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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감증명서 도용한 대출 손해배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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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감증명서 도용한 대출 손해배상은?
  • 소비라이프뉴스
  • 승인 2008.10.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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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 씨는 어느 날 최고은행으로부터 ‘대출이자를 갚으라’는 독촉장을 받았다. 

알고 보니 누군가 동사무소에서 자신의 이름을 몰래 훔쳐 인감증명서를 발급받은 뒤 ‘최고은행’에 그 소유의 집을 담보로 잡혀 거액의 대출금을 받아 달아난 것. 

홍 씨는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것일까. 결론은 갚지 않아도 된다. 

결국 은행은 근저당권설정등기를 말소해줘야 한다. 그렇다면 최고은행은 누구로부터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을 것인가.


피해자 독촉장 보낸 은행에 항의

이 같이 ‘공무원이 본인이나 대리인이 아닌 권한 없는 사람에게 인감증명서를 발급해줘 대출이 이뤄 진 경우 금융기관이 입은 손해는 지방자치단체가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판결이 나왔다. 

이는 2003년 3월 25일 새 인감증명법 시행 후 과실로 인감을 발급해준 지방자치단체에게 손해배상을 인정한 대법원의 첫 판결이다(대법원 2008. 7. 24. 선고 대법원 2006다63273판결). 

사실관계는 이렇다. 서울 구로구의 동사무소에서 인감증명서 발급업무를 맡은 공무원 임꺽정 씨는 2004년 6월 자신을 ‘홍길동’이라 속인 ‘일지매 씨’로부터 인감증명서를 발급 신청을 받았다. 

임꺽정은 신청서에 찍힌 홍길동의 지문과 컴퓨터 화면에 나타난 홍길동 지문을 눈으로 비교한 뒤 같다고 판단, 인감증명서를 발급해줬다. 

인감증명서를 발급 받은 일지매는 일주일 뒤 홍길동 주민등록증에 자신의 사진을 오려붙이고 인감도장을 위조한 뒤 최고은행에 홍길동의 아파트를 담보로 3억 원을 빌렸다. 

한 달 가까이 지나서야 이 사실을 안 홍길동은 곧바로 최고은행에 항의했다. 은행은 사실 확인 뒤 홍길동 아파트에 설정했던 근저당권설정등기를 말소하고 지자체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최고은행은 ‘공무원에게 발급된 인감증명으로 인한 부정행위를 막을 직무상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어겨 발급해준 인감증명서로 손해를 입었으므로 2억8천여만 원(대출금 3억 원에서 인지대ㆍ수수료를 뺀 금액)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하급심판결은 엇갈렸다. 1심 재판부는 은행 손을 들어줬다. "공무원의 직무상과실로 부정 발급된 인감증명서 때문에 대출이 이뤄졌으므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 위조된 주민등록증을 확인 않은 은행에도 과실이 있다고 보아 "구로구는 은행에 8천4백여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지자체 손을 들어줬다. "구로구는 인감증명에 의해 제출된 인감의 동일성여부만 확인할 뿐 은행이 조금만 주의해서 봤다면 대출신청자가 제시한 주민등록증이 위조된 사실을 충분히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게 그 이유다.

대법원은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인감증명은 인감자체의 동일성을 증명함과 동시에 거래행위자의 동일성과 거래행위가 행위자의사에 의한 것임을 확인하는 자료로서 일반인의 거래상 극히 중요한 기능을 갖고 있다"면서 "인감증명사무를 처리하는 공무원은 인감증명이 다른 사람과의 권리의무에 관계되는 일에 사용되는 것을 예상하고, 발급된 인감증명으로 인한 부정행위발생을 막을 직무상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발급된 허위인감증명에 의해 그 인감명의인과 계약을 맺은 사람이 손해를 입었다면 인감증명교부와 손해사이엔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는 종전 판결을 인용하면서 신 인감증명법 시행으로 "증명청이 전산정보처리조직을 이용, 인감증명을 발급할 수 있게 바뀌면서 신청서에 찍힌 인영과 인감대장상의 인영을 대조·확인하는 절차를 생략하고 단순히 인감대장상 인영을 현출해 그것이 신고 돼있는 인감의 인영임을 증명하는 간접증명방식으로 전환됐다고 하여 달리볼 것은 아니다"고 판시했다.

인감증명서는 거래행위가 행위자의 의사에 따른 것임을 확인하는 중요한 문서로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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