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먼저 계산하고 국민이 확인하는 세정, 이재명 정부가 시작해야 한다!
[조연행 / 금융소비자연맹 회장 ] 이재명 정부가 복지행정의 신청주의를 바꾸고 있다. 국민이 신청해야 지원하는 방식에서, 정부가 대상자를 찾아 필요한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아동수당과 부모급여 등 일부 복지급여의 자동지급과 위기가구에 대한 직권신청 확대는 이러한 변화의 출발점이다. 정부가 가진 정보를 활용해 국민의 수고를 줄이겠다는 방향은 옳다.
그렇다면 세금 행정도 같은 질문 앞에 서야 한다. 정부가 이미 확보한 정보를 국민에게 다시 정리하고 제출하도록 요구하는 제도는 언제까지 유지할 것인가. 복지에서 신청주의를 개선한다면, 세정에서도 납세자가 모든 것을 계산하고 신고해야 한다는 관행을 혁신해야 한다.
납세는 국민의 의무다. 그러나 복잡한 세법을 공부하고, 정부가 보유한 자료를 다시 모아 신고서를 작성하는 부담까지 당연한 의무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성실하게 세금을 내겠다는 국민에게 국가는 가장 쉽고 정확한 납세 방법을 제공해야 한다. 연말정산부터 보자. 근로자는 국세청 간소화 자료를 확인하고, 공제 요건을 판단하고, 필요한 자료를 회사에 제출한다. 회사는 이를 바탕으로 세액을 정산한다.
국세청이 근로자의 동의를 받아 자료를 회사에 직접 제공하는 일괄제공 서비스도 이미 마련돼 있다. 자료 전달의 불편을 줄이는 진전이지만, 국민이 공제 요건과 계산 결과를 이해해야 하는 부담까지 해소한 것은 아니다. 이제 자료 제공을 넘어 세액 계산까지 정부가 먼저 책임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국세청이 확인 가능한 소득과 공제 자료를 활용해 예상 납부액이나 환급액을 제시하고, 근로자는 누락된 사항과 변경된 정보만 확인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해마다 같은 자료를 옮기고 같은 절차를 반복하는 데 국민의 시간을 써야 할 이유가 없다.
부가가치세도 마찬가지다. 전자세금계산서와 카드매출, 현금영수증 등 과세에 활용할 수 있는 정보가 전산으로 축적되는 시대다. 그런데도 사업자는 신고 기간마다 자료를 대조하고 세무대리 비용을 부담하며, 혹시 잘못 신고하지 않았는지 걱정한다. 영세사업자에게는 세금 자체만큼이나 신고 과정이 큰 부담이다.
물론 국세청이 모든 과세정보를 완벽하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업 관련 비용인지, 공제할 수 있는 매입인지, 별도로 확인해야 할 거래인지 등 납세자의 설명과 자료가 필요한 부분도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알고 있는 부분은 먼저 계산하고, 모르는 부분만 국민에게 확인하는 방식이 합리적이다. 일부 정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계산과 신고의 부담 전체를 납세자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개혁의 방향은 분명하다.
'납세자가 작성하고 국세청이 검증하는 방식’에서 ‘국세청이 작성하고 납세자가 확인하는 방식’으로 전환하자.** 국세청이 확보한 자료로 세액을 계산한 뒤, 과세 근거와 납부·환급 예정액을 알기 쉽게 통보해야 한다. 납세자는 충분한 검토 기간에 누락된 공제나 잘못된 거래 내역을 수정하고 의견을 제출할 수 있어야 한다.
법률로 정한 절차에 따라 통지가 제대로 전달되고, 필요한 자료가 갖춰진 경우에는 별도 신고 없이 예정 세액이 확정되도록 제도를 설계할 수 있다. 핵심은 국민에게 새로운 확인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수정 사항이 없는 국민은 복잡한 신고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납세를 마칠 수 있어야 한다. 환급받을 세금도 같은 원칙으로 처리해야 한다.
정부가 받을 돈은 먼저 찾아내면서 국민에게 돌려줄 돈은 신청해야만 지급하는 불균형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납세자의 권리는 더욱 두텁게 보장해야 한다.
통지를 받지 못했거나 디지털 이용이 어려운 사람의 침묵을 동의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정부 계산의 오류를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이유만으로 납세자에게 가산세 부담을 떠넘겨서도 안 된다. 수정과 불복의 기회를 보장하고, 고의적인 은폐와 정부 자료의 오류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단순한 근로소득자와 거래 구조가 명확한 소규모 사업자부터 시작하면 된다.
복잡한 거래는 추가 확인 절차를 두고, 자료의 정확성과 제도의 성과를 검증하면서 대상을 확대하면 된다. 모든 세목을 한꺼번에 바꾸기 어렵다는 사정이 아무것도 바꾸지 않을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세정의 성과도 달라져야 한다. 얼마나 많은 세금을 걷었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국민의 신고 시간과 비용을 얼마나 줄였는지 평가해야 한다.
국세청 업무가 간편해진 만큼 국민의 업무도 간편해져야 디지털 행정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재명 정부가 실용정부를 지향한다면, 국민이 매년 되풀이하는 이 불편부터 해결해야 한다. 세금을 깎지 않고도 국민의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개혁이다. 성실납세를 쉽게 만들고 행정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개혁이기도 하다.
복지에서는 정부가 먼저 국민을 찾아가고, 세금에서는 정부가 먼저 계산해 알려주는 나라로 가자. 국민은 정확하게 납세하고, 정부는 편리하게 납세할 수 있도록 책임지는 것. 이것이 이재명 정부가 추진해야 할 납세혁명이다.(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