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떠도는 부(富)] 솔론의 금권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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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도는 부(富)] 솔론의 금권정치
  • 이강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8.31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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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소수에게 집중되어버린 부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나타난 사람이 솔론(Solon)이다

[소비라이프/이강희 칼럼니스트] 고대 그리스의 양대 축으로 알려진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주어진 환경이 다르다 보니 사회구조의 발전 방향도 달랐다.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자리했던 스파르타는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했다. 분지 형태의 라코니아 평야에는 에우로타스강이 흐르고 있어 곡물 농사에 유리했다.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풍족함으로 인해 외부와의 교류가 적어 폐쇄적인 사회로 발전하면서 효율을 따지는 군국주의 체제로 성장했다. 
 
아테네도 초기에는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였다. 문제는 아테네가 자리한 아티카 지역은 곡식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적었고 수자원도 부족했다. 그나마도 소수의 귀족이 토지를 독점해 대다수 사람은 충분한 식량을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사람들은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지만, 대부분을 땅의 임대료로 지불하다 보니 만성적인 식량부족을 겪었고 임대료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최초의 성문법이라고 불리는 아테네의 드라콘 법에는 인신의 담보가치를 인정해 채무를 갚지 못하면 노예가 되는 것을 허용했다. 자신과 가족이 저당 잡혀 갚지 못한 빚 때문에 다른 폴리스로 팔려 가는 경우도 발생했다. 흉작으로 인한 부채증가는 이런 현상을 가속화했다. 결국 많은 사람이 소수에게 집중되어버린 부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나타난 사람이 솔론(Solon)이다. 
 
594년에 양측의 집정관(아르콘)이 된 솔론은 모든 부채를 없애고 부채로 인해 노예가 된 사람들을 해방시켰다. 다른 폴리스에 팔려 간 사람들마저도 값을 지불하고 데려왔다. 이후 인신담보를 금지하고 이를 제도화하는 법이 제정됐다. 사람들은 이 제도를 ‘무거운 짐을 덜었다’는 의미의 ‘세이사크테이아(Seisachteia)’라 불렀다. 귀족층과 지주들의 채권이 사라지면서 불만이 높았지만, 부자였던 솔론 자신도 많은 금액의 채권을 잃었기에 반발을 줄일 수 있었다. 
 
또한, 식량 유출을 방지하고자 올리브 외의 농산품 수출을 막았다. 올리브 생산을 위한 농사 이외에도 기름 생산과 도구 제작, 도자기 생산까지 많은 기술자가 필요했다. 노예에서 해방된 사람들에게 이런 기술을 배우게 해 일자리를 주었고 수입이 안정되게 했다. 아테네의 특산품이 된 올리브유는 품질도 높아 식민지에서 비싼 가격에 거래되었고 덤으로 올리브유를 담은 도자기까지 명성을 얻어 수출상품에 이름을 올린다. 이렇게 벌어들인 수익으로 폴리스를 먹일 곡물도 충분히 확보하며 만성이었던 식량부족을 해결했다. 
 
귀족 출신들에게만 주어졌던 참정권에도 변화를 주었다. 다수가 참여해서 정책을 결정하는 기구들을 만들게 되는데 그 기준이 혈통과 출신이 아닌 재산이었다. 우리는 이것을 금권정치(金權政治)라고 표현한다. 아테네의 운영을 위해 세금을 기초로 4개의 신분으로 나누었다. 민회와 법정에 참석만 할 수 있는 테테스(세금 면제)를 제외한 펜타코시오메딤노이(세금60% 담당), 히페이스(세금30% 담당), 제우기타이(세금10% 담당)는 등급과 기여도에 맞는 선출직 관직을 맡아 폴리스 운영에 같이 참여할 수 있었다. 
 
이러한 금권(金權)은 근대에 이르러 선거권이 확대되는 데에도 영향을 준다. 처음에는 부르주아상공업자 같은 자본가들에게 주어졌던 선거권이 여러 과정을 통해 도시민을 거쳐 농어촌과 광산의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순차적으로 넓어져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강희 칼럼니스트
이강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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