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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남의 얘기일 것만 같던 교통사고를 내가 당했다면 어떨까. 게다가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당황하다가 보상조차 받지 못한다면 또 얼마나 억울할까. 지식과 정보, 자본력으로 무장한 ‘몸집 큰’ 보험사를 상대로 보상을 받기엔 상대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교통사고피해자를 위한 곳이 있다. 보험소비자연맹(회장 유비룡)이 설치한 교통사고피해자구호센터가 그곳이다.  “우리 센터에선 교통사고를 당한 피해자나 사고를 낸 가해자의 사고처리 등을 상담해 주고 있습니다. 자동차보험뿐 아니라 생명보험, 손해보험, 각종 공제 등 유사보험 처리에 대해서도 상담해 드립니다. 피해자의 손해사정이 필요한 경우엔 그 역할까지 해주고 있어요.”최근 전국 처음으로 관공서 교통민원실 안에 교통사고피해자 상담소를 열어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는 광주광역시 교통사고피해자구호센터의 김용균 센터장을 만나봤다.Q 교통사고피해자구호센터장으로 활동하게 된 동기는.A 보험소비자연맹에서 교통사고피해자구호센터를 운영한다고 해서 처음 시작할 때부터 참여했다. 전국망을 구성하는 것에 뜻을 같이 하면서 약자 편에서 봉사하는 즐거움을 깨닫고 최선을 다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Q 교통사고가해자를 위해서도 일하나.A 물론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해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가해자 역시 사고 때 당황하긴 피해자나 마찬가지다. 때문에 피해자를 최대한 배려할 수 있게 조언해준다. 가해자가 잘못된 정보로 오류를 범하면 그 피해는 가해자는 물론 피해자에게도 돌아간다. 가해자 상담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Q 최근 남구청 구호센터를 열었는데 배경과 운영방법은.A 광주시 남구청에서 남구 송암동 교통민원실 안에 교통사고피해자구호센터를 열었다. 광주시민이 민원을 위해 찾는 구청 교통민원실에 상담소를 열어 사고를 당한 피해자들이나 그 가족들이 더 편리하고 친근하게 다가오길 바람에서다. 특히 전국 처음 지방자치단체와  보험소비자연맹이 손잡고 상담센터를 열게 돼 눈길을 끈다. 이번 사업이 전국 언론매체에 소개되면서 홍보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현장에서 상담을 하고 그 뒤 시간은 1577-0095로 전화를 걸면 상담할 수 있다.Q 센터를 운영하면서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은.A 손해사정업무를 한 지 18년쯤 됐다. 보험사의 보상과 근무를 거쳐 독립손해사정사무소를 운영하고 시민단체에서도 활동하며 많은 피해자들을 만났다. 일이 잘 끝나 집들이 초대를 받거나 결혼식에 불러준 사람들도 있다. 반면 18년 전 교통사고로 21살 된 대학생 피해자에게 단축장해가 생겨서 추가보상을 받게 해줬다. 하지만 받은 보상금으로 자동차를 사서 운전하다가 중앙선을 넘어 숨진 일은 매우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Q 교통사고 대비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은가.A 교통사고는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다. 우리가 건강하고 오래살기 위해 건강검진을 받고 예방을 한다. 정작 암발생률보다 높은 교통사고발생에 대해선 잘 대비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운전자들은 늘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개연성을 갖길 바란다. 자동차엔 기본 에어백과 옆면 에어백을 달도록 권하고 싶다.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8-09-30 00:00

 총과 펜은 물과 기름만큼이나 이질적이다. 하지만 이질적인 ‘그것’은 남자의 몸과 마음을 닦는 삶의 원천이 됐다. 육군박물관장 겸 육군사관학교 국문학 교수 이기윤(54·육사 33기/국문학 박사) 대령이 소설가로 출사표를 던졌다. 오래 전 시인으로 등단한 이 대령의 두 번째 도전이다.고교시절부터 시 써온 문학 소년열일곱 살 마산고(32회)에 입학하던 해부터 시를 써온 문학소년 이기윤은 마산 ‘돝섬문학회’ 동인활동으로 문학 혼을 불태웠다. 초급장교시절 ‘군인의 시적 체험은 개인에겐 전인(全人) 형성의 기틀이 된다’는 조지훈 시인의 글을 지금껏 마음에 새기고 있다.‘펜을 쥔 육군대령’으로 50대 중반이 된 그는 최근 ‘섣달 그믐밤‘이란 장편소설을 완성했다. 소설집엔 일제 강점기→8·15해방→6·25전쟁→근대화 시대로 이어지는 격동의 나날들을 살아온 한 농부의 일생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 대령은 “제 삶의 뿌리이자 우리 근대화의 디딤돌이 된 아버지 세대들의 고통과 애환, 사랑과 희생, 용기를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1977년 사관생도출신으로 처음 <태릉무림기>란 시집을 낸 그는 1997년 ‘시와 시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1999년 발표한 시집 <자전거와 바퀴벌레>를 통해 시인으로 대중에 이름을 알렸다. 경남 김해 출신인 이 대령은 마산고 졸업 뒤 육사에 입학, 소위로 임관한 뒤 초급·중급 장교로 전·후방 부대에 근무했다. 육사교수가 되고부터는 육사신문 주간을 비롯한 여러 보직들을 두루 거쳐 오늘에 이른다. 지난해엔 현대사와 영욕을 함께 해온 육사 60년사(史)를 발간했다. ‘별,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60년’이란 제목의 이 책은 많은 화제를 불러 KBS 등 많은 언론매체들이 인터뷰 및 보도기사를 다뤘다.한편 이 대령이 장편을 완성하는 긴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였다. 특히 미술에 조예가 깊은 교사출신 부인(김영희씨)은 최근 화가로 변신, 작품활동에 바쁘다. 아버지 뒤를 이어 군인의 길을 걷는 육사출신 아들(전방부대 육군 대위)도 묵묵히 응원을 보내는 든든한 원군이다.이 대령은 “사관생도들에게 역사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역사소설 집필에 전념하려 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의 첫 장편소설 <섣달 그믐밤>은 지난 2월 말 전국서점에 깔려 벌써부터 인기다.박물관 소장 유물 1만여점한편 이 대령이 책임을 맡고 있는 육군박물관엔 고대군사유물 4500점, 현대군사유물 4600점, 군 역사관련 기념자료 2300점이 있다.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의 육군사관학교 안에 있는 육군박물관이 소장한 유물은 1만 점이 넘는다. 육군박물관은 특정부대의 역사관 수준을 뛰어넘는 말 그대로의 ‘박물관’이다. 1948년 육군창군 후의 유물은 물론 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독립투쟁시기에 이르는 군사유물을 총망라한 게 특징이다. 열쇠모양의 박물관 건물은 ‘조국통일을 염원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8-09-01 00:00

 일본의 한 마케팅전문회사가 실연(失戀)한 직원에게 ‘실연 휴가(heartache leave)’를 주기로 해 화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화장품과 여성용품 마케팅전문회사인 히메&컴패니는 “이 같은 휴가제도는 실연한 직원에게 실컷 울 시간을 주려는 것”이라며 “실연의 아픔을 딛고 새 마음으로 일에 복귀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며 도입배경을 밝혔다. 이 회사 최고경영자인 미키 히라다테는 로이터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직원 모두에게 출산휴가가 필요하지는 않지만 실연했을 땐 병에 걸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치유시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유급실연휴가는 직원의 나이에 따라 다르다. 24세 이하의 직원은 1년에 하루, 25~29세 사이는 이틀, 30세 이상은 사흘 동안 휴가를 쓸 수 있다. 나이에 따라 휴가일 수를 달리한 것에 대해 히라다테 회장은 “20대 여성들은 실연을 당해도 다음 사랑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30대 여성들은 그렇지 못하다”라며 “30대 여성의 이별은 20대보다 더 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의 파격적인 제도는 ‘실연휴가’에만 그치지 않는다. 한해 두 번 세일기간에 오전 근무 대신 쇼핑을 즐길 수 있는 ‘세일쇼핑휴가(sales shopping leave)’도 주고 있다. 히라다테 대표는 “전엔 세일기간이 되면 여직원들이 쇼핑 뒤 산 물건을 지하철역 사물함에 감춰두고 출근하는 불편을 겪어야 했다”라며 “세일기간 때 마음 놓고 쇼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면 쇼핑백을 들고 오후에 출근할 때 죄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8-09-01 00:00

 농협은 농민의 ‘언덕’이다. 농민의 생활력을 높이고 경제적·사회적 지위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포천 소흘 농협 김현희 과장은 “고객과 친밀감이 높아 고객 가정사를 다 꿰고 있다”며 농협의 장점을 한마디로 요약 정리한다.Q 농협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신다면?A 농협은 ‘농협중앙회’와 ‘지역단위 농협’으로 구분 됩니다. 농협중앙회는 시중은행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반면 지역단위 농협은 농업민들이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조합원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농업민이 경영에 참여할 수 있고, 지역단위 농협에 이익이 났을 때 조합원에게 배당이 되는 게 특징입니다. Q 시중 은행과 다른 점은?A 농협은 시중 은행과 달리 지역 주민들과 친밀도가 높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고객 한분 한 분의 가정사를 다 꿰고 있을 정도니까요. 지나가다 들르시는 분들도 많아요. 쉬었다 가시기도 하고 정보를 얻어 가시기도 하고요. 농촌이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직원들의 이직률이 적은 것도 특성중 하나입니다. 직원 채용은 단위 농협별로 이뤄지는 정년인데다 길고 이직률은 낮습니다.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건축물 대장이나 등기부등본 같은 생활민원도 처리해 준다는 사실입니다. 은행으로서의 기능이 아니라 지역주민들의 사랑방 같은 곳이죠.Q 농협에서 파는 상품의 특징은?A 농협은 본질적으로 농가 주민들의 편이를 높이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덕분에 농가 주민들에게 주는 혜택이 많습니다. 농기계종합공제, 가축공제, 농산물 공제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예금 상품 중에서는 ‘농어가 목돈마련 저축’이란 상품이 있는데 이것도 농업민들에게만 혜택이 있습니다. 3년 가입 상품과 5년 가입 상품으로 나뉘는데 5년 가입할 경우 장려금 포함해 금리가 15.1%입니다. 시중 은행 금리를 5%로 봤을 때 무려 3배나 높은 금리입니다. 이 상품은 농가 소득이 있는 순수 농업민만 가입할 수 있습니다. 농가 소득 외에 다른 소득이 있으면 가입 할 수 없는 게 특징입니다. 이외에 2000만원까지 비과세 되는 상품이 있습니다. 이 상품은 농업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주소지, 거소지 지역단위 농협에서 누구나 가입할 수 있습니다. 단 농협중앙회에서는 시중은행과 똑같은 법이 적용돼 이 상품을 판매하지 않고 있어 가입할 수가 없습니다.참고로 농협 앞에 지역명이 붙으면 지역단위 농협이고 그렇지 않으면 농협중앙회로 보시면 됩니다. 농협중앙회는 시중은행처럼 ‘농협 ○○지점’으로 표시됩니다. 예를 들어 ‘서부 농협’은 단위 농협이고, ‘농협 서부지점’은 농협중앙회입니다.Q 근무하시면서 어려운 점?A 최근 예금 상품이나, 보험 상품 등 판매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그런 변화에 대처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농어촌 젊은이들이 외지로 떠나면서 고령화 현상이 두드러져 잠재고객이 줄어드는 형편입니다. 또 전자금융 이용자가 늘어 고객 확보가 쉽지 않은 것도 어려운 점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자녀장기 상품 판매를 통해 고객 확보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8-09-01 00:00

2008년이 시작됐다. 한해가 열리는 이맘때면 대중가요 <아침이슬>을 흥얼거리게 된다. 김민기(57) 작사·작곡, 양희은이 부른 <아침이슬>은 언제, 어디서 들어도 새로운 분위기가 든다. 노래제목처럼 이른 아침 영롱하게 맺힌 이슬의 느낌부터가 새롭다. 38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들어도 전혀 묵은 노래 같지 않다. 한 때 각 학교 교가보다 더 잘 알려져 7080세대들에겐 더욱 친숙한 국민가요다.노래가 탄생한 건 1970년. 사회적·정치적 사실과 아무 상관없이 만들어진 순수 서정적 곡으로 태어났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노랫말이 다분히 시적이다. 잔잔하게 깔리는 반주에 양희은의 낭랑한 목소리가 버무려져 듣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지금으로부터 38년 전 청년음악가 김민기와 풋내기 여가수 양희은을 졸지에 스타로 떠오르게 한 이 곡은 숱한 얘기를 낳은 노래로도 유명하다. 운동권가요의 대표 격으로 방송금지가 되면서 더욱 주가를 올린 점이 특이하다. 피 끓는 젊은 대학생들이 독재정권과 맞서며 청춘을 불태웠던 저항의 노래 상징으로도 꼽힌다. <아침이슬>이 특히 1970~1980년대 의식 있는 젊은 세대들로부터 사랑받은 건 노래가 좋았던 점도 있지만 박정희 대통령 시절 독재의 암울한 시대상황의 영향도 컸다. 버려진 악보로 연습해 취입그래서 재미난 에피소드들이 많다. 양희은이 불러 히트하기 전까지만 해도 김민기는 이 노래를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는 언론매체와의 인터뷰 때 여러 번 <아침이슬>에 애정이 없는 듯한 말을 자주 한 게 이를 뒷받침해준다.그러나 가수 양희은의 생각은 달랐다. 김민기가 노래를 만들었다며 불러주는 순간 ‘아주 좋은 곡’이라며 맘이 끌렸다. 작사 · 작곡가와 가수의 시각이 서로 달랐다는 것이다. 김민기가 연습하면서 악보를 획~ 버리자 양희은은 이를 주워 자신의 노래로 소화시켜나갔다.‘꼭 녹음 해야겠다’고 작심한 양희은은 원작자(김민기)보다 먼저 <아침이슬>취입에 성공했다. 음반제작은 방송사PD들이 뜻을 모아 당시 킹레코드사 박성배 사장에게 소개하면서 이뤄졌다. 빅 히트송 <아침이슬>이 있기까지엔 가시밭길을 걸어온 김민기의 지난날 삶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김민기는 1951년 3월 31일 전북 이리(현재 익산시)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의사였던 부친이 6·25전쟁 때 북으로 후퇴하던 인민군에 의해 피살되는 바람에 유복자가 됐다. 경기중·고를 거쳐 1969년 서울대학교 미술대 회화과에 입학한 김민기는 대학 3학년 때인 1970년 <아침이슬>을 발표, 새내기 대중음악 작곡가로 명함을 내밀었다. 이듬해엔 독집음반을 내면서 가수로도 데뷔했다. 3선 개헌과 대통령선거 열풍이 전국을 휩쓸고 있던 무렵이다.노래 못잖게 1971년 가을 그에겐 의미 있는 한 만남이 있었다. 저항시인 김지하와 자리를 함께 한 것이다. 김 시인과의 만남을 통해 문화적 체험을 한 그는 가톨릭문화운동, 국악대중화, 마당극운동 등을 펼치며 제도권으로부터 요주의인물로 취급받았다. 1971년 서울 신정동에서 야학을 시작했고, 인천도시산업선교회에서도 뛰었다. 금관의 예수(1973년), 소리굿 아구(1974년) 공연의 중심에도 그가 있었다.금지곡서 국민가요 ‘햇빛’이런 일련의 활동들이 김민기 노래를 순수대중음악에서 현실비판적 의식가요로 재해석케 하는 빌미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독집음반을 내고 가수로 데뷔한 그는 1972년 봄 서울대 문리대 신입생환영회에 초대돼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로 레코드를 모두 압수당하는 수난을 겪었다. 방송금지에다 연행→조사→석방이 거듭되면서 ‘찍힌 인물’로 말과 행동이 자유롭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택한 게 군 입대. 1974년 10월 카투사로 들어가 처음 배치 받은 곳은 주한미군방송인 AFKN방송국. 사병근무지론 비교적 편안한 데였으나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아침이슬> 노래 때문이었다.이듬해 전국이 유신헌법 찬반투표 거부운동으로 들끓었다. 대학가에 데모가 끊이지 않았고 정치권 공방도 치열했다. 재야인사와 대학생들은 투표 당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종일 투표참가를 거부하는 집회와 공연을 계획하고 있었다. 행사 때 주요 음악레퍼토리는 김민기 의 노래. 그러나 이 사실이 당국에 들켜버렸다.그 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은 바로 김민기였다. 내복도 입지 않은 채 보름간 감방생활을 한 뒤 최전방으로 쫓겨났다. 이어 그해 6월 문공부가 발표한 ‘공연활동의 정화대책’에 따라 <아침이슬>이 금지곡으로 묶였다. ‘노래가 시의에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김민기 노래가 운동권가요로 자주 불리면서 탄압은 더욱 거셌다. 그럴수록 운동권에선 더 불렀다. 탄압강도가 더해질수록 서정적 노래로 태어난 <아침이슬>이 의식 있는 가요로 의미를 갖춰갔다. 운동권학생들은 험난한 미래에 대한 고뇌의 결단을 할 때 <아침이슬>을 불렀다. 데모대 힘은 바로 <아침이슬>의 우렁찬 울림에서 솟아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어느덧 김민기는 의식 있는 음악인으로 운동권투사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이에 반해 김민기는 정작 자신이 ‘투사’로 불리는 것을 꺼린다. 어느 날 TV회견 때 “아무 의도 없이 만든 노래가 운동권에서 자주 불린다고 해서 기관으로 끌려가 얻어맞기도 했지만 살아오면서 남들과 크게 싸워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노래를 부른 양희은은 가수입문 때 만난 김민기를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래서 1997년 김민기 헌정음반으로 <1997 아침이슬>을 내놨다.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김민기를 위한 것이었다. 김민기가 대중의 뇌에 울림을 만들어냈다면 대중의 가슴을 어루만진 사람은 바로 양희은이었다.음악인 김민기는 이제 한국적 뮤지컬창시자이자 연극·연출가, 기획자로 변신해있다. 해금 4년 만인 1991년 서울 대학로 뒤편에 극장(학전)을 만들어 지금껏 대표로 활동 중이다. 그가 무대에 올린 뮤지컬작품은 독일 원작의 ‘지하철 1호선’. 연출, 편곡, 작사는 물론 배우도 직접 뽑고 모진 합숙훈련도 했다.  원작자 루트비히는 “원작보다 낫다”고 했고, 중국 대표작가 위화(餘華)는 “한류의 정수”라고까지 치켜세웠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 아침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 한 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마산고·중앙대 신문방송학과·신문방송대학원을 나와 1979년부터 한국경제신문·일요신문, 뉴시스, 시사저널, 일요서울(편집국장) 등에서 언론계 생활을 하는 ‘기자가수’다. 남인수가요제에서 우수상을 받아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에 등록(865호)했다.취입곡으로 <이별 없는 마산항> <마산포 순정> 등이 있다.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8-08-22 00:00

주40시간 근무제가 한국 사회에 정착한지도 어느덧 4년이 지났다.근로시간은 줄어드는 반면 여가문화생활을 위한 시간은 늘고 있다.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과 비교할 때 2007년을 살아가고 있는 요즘 한국사람들은 정치나 경기불황과 같은 사회 공통 영역보다 취미·여가·쇼핑·재테크 등 개인적인 생활에 더 관심을 갖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이는 예전과 달리 악착같이 경제력을 축적하기보다는 취미와 여가생활을 통해 여유로운 생활을 추구하려는 현대인의 가치추구의 변화를 말해준다.우리 삶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기’라는 주제는 갈수록 중요한 이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예전의 인사말이 “식사하셨습니까?”에서 “부자 되세요.”그리고 요즘은 부쩍 “행복하세요.”라는 말을 많이 쓰는 것을 보면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여가를 위한 활동은 필요성이나 의무감에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벗어나 스스로 만족을 얻기 위한 자유로운 활동이다.더 넓게는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한 역할을 담당한다.한국인은 어떠한 여가문화를 즐기고 있으며 건전한 여가문화 소비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겨울 레포츠의 제왕 - 스키·보드겨울철 여가레저 활동으로 인기있는 것은 역시 스키와 보드이다. 하얀 설원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는 스릴과 통쾌함은 지친 심신에게 주는 즐거운 선물이 아닐 수 없다. 겨울이 아니면 즐길 수 없기에 마니아들은 더욱 손꼽아 겨울을 기다린다.장비의 발전과 동호회 등의 활성화로 최근 스키·보드마니아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올해도 800만 정도의 인구가 스키장을 찾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예전에는 스키인구가 대부분이었으나, 젊은이들의 보드 열풍으로 보드인구 역시 점차적으로 늘어나고 있다.스키는 다른 활동보다 활동량과 에너지 소비량이 많다. 따라서 심장·폐·혈관·근육 등 신체 전반적으로 운동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스키를 타면 생리적 기능의 활성화로 교감신경이 긴장하게 되고 신경계의 호르몬과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심폐기능을 촉진시킨다.또한 혈액내의 흐름이 증대되어 근육운동을 원활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 그리고 공급되는 혈류량이 증가하므로 말초신경 순환의 개선이 이루어진다.무엇보다도 자연속에서 이뤄지는 레포츠인 만큼 도시를 떠난데서 오는 해방감과 휴식을 하고 있다는 만족감이 스트레스 해소에 큰 역할을 한다. <준비물>[1] 스키복눈 위에 많이 넘어지므로 방수가 되는 옷은 필수. 스키복 안에 입는 상의는 얇은 폴라, 하의는 얇은 타이즈 정도면 된다. 기능성 속옷을 입으면 좋다.[2] 장갑 및 모자장갑은 보온 목적이기도 하지만 넘어졌을 때 부상을 막아주는 기능을 하니 매우 중요하다. 스키전용 장갑을 끼는 게 좋다. 모자는 귀를 덮을 수 있는 털모자가 좋다.[3] 선글라스 또는 고글흰눈에 반사되는 빛과 태양의 자외선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 선글라스를 이용한다. 고글은 고속 활강때 눈에 부딪히는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지만 초중급자까지는 선글라스를 써도 좋다.[4] 스키 또는 보드초보자인 경우 스키나 보드 등은 사는 것보다 빌려쓴 뒤 자신에게 스키가 맞을지 보드가 맞을지, 그리고 사이즈는 어떤 것이 좋을지는 고려하고 구입하는 게 좋다. [5] 스키전용레저보험매년 스키장을 찾는 인구 1000명당 4.5명의 부상자가 생긴다. 예방차원에서 보험에 드는 게 좋다. 스키 타는 기간에 따라 보장 일수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손해보험은 본인이 쓴 실비만을 보장받으므로 값이 싸고 중복해 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고로 인한 치료비를 보장해 주는 보험상품에 가입돼 있는 사람은 스키전용보험에 따로 가입할 필요는 없다.[6] 기타안전을 위한 보호대, 보온을 위한 마스크, 자외선 차단을 위한 썬크림, 여분의 양말, 스포츠타올, 비상약 정도를 준비하도록 한다.<TIP> 스키·보드복 관리* 스키·보드복의 방수 기능은 얇은 옷 소재에 얇은 방수막이 있기에 가능하다. * 기름때를 없애주는 드라이클리닝 세탁을 하면 방수기능이 크게 떨어진다. * 방수기능의 옷들은 세탁보다는 물걸레로 더러워진 곳을 닦아내는 것이 좋다.* 세탁을 해야 할 땐 20℃이하의 찬물에 중성세제를 써서 가볍게 손빨래 하는 게 좋다. 세제찌꺼기가 남아 있을 경우 기능성이 떨어지므로 충분히 헹궈줘야 한다. * 표백제나, 강력효소 세제, 유연제 등은 사용해선 안 된다. * 세탁이 끝나면 그늘에서 건조한다. 손빨래가 부담스럽다면 전문 세탁 업소에 맡기면 세탁 후 방수처리까지 다시 해준다.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8-08-22 00:00

무엇보다 고객의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자료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주어야 합니다. 요즘 고객들은 인터넷에서 많은 정보를 얻고 있어 일정부분 보험지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고객에겐 감동은 보다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는 것에 있습니다.”유퍼스트 동부지사에서 일하는 강성현 매니저는 다양하고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고객들의 신뢰를 쌓고 있다. 그는 고객에게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알려 주는 것이야 말로 고객감동 이라고  말한다.보험사들이 자사상품만 팔 수밖에 없는 한계를 뛰어넘는 방안을 강매니저는 유퍼스트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2년 전 외국계 전속사에서 떠난 그는 라이프스타일이 다른 고객들에게 한 회사 상품만을 가지고 맞춤 설계하기엔 모자란 면이 많다고 말한다. 암보장이 뛰어난 회사가 있고 성인병 질병보장이 잘되는 회사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17개사의 보험상품을 비교할 수 있고 손해보험상품과 생명보험상품을 함께 팔 수 있어 고객 여건에 따른 맞춤설계가 가능하다고 말한다.강 매니저가 근무하고 있는 유퍼스트는 GA(General Agency)사로 종합재무컨설팅 회사이다. GA는 보험사마다 계약을 맺고 보험상품과 펀드를 판매하는 일종의 보험 유통업체이다.그는 고객을 만나면 고객이 가입했던 증권과 가족력 질환부터 살핀다. 고객의 재무 설계 상태가 합리적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다. 성인병 질환을 앓았던 병력을 가진 가정은 그렇지 않은 가정보다 성인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그래야 고객이 들어야 하는 보험은 들지 않고 들지 않아도 되는 보험은 오히려 드는 실수를 줄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15일내 철회하면 보험료 반환 가능최근 재테크 열풍이 불면서 펀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특히 변액보험에 대해 관심을 갖는 고객 수가 예전에 비해 많이 늘었다고 그는 말한다.그는 변액보험상품이 수익률이 높은 상품이지만 장기간 투자해야 수익을 내는 상품이므로 분명한 투자목적과 장기투자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변액유니버셜 보험상품의 사업비 수수료는 다른 투자상품보다 높은 편이다. 하지만 가입기간 내내 원금과 이자에서 수수료를 떼는 적립식 펀드와 달리 10년 동안 원금에서만 수수료를 떼므로 10년 후의 목적자금 준비를 위해서는 변액유니버셜 보험이 더 유리하다.또한 그는 변액유니버셜보험상품은 일반 보험 상품과는 달리 투자상품으로서 모든 투자결과에 대한 책임이 고객에게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이밖에도 보장성 보험상품을 가입할 때는 설계사에게 의존하기보다는 본인 스스로 보장내역을 꼼꼼히 살펴야한다고 강조한다.만약 보험이 가입목적과 다르거나 불필요하다고 느껴 해지를 해야 할 경우 15일 이내에 청약 철회를 신청하면 납입했던 보험료를 돌려받을 수 있다. 15일 안에는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계약을 철회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그는 고객을 자신의 CEO라고 말한다. 고객이 가입한 상품에서 자신의 월급이 나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그는 “고객의 만족만이 이 길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라며 “고객이 만족할때까지 고객의 편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8-08-22 00:00

 ‘한 울타리 집 두 채’  실제로 살면 비과세 1가구 1주택 관련 양도소득세 비과세 요건과 규정 등을 잘 활용하면 절세와 이를 통한 재테크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양도세 비과세 규정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수요자들이 의외로 많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헷갈리는 부분이 적지 않은 까닭이다. 잘못 알고 있는 양도세 비과세 규정과 적절한 절세방안은 없는 것일까.보유기간 짧아도 비과세되는 경우집을 한 채 가진 경우 보유기간에 따라 양도세를 비과세 받을 수 있는 경우와 그렇지 못하고 세금을 내야하는 경우가 있다. 일반적으로 1가구 2주택의 사람이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받으려면 3년 보유요건(서울, 과천, 수도권 5대 신도시는 3년 보유에 2년 거주)을 채워야 한다.그러나 1년 이상만 갖고 있어도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식구 모두가 취학이나 근무상의 형편, 1년 이상의 질병요양과 같은 부득이한 사유로 다른 시·군으로 이사했을 때다. 이런 이유로 세대 전원이 다른 집을 옮기면서 기존 집을 팔 땐 양도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또 1가구 1주택을 1년이 안 되어 팔 땐 양도세 비과세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해외이주로 세대 모두가 출국하거나 1년 이상 계속 국외거주를 필요로 하는 취학 또는 근무상의 형편으로 세대 전원이 출국할 땐 비과세 혜택이 주어진다. 이 경우 출국 뒤 2년 내 기존 집을 팔면 양도세를 물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이 때 그 곳에 전혀 살지 않은 주택도 비과세 된다. 다만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세대 전원이 출국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또 다른 집을 추가 구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팔아야 한다. 양도세를 비과세 받지 못할 땐 실거래금액으로 양도세를 계산하며 적용세율은 50%(1년 미만 보유 때)이다.집을 각각 한 채씩 가진 남녀가 결혼해서 1가구 2주택이 됐을 때이다. 결혼한 날로부터 2년 안에 먼저 파는 집(1가구 1주택 비과세 요건을 갖춘 경우에 한함)에 대해 비과세 혜택이 주어진다. 또 집 한 채를 가진 세대주가 주택을 가진 60세(여자는 55세)이상의 직계존속(배우자의 직계존속 포함)을 모시기 위해 세대를 합침으로써 1가구 2주택이 된 경우가 있다. 이 땐 합친 날로부터 2년 내 먼저 파는 집에 대해선 양도세가 나오지 않는다.상속 집 무조건 비과세 되나집 한 채를 상속받은 경우로 일반주택을 먼저 팔 때와 상속주택을 먼저 양도하는 경우가 있다. 일반주택을 먼저 파는 경우 상속받은 집은 일반주택의 1가구 1주택 비과세 여부 판정 때 주택 숫자에 넣지 않는다. 따라서 일반주택이 양도일 현재 비과세 요건을 갖추기만 하면 비과세 된다.그러나 상속받은 집을 먼저 팔 땐 양도세를 물게 된다. 따라서 상속받은 집이라도 일반 주택과 마찬가지로 양도 때 1가구 1주택 비과세 요건을 갖춰야 한다. 이밖에 한 울타리 안에 집이 두 채가 있어도 한 세대가 주거용으로 모두를 쓰고 있다면 1가구 1주택으로 보고 비과세 된다. 그러나 집 두 채를 따로 팔면 양도세를 피해갈 수 없다.또 입찰에서 경락된 부동산도 양도한 것으로 본다. 경매로 부동산이 넘어갔더라도 팔린 것으로 취급받아 양도세를 내야하는 것이다. 일반인들은 정상 매매거래를 한 경우에만 양도가 성립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때문에 경락된 부동산은 양도가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경매로 부동산이 넘어간 경우 그 부동산 값을 직접 받고 판 게 아니더라도 그에 따른 빚을 면하게 되므로 양도에 해당된다. 따라서 양도세를 내야 한다.(세무상담 전화 = 02-735-2177)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8-07-31 00:00

노사연 <만남>“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만추이다. 가을걷이와 겨울을 준비하는 농부의 손길이 바쁘다. 결실을 계절을 맞아 갖가지 만남들도 잦다. 야유회, 등산대회, 체육대회 등에서 삶의 풍요로움과 즐거움이 어우러진다. 그런 모임에선 “우리 만남은 우연히 아니야~”로 나가는 노사연의 <만남>노래가 곧잘 불린다. 부르기 쉬고 노랫말 뜻이 깊어 여러 모임에서 자주 애창되는 대중가요다. 1948년 우리나라 정부수립 후 대중음악 50년 사 베스트 50곡 중 40위에 오른 작품이기도 하다. <만남>이 만들어진 건 1986년. 21년 전이다. 그러나 대중에게 발표된 건 그로부터 3년 뒤인 1989년. 이 노래와 함께 모임 때 자주 불리는 해바라기의 <사랑으로>와 비슷한 시기에 나온 것이다.작곡가는 ‘노래 문외한’ 막내 이모부 <만남> 작곡가는 최대석 씨. 노래를 부른 노사연의 막내 이모부다. 미국서 사업을 하는 최 씨는 노래엔 문외한으로 알려져 흥미롭다. 4분의 4박자, 슬로우 록의 이 노래 작사가는 박신. 노래는 노사연이 많은 사람들과의 적극적 만남을 통해 가수가 됐다는 것을 잘 아는 작사가·작곡가의 합작으로 태어났다. 마치 <만남> 가사처럼 말이다.1978년 단국대 성악과 2학년생 신분으로 MBC주최 제2회 대학가요제에 출전, <돌고 돌아가는 길>(김욱 작사·작곡 / 4분의 3박자, 왈츠 곡)로 금상을 받아 가수가 된 노사연은 <만남>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무명에 가까웠다. 공부와 노래를 겸해야하는 학생가수신분인데다 이렇다 할 곡마저 내놓지 못해서였다. 특히 대학 신입생 시절 첫 미팅 때 자신의 뚱뚱한 몸매를 본 남학생들이 던진 모멸감의 말로 충격 받아 결행한 무리한 살빼기에서의 후유증도 한 요인이었다. (노사연은 태어났을 때 4.8kg로 우량아였다.)그런 가운데 노사연이 가요제 입상 뒤 얼마 지나지 않았을 어느 날 담당교수가 그를 불렀다. “성악을 하든지, 가요를 하던지 택하라!”는 경고를 내린 것이다. 1977년 1월 경희대 성악과를 지망했지만 떨어져 2차인 단국대 성악과에 2등으로 합격, 학교를 다녔지만 클래식보다 가요 쪽을 택해 가수 길을 걷고 있었던 터라 그는 전과를 결심했다. 어릴 때 이모인 대중가수 현미를 동경, “노래를 해볼까”하고 대학가요제를 지원해 입상한 그로선 중대한 선택이었다. 국문학과로 옮긴 노사연은 1983년 발표한 <님 그림자>(김욱 작사, 작곡 / 4분의 4박자, 트로트곡)를 부르며 가수활동을 계속했다. 하지만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가창력은 어느 정도 인정받았으나 인기인 대열에 끼지 못한 것이다. 초대받은 행사장에서 다른 여자가수들에게 출연순서를 빼앗기는 등 자존심 상하는 일도 많았다. 개그맨 저리가라 할 만큼 웃겨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노래하면서 장기인 재치·개그·유머로 부족함을 메워갔다. 10년의 무명시절을 보내던 그에게 드디어 기회가 왔다. <만남> 취입과 방송출연이 그것이다. 노래를 부르며 활동하던 어느 날 MBC-TV “일요일 일요일 밤에”프로그램에 나가게 됐다. 음반이 나온 지 한참 뒤의 일로 거기서 첫사랑인 여고 체육선생님과의 만남 얘기, “노사연! 너를 쭉 지켜봤는데… (아! 두근두근, 쿵쿵) 너 혹시…. 투포환 안 해볼래?”로 뒤집어지는 인기를 끌었다. ‘개그맨, 코미디언은 저리 가라’고 할 정도로 관중들을 웃겼다. 그를 처음 보거나 잘 몰랐던 사람은 가수보다 개그맨으로 여기기까지 했다. 그 이후 사람들이 자신을 점점 어려워하며 자꾸 존댓말을 쓰더니 급기야는 상석으로 앉히더라고 했다. 노사연의 꾸밈 없는 모습에 <만남> 노래의 인기가 치솟은 것이다. 1992년 <만남>으로 가수왕에까지 올랐다. 노랫말 구절처럼 “우연”이 아니라 그것은 가수데뷔 10년만의 “바람”이었다.그는 1957년 3월 3일 경남 마산시 오동동에서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 노양환 씨(1987년 작고), 어머니 김화선 씨(평양출신으로 북한 원로무용가 최승희 제자) 사이의 2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6살 때 부친 근무지 이동에 따라 강원도 화천으로 이사 가 그곳에서 자랐다. 화천초등·중학교를 거쳐 화천실업고 1학년을 다니다 춘천여고에 재입학했을 정도로 공부를 잘 했다. 그는 요즘 남편(가수 이무송)과 가끔 무대에 선다. KBS-1TV 주말 밤 음악 프로그램인 ‘콘서트 7080’에 부부가 나와 열창하기도 했다. 이들 부부는 기독교 신자로 어린 아들과 함께 교회에 다닌다. 그 곳에서 가족 합창으로 노래를 부르며 신앙 간증을 하기도 해 눈길을 끈다. 인기 연예인 가족에다 구김살 없는 노사연의 구수한 입담까지 곁들여져 신자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 올 한해도 결혼, 미팅, 입학, 입사 등 만남의 의례들이 줄을 이었다. 우리들 삶은 어떻게 보면 노사연의 노래 <만남>처럼 만남의 연속이 아닐까? 마산고·중앙대 신문방송학과·신문방송대학원을 나와 1979년부터 한국경제신문·일요신문, 경남도민일보, 뉴시스, 시사저널 등에서 언론계 생활을 하는 ‘기자가수’다. 남인수가요제에서 우수상을 받아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에 등록(865호)했다. 취입곡으로 <이별 없는 마산항> <마산포 순정> 등이 있다.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8-07-29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