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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뇌 손상으로 의식과 운동기능은 잃었지만 호흡·소화·흡수·순환 등의 기능은 살아있는 환자를 ‘식물인간’(persistent vegetative state)이라 한다. 종전부터 식물인간 등에 대해 안락사나 존엄사가 허용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식물인간’ 환자가족은 의사에게 인공호흡기 등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생명연장 의료행위를 멈춰줄 것을 청구할 수 있는지, 의사는 그럴 때 인공호흡기를 땔 의무가 있는지 여부 등에 여러 의견들이 있었다. 이와 관련, 최근 세상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각계 논란을 가열시킨 하급심 판결(서울서부지방법원 2008가합6977)이 나왔다. 사실관계는 이렇다. 홍길동씨는 저산소증에 따른 뇌손상을 입고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에서 입원·치료를 받는 환자다. 그는 지속적 식물인간상태에 있고 인공호흡기를 붙인 채 항생제 투여, 인공영양 공급, 수액 공급 등의 치료를 받고 있고 인공호흡기를 빼면 곧 숨지게 된다. 홍씨와 그 가족들은 병원을 상대로 ‘인공호흡기 제거’를 청구한다. 홍씨에 대한 치료는 건강을 좋게 하는 게 아니라 생명징후만을 단순히 늘리는 것에 그쳐 의학적으로 의미가 없다. 홍길동도 평소 무의미한 생명연장을 거부하고 자연스런 사망을 원한다는 뜻을 나타낸 바 있다는 게 그 이유다. 당연히 병원은 의료법 등에 규정된 생명보호의무가 있음을 이유로 들어 이를 거부한다.생명연장 무의미한 때 예외 인정법원은 환자자신의 청구에 대해 의사에겐 의료법 등에 따라 호흡기를 빼선 안 될 의무가 있으므로 원칙적으로는 이에 응할 의무가 없다고 인정했다. 다만 생명연장이 무의미한 경우 예외적으로 이를 허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즉 “의학기술 발달로 의료장치에 의한 생계기능 유지 및 생명 연장이 가능해진 오늘날에는 생명연장 치료가 회복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식물상태로 의식 없이 생명을 연장해야 하는 정신적 고통의 무의미한 연장을 강요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돼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인격적 가치를 해할 수 있다”고 전제한 뒤 “이 같이 생명연장이 무의미해 환자가 삶과 죽의의 경계에서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는 게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더 부합하고 죽음을 맞이할 이익이 생명을 유지할 이익보다 더 큰 경우에는 의사는 인공호흡기 제거를 요구하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의 행사를 거부할 수 없고, 환자요구에 응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나아가 제3의 중립적 의료기관의 견해에 기초해 홍길동이 회복가능성이 거의 없고, 치료가 의학적으로 무의미하며, 환자의 평소 의사가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고자 하는 의사로 추정된다는 점을 근거로 홍길동의 청구를 받아들인다.가족들 치료중단 요구 인정 안돼반면 법원은 환자가족들에게는 인공호흡기제거 청구권이 없다고 판단한다. 즉 “환자의 가족들이 환자에 대한 생명연장치료로 인해 경제적,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해도 치료의 중단청구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줄이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가족들의 독자적 청구권을 인정하는 입법이 없는 한 가족들이 치료중단청구권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러나 안락사 등의 문제가 학계, 종교계 논쟁이나 법원판단에만 의존해선 안 될 것이다. 이번 기회에 광범위한 토론 등을 통해 ‘안락사’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고 의사의 치료중단행위가 인정되는 요건 등에 대한 구체적 입법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소비라이프Q | 소비라이프뉴스 | 2009-02-12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