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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부(富)] 인클로저-토지소유가 가져다준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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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부(富)] 인클로저-토지소유가 가져다준 자본주의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8.19 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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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상남, 마초, 차도남의 괴팍함을 가진 남자 헨리 8세는 아들을 얻고 싶은 욕심에 새로운 결혼을 위한 이혼을 선택했다. 교황 허락이 있어야 했던 당시 혼인 무효는 클레멘스 7세와 갈등을 낳았다. 1534년 수장령(首長令)으로 시작된 교황청과의 결별은 1536년, 1539년에 가톨릭교회, 수도원 해산과 더불어 그들이 소유하고 있던 모든 재산에 대한 몰수로 이어진다. 이는 엄청난 나비효과를 가져오며 유럽의 변방 잉글랜드가 세계의 중심으로 발돋움하는 시발점이 된다. 

몰수된 재산과 토지는 국가 소유였다. 수많은 대외전쟁을 치를 때마다 재원 확보를 위해 증세가 아닌 보유한 토지를 팔았던 왕실로 인해 토지는 헐값에 개인에게 파렸다. 토지를 매입하던 젠트리(지주, 자본가)와 요먼(자영농)은 이후 상류층과 중산층으로 성장해 잉글랜드 번영을 주도한다.  

중세 유럽은 집에 딸린 텃밭을 제외하면 봉건제에서 지속되었던 장원의 영향으로 농지에 대해 개인 소유보다는 공유한다는 개념이 강했다. 관습에 따라 장원을 윤작했고 휴경지나 수확을 마친 곳에는 가축을 방목하여 분뇨로 지력을 회복했다. 흑사병으로 인구가 감소하자 곡식의 수요 감소로 가격이 하락했다. 봉토를 지배하던 영주의 수입도 감소했다. 이를 보전하고 부족해진 노동력으로도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가축의 방목이 증가했다. 이는 방목지 증가와 농경지 축소를 불러왔다. 영주는 공유지에 가축을 키우며 울타리를 설치하고 개인의 소유지로 만들었다. 새로운 지주로 성장한 젠트리도 자신의 수입을 위해 같은 행동을 취하며 타인의 출입을 억제했다. 이를 ‘인클로저(enclosure 또는 inclosure) 현상’이라고 한다. 

라티푼티움에서 장원제로 이어지던 유럽 토지제도는 변화를 맞이한다. 물이 물고기의 공유물이듯 봉건체제 지배세력과 피지배세력 간 공유물이었던 토지가 ‘울타리’ 하나로 소유 개념으로 바뀐 것이다. 농경의 감소로 유랑민이 증가하면서 치안 문제까지 야기했다. 조세와 징집 대상이었던 농민을 유지하려던 왕은 1489년 이래 인클로저 현상을 막아보고자 여러 차례 관련 법령을 내놨지만 수익성이 높고 관리가 쉬운 목장을 더 만들려는 지주층과 대립하게 된다. 목장에서 주로 기르던 가축은 양이었다. 양을 키우기에 적합했던 기후 외 13세기부터 시작된 양털 가격 상승이 17세기 중엽까지 지속적으로 큰 폭으로 상승하며 지주들에게 많은 돈을 안겨주었다. 인클로저를 지지하는 귀족, 젠트리 같은 지주세력이 장악한 의회는 왕과 대립으로 시작한 내란에서 승리한다. 권력을 잡은 의회는 입법을 통해 인클로저를 합법적으로 확대시켰다. 

1500년대에 들어 흑사병으로 감소한 인구를 회복하며 줄어든 농지로 식량 확보가 어려웠다면 인클로저는 발목이 잡혔겠지만 같은 면적에서 기존 곡식에 비해 2~4배의 식량을 확보할 수 있게 해준 감자가 등장한다. 유럽 대부분 지역은 18세기 식량부족 사태가 오기 전까지 감자를 소규모로 재배했지만 잉글랜드는 달랐다. 감자는 인구 절반 이상이 식량 생산에 참여해야 가능했던 생산량을 1/5의 인구만으로 가능하도록 만들어 잉여 노동력까지 만들어냈다. 농법 개발과 기술발전도 더해지며 점차 더 적은 인구가 참여해도 생산량을 유지하다 보니 잉글랜드에서 인클로저가 확대되었고 일자리를 잃은 잉여 인력은 꾸준히 도시로 유입된다. 덕분에 유지된 값싼 노동력은 자본가에게 막대한 자본 이익을 가져다주며 그들의 위치를 공고히 한다. 

인클로저는 결국 토지의 소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토지를 소유했던 지주들은 양털을 활용한 모직산업에서 많은 돈을 벌었다. 자본을 축적하게 된 이들은 도시로 모여든 ‘전직 농부’에게 농사가 아닌 새로운 노동을 시켰다. 인클로저는 단순한 사회변화가 아닌 우리가 사는 사회의 시발이 되는 포인트다. 자본가의 자본이 또다시 자본을 낳았다. 자본가의 선순환을 위해 노동자의 착취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자본의 특성상 착취로 멈추지 않았다. 이후 진행된 외부에 대한 침략으로 착취는 수탈로 진화한다. 대영제국이라는 그럴듯한 포장 안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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