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라이프 기획취재] "평생 창문 닫고 살라는 정부"… 주택 공급 속도전에 희생된 소비자 '주거권'
상태바
[소비라이프 기획취재] "평생 창문 닫고 살라는 정부"… 주택 공급 속도전에 희생된 소비자 '주거권'
  • 김현식
  • 승인 2026.04.16 16: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음 측정을 실내 소음으로 대체하면 주거 품질 저하와 소비자 선택권 제한
소음 저감 설계 등 의무화 필요

[소비라이프 / 김현식 기자]
국토교통부와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주택 공급 확대를 이유로 공동주택 소음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개정안을 내놓아 주거 소비자들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방음벽 설치 등 근본적인 소음 대책 대신 '창문을 닫고 생활하라'는 식의 땜질식 처방으로, 결국 건설사의 편의만 봐주고 국민의 삶의 질은 추락시킬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파트의 신속한 공급보다 소음 공해를 피한 주거 공간의 삶의 질을 높이는 주택 공급 추진이 더 중요하다는 시민 단체의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러스트 : 구글 제미나이 )
아파트의 신속한 공급보다 소음 공해를 피한 주거 공간의 삶의 질을 높이는 주택 공급 추진이 더 중요하다는 시민 단체의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러스트 : 구글 제미나이 )

30만㎡ 면적 제한 폐지… "창문 닫으면 합격" 꼼수 전면 허용

국토교통부는 주택건설 과정의 규제를 합리화한다는 명목으로 지난 2월 10일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공동주택 6층 이상 고층부에 적용되던 '실내소음도 대체 기준'의 면적 제한(기존 30만㎡ 미만)을 완전히 폐지하는 것이다.

현행법상 주택은 원칙적으로 실외소음 65dB 미만을 충족해야 한다. 그러나 6층 이상은 방음벽 증설 한계 등 현실적 제약을 고려해, 창문을 비개방한 상태에서 측정한 실내소음이 45dB 이하이면 기준을 통과한 것으로 대체 허용해 왔다.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대규모 신도시나 대단지 아파트 건설 시에도 도로변 소음을 막기 위한 충분한 이격거리 확보나 방음벽 설치를 회피할 수 있는 꼼수가 전면적으로 허용된다. 나아가 기후에너지환경부 국토환경정책과와의 협업을 통해, 환경영향평가 시에도 완화된 주택법령 상의 소음기준을 고려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개편하며 부처가 합심해 규제 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소비자 단체, "심각한 주거권 침해" 즉각 반발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에 소비자 단체들은 강력하게 규탄하고 나섰다. 소비자와함께, 금융소비자연맹 등 전국 단위 소비자 단체들로 구성된 '한국소비자단체연합'은 4월 16일 국토교통부 장관과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 앞으로 공식 항의 공문을 발송했다.

연합회는 공문에서 "소음 측정을 실내 소음으로 대체하는 것은 주거 품질 저하와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하는 심각한 부작용이 예상된다"며 개정안이 소비자의 주거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개정안의 독소 조항 지적 및 전면 재검토를 강력히 요구하기 위해, 국토부 주택정책관실 주택건설운영과와 기후부의 국토환경정책과에 공식적 방문 및 간담회를 요청한 상태다.
 

환기 부족·혈세 낭비… 예견된 재앙

'창문 비개방'을 전제로 한 소음 규제 완화는 단순히 시끄러운 문제를 넘어, 다방면에서 주거 소비자의 삶을 위협하는 결과를 낳는다.

  • 호흡기 건강 위협 및 경제적 부담: 쾌적한 자연 바람을 포기하고 사시사철 창문을 닫고 지내야 한다면 실내 공기질 악화는 불 보듯 뻔하다. 결국 입주민은 기계식 환기 장치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며, 이는 전기요금 상승 등 고스란히 소비자의 유지비 부담으로 전가된다.

  • 막대한 혈세 낭비 악순환: 집 짓기 편하라고 소음 기준을 눈감아주면, 피해는 지자체와 정부의 몫으로 돌아온다. 입주 후 견디다 못한 주민들의 소음 민원이 빗발치면, 결국 수백억 원의 세금을 투입해 뒤늦게 방음터널이나 고도 방음벽, 방음림 등을 설치해야 하는 혈세 낭비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 역행하는 글로벌 스탠더드: 해외의 사례를 보아도 이번 개정안은 시대착오적이다. 영국과 네덜란드 등 선진국들도 과거 주택 공급 속도를 높이기 위해 소음 규제를 무시했다가, 국민의 건강권 악화라는 부작용을 깨닫고 다시 규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을 선회한 바 있다.

대안: "건설사 원가 절감이 아닌, 주거 품질 향상이 먼저다"

정부는 주택 공급의 숫자와 건설사의 시공 편의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쾌적하게 거주할 수 있는 '주거 품질 확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재응 교수(중앙대 기계공학부 명예교수)는 '주택건설기준 개정안'의 실외소음 규제 완화가 거주민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비판했다. 소음 환경을 개선하는 대신 소음 기준을 낮춰 건설사들의 규제를 풀어주면 장기적으로 주거 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교수는 단순히 입주민에게 창문을 닫으라고 강요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대안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 대안은 여론수렴이나 국회세미나 등을 통해서라도 적극적 대안 모색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 소음 저감 설계 의무화: 단지 배치 시 소음원으로부터 이격거리를 훼손할 것이 아니라, 건축물 자체의 외장재나 창호 구조에 고도화된 방음 기술 적용을 의무화해야 한다.

  2. 발생원 중심의 소음 억제: 주택단지로 전가되는 소음을 줄이기 위해, 도로 포장재를 소음흡수 재질로 개선하거나 철도 소음 저감 장치 등 발생원 자체의 소음 배출 기준을 엄격하게 강화하는 환경 정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3. 지형적 특성을 반영한 유연한 평가: 일괄적인 규제 해제가 아닌, 지역별 기후와 풍향, 주변 도로 사정을 고려한 세밀한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맞춤형 소음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주택은 단순한 콘크리트 상자가 아니라 소비자가 일상에서 숨 쉬고 휴식하는 기본적인 삶의 터전이다. 속도전을 이유로 국민의 귀를 막고 창문을 닫게 만드는 이번 개정안은 전면 철회되어야 마땅하다는 의견이 반영되어야 한다.
 

한국소비자단체연합 미디어본부장
penholder3@gmail.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