 양, 소, 말’을 뜻한다.윷판을 말판이라 한다. 검은 점이 가운데 십자모양을 가진 둥근형으로 그려진다. 가장 높은 수를 ‘모’라 해 ‘말’을 뜻하는 이름을 붙인다. 말을 잡아서 죽이기도 하고 점수를 따라 점 표시를 옮겨 놓은 것을 ‘말을 쓴다’고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말 달리는 전쟁놀이를 곁들인 놀이로도 풀이된다. 윷판은 ‘모’가 네 번 나오면 한 바퀴 돌도록 굵은 점을 찍어 둥글게, 그리고 가운데 점은 네 ‘모’자리에서 셋 건너서 만날 수 있게 그려서 완성한다. 이 네 ‘모’가 나오면 놓일 자리가 원을 사등분하는 것은 동서남북을 가리킨다. 이 네 방위에서 불어오는 계절풍에 따라 샛바람이 불면 꽃피는 봄이 오고, 마파람이 불면 열매를 맺는 여름이 오고, 하늬바람이 불면 추수하는 가을이 오고, 높(北)은 산마루 뒤쪽에서 된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면 눈보라 뒤덮이는 추운 겨울이 온다는 사계절 순환을 뜻한다. 이 윷놀이는 말판을 말 한 마리가 한번 빙 도는 것으로 끝나는 단동내기도 있다. 하지만 대개는 말 네 마리가 모두 지름길이든 중간길 또는 전체를 돌아오는 것으로 끝나는 넉동내기가 보편적이다. 윷판에 ‘명산’이름 다는 것도이처럼 말을 여러 갈래 길로 돌아서 원점으로 돌아오게 한 것은 옛날 고대 부족국가사회에서 황제가 중앙에 군림해 저가, 구가, 우가, 마가 등 여러 관직을 맡은 장으로 하여금 말을 타고 달려 관할부족국가들의 민정을 살피고 돌아와서 대사(大使)를 중심으로 해 보고하게 한데서 유래된 게 아닐까 보인다.윷놀이는 놀이자체가 목적이기도 하고, 내기와 겨루기가 목적이기도 하다. 특히 윷을 가지고 다 함께 신명나게 놀았기에, 윷놀이를 할 때 부르는 노래가 민요로서 각 지방에 전해 오기도 한다. 또 놀이적 재미란 차원을 넘어 협동심 고취, 갈등해소 등의 효과가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이번 설엔 고향 가는 길에 윷과 윷판을 챙겨가는 건 어떨까. 고리타분하게 생각된다면 놀이방법을 조금 바꿔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윷판에 우리나라 명산이름이나 고적이름을 정해본다거나 식구들 이름을 정해보는 것도 새로울 것 같다. 글로벌시대에 맞게 세계유적지나 우주의 별이름을 달아보는 것은 또 어떨까.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9-02-12 00:00

지난해 멜라민파동, 고유가, 경기침체 등으로 ‘가격중심’ ‘가치 중심’ 소비가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삼성경제연구소가 최근 네티즌,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히트상품에 대한 설문조사를 해 발표한 것이다. 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2년간 강세를 보였던 헬스·뷰티관련 상품들이 히트상품에서 제외된 반면 IT(정보통신) 제품이 다수 진입했다. 촉각형 휴대폰, 닌텐도 Wii, 넷북(초저가 미니노트북PC) 등 해외에서 검증을 거친 혁신제품들이 국내 시판되면서 인기상품 대열에 올랐다. IT제품이 1위로 뽑힌 건 2003년 디지털포토 이후 처음이다. 헬스·뷰티관련 상품 퇴조는 불황 등 갑자기 닥친 사회현상 속에서 느긋하게 자신을 가꿀만한 금전 및 심적 여유가 줄었기 때문이라는 게 연구소의 분석이다.삼성연구소는 지난해 소비키워드를 ‘스트레스’ ‘불확실성’ ‘불신’으로 분석했다. 경기침체로 생활전반에 걸쳐 ‘스트레스’가 쌓이고 미래소득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 까닭이다. 광우병·멜라민 파동 등으로 식품에 대한 불신이 높아진 것도 작용했다. 반면 새해 소비키워드는 자아를 찾는 ‘불황형 실존주의’로 전망된다.  2008년 10대 히트상품1. 촉각형 휴대폰(햅틱 등) : 손끝으로 느끼면서 조작하는 신감각 휴대폰 2. 베이징올림픽 스타 : 국민을 감동시킨 인간승리 드라마 주인공들 3. 교통요금 결제서비스(하이패스, 교통카드 등) : 이용자의 시간과 돈을 절약 4. 인터넷 토론방 : 주요 이슈마다 화제를 몰고 온 인터넷토론의 장 5. 베토벤 바이러스 : 비범과 평범이 만나 최고의 하모니를 안겨준 드라마 6. 리얼 버라이어티 쇼(‘패밀리가 떴다’, ‘우리 결혼 했어요’ 등) 7. 닌텐도 Wii : 온 가족이 즐기는 체감형 게임기 8. 넷북 : 핵심기능으로 무장한 초저가 미니노트북 PC 9. 기부(유명연예인 기부, 기부사이트) : 경제적 약자를 위한 숨은 배려 10. 소비자고발 프로그램 : 생활밀착형 이슈를 제기한 TV프로그램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9-02-11 00:00

하루가 아무리 길고 고단해도 땅거미가 내려앉고 가로등이 켜지면 향하는 곳이 있다. 마음이 가는 곳. 종일 지친 몸을 누일 수 있는 곳. 그곳은 ‘집’이다. 하지만 집이 없는 이들은 어디로 갈까.이처럼 몸 누일 곳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사랑과 나눔으로 집을 짓는 단체가 있다. 바로 한국해비타트(사랑의 집짓기운동연합회)다. 해비타트의 정체성은 확실하다. 음식도, 옷도 아닌 집을 지어 나눈다. ‘집짓는 천사’로 알려진 해비타트는 집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더불어 만들어갈 뿐이다. 공짜로 집을 자선하는 게 아니다. 후원자와 수혜자는 파트너가 된다는 얘기다. 집을 받은 사람은 15년 동안 무이자로 집값을 갚는다. 수혜자가 동시에 후원자가 돼 또 다른 사람을 후원하는 시스템이다. 주는 쪽도, 받는 쪽도 모두가 보람되고 행복한 기부문화를 실천하는 흐름이다. 이런 기부문화의 선봉엔 이충식 한국해비타트 운영위원회장이 있다.  이 회장이 이 일을 시작한 데는 기독교인이란 신앙노선이 크게 작용했다. 푸르덴셜투자증권 부회장을 지냈던 그는 1997년 아는 사람의 권유로 이 단체에 몸담았다. 기본정신이 그의 생각과 맞아떨어져 이사회에 동참할 수 있었던 것. 그 뒤 2005년부터는 전체운영 책임자로 뛰고 있다.#1 집 짓기는 삶을 만드는 것집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것, ‘삶의 근간’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집이 없으면 가족이 흩어지고 병에 걸리기 쉽다. 곧 죽음에 가까이 간다는 견해다. “집짓기는 궁극적으로 생명을, 삶을 만드는 것과 같다”는 그는 단순히 물리적인 집을 짓는 게 아니란다. 가정을 세운다는 의미에서 안락한 집이 있으면 가족은 훨씬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했다. #2 완공되면 후원자가 수혜자 집 두드려 ‘축복’해비타트사업은 어려운 가정에 집을 그냥 주는 게 아니다. 대가를 치르고 떳떳한 집주인이 될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이다. 지역별 지회단위로 엄정한 기준과 절차를 거쳐 나쁜 환경에서 사는 무주택가정을 선정한다. 여기에 건축기금을 만드는 후원자와 건설장비 역할을 해내는 자원봉사자가 파트너가 돼 집을 지어간다. 집이 다 지어지면 사랑의 집 헌정식을 갖는다. 이 식은 감동적이다. 후원자가 완공된 집 문을 두드리며 “00씨 댁이죠? 제가 축복을 드리러 왔습니다” 하면 집안에서 수혜자가 나와 기쁨과 감동으로 맞는다. 순간 그는 이 일을 하는 보람을 느낀다.#3 받는 자가 다시 주는 자 되는 호혜의 정신그래서 기억에 남는 입주가정 사연들이 많다. 천안에 사는 한 가족은 10년 전 외환위기 때 부도가 나 가족이 흩어지게 됐다. 이런 사정으로 입주가정으로 선정됐으나 헌정식 날 빚에 쫓기던 아버지가 결국 참석하지 못해 온 가족이 눈물바다가 됐다. 춘천의 어느 분은 해비타트로 집을 갖게 된 뒤 본인이 열렬한 해비타트후원자가 돼 혼자 사는 어르신에게 공짜로 연탄을 갖다 주는 등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다. 인도에선 한 입주가정 자녀가 커서 초등학교선생님이 돼 화제다. 카스트제도가 뿌리 깊은 그곳 현실에서 놀랍고 감동적 사례로 꼽힌다. 이런 사례들처럼 ‘받는 자’가 다시 ‘주는 자’가 되는 기쁨을 맛보고 있다. 해비타트정신의  핵심으로 수혜자와 후원자는 평등한 파트너로 보람과 기쁨을 느끼고 있다. 후원자 또한  후원해주고 손을 떼는 게 아니다. 수혜자가 행복해지고 홀로서기를 해나가는 걸 보면서 기부의 즐거움을 느낀다. #4 지미카터, 탤런트 이서진 씨 등 참여“훌륭한 일을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는 이 회장은 “보람되고 기쁜 건 사실이나 거기에 빠져 자칫 대단한 일을 하는 냥 우쭐해지는 것을 경계한다”며 겸손해 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할 뿐이란다. “한국해비타트 현주소를 더 넓혀가고 싶다”는 바람으로 노력하는 그에게 걱정이 하나 있다. 동참자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후원문제로 다각도로 홍보를 하고 있지만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보다 해비타트 활동에 대해 아는 사람이 적고 참여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미국에선 지미카터 전 대통령이 적극 나서 해비타트운동을 널리 알렸다. 최근 연예인 이서진씨 가 홍보대사로 참여해 사업에 가속이 붙고 있다. #5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안락한 집에서 사는 날까지해비타트가 닻을 올린 뒤 지난 30년간 30만 채의 집이 지어졌다. 이후 30만 채는 5년 동안 만들어졌다. 이 속도로 가면 앞으로 3년간 또 30만 채가 더 지어질 수 있다는 게 이 회장의 예견이다. 세계 60억 인구 중 빈곤층 16억 명이 집이 없거나 최소한의 주거환경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해비타트가 꿈꾸는 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안락한 집에서 사는 것이다. 고단한 하루가 끝나면 갈 집이 있고, 한 지붕 아래 가족이 모여 안락함을 나누는 것. 그래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것. 해비타트는 ‘집보다 소중한 이런 것들’을 짓는다는 그의 믿음이 세상 곳곳에서 희망의 망치소리로 들리길 기대해 본다. 지난해 11월 1000번째 집 헌정식 가져 필리핀 등 해외원정 집짓기 프로젝트 시동해비타트운동는 1976년 미국에서 시작, 세계 100여 나라에서 펼쳐지고 있다. 후원자들과 자원봉사자, 홈파트너(입주가정)가 함께 땀 흘리며 집을 지음으로써 가난과 주거문제로 고통 받는 가정을 세우는 ‘사랑의 집짓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해비타트는 지금까지 세계 30만 가정, 150만 명에게 새 보금자리를 마련해 줬다. 이는 세계 곳곳에서 12분마다 한 세대씩 수혜가정이 생기고 있다는 계산이다. 1992년부터 전국 15곳에서 활동 중인 한국해비타트는 집짓기와 고치기 등을 통해  국내 1173가구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해 줬다. 11월엔 경기북부지회에서 감동적인 1000번째 집 헌정식을 가졌다. 활동반경은 국내에만 머물지 않는다. 외국재난현장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2005년 필리핀 대형 산사태가 난 곳에 지원금과 자원봉사자를 보냈다. 이어 2007년부터는 필리핀, 네팔 등지에 해외장기봉사단원을 보내고 있다. 올들어선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아시아 네팔, 베트남 등지에서 저소득가정을 위한 집짓기와 고치기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었다.  이달 말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몸 바쳐 사회귀감이 되는 사람들을 발굴, 시상하는 ‘아산상’의 20회째 수상자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9-02-10 00:00

소비자들의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번지고 있다. 일본이 또 한번 ‘망언’을 했기 때문이다. 독도를 자기나라 땅이라고 우긴다. 우리가 강하게 대응하면 쑥 들어갔다가 심심하면 한 번씩 생떼를 쓰는 모습이 웃긴다. 특히 일본 후쿠다야스오 총리가 중등교과서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을 명기하기로 한 것에 대해 ‘당연한 주장’이라고 말한 7월 <독도는 우리 땅>이란 노래가 다시한번 마음을 적신다.   그런 분위기여서 그런지 8월이면 <독도는 우리 땅> 노래가 자주 방송전파를 탄다. 4대 국경일인 광복절(8월 15일)엔 단골노래로 불린다. 이 곡은 일본의 억지주장이 불거지면서 인기곡으로 떠오른 대표적인 대중가요다.   방송PD출신인 박문영 작곡·작사, 개그맨 출신 정광태 노래인 <독도는 우리 땅>이 대중들에게 알려진 건 1983년 초. 전두환 대통령시절로 5공 중반기에 탄생한 셈이다.  노래는 아주 우습게 만들어졌다. 사랑, 이별 등 통속적 소재로 만들어진 일반 대중가요와 달리 노랫말부터가 재미있다. 우리나라 역사와 지리 상식들이 노래 중간 중간에 나오고 4분의 4박자의 빠른 템포에다 멜로디까지 경쾌해 다함께 부르면 더욱 흥겹다.KBS 코미디프로그램서 탄생  <독도는 우리 땅>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기까진 세 번에 걸쳐 사라질 뻔했던 우여곡절이 있었다. 노래는 방송 개그프로그램에서 비롯됐다. 작사가 손을 거친 노랫말에 곡을 붙여 가수에게 취입토록 하는 보통의 가요와 달리 노래태생부터가 이색적이다.  1982년 말 어느 날 KBS-TV 방송프로그램 ‘유머 1번지’ 개그작가였던 박문영 씨가 서울 여의도동 방송사사무실에서 열심히 원고를 쓰고 있었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했던 ‘유머 1번지’ 프로그램담당 김웅래 PD가 박 씨에게 “유익하면서도 재미있는 노래가 없느냐?”고 물었다.   박 씨는 그 순간 머리에 번쩍 떠오르는 게 있었다. “<독도는 우리 땅>이란 노래가 어떻겠느냐?”고 답했다. 김PD는 즉석에서 ‘좋다’고 했다. 담당PD의 OK사인을 받은 박 씨는 곧바로 방송사 도서실로 달려가 독도와 관련된 책과 자료들을 뒤졌다. 수집내용들을 바탕으로 그 자리에서 가사를 만들고 멜로디를 붙였다.  그 다음 주 TV방송 녹화장. 포졸 옷을 입은 임하룡, 정광태 등 4명의 개그맨들이 커다란 종이에 써 준 가사를 보며 노래를 불러 무사히 방송을 내보냈다. 방송작가(박 씨)가 코미디담당PD 요청으로 개그용의 재미난 노래를 즉흥으로 만들어 시청자들을 웃게 만든 것이다.  박 씨는 방송프로그램의 코너를 마친 안도감에 가사를 적은 종이를 구겨 사무실 쓰레기통에 버렸다. 얼마 뒤 4명의 개그맨 중 뭔가 느낌을 가진 정광태 씨가 쓰레기통을 뒤져서 수첩에 가사를 적어 호주머니에 넣고 나갔다.   개그용 노랫말로 쓰레기통에…정 씨는 이튿날부터 레코드회사를 찾아다니며 노래취입을 부탁했다. 정 씨는 “음반의 맨 끝 곡에라도 좋으니 음반으로 내어달라”며 레코드사 사람들에게 매달렸다. 그러나 반응은 싸늘했다. 개그맨이 노래를 부르겠다는 것도 그렇지만 가사가 장난스럽게 받아들여져 ‘안 된다’는 시각이었다. 정 씨 얘기를 들은 레코드사 직원들은 한결같이 “그게 노래냐!”며 손사래를 쳤다.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정 씨의 끈질긴 집념이 갸륵해(?) ‘대성음반’이란 조그만 레코드사에서 맨 끝 곡으로 <독도는 우리 땅>을 실어 두 달 뒤 음반을 냈다. 대성음반은 노래의 상품성보다 열심히 뛰어다니며 음반수록을 부탁한 젊은 개그맨을 차마 뿌리치지 못해 끼어 넣어준 것이다. 히트가 예감되는 곡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기가수가 부른 노래도 아닌 까닭이다.  음반 끄트머리에 끼어 든 <독도는 우리 땅>은 음반이 나오자 장난기 있는 일부 라디오PD들이 이 노래를 심심풀이로 방송에 띄웠다. 하지만 반응은 거의 없었다. 영향력 있는 공중파 TV방송사의 가요PD들에겐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며칠 후 어느 날 이었다. KBS의 한 간부가 우연히 그 노래를 듣고 “어떤 PD가 그런 괴상한 노래를 트느냐”며 불호령을 내렸다. PD가 불려가 꾸중을 들은 뒤 사무실엔 “<독도는 우리 땅>노래를 방송에 일절 내보내지 말라!”는 경고문이 나붙었다.  그렇게 해서 <독도는 우리 땅>노래는 더 이상 전파를 타지 못하게 됐을 무렵 때마침 “일본국회가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우긴다”는 보도가 터져 나왔다. 독도문제가 매스컴의 초점을 받자 대통령 주재 청와대회의에 거론되기까지 했다. 그 때 전두환 대통령은 그 노래를 들었는지 별 문제가 아니라는 듯 “우리는 <독도는 우리 땅>이란 노래가 있잖아!” 하며 일본 쪽 주장을 일축했다.  대통령 말에 놀란 당시 허문도 문화공보부 차관은 급히 가수(정광태)와 작곡가(박문영)를 불러 차를 대접하며 <독도는 우리 땅>을 만들어 취입한 것을 칭찬했다. 허 차관은 두 사람에게 “애로가 없느냐?”고 묻자 정 씨가 “KBS에서 노래를 방송금지곡으로 묶어놓고 있어 억울하다”며 사정을 자초지종 얘기했다. 허 차관은 그 자리에서 KBS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방송금지 시키지 말라” 당부했다. 그 무렵엔 말이 당부이지 거의 지시나 마찬가지로 말발이 먹혔다.  두 사람은 문공부를 나와 택시를 타고 여의도로 가던 중 차안에서 <독도는 우리 땅>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을 듣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 뒤 이 노래는 각 방송 가요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했고 광복절을 전후해선 인기곡으로 가요차트에 오르곤 했다. 1983년 개그맨 정광태 씨 취입정 씨는 졸지에 유명연예인이 됐다. 노래가 본격 선보인 1983년 KBS가요대상에서 신인가수상까지 받았다. 1990년대 들어 몇 차례 일본이 독도문제로 시비를 걸어왔을 때도 방송무대에서 노래를 불렀을 만큼 개그맨보다 인기가수로 더 유명세를 탔다.   정 씨는 2000년 여름 ‘윤독도’라는 별명의 한나라당 윤한도 전 의원(경남 함안·의령)을 중심으로 한 여야 국회의원들과 독도를 찾았다. 2002년엔 뗏목탐사, 2004년엔 울릉도 도동항~독도 수영종단으로 또 한 번 화제를 모았다.  코미디용 방송프로그램녹화 후 쓰레기통에 들어갔던 악보를 개그맨이 음반으로 되살렸지만 방송사가 틀어주지 않아 사라질 뻔했던 <독도는 우리 땅>은 흔히들 방송금지곡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아니다.   정광태 씨는 2005년 3월 28일 밤 한때 자신이 일했던 KBS-1TV의 심야 보도프로그램 ‘뉴스라인’에 출연, 노래와 독도지키기 내용들을 들려줬다.                                  <'독도' 명칭은 전라도 남해안 발음 '독섬'서 유래>독도는 신라 지증왕때 우산도(于山島)라 불리기 시작해 조선시대에는 삼봉도(三峰島), 가지도(可支島), 석도(石島)라고 불렸다. 1900년 고종황제의 칙령 41조에 의해 독도를 울릉군의 한 부속 섬으로서 공식적으로 강원도에 들어갔다.행정지명으로서 ‘독도’란 이름은 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에 의해 처음 사용됐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경상북도에 편입됐다. 현재 ‘獨島’로 표기되는 독도는 ‘외로운 섬’,’홀로섬’이 아니다. ‘돌섬’이 초기 이주민인 전라도 남해안 출신 사람들에 의해 ‘독섬’으로 발음되면서 ‘獨島’로 표기 됐다. 석도를 훈독 하면 ‘독섬’ 또는 ‘돌섬’이 된다. 지금도 울릉도 주민들은 독도를 ‘독섬’ 혹은 ‘돌섬’으로 부르고 있다. 한편 일본에서는 명치시대 전에는 독도를 마쓰시마(松島)라 부르다가 1905년 영토편입 뒤 부터 다케시마(竹島)라 부르고 있다. 서양에서는 이섬을 발견한 선박의 명칭을 따라 이름을 붙였다. 1849년 프랑스의 포경선 리앙꾸르호가 독도를 발견, ‘리앙꾸르 암(Liancourt Rock)’ 으로 명명했다. 1885년 영국함선 호네트호 또한 ‘호네트 암(Hornet Rock)’으로 이름을 지어 자기들 해도에 등록했다. 하지만 이는 섬을 바위로 표시한 것으로 우리가 바로 잡아야 할 사항이다.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8-10-08 00:00

매주 금요일 밤 10시 TV앞에 앉은 소비자들은 행복하다. KBS 1TV ‘이영돈PD의 소비자 고발’이 소비자들의 불만을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건 갖고 ‘장난’치는 생산자들에겐 여간 불편한 방송이 아니다. 현장취재와 각종 실험을 통해 진짜와 가짜를 철저하게 가려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기업을 견제하고 소비자 보호장치가 미약한 국내 현실을 감안할 때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의 상생을 꾀해 볼 수 있는 반가운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이 프로그램의 기획·총괄을 맡고 있는 이영돈 PD를 만나봤다. Q. 소비자 고발 아이템은 어떻게 수집하는가?A. 고발 아이템 가운데 3분의 1은 제보를 통해 얻어진다. 인터넷·우편물 등을 통해 보내오는 것이다. 그리고 3분의 1은 가공이다. 직접제보를 통해 얻어진 아이디어를 새롭게 접근하거나 소재 자체를(유관분야까지) 넓혀보는 방식이다. 나머지 3분의 1은 PD와 작가의 기획이다. PD와 작가가 순수하게 아이템을 생각해내는 것이다. Q. PD와 작가의 개인적인 소비체험도 영향을 미칠 것 같다. A. 그렇다. (우리도) PD와 작가 이전에 소비자다. 불편을 느끼는데서 소비자고발 정신이 나온다.  Q. 소비자는 조직화함으로써 대항할 수 있는데 반해 생산자는 여러모로 열악한 구조에 놓여 있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A. 소비자가 조직화하는 게 쉽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 다만 중소기업을 취재하는 경우 소비자 보다 생산자가 상대적으로 약자입자에 놓여 있다는 소리를 들을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중소기업이나 생산자를 죽이려고 하는 게 아니다. 기업이 망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제품이 나오지 않는데…. 우리는 다만 소비문화 철학을 매도하면서 기업이윤을 추구하는 생산자를 고발하는 것이다. 소비자가 생산자의 잘못을 지적하면 열악한 중소기업의 경우 당장엔 힘들지만 먼 안목으로 보면 더 좋은 물건을 만드는 계기가 되어 소비자가 더 좋은 제품을 사게 되고 중소기업도 더 크게 성장하게 된다고 본다. Q. 10명의 생산자 중에 9명의 생산자는 부정을 저지르고 있는데 반해 1명의 생산자만이 깨끗하게 영업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처럼 부정한 업계의 선량한 생산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A. ‘어느 한 생산자를 보도하다 보면 업계 전체가 다 그런것처럼 비쳐 (도매금으로) 선량한 생산자도 피해를 보지 않는냐’는 질문인 것으로 안다. 이럴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반대로 10명의 생산자 중에 9곳이 선량하고 1곳만이 부정을 한다고 해도 언론엔 환경감시 기능이 있어 잘못된 행위를 지적 안 할 수 없다. 자본주의 체제아래서 기업은 돈을 버는 게 목적이다. 하지만 사회에 대한 기본적 윤리는 지켜야 하지 않는가. 우리가 잘못된 방법으로 돈을 버는 생산자를 고발하지 않으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다만 90%의 선량한 생산자가 피해 보지 않도록 ‘언어’에서 보완하려 노력한다. Q. 예전에 ‘착한 소비’를 크게 다룬 것으로 알고 있다. ‘착한 소비란’ 소비자가 생산자를 생각하는 소비라고 해도 되는가?A.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두 잘 사는 건전한 소비문화가 우리가 지향하는 것이다. 좋은 물건을 최고로 싸게 사는 게 좋은 소비인 것은 아니다. 이보다는 합리적 소비가 더 좋은 소비다. 제품이 만들어지기까지 들어간 원가 및 노동력, R&D 비용(연구개발) 등을 고려해 합리적인 값을 주는 게 좋은 소비다. 우리는 물건보다 물건을 만든 배경을 묻는다. 파키스탄 어린이들은 1달러를 받고 축구공 2개를 만든다. 사람들은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축구경기를 보며 광분한다. 여기서 사용되는 축구공이 다름아닌 이들 나라의  어린이들의 고된 노동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소비자가 물건을 싸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것 못지 않게 적절한 값을 냄으로써 생산자가 더 좋은 터전을 갖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이것이 ‘착한 소비’다.Q. 기업들은 유통비용이나 홍보비용 등을 빼다보면 이윤이 크지 않다고 말한다. 또 남는게 많다고 해도 브랜드가치에서 얻어진 대가라고 주장한다. 이럴 때 ‘착한 소비’와는 어느 수준에서 접점을 이룬다고 보는가?A. 아직 갈 길이 멀다. 유통의 복잡한 것도 한 이유다. 브랜드관리와 가치를 극대화한 게 이른바 ‘명품’이다. 이들의 얘기는 맞을 수 있다. 그러나 합리성이 있어야 한다. (착한 소비가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이상적인 사회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거기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원산지의 제품구입 값을 2~3%만 올려줘도 동티모르, 아프리카, 이디오피아 등지의 생산자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최근들어 극소수이지만 페어 트레이드(공정무역)가 기업들간에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이 마저도 기업홍보용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Q. 다른 방송의 소비자고발프로그램과 차별을 두는 점이 있다면?A. 소비자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다른 방송은 연예인이 출연하고 가볍게 터치하는 방식이지만 (우리 프로그램은) PD가 나오고 진중하게 소비자문제를 풀어가는 게 다르다. Q. 프로그램 한 꼭지 만드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가? A. 한 명의 PD가 3주동안 취재한다.           KBS ‘이영돈PD의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은?지난해 5월 4일 ‘성형부작용’을 첫 방송으로 시작한 이래 60회를 앞두고 있다. 10명의 전문PD들이 먹을거리·의료·자동차·교통·유통·금융·보험, 유통·교육·문화·생활·주거·환경, 여성·육아·살림, 공무·법률·소비자제도 등을 다루고 있다. 최근에는 ‘업소마다 맥주맛이 다르다’ ‘고급 지자체 관용차’ ‘한의원 집단 감염’ ‘묶음판매’ ‘혼유사고’ 등을 다뤄 높은 시청률을 올렸다. 특히 촛불시위가 열리는 가운데 방송된 ‘세계적 광우병 전문가들에게 듣는다 - 미국산 쇠고기의 진실’ (이후락 PD)등이 대표적 사례다. 설문조사와 인터뷰 방식으로 제작된 이 방송은 광우병 파동에 대한 여론을 더욱 뜨겁게 달구는데 ‘한 몫’했다.특히 지난해 10월 5일 방송된 ‘황토팩 중금속 검출’ 보도는 소비자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전통방식의 건강제품이라는 이미지로 ‘황토’를 철썩같이 믿었던 소비자들은 방송을 보고 대거 환불을 요구해 홈쇼핑 회사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 바람에 ‘막대한 영업피해를 입었다’는 황토팩업체 참토원의 부회장인 탤런트 김영애씨와  20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걸려 있다. 한편 얼마전까지 방송된 내용은 살을 더 보태 ‘소비자 고발 그리고 불편한 진실’ (위즈덤하우스)이란 제목으로 출간돼 소비자 생활가이드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8-10-02 00:00

노사연 <만남>“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만추이다. 가을걷이와 겨울을 준비하는 농부의 손길이 바쁘다. 결실을 계절을 맞아 갖가지 만남들도 잦다. 야유회, 등산대회, 체육대회 등에서 삶의 풍요로움과 즐거움이 어우러진다. 그런 모임에선 “우리 만남은 우연히 아니야~”로 나가는 노사연의 <만남>노래가 곧잘 불린다. 부르기 쉬고 노랫말 뜻이 깊어 여러 모임에서 자주 애창되는 대중가요다. 1948년 우리나라 정부수립 후 대중음악 50년 사 베스트 50곡 중 40위에 오른 작품이기도 하다. <만남>이 만들어진 건 1986년. 21년 전이다. 그러나 대중에게 발표된 건 그로부터 3년 뒤인 1989년. 이 노래와 함께 모임 때 자주 불리는 해바라기의 <사랑으로>와 비슷한 시기에 나온 것이다.작곡가는 ‘노래 문외한’ 막내 이모부 <만남> 작곡가는 최대석 씨. 노래를 부른 노사연의 막내 이모부다. 미국서 사업을 하는 최 씨는 노래엔 문외한으로 알려져 흥미롭다. 4분의 4박자, 슬로우 록의 이 노래 작사가는 박신. 노래는 노사연이 많은 사람들과의 적극적 만남을 통해 가수가 됐다는 것을 잘 아는 작사가·작곡가의 합작으로 태어났다. 마치 <만남> 가사처럼 말이다.1978년 단국대 성악과 2학년생 신분으로 MBC주최 제2회 대학가요제에 출전, <돌고 돌아가는 길>(김욱 작사·작곡 / 4분의 3박자, 왈츠 곡)로 금상을 받아 가수가 된 노사연은 <만남>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무명에 가까웠다. 공부와 노래를 겸해야하는 학생가수신분인데다 이렇다 할 곡마저 내놓지 못해서였다. 특히 대학 신입생 시절 첫 미팅 때 자신의 뚱뚱한 몸매를 본 남학생들이 던진 모멸감의 말로 충격 받아 결행한 무리한 살빼기에서의 후유증도 한 요인이었다. (노사연은 태어났을 때 4.8kg로 우량아였다.)그런 가운데 노사연이 가요제 입상 뒤 얼마 지나지 않았을 어느 날 담당교수가 그를 불렀다. “성악을 하든지, 가요를 하던지 택하라!”는 경고를 내린 것이다. 1977년 1월 경희대 성악과를 지망했지만 떨어져 2차인 단국대 성악과에 2등으로 합격, 학교를 다녔지만 클래식보다 가요 쪽을 택해 가수 길을 걷고 있었던 터라 그는 전과를 결심했다. 어릴 때 이모인 대중가수 현미를 동경, “노래를 해볼까”하고 대학가요제를 지원해 입상한 그로선 중대한 선택이었다. 국문학과로 옮긴 노사연은 1983년 발표한 <님 그림자>(김욱 작사, 작곡 / 4분의 4박자, 트로트곡)를 부르며 가수활동을 계속했다. 하지만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가창력은 어느 정도 인정받았으나 인기인 대열에 끼지 못한 것이다. 초대받은 행사장에서 다른 여자가수들에게 출연순서를 빼앗기는 등 자존심 상하는 일도 많았다. 개그맨 저리가라 할 만큼 웃겨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노래하면서 장기인 재치·개그·유머로 부족함을 메워갔다. 10년의 무명시절을 보내던 그에게 드디어 기회가 왔다. <만남> 취입과 방송출연이 그것이다. 노래를 부르며 활동하던 어느 날 MBC-TV “일요일 일요일 밤에”프로그램에 나가게 됐다. 음반이 나온 지 한참 뒤의 일로 거기서 첫사랑인 여고 체육선생님과의 만남 얘기, “노사연! 너를 쭉 지켜봤는데… (아! 두근두근, 쿵쿵) 너 혹시…. 투포환 안 해볼래?”로 뒤집어지는 인기를 끌었다. ‘개그맨, 코미디언은 저리 가라’고 할 정도로 관중들을 웃겼다. 그를 처음 보거나 잘 몰랐던 사람은 가수보다 개그맨으로 여기기까지 했다. 그 이후 사람들이 자신을 점점 어려워하며 자꾸 존댓말을 쓰더니 급기야는 상석으로 앉히더라고 했다. 노사연의 꾸밈 없는 모습에 <만남> 노래의 인기가 치솟은 것이다. 1992년 <만남>으로 가수왕에까지 올랐다. 노랫말 구절처럼 “우연”이 아니라 그것은 가수데뷔 10년만의 “바람”이었다.그는 1957년 3월 3일 경남 마산시 오동동에서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 노양환 씨(1987년 작고), 어머니 김화선 씨(평양출신으로 북한 원로무용가 최승희 제자) 사이의 2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6살 때 부친 근무지 이동에 따라 강원도 화천으로 이사 가 그곳에서 자랐다. 화천초등·중학교를 거쳐 화천실업고 1학년을 다니다 춘천여고에 재입학했을 정도로 공부를 잘 했다. 그는 요즘 남편(가수 이무송)과 가끔 무대에 선다. KBS-1TV 주말 밤 음악 프로그램인 ‘콘서트 7080’에 부부가 나와 열창하기도 했다. 이들 부부는 기독교 신자로 어린 아들과 함께 교회에 다닌다. 그 곳에서 가족 합창으로 노래를 부르며 신앙 간증을 하기도 해 눈길을 끈다. 인기 연예인 가족에다 구김살 없는 노사연의 구수한 입담까지 곁들여져 신자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 올 한해도 결혼, 미팅, 입학, 입사 등 만남의 의례들이 줄을 이었다. 우리들 삶은 어떻게 보면 노사연의 노래 <만남>처럼 만남의 연속이 아닐까? 마산고·중앙대 신문방송학과·신문방송대학원을 나와 1979년부터 한국경제신문·일요신문, 경남도민일보, 뉴시스, 시사저널 등에서 언론계 생활을 하는 ‘기자가수’다. 남인수가요제에서 우수상을 받아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에 등록(865호)했다. 취입곡으로 <이별 없는 마산항> <마산포 순정> 등이 있다.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8-07-29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