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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부(富)] 거래의 편의성 때문에 시작된 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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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부(富)] 거래의 편의성 때문에 시작된 화폐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9.14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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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가 만든 주화는 점차 상업 중심으로 전환될 때 본격적으로 사용
그리스 은화의 은 함유량을 낮춰 페르시아 은화와 동일하게 만들어...

[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화폐가 상용되기 전, 그리스에서는 올리브와 작물의 씨앗, 그리고 소금이나 비단이 물물교환의 주요 수단이었다. 함께 사용된 것이 조개껍데기였다.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조개를 상장하는 ‘貝’와 비단을 상징하는 ‘幣’이 합쳐진 ‘화폐(貨幣)’라는 단어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화폐로 사용된 조개껍데기는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에서 발견되는데 조개껍데기로 만든 목걸이 같은 장식품은 부의 상징이었다.

아시리아가 망하면서 4개의 국가로 갈라지는데 그중의 하나인 리디아 왕국의 팍톨루스(Pactolus)강과 광산에서는 호박금이 나왔다. 이것을 이용해 주화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인류 최초의 화폐이다. 주화에는 왕의 상징인 사자의 얼굴이 찍혀있고 4.76g이라는 일정한 형태와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리디아의 마지막 왕인 크로이소스는 엄청난 부를 기반으로 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로 인한 자만심이 과했던지 페르시아를 정복하려고 계획했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정복당한다. 그로 인해 리디아의 많은 부도 함께 넘어가게 되고 페르시아는 그 부를 기반으로 새로운 패권을 쥐게 된다.

페르시아를 지배하던 다리우스 1세는 자신의 모습을 담은 금화를 만들었다. 다리우스의 이름을 따 다라야카(dārayaka)로 불린 금화는 5.4g으로 만들어졌고 세겔이라는 단위를 사용했다. 은화는 8g으로 만들어졌는데 드라크마라는 단위를 사용했다. 막강한 군사력으로 이집트와 소아시아를 정복했던 페르시아의 영향력으로 다리우스가 만든 주화는 곳곳에서 사용되었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 교역에 치중했던 그리스인들은 물물교환으로 인한 불편보다 금속으로 만든 화폐의 편의성을 깨닫게 된다. 과도기를 거쳐 구리를 녹여 주화 형태로 만드는데 이게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동전’의 기원이 된다.

그리스가 만든 주화는 해상무역이 발달하면서 농업 중심의 경제가 점차 상업 중심으로 전환될 때 본격적으로 사용된다. 그리스의 주화 사용은 식민도시가 확대되면서 흑해의 해안 일대에서 아나톨리아 반도의 서쪽 해안과 지금의 나폴리지역인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섬에 이르기까지 확대된다. 

그리스의 현인 중의 한 명인 솔론은 집정관이 된 이후 아테네의 개혁을 위해 경제를 활성화하려고 했다. 그 중심에 해상무역을 두고 주변국과의 교역을 증가시켜 경제를 일으키려고 했다. 그들은 편이성을 위해 주화를 통일시키는 계획을 세운다. 그리스 은화의 은 함유량을 낮춰 페르시아 은화와 동일하게 만든 것이다.

이제페르시아와 아테네의 은화는 동일한 가치를 가지게 되었고 둘의 교역은 더욱 자유로워졌다. 다른 나라들과 교역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한 아테네는 그리스의 식민도시들과 이집트와 교역에서 많은 돈을 벌게 되었고 아테네에는 부가 쌓이게 된다.

이강희 칼럼니스트
이강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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