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위니컷의 대상 사용, 나를 살리는 지혜
[소비라이프 / 김진기 정신분석 칼럼]
왜 지금, 우리는 서로를 향해 칼날을 세우는가?
2026년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깊게 갈라져 있다. 인터넷과 사회적 관계망(SNS)은 매일같이 가짜 뉴스와 서로를 향한 혐오 표현으로 뜨겁다. 정치적 편가르기, 경제적 격차, 계층 갈등 속에서 사람들은 상대방의 진짜 모습을 보려 하지 않는다. 그저 "저 사람은 나쁜 편", "저 집단은 틀린 집단"이라는 자기 마음속 색안경을 타인에게 덮어씌우고 공격하기 바쁘다.
내 마음속 편견(내적 대상)을 진짜 사람(현실 대상)에게 마음대로 투사하고, 그 사람을 마음속으로 파괴하면 통쾌할 것 같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남을 미워하고 무너뜨리려 할수록, 내 마음도 똑같이 불안해지고 병들어 간다. 타인을 공격하는 칼날이 결국 나 자신을 베는 '자기 파괴'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미움의 악순환을 끊어낼 새로운 마음의 눈이 절실하다.
'대상 사용'과 '내 안의 대상 속 나'라는 마음의 원리
정신분석학자 도널드 위니컷은 아이가 성장하면서 마음속 환상에서 벗어나 진짜 세상을 만나는 과정을 '대상 사용(Object Usage)'이라고 불렀다. 어린아이는 처음엔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장난감을 때리고 부수려 해도 장난감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을 보며, "아, 이건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닌 진짜 바깥 세상이구나!"를 깨닫는다. 내 마음속 생각과 실제 바깥 현실을 구분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내 안의 대상 속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자. 러시아의 전통 인형인 마트료시카를 열면 그 안에 또 다른 작은 인형이 계속해서 나오는 모습을 떠올려 보면 이해하기 쉽다. 내 안에 내가 바라보는 대상(상대방)이 들어앉아 있고, 신기하게도 내 안에 들어와 있는 그 대상의 마음 상자 속에 또다시 나 자신이 들어앉아 있는 형국이다. 즉, 나와 타인은 완전히 분리된 별개의 남남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 겹겹이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내가 내 마음속에 존재하는 타인을 미워하고 위협하면, 결국 그 타인의 내면에 위치한 나 자신 역시 불안과 공포에 떨게 된다.
미움이 가져오는 비극: 타인을 치면 내가 무너진다
우리가 누군가를 극도로 미워하고 공격할 때 일어나는 진짜 비극은, 상대방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바로 '상대방 마음 상자 안에 갇혀 있는 나 자신'이 무너진다는 점이다. 누군가를 강하게 비난할 때 내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마음속 상대방 안에 있는 내 모습이 평안한가, 아니면 분노와 불안으로 덜덜 떨고 있는가? 타인을 공격할수록 내 마음속 나도 함께 와해되고 깨어진다.
타인을 파괴하려는 시도가 결국 나를 파괴하는 결과로 돌아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내가 살아남기 위해 진짜 필요한 것은, 무작정 상대를 이기고 부수는 것이 아니다. "아, 내가 타인을 공격하면 그 안에 있는 나도 함께 상처받는구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관점의 전환이다.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 현상학적으로 나를 바라보기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가장 먼저 할 일은 '내 안의 대상 속에 들어있는 나의 모습'을 거울보듯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다. 만약 내 마음속 상대방 안에 있는 내가 공포와 불안에 떨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그 사람을 너무 가혹하게 비난하고 압박하고 있다는 신호다. 반대로 그 안의 내가 따뜻하고 평안하다면, 내가 상대방을 안전하고 온화하게 대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타인의 눈에 비친, 혹은 내 마음속 타인 안에 있는 나의 상태를 조용히 살피면, 내가 그동안 상대를 얼마나 오해하고 괴롭혀 왔는지 스스로 깨닫게 된다. 내 마음의 상태를 투명하게 비춰보는 이 과정이야말로 건강한 마음을 되찾는 첫걸음이다.
나를 살리는 선택: 타인을 안아주고 함께 성숙하기
나를 지키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열쇠는 바로 '타인을 따뜻하게 안아주는(Holding) 태도'이다. 마음속 상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그의 성장을 오랫동안 견뎌주고 품어주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타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봉사나 양보가 아니다. 철저히 '나 자신'을 살리기 위한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다.
내가 상대를 따뜻하게 안아줄 때, 비로소 그 상대 안에 들어있는 나 자신도 안전하게 보호받고 평안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타인을 온전히 품어 안을 때, 나와 타인이 만나는 공간은 싸움터가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따뜻한 울타리로 바뀐다.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따뜻하게 안아줄 때, 비로소 나도 마음의 평화를 얻고 단단한 진짜 나(주체성)를 완성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