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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질풍노도] ‘김진태 지사 사태’를 불러온 레고 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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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질풍노도] ‘김진태 지사 사태’를 불러온 레고 랜드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2.10.28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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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자신을 드러내고자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얼굴을 드러내야 먹고사는 연예인부터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일반인까지 다양하다. 이들 못지않게 존재감을 드러내야 먹고사는 존재가 또 있다. 바로 정치인이다. 정치인은 좋든 나쁘든 이슈를 만들어 자신을 드러내려 한다. 심한 경우 선동을 하는 경우도 있어 자칫 정신병으로 의심받기도 한다. 이런 흐름을 타고 2017년경 새로운 신조어가 생겼다. 관심 종자(關心從者)의 준말인 ‘관종(關從)’이다. 

정치인의 행동과 말은 남다른 무게감이 있어 조심해야 함에도 관종 병을 앓는 정치인으로 인해 국민은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 최근 비 피해를 입은 수해현장에서 했던 국회의원의 언행이나 외교에 나선 행정수반의 말실수가 대표적인 예다.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는 말이 있다. 행정수반의 논란을 덮어주려 했을까? 지난 9월 28일 강원도지사 김진태 씨는 레고랜드 건설을 위해 설립한 GJC(강원중도개발공사)의 회생 신청을 하겠다는 회견을 한다. 금리와 환율로 어려움을 겪는 금융시장에 새로운 신용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역대급 이슈로 불을 지른 것이다. 

 GJC는 레고랜드 조성을 주도하면서 2,050억 원의 채권을 발행했고 이에 대한 지급보증을 강원도가 약속하며 신용을 제공한 상태였다. 강원도의 지급보증을 믿은 투자자들은 채권을 매입했다. 모인 돈은 레고랜드를 조성하는데 쓰였다. 그랬던 강원도가 돈을 지급 못하겠다고 한다. 

강원도의 지급보증을 믿은 투자자들이 채권을 매입했는데 도지사가 바뀌니 돈을 안 갚겠다고 하면 누가 지자체를 믿고 채권을 매입하겠는가? 정책 발표를 실국장급에서 했다면 오류수정이라며 핑계라도 대겠지만 도지사가 직접 나서서 발표한 덕분에 주워 담지도 못한다. 

 회생 신청으로 강원도는 보증을 섰던 채무에 대해 100%가 아닌 일부(15%)만 채권자에게 상환하고 나머지(85%)는 채무(돈)가 아닌 주식을 주다 보니 채권 투자가 아닌 주식투자로 바뀐다. 채권자가 투자자로 변질되는 제로섬에서 강원도는 지출 부담이 줄었겠지만 줄어든 부담만큼 돈을 빌려줬던 채권자 입장에서는 강원도의 회생으로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구조가 된다. 10월 5일 강원도가 보증을 섰던 레고랜드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는 최종 부도 처리됐다. 

 해당 ABCP를 10여 곳의 증권회사가 가지고 있었는데 당연히 해당 증권사들의 자산에 대한 부실이 발생했고 유동성 위기가 언급되기 시작했다. 각 증권사들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다른 대출을 회수할 것이고 이런 종류의 대출을 했던 기존 건설사들은 갑작스러운 대출 회수에 또 다른 유동성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 이는 금융시장의 투자심리에 영향을 주게 된다. 건설사가 자체적으로 모집하던 회사채에 돈이 안 몰리면 대형 건설사는 계열사의 지급보증과 채권
매입으로 숨통이 트이겠지만 중소 건설사는 기댈 곳이 은행밖에 없는 상황에서 줄도산이 우려된다. 

 계속되는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환율까지 가파르게 움직이면서 불안했던 우리나라 금융시장에 갑작스러운 내부 총질로 테러가 가해진 것이다. 지방 중소건설사의 줄도산이 현실화될 경우 건설경기까지 얼어붙게 되면서 정부가 공급하겠다던 민간영역의 주택 공급도 차질이 불가피해진다.

 정치적 지향점이 다른 전직 도지사가 추진한 정책에 대한 반감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현직 강원도지사는 너무나도 가볍게 채무불이행을 언급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국가신용등급과 동일한 등급으로 여겨지며 발행된 지자체의 채권이 채무불이행으로 불안해지자 채무(빚) 이행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깨지면서 채권을 믿고 인수하려는 수요가 줄어들었다.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된 정부는 실태를 파악하고 채권시장의 안정시키려고 했다. 빚을 회피하려던 강원도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강원도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신용도에 상처가 생긴다면 더 큰 문제다. 

 지난 9월 29일 FTSE Russell은 FTSE 채권시장 국가 분류를 발표하면서 우리나라를 시장접근성 상향 조정 가능성이 있는 관찰대상국(Watch List)으로 분류했다. 내년 3월과 9월 FTSE Russell은 채권시장 국가 분류 검토를 하면서 우리의 제도 개선 성과를 바탕으로 ‘WGBI(세계국채지수)’ 편입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WGBI에 편입되면 2.5조 달러로 추정되는 지수 추종자금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로 약 50~60조 원의 외국인 투자가 유입될 것으로 추정돼 국채시장은 보다 더 안정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채권시장의 불안을 야기해버린 강원도지사의 역할에 아쉬움이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고 등급의 채권이 채무불이행 되는 사태가 터지자 금융시장의 불안감은 극에 치달았고 시장 참여자들은 혼비백산(魂飛魄散)되었다. 혼란에 휩싸였다. 짧은 시간 임팩트 강한 충격이 가해지자 시장의 혼란은 위험요소가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혼란이 확산되는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금융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채권시장에 참여하려는 자금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금융시장 전반에 돈맥(脈)은 경색되었다. ‘김진태 지사 사태’이후, 채권시장에서 최고 신용등급을 받고 있는 한국전력공사, 한국도로공사, 한국가스공사, 인천공항공사, 국가철도공단 등의 공사채 외에도 기초지자체와 지자체의 공사에서 모집하려던 여러 형태의 채권은 높은 신용도와 높은 이율의 조건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 유찰되고 있다. 그 외에도 여러 우량 대기업에서 진행하던 채권 발행도 계속 유찰되고 있다. 채권에 대한 신뢰가 죽자 찾는 이가 사라지다시피한 것이다.

 예전 동인 김성일과 서인 황윤길은 일본에 가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나고 조선으로 돌아와 조정에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당파 간 논쟁으로 국력이 허비되었고 시간은 낭비되어 전쟁 대비를 못한 채 임진왜란을 맞았고 우리가 알다시피 결과는 처참했다. 강원도 현안인 ‘레고랜드’ 문제를 두고 전·현직 도지사의 서로 다른 입장과 대응으로 인해 나라의 금융과 경제, 신용이 흔들리고 있다. 오늘의 현실과 임진왜란 직전 붕당의 힘겨루기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전직 도지사 때 추진되었던 정책에 대해 현직 도지사가 채무불이행을 하겠다는 입장은 금융시장에서 대한민국의 신뢰도에 실금이 아닌 균열을 주는 대형 사건이다. 사안이 얼마나 급박했으면 97년 외환위기에 못지않은 규모의 수뇌부들이 모여 회의를 했겠는가? 지난 23일 휴일임에도 중구 명동에 있는 은행회관에서는 경제수장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이 모여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마치고 회견까지 했다. 대안은 50조원+α다.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 자해당한(?) 금융시장의 불안을 잠재우려는 시도였다. 행정경험이 서툰 정치인의 미생적인 결정으로 국가 금융과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강원도지사가 무심코 던진 돌은 엄청난 파장을 만들며 전파를 타고 세상에 알려졌다. 언론에서 사태 심각성을 축소하지만 사람으로 따지면 길 가던 행인이 심근경색이 와서 쓰러진 상황이다. 정부의 경제 부처 주요 장(長)들과 경제수석비서관이 나와 긴급자금 50조를 편성한 이유가 바로 이거다. 아시아 일부 국가만 겪었던 외환위기, 미국 부동산시장으로 촉발되었지만 길지 않았던 금융위기보다 지금이 더 심각하다. 지구 역사상 가장 많은 유동성이 풀린 상황에서 급격히 오르는 금리와 널뛰기하는 환율. 지금 약한 고리가 깨지면 회복이 어려워지는데 심각한 균열이 생겨버렸다.

 지금 정부가 채권시장안정을 위해 공급하기로 한 50조원+α는 심각한 균열을 접착제로 붙여보려는 시도다. 일단 환자를 살리고 보자는 응급처방을 한 것에 불과하다. 강원도가 내려친 망치질로 졸지에 응급환자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한 번 쓰러진 환자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상황은 어떤 위기가 닥쳐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으로 급변했다. 본격적인 치료를 하면 비용이 얼마 소요될지 아직 모른다. 금융시장은 참여자들의 심리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정부가 내놓은 대안에 시장 참여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예의 주시하며 지켜보는 것 외에는 없다.

 대내외적으로 채권은 금융시장에서 발행 주체에 따라 각 발행 주체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집단적 신용을 나타내는 척도다. 지자체 살림에 대한 기본이 아니라 기초지식도 없는 강원도지사님 덕분에 우리는 스스로 신용을 내팽개친 꼴이 되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차라리 강원도지사 자리에 횡성에서 스카우트한 소 한 마리를 앉혀놓는 게 나을 뻔했다. 

 현 상황에 탄식이 흘러나오는 것은 필자만의 독백일까?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2,050억 원으로 막을 수 있었던 상황을 회피하자 이제는 50조 원으로도 막을 수 없는 상황으로 확대된 것이라 이해하시면 된다. 얼마 전 영국에서는 서툰 정책으로 금융시장에 엄청난 혼란을 야기한 총리가 여론과 사회적 비판에 책임을 지고 사임을 했다. 지금의 사태는 영국이라는 나라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차이만 있을 뿐 국가의 금융과 경제에 끼치는 영향력에 있어서만큼은 동일한 무게감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금융 강국 영국보다 금리와 환율에 더 큰 영향을 받는 우리나라에 치명적일 수 있다. 강원도지사 김진태씨는 상황에 맞는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함에도 엎드린 채 기도비닉을 유지하며 복지부동하고 있다.  

 이번 채무불이행 사태를 만들어내 금융시장의 불안을 야기하며 질서를 교란시킨 주역 강원도지사 김진태 씨는 그의 정치 이력 중에서 어느 때보다 제대로 된 강력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그는 한때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활동했었던 인물이다. 소속된 당에서 대선후보 경선까지 나서 지지를 호소했고 얼굴을 알리며 큰 그림을 그리던 정치인이었다. 영국 총리는 서툰 정책실수에 대한 일말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 영국의 신뢰 회복과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밑거름이 되었다. 현직 강원도지사도 자리에 연연해하지 말고 자신이 무너뜨린 채권시장의 신뢰 회복과 강원도의 신용 회복을 위해 자진해서 용퇴하는 게 마땅하다. 자신이 저지른 사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면 정치인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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