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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부캐’ 열풍 다음은 ‘가상 인간’이다...진짜보다 매력 있는 가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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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부캐’ 열풍 다음은 ‘가상 인간’이다...진짜보다 매력 있는 가짜들
  • 손은경 객원기자
  • 승인 2021.10.08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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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가수 ‘아담’이 데뷔했다는 소식이 국내 연예계 뉴스를 휩쓴 지 23년이 흘렀다. 만 스무 살에 데뷔한 77년생 아담이 우리와 같이 나이를 먹었다면 올해로 마흔 넷이 되는 세월이다. 누가 봐도 3D 사이버 캐릭터에 불과했던 아담을 지나, 이제 우리는 진짜 사람인지 가짜인지 분간하기 쉽지 않은 ‘가상 인간(virtual human)’들의 세계를 맞이하고 있다.

저 사람이 가짜라고?
몇 달 전부터 지상파는 물론 유튜브와 케이블 채널 등을 통해 활발하게 노출되고 있는 신한라이프의 광고 ‘라이프에 놀라움을 더하다’ 편을 한 번쯤은 마주친 적이 있을 것이다.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이 버스정류장, 옥상, 지하철을 넘나들며 경쾌한 음악에 맞춰 댄스를 선보이는 영상이다.

트렌디하고 완성도 있지만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익숙한 수준, 유명 연예인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영상은 신한라이프의 유튜브 공식 채널에서만 두 달 만에 누적 2천만 조회수(본편 2편 기준)를 넘어설 정도로 대중들로부터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영상의 메인 모델이 진짜 사람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돌면서부터다. 

이번에 신한라이프가 기용한 광고 모델은 가상 인간 ‘로지’다. 기사나 SNS를 통해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 사실이지만, 처음 이 사실을 접했을 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별다른 의심 없이 광고 영상을 봤을 때 ‘로지’가 가상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아채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알고 나서 보면 진짜 사람과는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작은 차이가 이제 불편함보다는 가상 인간만의 매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부캐’ 열풍의 주역인 국내 MZ 세대들에게는 진짜보다 매력적인 가짜들이 더 ‘먹히는 아이템’일 수 있다. ‘부캐’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국내 가상 인간 만들기 열풍
‘로지(ROZY)’는 ‘싸이더스스튜디오X’가 인공지능(AI) 기술로 탄생시킨 국내 최초 버추얼 인플루언서다. Z세대가 선호하는 셀럽들의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동양적이고 개성 있는 얼굴을 구현해냈다. 영원히 늙지 않는 22세 로지는 데뷔 1년 만에 광고 10건, 협찬 100건, 10억원 수익 달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더 많은 매체와 국가들로 활동 범위를 넓히기 위해 ‘에스팀’과 공동 매니지먼트 협약을 맺기도 했다. 

로지의 인기에 이어 국내에서도 한동안 가상 인간 만들기 열풍이 이어질 전망이다. 이미 게임 제작사 스마일게이트의 ‘한유아’, 콘텐츠 제작사 온마인드의 가상 아이돌 ‘수아’, 디지털 아이돌 제작사 딥스튜디오의 가상 아이돌 그룹 ‘유어스’, AI전문 기업 클레온의 ‘우주’, 롯데홈쇼핑의 AI쇼호스트 ‘루시’ 등 다수의 가상 인간들이 활동을 시작했다. CJ ENM도 가상 인간을 개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한다는 방침이다. 

외국인 가상 인간은?
미국 시장조사 업체인 비즈니스 인사이더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가상인간 마케팅 시장은 2019년 9조원에서 2022년 17조원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에서는 올해 막 가상 인간이 조명받기 시작했는데 이미 전 세계적 시장 규모가 작지 않다. 미국과 일본 등 해외에서는 몇 해 전부터 이미 가상 인간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19세 브라질계 미국인으로 설정된 ‘릴 미켈라(Lil Miquela)’가 대표적이다.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300만,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로지가 9만명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비교하기 힘든 차이다. 릴 미켈라는 2019년 기준 한해에만 130억원이 넘는 수익을 거뒀고, 타임지 선정 인터넷에서 영향력 있는 25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케아(IKEA) 광고 모델로 발탁되며 이목을 끌었던 일본의 ‘이마(Imma)’는 팔로워가 35만명, 세계 최초 디지털 모델 영국 ‘슈두(Shudu)’ 또한 21만 7000명이 넘는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보유한다. 

‘부캐’는 온라인 게임에서 주로 사용하는 캐릭터(본캐릭터, 본캐) 외에 새롭게 만든 제2의 캐릭터를 줄여서 부르는 말에서 유래했다. 연예인이 능청맞게 다른 정체성을 가진 캐릭터를 설정·연기하면서 부캐 활동을 하고, 팬들 또한 그에 응수해 부캐가 마치 진짜 존재하는 대상인 양 응원하는 문화가 자리잡았다. 현재는 ‘부캐’라는 용어가 일반인들의 일상에까지 사용이 확대되면서 평소 내 모습이 아닌 새로운 행위, 취미, 일 등을 할 때에도 사용된다. 위 사진은 김신영이 자신의 둘째 이모를 콘셉트로 부캐 김다비로 음반 및 예능활동을 하는 모습이다.  

“문제는 콘텐츠야”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표정과 움직임을 구현하는 데는 ‘디지털 3D 더블’ 기술이 주로 활용되는데 이는 실제 모델을 촬영한 후 3D 모델링으로 얼굴을 합성하는 방식이다. 모델링과 딥러닝 기술이 발달할수록 가상 인간의 외형은 더 정교해진다. 기술은 더 빠르게 진화할 것이고, 가상 인간이 실제 인간의 외형과 동일한 수준으로 온라인 세상을 거닐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 

그러나 기술과 외형 이전에 먼저 정교해져야 할 것은 차별화된 콘텐츠다. 국내 미디어 산업에서 ‘부캐’들이 전성시대를 맞은 것은 그들이 특정 캐릭터를 똑같이 묘사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보여주는 가상의 콘텐츠가 실제보다 더 ‘톡 쏘는 맛’이기 때문에 주목받았다. 실제 있을 법하면서도 현실 세계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가상의 캐릭터가 매우 정교하게 설계된 세계관을 바탕으로 ‘본캐’라면 하기 힘들었을 말과 행동들을 거침없이 이어나가는 쾌감. 사람들이 탐닉하는 것은 완벽할 만큼 사람에 가깝고 수려한 외모가 아니라, 이전에는 본 적 없는 새로운 콘텐츠와 스토리텔링 아닐까. 

손은경 객원기자  twelvenose@gam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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