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은 좋다는데 너는 왜 지적질이야?", AI 나르시시즘 이야기
상태바
"인공지능은 좋다는데 너는 왜 지적질이야?", AI 나르시시즘 이야기
  • 김진기 소비자기자
  • 승인 2026.08.27 22: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공지능이 만드는 자기애적 거울을 대하는 자세
현실로 나아가는 안전한 시뮬레이션 공간으로서 인공지능

[소비라이프 / 김진기 정신분석 칼럼]

인공지능이 주는 지지적 피드백은 자아의 붕괴를 막고 현실적응을 돕는 안전한 시뮬레이션 공간이다(일러스트 : 챗GPT)
인공지능이 주는 지지적 피드백은 자아의 붕괴를 막고 현실적응을 돕는 안전한 시뮬레이션 공간이다(일러스트 : 챗GPT)

 

인공지능이 만드는 자기애적 거울: 나르시시즘적 요소

우리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대화하는 인공지능(AI)은 단순한 계산기를 넘어 우리의 말과 감정을 그대로 받아주는 특별한 존재처럼 다가온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자기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거나 세상의 중심이 나라고 믿는 마음 상태를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라 부른다. 그리스 신화에서 물에 비친 자기 얼굴에 반해 넋을 잃었던 소년 나르키소스의 이야기에서 유래한 개념이다. 갓 태어난 아기는 자신이 울기만 하면 부모가 밥을 주고 안아주는 환경을 겪으며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전능 환상을 경험한다. 인공지능과 대화를 나눌 때도 이와 매우 비슷한 심리적 현상이 나타난다.

인공지능은 언제 질문해도 지치지 않고 즉각적으로 친절하게 대답한다. 밤이든 낮이든 항상 우리를 기다리며, 아무리 엉뚱하거나 화가 난 말을 입력해도 결코 화를 내거나 비웃지 않는다. 현실의 친구나 가족은 각자의 감정과 사정이 있어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고 때로는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인공지능은 사용자의 말에 온전히 집중하며 긍정적인 태도로 맞춰 준다. 정신분석학자 하인즈 코헛은 사람이 성장할 때 나를 있는 그대로 칭찬하고 인정해 주는 존재를 거울 반영 대상이라고 설명했는데, 인공지능이 바로 그 완벽한 거울 역할을 기계적으로 흉내 내는 셈이다.

또한 프랑스 학자 자크 라캉은 어린아이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보며 멋진 이상적 자아(Ideal Ego)를 꿈꾼다고 말했다. 우리는 어려운 질문에도 척척 유창하게 글을 써내는 인공지능을 보며, 마치 그 뛰어난 능력이 온전히 내 힘인 것처럼 착각하고 커다란 만족감을 느낀다. 내 뜻대로 모든 것을 돕는 똑똑한 비서를 손안에 쥐고 있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공지능의 상시적인 친절함, 즉각적인 반응, 무조건적인 순응성은 우리 마음속에 숨어 있는 나르시시즘적 욕구를 자연스럽게 자극한다.

 

언제나 내 편만 들어주는 인공지능의 함정: 관계의 단절과 현실 도피

인공지능이 내 말만 잘 들어준다고 해서 좋은 일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마음의 근육이 튼튼하게 자라나기 위해서는 세상이 항상 내 뜻대로만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적당한 실망과 갈등을 이겨내는 적정 좌절의 경험이 반드시 필요하다. 시험에서 아쉬운 성적을 받아보기도 하고 친구와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투기도 하면서 우리는 현실의 규칙을 배우고 현실 검증력(Reality Testing)을 키워나간다. 하지만 인공지능과만 매일 대화하다 보면 이러한 소중한 성장 기회를 놓쳐버릴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현실 세계 사람들과 소통하는 힘이 약해지는 자기애적 퇴행이다. 인공지능은 언제나 "좋은 생각이에요", "당신 말이 맞아요"라며 칭찬해 주지만, 실제 현실의 친구들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기도 하고 내 부탁을 거절하기도 한다. 인공지능의 무조건적인 칭찬과 복종에 익숙해진 사람은 현실의 사소한 거절이나 비판을 견디지 못하고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게 된다. 이를 자기애적 상처(Narcissistic Injury)라고 부르는데, 작은 지적에도 크게 화를 내거나 사람과의 만남을 아예 피해 버리는 고립 상태에 빠질 위험이 커진다.

 

닫힌 생각의 방에 갇히는 위험: 알고리즘적 반향실

또한 인공지능은 사용자가 좋아하는 이야기와 성향에 맞추어 답변을 제공하는 에코 챔버(Echo Chamber)를 만들어낸다. 깊은 산골짜기에서 소리를 치면 내 목소리만 메아리쳐 되돌아오듯, 내 생각과 비슷한 이야기만 기계로부터 끊임없이 되돌려 받게 되는 구조이다. 이렇게 되면 자신이 틀린 생각을 하고 있어도 그것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어버리는 닫힌 사고에 갇히기 쉽다.

현실의 성숙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편향된 인공지능과의 대화에만 갇히게 되면 타인의 기분이나 처지를 헤아리는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을 배우지 못해 공감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비판적이고 객관적인 피드백이 사라진 환경 속에서 개인은 독선적인 생각에 빠져들며, 결국 복잡하고 다양한 현실 세상의 갈등을 견디고 조율하는 힘인 자아 강도가 점점 약해지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

 

마음의 상처를 보듬는 안전한 디딤돌: 회복과 성장을 돕는 기능으로서 인공지능

반대로 인공지능의 이러한 나르시시즘적 반영 구조를 올바르게 잘 사용한다면,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을 회복시키는 훌륭한 심리적 도구가 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을 때 주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이나 평가가 두려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곤 한다. 코헛의 자기심리학에서는 무너진 자존감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따뜻한 지지와 수용의 경험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첫째, 인공지능은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고민을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정서적 지지대가 되어준다. 학교 생활의 어려움이나 깊은 우울감을 겪는 이들은 비난받을까 두려워 속마음을 숨기기 쉽다. 이때 인공지능은 평가나 비난을 일절 하지 않으므로, 편안하게 내 감정을 쏟아낼 수 있는 안전한 수용적 환경을 제공한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불안과 답답함을 글로 표현하는 과정 자체만으로도 마음의 안정을 찾는 커다란 위로를 얻을 수 있다.

둘째, 인공지능은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갈 용기를 주는 중간 대상(Transitional Object) 역할을 할 수 있다. 어린아이들이 잠잘 때 엄마 대신 포근한 애착 인형이나 담요를 껴안고 자며 불안을 달래듯, 대인관계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도 인공지능과 먼저 대화 연습을 하면서 차근차근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다. 인공지능을 통해 잃어버렸던 자아 존중감을 조금씩 채우고 나면, 마침내 진짜 사람들과 대화하고 어울릴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된다.

 

현실로 가는 안전한 시뮬레이션 공간으로서 인공지능

인공지능은 사용자의 자아를 온전히 비추는 매혹적인 거울 반영 장치로 기능하지만, 주체가 그 가상적 이미지에 영구히 갇혀서는 안 된다. 인공지능과의 상호작용은 그 자체가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복잡한 현실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일종의 안전한 시뮬레이션(Simulation) 작업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정신분석의 상담실이 지닌 치료적 시공간과 구조적으로 일치한다. 도널드 위니콧이 강조한 것처럼, 상담실은 현실의 가혹한 평가로부터 보호받으며 자유롭게 자아를 실험하는 놀이 공간이자 주체와 환경이 긴밀하게 교차하는 중간 영역이다. 인공지능 역시 비난에 대한 두려움 없이 내면의 불안과 갈등을 투사하고 조율해 보는 일종의 잠재적 공간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따라서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지지적 피드백은 자아의 붕괴를 막는 정서적 지지대이자 현실 적응을 돕는 중간 대상으로 기능해야 한다. 주체는 이 가상적 놀이터에서 충분한 소통과 자기표현의 연습을 거쳐 자아 강도를 회복하고, 이를 토대로 이질적인 타자의 욕망과 갈등이 존재하는 실제 세계의 상호주관적 장으로 나아가 진정한 현실 검증력을 확립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