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시인 이은상이 얘기 듣고 작시
짝사랑했던 여학생 떠올리며 만든 국민가곡 ‘동무생각’
대구출신 박태준 작곡, 마산출신 이은상 작시(作詩) 1922년 발표
교과서 수록, 학생들 애창곡…2009년 6월 대구 동산동에 노래비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더운 백사장에 밀려 들오는 저녁 조수 위에 흰 새 뛸 적에
나는 멀리 산천 바라보면서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저녁 조수와 같은 내 맘에 흰 새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떠돌 때에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서리 바람 부는 낙엽동산 속 꽃 진 연당에서 금새 뛸 적에
나는 깊이 물 속 굽어보면서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꽃 진 연당과 같은 내 맘에 금새 같은 내동무야
네가 내게서 뛰놀 때에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소리 없이 오는 눈발 사이로 밤의 장안에서 가등 빛날 때
나는 높이 성궁 쳐다보면서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밤의 장안과 같은 내 맘에 가등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빛날 때에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이은상(1903년 10월22일~1982년 9월18일) 작시(作詩), 박태준(1900년 11월22일~1986년 10월20일) 작곡의 ‘동무생각’은 정겨운 가곡이다. 아름다운 노랫말, 부드러운 멜로디가 돋보이는 이 노래는 4분의 4박자 리듬으로 생동의 계절 봄에 어울리는 곡이다.
‘동무생각’이 만들어진 배경엔 경남 마산출신 문인이자 사학자인 이은상, 대구출신 작곡가 박태준이 관련돼 있다. 더욱이 박태준이 노래 중심에 있다. 작곡도 했지만 노랫말 속의 동무가 옛 학창시절 짝사랑했던 여학생이다.
백합처럼 아름다운 미녀 여학생
박태준은 기독교집안에서 태어나 개신교계 재단이 운영하는 대구계성중학교에 다녔다. 음악에 관심을 가져 졸업 후 대구제일교회 오르간연주자가 됐다. 그는 숭실전문학교에서 음악을 전공, 1921~23년 마산창신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때 이은상은 같은 학교 국어선생이었다. 비슷한 연배의 둘은 친했다. 만나면 옛 추억도 떠올리며 얘기꽃을 피웠다. 어느 날 박태준은 학창시절 얘기를 했다. 1911~16년 계성중학교에 다닐 때 대구 제일의 명문인 대구공립여자보통학교 여학생을 사모했다는 것. 그녀는 백합처럼 아름다웠다. 그러나 박태준은 내성적인 탓에 말 한마디 붙여보지 못했고, 그녀는 졸업 뒤 일본으로 유학 갔다.
이은상은 그 얘기를 듣고 “잊지 못할 소녀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켜 곡 안에 담아두면 박 선생 소원이 이뤄지는 게 아니냐. 가사를 써줄 테니 곡을 붙여보겠느냐?”며 시를 써서 건넸다. “그러겠노라”고 한 박태준은 곡을 만들었다. 대구 학창시절 학교를 오갈 때 자신의 집 앞(현 섬유회관 부근)을 지나던 그 여학생을 잊지 못했던 그 옛날의 짝사랑이 노래작곡동기가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1922년 발표된 곡이 ‘동무생각’이다. 노래는 나오자마자 널리 퍼져 삽시간에 젊은이들 애창곡이 됐고 국민가곡으로까지 유명해졌다. 전반부의 동요풍에서 후반부의 변박자에 이르러 감정을 뜨겁게 한 대목이 끌리게 만들었다.
노래 원래 제목은 ‘사우(思友)’
노래의 원래 제목은 친구를 생각한다는 ‘사우(思友)’였으나 ‘동무생각’으로 바뀌었다. 청년 박태준의 로맨스가 담긴 노래는 음악교과서에 실려 학생들이 즐겨 불렀다. 봄이면 방송 등을 통해서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박태준이 살던 대구시 동산동은 동산이 있어 붙여진 지명이다. 그곳엔 3명의 미국 선교사 사택(2층 양옥)이 있었다. 그들이 갖고 와 우리나라 최초로 심은 사과나무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그 사과나무의 자손나무가 서있다. 대구가 ‘사과의 고장’으로 불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지방유형문화재로 등록된 선교사들 집은 담벼락에 담쟁이넝쿨이 휘감아 올라 고풍스런 멋을 자랑한다. 노랫말에 나오는 ‘청라언덕’이란 푸를 ‘청(靑)’, 담쟁이 ‘라(蘿)’를 써서 박태준이 살던 옛 동네언덕을 가리킨다. ‘청라’는 지금도 푸른 담쟁이로 뒤덮은 동산병원 내 선교사 사택일대 언덕을 말한다. 언덕길은 여러 갈래가 있으나 대구 계산성당에서 길을 건너 대구제일교회가 바라보이는 정면에서 왼쪽으로 난 계단길이 가장 운치 있다.
노래에 얽힌 뒷얘기들도 많다. 노랫말 속의 동무가 신명여자학교(현 신명고 / 2004년 3월 1일 남녀공학이 되면서 교명이 바뀜) 학생이냐, 대구공립여자보통학교(현 경북여고) 학생이냐는 논란이 일었다. 몇 년 전 대구지역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짝사랑했던 여학생은 신명여고생일 것”이라고 밝혀 논란을 잠재웠다. 박태준이 여학생을 그리워했던 시점이 ‘동무생각’ 작곡 때(1922년)보다 빨라 신명여자학교가 맞다는 주장이다. 그 무렵 박태준의 집이 신명여자학교 등굣길에 있었다는 점도 그런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경북여고는 1926년 3월, 신명고는 대한제국 중학교령(1899년 4월 4일 제정)에 따라 1907년 10월 신명여자중학교로 설립, 문을 열었다.
노래 속 동무(여학생)는 일본 유학
2009년 6월 17일 대구시 중구 동산동 계명대 동산의료원 의료선교박물관 언덕에 ‘동무생각’ 노래비가 세워졌다. 비엔 여학생의 출신학교가 신명여자학교로 새겨져있다. 문화․예술계인사들은 “그 여학생 피부가 백옥처럼 희어서 가사에 백합으로 표현된 것”이라며 “중간에 호사가들 입으로 전해지는 과정에 경북여고 상징꽃(校花)으로 바뀐 것 같다”고 설명했다. 노래주인공인 그 여학생은 나중에 일본생활을 접고 대구의 유력한 어느 변호사와 결혼해 살던 중 경주~대구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 동산동에서 태어난 박태준은 평양 숭실전문학교 재학 때 서양선교사들로부터 성악과 작곡기초를 배워 동요의 초기작품 ‘가을밤’, ‘골목길’ 등을 작곡했다. 작곡가·합창지휘자로 대성하는 바탕을 쌓은 작품들이다. 1929년 동요곡집 ‘중중 때때중’, 1931년 동요곡집 ‘양양 범벅궁’을 발간했다. 1932년 미국으로 가 터스칼럼대, 웨스트민스터음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합창지휘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39년엔 가곡집 ‘물새 발자욱’을 펴냈다. 1936~38년 숭실전문학교 교수, 1948년 연세대 교수로 종교음악과를 만들고 초대 음대학장을 거쳐 1966년 퇴직했다. 그 뒤 한국음악협회이사장을 지내며 서울음악제를 만들었다. 예술원 종신회원을 지낸 그는 ‘오빠 생각’, ‘맴맴’ 등 동요와 가곡 150여 편을 남겼다.
시조시인이자 사학자, 언론인 - 이은상이 작시
가사를 쓴 이은상은 시조시인이자 사학자, 언론인이다. 1920년대 후반 시조부흥운동에 참여, 시조의 현대화에 힘썼다. ‘가고파’, ‘봄 처녀’ 등의 작사가로도 유명하다. 본관은 전주. 필명은 남천(南川)·두우성(斗牛星), 호는 노산(鷺山)·강상유인(江上遊人)·노산학인(鷺山學人)이다. 1918년 아버지가 세운 마산창신학교 고등과를 졸업,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다니다 1923년 그만뒀다. 마산창신학교 선생으로 있다가 1925년 일본 와세다(早稲田)대학 사학과에서 공부했다. 귀국해선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 동아일보 기자, 조선일보 출판국 주간으로 일했다. 1945년 사상범 예비검속으로 광양경찰서에 갇혀있다 8·15광복 때 풀려난 그는 호남신문사 사장을 지냈다. 1950년 이후 청구대(현재 영남대)·서울대 교수로 몸담았다. 시조작가협회장, 독립운동사편찬위원장, 숙명여대 재단이사장, 성곡학술문화재단 이사장, 총력안보국민협의회 의장, 시조작가협회 종신회장, 예술원 종신회원으로 추대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