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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는 우습고 정부는 무서워하는 식품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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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는 우습고 정부는 무서워하는 식품업계?
  • 이득영
  • 승인 2023.07.14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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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업계, 정부가 압력 가하면 바로 가격인하
소비자가 가격인하 요구하면 무시

 

자료 제공: 연합뉴스
자료 제공: 연합뉴스

[소비라이프/이득영 소비자기자] 지난 달 18일,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KBS의 한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서민 음식의 대표격인 ‘라면’을 콕 집어 현재 가격이 다소 과하다는 입장을 얘기했다. 지난해 하반기에 기업들이 가격을 많이 인상했는데, 밀 가격이 그때보다 50% 안팎 내렸기 때문에 밀을 취급하는 식품 업체들이 가격을 낮춰 고통을 분담하고, 소비자 부담을 줄여주자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실제로 곡물가격은 코로나 및 러우전쟁에 따른 생산∙유통 차질로 인해 2020년 말부터 2022년 3분기까지 지속적으로 상승했으나 2022년 4분기부터 차츰 안정되기 시작했다. 경제 실권자의 이러한 발언에 식품업계 측은 상당한 압박을 느꼈는지 연이어 서로 경쟁하듯 가격인하를 발표했다.

 

우선 농심이 신라면과 새우깡의 가격을 인하했고 이어 삼양식품, 오뚜기, 롯데웰푸드, 해태제과, 팔도 등 라면업계와 과자업계가 전반적으로 가격을 낮추었다. 며칠 후 똑같이 밀가루를 취급하는 제빵업계의 양대 산맥인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도 가격 인하에 동참했다. 파리바게뜨는 식빵류와 크림빵, 바게뜨 등 30개 품목의 가격을 평균 5% 내렸고 뚜레쥬르는 이에 맞서 빵 15종의 제품 가격을 5.2% 가량 인하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들 대부분 식품업체는 고통 분담 차원에서 물가를 안정시키고 소비자 부담을 완화하려는 가격인하 결정이라고 취지를 밝혔다. 

 

이러한 식품업계의 취지가 과연 진실성 있고 설득력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밀가루를 취급하는 많은 식품업체들이 다같이 가격을 인하하여 소비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지만, 가격 인하가 단지 소비자를 존중하는 입장인자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19와 러우전쟁 등으로 높아졌던 곡물 가격이 차츰 안정될 때 대부분 소비자들은 한 번 올라간 물가가 다시 떨어지지 않는다고 계속해서 성토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어느 식품업체도 곡물 가격이 안정화 되었으니 가격을 인하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그 식품업계들이 경제부총리가 방송에서 나와 가격인하와 관련해 짧은 의견을 내비치자마자 약속한 듯 프로그램 방영 직후에 가격인하 정책을 발표했다. 소비자들을 위해서 가격인하를 하였다면 왜 그동안 인하요구를 무시하다가 추경호 경제부총리의 발언 직후에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인지 의문이다.

이러한 사례는 이번 뿐만이 아니다. 2023년과 똑같은 일이 2010년에도 있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시절에 여당은 한나라당이었다. 2010년 초 이명박 대통령은 물가가 다소 비싸다는 취지가 담긴 발언을 했고, 한나라당은 공정거래위원회에 밀가루를 취급하는 식품업체에 대한 조사를 요구했다. 이어 공정위는 제21차 민생안전 차관회의에서 원가가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식품업체가 혹여 담합행위를 한 것은 아닌지 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그 날 바로 SPC그룹은 곧바로 빵값을 인하했다. 농심, 오뚜기, 삼양 등 다른 식품업체들도 앞다투어 가격을 낮췄다. 이러한 2010년의 선례는 이번 일과 매우 흡사하다. 정부가 식품업계를 압박하자 곧바로 많은 해당 업체들이 바로 인하 계획을 발표하며 즉각적 대응을 보인 모습이 똑같기 때문이다. 라면업계와 뚜레쥬르 등 식품업계는 2010년 이후 처음으로 이번에 가격을 인하했다. 그리고 두 번 모두 인하 시점이 정부의 압박 직후인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곡물 가격이 떨어졌어도 그 외 원가상승 비용에서 여전히 부담에도 불구하고 가격 인하를 시행한 것은 분명히 소비자들에게 득이 되므로 기업에게 고마운 부분이다. 그러나 그 시기와 행태면에서는 식품업계가 소비자 의견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정부에게만 귀 기울이고 있자고 보인다. 식품업계가 소비자는 우습게 여기고 정부만 무서워한다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가격을 정하는 기준은 소비자의 수요와 업체의 공급이다. 정부는 감시 역할을 할 뿐 가격 결정에 직접적 역할을 맡지 않는다. 소비자 의견보다 정부 압박이 가격에 더 큰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경제 흐름으로 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 식품업계가 소비자 의견을 더 열심히 경청하고 정부 만큼이나 소비자를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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