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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포커스] 훨훨 나는 K-콘텐츠… ‘오징어게임’은 어떻게 세계를 사로잡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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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포커스] 훨훨 나는 K-콘텐츠… ‘오징어게임’은 어떻게 세계를 사로잡았나
  • 손은경 객원기자
  • 승인 2021.11.05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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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글로벌 시장을 강타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 횟수를 달성하면서, 첫 공개 당시 미지근했던 국내 소비자들의 반응도 덩달아 뜨거워지고 있다. 오징어게임을 보지 않으면 대화에 낄 수 없을 정도다. 기생충, BTS의 세계적 흥행에 이어 오징어게임에 이르기까지. K-콘텐츠의 활약은 계속 될 수 있을까.


오징어게임 모르면 간첩
K-콘텐츠가 또 일을 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화려한 성적을 거두면서 유명세가 따른 지 채 2년이 되지 않은 시점에 또 다른 대박이 터졌다. 이번에는 영화가 아니라 드라마다. 세계 최대 OTT 플랫폼 (Over The Top,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Netflix)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이 그 주인공이다. 

넷플릭스(Netflix) 오리지널 시리즈: 넷플릭스가 투자하고 넷플릭스 서비스를 통해서만 시청할 수 있는 독점콘텐츠로 여기에서 시리즈르는 드라마를 포함해 2회 이상의 연속적인 콘텐츠를 말한다. 

‘도가니’, ‘수상한 그녀’, ‘남한산성’ 등의 영화로 이름을 알린 황동혁 감독이 각본과 감독을 맡았다. 본래 오징어게임은 영화로 만들기 위해 구상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국내에서 10년간 투자를 받지 못해 떠돌다 2년 전 넷플릭스를 만나면서 드라마로 장르를 변경했다. 

보통 16부작으로 제작되는 국내 TV 방송용 드라마와 달리 총 9부작으로 제작됐다. 16부작 드라마를 보는 데 어림잡아 1200분을 투자해야 한다면 오징어게임은 그 절반도 되지 않는 473분 만에 완결을 맛볼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를 한 번에 몰아보기 좋아하는 요즘 사람들의 취향에 맞게 하루 만에 정주행 가능하도록 만든 것이다. 

오징어게임은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한 인생 루저들이 456억의 상금을 따기 위해 목숨을 걸고 게임에 도전하는 과정을 그리는 이야기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456명 중에 1등을 제외하고 모두 죽는다. 게임이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은 참혹하고도 매혹적이다. 국내 방송용 드라마였다면 절대 도전하지 못했을 자극적인 수위도 폭넓은 시청 층을 잡아끄는 데 한몫했다.

넷플릭스를 살린 오징어게임
오징어게임은 15일 만에 83개국에서 넷플릭스 순위 1위에 올랐다. 4주 후에는 넷플릭스가 서비스되는 94개국 전체에서 1위를 석권했고, 한 달 이상 세계 1위 자리를 지켰다. 넷플릭스가 오징어게임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1조 605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220억을 투자해서 1조를 넘게 벌어들였다. 

넷플릭스 공동 CEO 리드 헤이스팅스(Wilmot Reed Hastings Jr.)는 오징어게임이 공개된 9월 중순 3분기 이후에만 넷플릭스 신규 유료회원 수가 438만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이로써 넷플릭스 총 유료회원 가입자 수는 2억 1360만명으로 들어섰다. 순이익은 지난해 3분기 7억 9000만 달러 대비 2배 가까이 늘었다.

단순히 넷플릭스가 오징어게임으로 큰 돈을 벌었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수치들은 OTT 업계에서 자칫 뒷방 늙은이 신세로 전락할 뻔했던 넷플릭스가 또 다른 기회를 얻었다는 증거다. 강력한 자체 독점 콘텐츠를 가지고 OTT 시장에 뛰어든 후발주자 ‘디즈니플러스’, ‘HBO 맥스’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구한 것이다.   

경쟁 업체들의 위협이 가속화되면서 정체기에 들어섰던 넷플릭스를 다시 한 번 성장 구도로 끌어올린 것은 새로운 콘텐츠에 대한 끊임없는 수요와 과감한 투자였다. 넷플릭스는 직접 투자한 콘텐츠가 대박이 난다고 해서 인센티브를 주지는 않지만, 그 콘텐츠가 망한다고 해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전형적인 고위험 고수익 투자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한국 콘텐츠, K-콘텐츠가 있다. 

 

왜 K-콘텐츠인가
매년 유튜브와 음원차트, 시상식 등에서 세계 최고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아이돌 그룹 ‘BTS’와 ‘블랙핑크’를 통해 K-POP의 경쟁력은 증명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한국 노래가 빌보드 메인 차트 100위 내에 오르는 것은 큰 뉴스거리였다. 올해로 BTS는 그룹 통산 17번째로 빌보드 메인 싱글 ‘HOT 100’ 1위에 올랐고, 이제 이런 소식은 우리에게 꽤 익숙한 것이 되었다.

K-POP 그룹들은 완벽한 댄스, 개성 있는 비주얼, 다양한 국적의 멤버들을 통해 글로벌 음원 시장을 공략했다. 대한민국 그룹이지만 음악 스타일은 전 세계에 먹히는 글로벌 스탠더드다. 여기에서 ‘언어’는 부차적이다. 영어 가사를 많이 쓰기도 하지만, 당장 한국어 가사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퍼포먼스와 비주얼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반면 영화나 드라마가 해외 시장에 진출했을 때 언어는 가장 큰 장벽이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한국이라는 지역적 문화가 걸림돌이 될 때가 많다. ‘한류’가 주로 비슷한 문화권의 아시아 국가들에서 큰 열풍을 일으켜왔던 이유는 우리 콘텐츠 속에 그들이 공감할 만한 문화적 공통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문화적 유사성이 마니아층을 뛰어넘어 수많은 대중에게 콘텐츠를 침투시킬 수 있는 힘으로 작용한 것이다.

지금은 다르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의 인기가 서구 영미, 유럽권에서도 비슷한 온도로 감지된다. 오리엔탈리즘, 동서양 간 사회문화적 이질감을 뛰어넘을 만큼 강력한 공감의 메시지가 작동하고 있다. 언어도 문화도 다른 곳의 전 세계인이 K-콘텐츠를 보면서 동질감을 느끼고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 

오징어게임을 만든 황 감독은 이번 작품의 성공 요인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어린 시절 게임과 누구나 공감할 만한 캐릭터”를 만든 데서 찾았다. 언어와 문화를 넘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그는 또한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적으로 극심해진 빈부격차, 경쟁의 심화와 같은 시대적 요소가 공감을 끌어낸 것”을 요인으로 분석했다. 지난해 전 세계적 열풍을 일으켰던 영화 기생충의 이야기와도 맞닿는 부분이다. 기생충 역시 노골적으로 빈부격차를 그려낸 풍자극이다. 세계가 공통으로 겪고 있는 문제의식을 통해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

 

 탄탄한 스토리와 거대 자본의 만남

K-콘텐츠가 전하는 공감의 메세지에

전 세계가 환호  

흥행은 계속될까
K-콘텐츠의 세계적 흥행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오징어게임의 인기에 힘입어 한국 드라마가 연이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지난달 15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마이네임’은 불과 일주일 만에 세계 3위 자리에 올랐고, tvN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도 7위까지 올랐다.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선 언더커버 액션 복수극 ‘마이네임’의 순위 상승이 가파르고, 한국 어촌을 배경으로 한 로맨스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는 대만, 베트남,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문화권이 비슷한 동남아 국가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넷플릭스를 통한 K-콘텐츠의 세계 시장 진출 성공은 갑자기 생긴 일이 아니다. 넷플릭스는 ‘옥자’를 시작으로 지난 5년간 한국 시장에만 7,700억원 제작비를 투자했다. 조선을 배경으로 한 좀비 드라마 ‘킹덤’, 크리처 스릴러 드라마 ‘스위트홈’, 탈영병을 잡는 군대 드라마 ‘D.P.’ 등이 국내에서 흥행에 성공했고, ‘킹덤’과 ‘스위트홈’은 해외시장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어 다음 시즌 제작을 논의 중이다. 

업계에 따르면 넷플릭스가 드라마에 투자하는 제작비는 한국 평균 드라마 제작비의 5배에 달한다. 경쟁력 있는 스토리실력 있는 감독, 과감한 제작비까지 삼박자가 들어맞으니 흥행 확률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넷플릭스의 공격적인 투자와 흥행 성공을 목도한 경쟁 OTT 서비스들도 성공적인 자체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투자를 늘릴 방침이다. 

당장 넷플릭스부터 한국 시장 투자를 늘린다고 발표했다. 올해만 도합 5,500억원의 제작비를 투자할 계획이다. 국내 OTT 서비스 ‘웨이브’는 향후 5년간 1조를, ‘티빙’은 3년간 4,000억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11월 국내에서 서비스를 시작하는 미국 OTT 서비스 ‘디즈니 플러스’도 한국 시장에 대대적인 투자를 할 전망이다. 

국내 콘텐츠 시장 향방은?
OTT 서비스 간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국내에 풀리는 콘텐츠 제작비 규모는 늘어난다. 제작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어왔던 제작사에는 청신호가 켜진 것이다. 시청자들 또한 과도한 PPL 없이 수준 높은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제작 방식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오징어게임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넷플릭스는 천문학적인 이익을 얻었지만 제작사에는 아무런 추가 수익이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자칫 국내 콘텐츠 제작사들이 거대 콘텐츠 기업의 외주로 전락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는 것. 

추가 수익을 배분하지 않는 것이 불공정 계약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은 “오징어게임 공개 이후 넷플릭스 시가총액이 약 28조 증가해 추가 경제적 이익이 투자 대비 1,166배로 추정되지만 넷플릭스가 작품의 지식재산권(IP)을 독점한다는 계약사항에 따라 오징어게임 제작사는 이에 따른 인센티브를 받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콘텐츠 업계의 입장은 다르다.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배우를 발탁해서 기본적인 성공을 점칠 수 있는 대형 방송국과 제작사들이야 흥행 이후의 이야기를 논할 수 있겠지만, 당장 투자자를 찾는 것부터가 난제인 중소형 제작사들은 사전 제작비 투자만 해도 큰 기회라는 것. 실제 오징어게임 황 감독은 넷플릭스와의 계약에 불만이 없다는 입장이다. 넷플릭스는 국내에서 10년간 제작하지 못했을 정도로 리스크가 큰 작품에 제작비를 댄 유일한 투자자였기 때문이다.

앞으로 양질의 콘텐츠들이 OTT 서비스를 통해 독점 공개되는 현상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지상파 방송국과 인기 TV 채널들의 독점적 콘텐츠 유통 구조는 빠른 시간 내에 해체될 전망이다. 유능한 내부 인재들은 물론, 방송국에 경쟁적으로 콘텐츠를 제공하려고 줄을 섰던 제작사들도 OTT 시장으로 발을 돌리고 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변화에 맞서 기존 콘텐츠 생산자들은 또 어떤 생존방법을 모색할지도 관전 포인트다. 분명한 건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면 시청자들이 발을 돌리게 될 것이란 사실이다. 

손은경 객원기자 twelvenos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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