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떠도는 부(富)] 광산으로 시작된 아테네의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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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부(富)] 광산으로 시작된 아테네의 부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9.07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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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광산을 통해 해군력을 상승시킨 아테네는 에개 해 패권을 장악한다

[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소수 귀족의 토지 독점에 불만을 품었던 농민과 재산이 있어도 신분 제약으로 정치 참여가 불가능했던 상인의 폭발은 솔론이 개혁을 통해 어느 정도 잠재웠다. 그러나 농민은 균등한 배분을 원했고 상인들도 더 큰 힘을 바랐다. 과점하던 권력을 공유하게 된 귀족의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어 권력을 잡은 페이시스트라토스는 귀족 세력을 약화시키며 상공업과 무역을 장려했고, 중앙집권 강화와 정당성 확보를 위해 농민과 하층민을 위한 정책을 펼쳐 개혁을 뒷받침했다. 또한 해군을 육성함으로써 육군 위주로 편성된 아테네가 해양세력으로 변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BC493년 집정관에 오른 테미스토클레스는 페르시아를 상대할 수 있는 해군력을 가지기 위해 노력했지만 막대한 재원을 감당할 방법이 없었다. 마침 BC483년에 라우레이온 은광이 발견돼 테미스토클레스는 본격적인 에게 해 장악에 나섰다. 갤리선으로 불리는 3단 노선 200척을 보유하자는 그의 의견도 의회를 통과했으며 은 채굴, 항만과 갤리선을 만드는 데 빈민층을 투입시켜 일자리를 제공하고 이들에게 급여로 은전을 지급했다.

일꾼들은 은전을 받아 생필품 구입에 소비했고 은전은 시장을 빠르게 회전시켰다. 단순한 소비로 끝내지 않고 은으로 일자리와 소비시장을 회전시킨 것이다, 통화 버블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내수가 활성화되면서 아테네 경제가 살아났다. 안정적인 채굴이 가능한 은광을 소유하게 된 아테네는 스파르타, 테베와 경쟁에서 경제적 우위를 점유하게 됐다.

막강한 해군 또한 보유하게 됐다. 아테네는 해운은 발달했지만 해군력은 볼품없었다. 아테네는 일찍이 최강의 해군을 양성해 에게 해를 장악하고 상권을 독점해 부유함을 누리던 아이기나를 부러워하고 시기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아테네 시민들의 이런 감정을 이용해서 페르시아가 아닌 아이기나를 이기기 위한 해군을 만들자고 설득했고 은광에서 채굴한 자본으로 200여 척의 갤리선을 제작, 막강한 함대를 보유하게 됐다. 아이기나 해군을 능가하는 힘으로 에게 해 패권은 아테네 손에 들어갔다.

시장에 은이 넘쳐나자 아테네 경제는 활발해졌지만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은이 많아지자 자연히 값이 떨어졌고 상대적으로 물가가 오르며 금값이 상승했다. 이 때 페르시아 상인들이 금과 은을 교환하면서 시세차익을 보기 시작했다. 문제는 많은 상인들이 소문을 듣고 페르시아의 금을 아테네로 유출하면서 금본위제국가인 페르시아의 내수시장이 혼란스러워졌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페르시아는 아나톨리아반도 안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보면서 긴장관계를 유지하다가 결국 BC480년 아테네로 함대로 보내면서 테미스토텔레스의 예상대로 전쟁이 시작됐다.

200척의 해군이 활약한 살라미스 해전의 승리로 아테네는 육군에서도 전세를 역전시켰다. 전쟁 발발 1년 만에 페르시아를 후퇴하게 만든 것이다. 어떤 학자는 만일 그리스가 은광으로 구축된 해군력을 보유하지 않았다면 이후의 서양문명은 암흑기를 맞았을 거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테미스토텔레스는 보유한 은과 대량 유입된 금화로 물자를 수월하게 조달해 승리를 거머쥔다. 전쟁을 이기게 해준 은 광산은 4세기 후반까지도 많은 양의 은을 채굴하면서 아테네 경제가 발전을 이어가는 데 기여한다.

이강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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